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KOREAN POEMS

ENARO's POEMS 11(귀천/운명1/삶/아내를 위한../화장하는 이유)

ENARO 2008. 5. 21. 20:45
 

歸 天(귀 천)


하늘도 주인이 있다면

주인님 마음자리 내 양심

조그마이 허락된다면

하늘로 돌아가고 싶다


내 살던 도시와 마주보는 공간에

열 서너 평 집을 내리고

난 마냥 난간에 매달려

세상 구경을 하리라


이제는 위가 아래요

밑이 꼭대기인 터밭에서

꽃으로 가려진 뿌리로 하여

옛 시절 만큼이나

눈물도 떨구겠지만

그때는 다시 화안한 주인님의 얼굴을 보며

떠나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으리라


혹 주인님이 우는 날,

내 주인님을 단 한번 배반하는 날

주인님 울음에도 내 울지 않고

내 사랑한 이들의 머리위를 맴돌며

말하리라, 사랑하라고


주인님은 그제사 눈물 거두며

나는 다시 그의 충실한 하인이 되고

모두들 ‘내가 죽었다’ 말하리라

 

부처님의 허한 웃음을

골고다 언덕

예수님의 쳐진 목 십자가에 걸고

주저없이 얘기하리라,


하늘도 주인이 있다면

내 살아갈수록 죽어가는 양심

주인님 마음자리 어느 구석자리 놓아둘 수 있다면

날 하늘로 데려가 달라고..


-아, 난 하늘로 돌아가고 싶다.


                               1988 , 11, 25.

        

           운  명 Ⅰ


애당초 하나의 사이로 지내야 했던 우리 손바닥에도

텁텁한 운명은 거미줄 마냥 널려져 있었던 게다


소리를 내며 사라지는 가는 인연 아래서

하루의 저녁을 쉬이 이야기하듯

꽃은 지고

강은 흐르고

그 곁을 지나는 발길도, 결코 되돌려질 수 없는

자살을 고민한 놈씨의 얼굴에서 찾을 수 있는

눈동자가 살해당한 거친,

기억을 망각의 오두막에 잠재운 채

텅 빈 가슴으로 삶을 얘기하며

언제나 부서져 있는 답을 구하려던 우리에게도

부벼대던 손등이 가슴으로부터 시려오는

이미 와 있었던 겨울이 있었던 게다


노동자의 발목과 글쟁이의 손목에

파란 핏줄을 이어 보아도

그들이 서로 안을 수 없는 피 터진 의식이

아예 눈을 감고 사이에 누워 있었던 게다


삶을 절단당한 졸업식장의 갈라진 언저리에서

죽음을 포기한 금테의 눈부심에도

느긋한 신의 예언은 믿을 수 있을 만큼, 예리하게

당신을 비웃고

살아가는 이야기로 웃겨 보아도

이내 다시 죽어가는 신음을 마주해야 하는

우리의 마지막 피빛 구토도, 그에게는 미친 유희처럼

애초 여러개의 그럼직한 덫에 지나지 않았던 게다.  

                                                   1993 , 2, 25.

 

 

          삶

 

늘 정해진 길인 줄 알았네

더듬어 보듬을 수 있다면

행복이 나를 안을 줄 알았네


까까머리 시절에

감성을 이해하려고 양말을 기우듯

시를 고친 적이 있었네

너덜 너덜 바람이 뼈를 쑤셔도

미련없이 사랑하리라 믿었네....


세상은 늘 내게 가르쳤네

"네가 제일 잘 하는 것을 해"

"하하, 내가 하는 게 바로 세상이야"

하늘이 온통 새까맣게 달려들었어


겨울 햇살에 눈이 부셔

눈 녹듯 프랑스 문학을 찜했네

영국말로 밥벌이를 하리라곤...


살아온 세월보다 더 때가 묻어

예정된 시간마저 나를 안을 수 없다는 게

슬픈, 너무나 맑은 가을날 오후


그 감성,

서른 네번의 봄 노래들,

그리하여 

다시금 어루만질 또 다른 겨울이

꼬옥 껴안아야 할 진정 나의 길이란 걸...


후후, 이제 사랑할 일만 남았네      

 

                                    2001, 10, 11.

 

 

아내를 위한 노래


구름 가득, 하늘

벌건 바다, 갈 곳 없는

꼬옥 숨은 나의 터

세상이 부르리라 믿었습니다.

 

허덕이는 하루

또 숨을 죽이며 사라지는 하루

시간을 훔치고 싶었습니다

아예 죽도록 사랑하고 싶었습니다


꼭두 새벽, 울음 터뜨리며

당신 오는 날

삼일 먼저 울음 터뜨리며

당신을 동구 밖 어귀에서 기다렸지요


핏발 선 눈동자, 치켜 뜨며

오랜 세월 움츠렸던 사상

그 마디 마디를 분질러

맘껏 토해 버렸지요

하늘이 나의 품에 들었습니다


오늘이었습니다

내 당신 마중 나오던 날이


                          1999 , 3 , 12.

                      당신의 날을 축하하며



화장을 하는 이유


남자들도 화장을 한다는 사실을

이제사 알았다


Tv에 나오는 아나운서가

햇살보다 밝아 보이는 이유를

이제사 알았다


화장하지 않는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이 없다는 중거다


매양 맨 얼굴로

부시시 눈꼽 낀 마음으로

대하던 어머님의 웃음짓던 얼굴이

가슴 속 눈물 소리 크게 울리는

한숨임을 이제야 알았다


빈 강 속

늘어진 어깨 만큼이나

절망 그 깊은 바닥을 짚던

어머님 당신의 울음을

이제야 들었다


푸르런 날

화장 곱게 하고

화알짝 주름살 펴 드리러 간다


내가 화장하는 이유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증거다

지켜야 할 사랑이 있다는 증거다


               1999 , 9, 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