이 밤 다 가기 전에
바다를 헤쳐 솟아오는 해를 보러 가리라
사랑하는 사람들 잠든 세월을 깨워
저마다 젊은 파랑새 한 마리씩 짝을 지어
짙은 어둠 토해버릴 해를 맞으러 가리라
아픈 자의 병상에 빛을,
가난한 자의 심장에 불을,
고독한 자의 눈에 소망을,
교만한 자의 가슴에 믿음을 잉태시키던
삼백 육십 오일 그 붉었던 사랑을
삼백 육십 오일 늘 푸를 사랑에게 바치는
太初 그 거룩한 의식을 하얀 맨살로 품으리라
바라보는 눈길 하나 하나에
등돌렸던 아픔 가닥 가닥 담고
내쉬는 숨결 한 올 한 올에
들이쉰 생명 모락 모락 피워 내어
숙이는 고개 마디 마디
나 아닌 나를 채우리라
내가 아닌 너를 채우리라
오늘은, 어제의 거울 그 자체로 하여
아름답고,
오늘은, 내일의 마음 그 자체로 하여
풍요로운 새해의 첫 소풍날,
사랑하는 사람들 손에 손잡고
어둠 삭혀 마시며 해맞이 가는 날.
2002, 1, 1.
세상 이야기
저 위에선 정작 그건 아니라는데
우리 위에선 계속 그것이라 한다.
오늘도
저 거리에서 이 거리로
한 그루의 나무를 빼어다 심고
하루를 마쳤다.
"해!"
"해!"
시키면 시키는 대로,
내일은 그 나무를 다시 뽑아
이 거리에서 저 거리로 가져다 심어!
그게 우리들 사는 길이라며
우리 위에선 매일
비어 가는 나무 한 그루만
죽이고 또 죽이라 한다.
저 위에선 정작 그건 아니라는데
우리 위에선 계속 그것이라 한다.
2002, 1, 11.
그대 외롭거든
그대 영혼이 외롭거든
창밖 하늘의 구름을 보아요
구름 꼭지 설움이 물결마냥 떠가지 않아요?
그대 사랑이 외롭거든
주말 저녁 TV 연속극을 보아요
기다리던 사람이 거짓말처럼 오고 있어요
그대 진실이 외롭거든
어릴 적 그림동화를 주저말고 읽어요
주먹만한 눈물이 그대 볼을 흐를거예요
하지만 그대
사는게 아무리 외로워도
술잔 속은 들여다 보지 마세요
세상에 술만한 외로움은 없으니까요
1989, 7, 21.
진(Jeans)
뒷 주머니
훔친 문화 반으로 접어 넣고
실렁 실렁
반만년 황톳길을 후비며 간다
그는 시퍼런 깡패다
고작 기백년 힘만 센 코흘리개
흰 소리에
단군이와 대한이가 무릎을 꺽고
지일-질 끌려 간다
버선발 고쟁이에 퍼런 물이 든다
2002, 2, 6.
친 구 에 게
유성 국립묘지에서
“一九八八년 三월 一九일
국군 수도 병원에서 순직“
넌 항상 여기 있었구나.
단풍도 지쳐 음악만 그윽한 산자락 아래
산사의 아침 햇살보다 더 맑은
동해의 저녁 파도보다 더 하얀
젊은 조국의 넋이 되어
영원히 너를 태우고 있었구나.
“사병묘역 4구역 마지막 줄”
넌 항상 여기 있었구나.
십 삼년 전 마지막 술자리에서 부르던
정다운 너의 이름 석자보다
‘3370’이라는 차가운 번호로 불리어지는
“육군 일병 오세일의 묘”
세일아!
소주 한 잔 받아라!
안주 한 입, 담배 한 개피.
대답도 없이, 표정도 없이
묘비만 흐릿하게 젖어들 뿐
육군 병장 박병윤의 묘
육군 상병 임덕규의 묘 사이에
넌 항상 여기 있었구나.
경상도 합천 삼가면 조화 한 다발
너를 다시 만나는 시간까지
남아있는 자들의 가슴을 메우고 있을
생명이 없어 더욱 진한 그리움 한 다발
너를 깨워 나의 집으로 데려가마
너를 안아 너의 집으로 데려가마
이제 우리 함께 가야 할 때가 왔다.
2001, 1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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