歸 天(귀 천)
주인님 마음자리 내 양심
조그마이 허락된다면
하늘로 돌아가고 싶다
내 살던 도시와 마주보는 공간에
열 서너 평 집을 내리고
난 마냥 난간에 매달려
세상 구경을 하리라
이제는 위가 아래요
밑이 꼭대기인 터밭에서
꽃으로 가려진 뿌리로 하여
옛 시절 만큼이나
눈물도 떨구겠지만
그때는 다시 화안한 주인님의 얼굴을 보며
떠나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으리라
혹 주인님이 우는 날,
내 주인님을 단 한번 배반하는 날
주인님 울음에도 내 울지 않고
내 사랑한 이들의 머리위를 맴돌며
말하리라, 사랑하라고
주인님은 그제사 눈물 거두며
나는 다시 그의 충실한 하인이 되고
모두들 ‘내가 죽었다’ 말하리라
부처님의 허한 웃음을
골고다 언덕
예수님의 쳐진 목 십자가에 걸고
주저없이 얘기하리라,
하늘도 주인이 있다면
내 살아갈수록 죽어가는 양심
주인님 마음자리 어느 구석자리 놓아둘 수 있다면
날 하늘로 데려가 달라고..
-아, 난 하늘로 돌아가고 싶다.
1988 , 11, 25.
운 명 Ⅰ
애당초 하나의 사이로 지내야 했던 우리 손바닥에도
텁텁한 운명은 거미줄 마냥 널려져 있었던 게다
소리를 내며 사라지는 가는 인연 아래서
꽃은 지고
강은 흐르고
그 곁을 지나는 발길도, 결코 되돌려질 수 없는
자살을 고민한 놈씨의 얼굴에서 찾을 수 있는
기억을 망각의 오두막에 잠재운 채
텅 빈 가슴으로 삶을 얘기하며
언제나 부서져 있는 답을 구하려던 우리에게도
부벼대던 손등이 가슴으로부터 시려오는
이미 와 있었던 겨울이 있었던 게다
파란 핏줄을 이어 보아도
그들이 서로 안을 수 없는 피 터진 의식이
아예 눈을 감고 사이에 누워 있었던 게다
삶을 절단당한 졸업식장의 갈라진 언저리에서
죽음을 포기한 금테의 눈부심에도
느긋한 신의 예언은 믿을 수 있을 만큼, 예리하게
당신을 비웃고
살아가는 이야기로 웃겨 보아도
이내 다시 죽어가는 신음을 마주해야 하는
우리의 마지막 피빛 구토도, 그에게는 미친 유희처럼
애초 여러개의 그럼직한 덫에 지나지 않았던 게다.
1993 , 2, 25.
삶
늘 정해진 길인 줄 알았네
더듬어 보듬을 수 있다면
까까머리 시절에
감성을 이해하려고 양말을 기우듯
시를 고친 적이 있었네
너덜 너덜 바람이 뼈를 쑤셔도
미련없이 사랑하리라 믿었네....
세상은 늘 내게 가르쳤네
"네가 제일 잘 하는 것을 해"
"하하, 내가 하는 게 바로 세상이야"
하늘이 온통 새까맣게 달려들었어
겨울 햇살에 눈이 부셔
눈 녹듯 프랑스 문학을 찜했네
영국말로 밥벌이를 하리라곤...
살아온 세월보다 더 때가 묻어
예정된 시간마저 나를 안을 수 없다는 게
슬픈, 너무나 맑은 가을날 오후
그 감성,
서른 네번의 봄 노래들,
그리하여
다시금 어루만질 또 다른 겨울이
꼬옥 껴안아야 할 진정 나의 길이란 걸...
후후, 이제 사랑할 일만 남았네
2001, 10, 11.
아내를 위한 노래
구름 가득, 하늘
벌건 바다, 갈 곳 없는
꼬옥 숨은 나의 터
세상이 부르리라 믿었습니다.
허덕이는 하루
또 숨을 죽이며 사라지는 하루
시간을 훔치고 싶었습니다
아예 죽도록 사랑하고 싶었습니다
꼭두 새벽, 울음 터뜨리며
당신 오는 날
삼일 먼저 울음 터뜨리며
핏발 선 눈동자, 치켜 뜨며
오랜 세월 움츠렸던 사상
그 마디 마디를 분질러
맘껏 토해 버렸지요
하늘이 나의 품에 들었습니다
오늘이었습니다
내 당신 마중 나오던 날이
1999 , 3 , 12.
당신의 날을 축하하며
남자들도 화장을 한다는 사실을
이제사 알았다
Tv에 나오는 아나운서가
햇살보다 밝아 보이는 이유를
이제사 알았다
화장하지 않는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이 없다는 중거다
매양 맨 얼굴로
부시시 눈꼽 낀 마음으로
대하던 어머님의 웃음짓던 얼굴이
가슴 속 눈물 소리 크게 울리는
한숨임을 이제야 알았다
빈 강 속
늘어진 어깨 만큼이나
절망 그 깊은 바닥을 짚던
어머님 당신의 울음을
이제야 들었다
푸르런 날
화장 곱게 하고
화알짝 주름살 펴 드리러 간다
내가 화장하는 이유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증거다
지켜야 할 사랑이 있다는 증거다
1999 , 9, 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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