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IARY

아름다운 소풍을 위하여

ENARO 2009. 4. 15. 07:57

오늘은 아침 일찍부터 잠이 깨었다.

둘째놈이 반성 수목원으로 야외 학습을 가는 모양이다.

쓰는 순간에도 야외학습보다는 소풍이라는 단어가 속을 쓰리게 하지 않는다는 느낌이 전해진다.

그래! 소풍이라는 말은 그 때 그 시절의 나도 들뜨게 했었다는 것이 아직도 아련히 기억이 난다.

어려운 부모님 살림에 지금은 흔해 빠진 김밥이라는 먹거리를 큰 잔치상이라도 차리는 양 새벽에

일어나셔서 장만해 주셨던 어머님의 마음과 오란씨 한 병을 그리며 잠을 설쳤었다.

내일은 큰 놈, 희석이가 소풍을 간다는 데 즐거운 추억거리 하나 정도는 만들 수 있는 나날이면 좋겠다.

 그러고 보니 나도 어른이 되어 정말 멋진 소풍을 떠났던 기억이 난다.

흔히 '바보 노무현'이라는 사람을 알고 나서부터 그를 존경하게 되었고, 참 인생 멋지게도 사는 분이다 싶어, 그 인생에 마음으로나마 동참하려고 아주 멀리서나마 그를 응원하고 수 년을 보냈었다.

그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고 이런 저런 우여 곡절을 겪을 때 후원금으로 '노사모' 한 회원을 만나 50,000원을 건냈었다. 힘내라고! 그의 힘들지만 올바르고 정의로운 소풍길을 함께 하고 싶었다.  기분 좋았다.

특히 그 날, 그가 대통령이 되어 '한 일자' 굵은 주름살을 더욱 선명하게 전국에 비추이던 날, 이 나라의

희망에 찬 소풍이 시작되리라 확신했었다. 하지만 소풍도 사람사는 일이라 어디 그렇게 만만하던가?

탄핵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초를 겪는 모습을 볼 때마다 힘이 되어 주지 못하는 안타까움으로 분을 삭히면서도 진실되고 바르게 나아가면 언젠간 즐거운 소풍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늘 마음속으로 응원의 깃발을 쳐 들었었다. 하지만 얼마전 그는 온 국민에게, 그를 나처럼 믿었던 온 그의 사람들에게 배신의 나팔을 불었다. 그 소리는 온갖 핏기 어린 길목마다 동맥경화가 걸리게 만들고, 폐부 구석 구석, 뼈 마디 마디를 고문하며 이 세상에 앞으론 소풍이 없다. 희망은 없다라는 강한 확신이 들게 나의 모든 것을 짓밟아 버렸다. 당장 김해 봉하로 가서 따지고 따져 할복이라도 권유, 아니 강요하고 싶었다.

아직도 그는 소풍을 끝내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연신 인터넷 정치의 달인 노무현으로 바보 노무현을 덮어 버리려는가? 나는 진정한 바보 노무현을 바라는데... 인생, 그렇다. 인생이란 소풍을 가면서 어디 실수 없이 목적지에 휑하니 가버린다면 그게 또 무슨 재미일런가? 누구나 실수는 한다. 일개 필부의 실수와는 차원이 다르고 그의 삶의 궤적에 함께 하고 싶었던 사람들의 가슴 속 양심 한 줄기조차도 갉아먹어 버렸지만, 나의 사랑하는 두 놈이 살아가야 할 이 대한민국이라는 땅덩어리의 진정한 소풍을 위하여, 그가 다시 진정한 바보 노무현으로 돌아올 순 없는걸까? 그가 다시 돌아온다면 나도 다시 마음으로나마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시대인으로서 존경하는 사람 그대로 간직하면서 이 세상 소풍을 묵묵히 즐기고 싶다. 지금 얼마나 힘들고 더럽고 짜증나는 세상인지를 그가 안다면 제발 다시 바보 노무현으로 돌아오기를 바란다.

 이 글을 쓰는 동안 애비말이라고 큰 놈이 둘째놈 영어 공부를 시키더니 연신 나는 알아 들을 수 없는 그들만의 의성어로 즐거움을 켜켜이 쌓고 있다. 그들의 웃음을 위하여 그는 다시 돌아와야 한다, 그 시절 진정한 바보 노무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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