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나무 거머잡고 우는 아이가 있소
바위 뒤 불로 덮혀
아이는 보이지 않아도
울음소린 하늘에 닿고 있소
미친 듯 불길 잡는 아낙이 있소
헤진 저고리와 빛 바랜 갈색 치마
통곡하는 아낙이 있소
이제 다 타버린 우리들 산
어둠마저 깃들고
아기의 주검이 있을 게요
허공을 휘젓던 손은 뼈만 앙상히
식을 수 없는 심장을 내사 어쩌겠소
그냥 가서 울 밖에
아낙과 같이
보일 수 없는 아기의 입술에
남편 타령 복타령하며
우는 아낙과 같이
땅을 치며 하늘 보며
울어 볼 밖에 1984, 4, 22.
생일 48
-아버님의 사십 여덟 번 째 생신에 부쳐-
수십을 살아 강물의 끝을 본 이가 있는 지요
잿빛 하늘아래 질긴 바람에도
저버리지 않은 믿음이 있단 것을 아는 이가 있는 지요
오늘 울고 내일 울어도 아스라이 먼 언덕의 꽃향기를 봅니다
에나로 사랑하는 건 들에 핀 국화
몸에 밧줄을 감고 희롱한대도,
천만금으로 날 유혹한대도 난 끝내
들에 핀 국화를 사랑한다고 하겠습니다.
넓은 들 한 복판에 서서
비, 바람, 그 어떤 두려운 것이 온대도
하얀 꽃잎 석 장 떨구며 아픔을 가리우는 꽃님
난 그런 고로 들국화를 사랑합니다
물기 마른 땅, 바람만 거세도
태연히 피어 있는 꽃, 들국화가 있길래
오늘 아버님의 생신에 들국화를 초대합니다
이사오며 감추어 두었던 꽃병을 내어 들국화를 소중히 담고
동생의 예쁜 카드와 어머님의 변함없는 사랑을 담고,
조촐한 저의 詩로 물을 주어 당신의 오시는 길목에 두겠습니다
수십을 살아 강물의 끝을 본 이도
잿빛 하늘아래 모진 바람에도
저버리지 않은 믿음이 있단 것을 아는 이도 없습니다.
하지만 에나로 사랑하는 건 들에 핀 국화, 아버님이길래
난 그 축원은 영원히 포기하렵니다
꿈 속에
거룩한 임께서 이르시기를
“그것은 육신없는 영혼이어야만 보인다” 하신 까닭입니다
1984, 12, 24.
백치 자서전
한 사람,
백치의 눈물이 말라 버린 날 밤,
그의 죽음에 가루된 모성애를 떠올려 다오.
생의 막이 내릴 때까지
하늘에 가슴이 닿을 때까지
눈물로만 푸어내던 그 허물, 껍데기
때 끼고 젖 비린내 배인 어머니의 옷고름
못 잊어 헤매이던 말 못할 고향
아-베 , 어-메
목 멘 울음은 저주를 산산이 부셔 놓고
간간이 허공을 짓이기는 부엉이 소리
목숨을 놓는 게 삶을 사랑하는 거라는 걸
제 살을 깍아야 고통이 사그러든다는 걸
절실히 깨우치던 그 날,
백치는 영원히 사는 길로 스러져 가고
- 백치가 남기고 간 자서전은
눈물로 푸어낸 허물과
운명에 대한 순종과 개탄이더이다-
1983 . 12 . 10 .
詩
어느 날
나는 누가 볼까 봐
내 사타구니에 몰래 밀어 넣었다, 그 詩를
해가 지나고 지나
구름이 몹시 괴롭던 그 날부터, 나는
그 詩를 만지락거리는 버릇이 생겼다.
내가 그 버릇에 익숙해질수록
詩는 자꾸만 자꾸만 커져 갔고,
어머니께선 여전히 그 詩의 주인인 만큼
그건 당신에 묻혀 최고로 아름다웠고
내겐 단지 하나의 이상일 뿐이었다.
다시 세월이 흘러, 당신께선
"이제 완전히 네 詩로 하려무나"하셨다
스물 둘이 되어
詩는 내게 새로운 의미로 바뀌고, 이젠
절대 변할 수 없는 思想이 되어 버렸다
아! 그 날 밤에
그 고운 밤에 그 詩를 반 쪽 떼어 그니에게 주었다,
영원히 간직하라며
그 전까지 그것은 나의 전부였었다.
1987, 7, 10.
어느 봄날
진홍빛 진달래 꽃잎을 또옥 따서
뭉실 가슴에 후~ 날리면
오늘도 무너지는 하루를 딛고 서서
뻗어도 발돋워 뻗어도 날개는
이내 다 타 버리고
봄은 피빛으로 아픈 우리들의 계절
다시 블라우스 짓붉은 단추를 꼬옥 따면
나비 한 마리
잠들어 있을 것만 같다
가슴 새 바람 베고
내가 나비일 것만 같다.
하지만 지금은 잔인한 4월 배주린 아침 나절
1989, 어느 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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