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KOREAN POEMS

ENARO's poems 5(곱추의 사랑/종점/고독/삶과 죽음의 귀로../무)

ENARO 2008. 5. 21. 18:14

곱추의 사랑


곱추는 강변도로변 단칸방에 산다

더위를 등으로 느끼며

강변둑에 홀로 앉은

결코 피할 수 없는 모습

강물은 눈물로 연신 흐르고

모두가 그의 등에 업혀 웃음 짓는다

모두가 그의 발아래에서 울음 울고

바람은 인생을 엎지르며 달아난다


곱추는 등이 머리보다 높아서

생각하는 웃음과 울음을 아예 잃었다

하지만, 그는 비웃고 있다

유월의 큰크리트 담장

그 위로 야위어만 가는 장미울

그 속의 우리 머리들을


어느 여름 밤, 이슭할 즈음

곱추는 제 또래 여식애 한 명을 들여

신방을 차렸다

마침내 불빛마저 갉아 먹고

도로를 오가는 차소리도 죽여 버린

곱추의 사랑은 밤을 부볐다

영원히 영원히도 보일 수 없는

곱추네 단칸방 어둠

밤을 부벼 그 밤마저 꺼 버렸다

곱추네 등어리 사랑은


오년을 머리로 사랑하던 서투른 길손이

곱추의 등 아래로 지난다

아,

그 순간에


                                  1988, 6, 18.


               

       종   점


人間의 마지막 숨통을 조이는 만남으로부터

끝내 다 태울 수 없는 부스러기를 남긴 채

내 희끗한 사상을 잃어 간다

잃어만 간다는 기다림 모두로 하여

더욱 나의 얼굴이 일그러져 가도

빈 공간에 누가 나의 이름을 부를 것 같은...


거친 숨소리일 뿐이다

휘휘 둘러 봐도

꿈마저 널부러져 헉헉대는 축제의 밤

어두운 날 달래지 못했던 고뇌가

모퉁이로 기어들 때

인간은 진정 혼자로 가장 아름다운 것인가



                       92, 5 .17.

 

 

        고  독


고독하고자 하는 자여

고독에 고개 숙여 지내는 자여

가을 벤치, 낙엽 쌓인 자리에

고독은 그대들을 사랑할 줄 모른다


9월로 가라 앉는 비가

달콤한 노래로 세상을 유혹한다 해도

끌리지 않듯

아, 서로를 사랑하자, 고독은 스러질지니


너와 내가 우리로 피고

고독은 언제나 하나로 나서 지며

세월은 줄곧 고독에 지쳐 나래를 접는다


아, 피리 소리 길게 울리는 아침이 왔다

이제 우리 숙였던 고개를 들고

하늘을 무한히 높게 우러르자


                    1985, 10, 13.


고독은 비 뿌리는 황무지에만 피는 꽃이 아니며

        절벽 아래 한 그루의 노송도 아니며

        우리가 아니며

        너와 내가 아니며

        가을날 길게 우는 종다리의 울음도 아니며

        세월이 남긴 여운도 아니다.

고독은 사랑에 쫓겨, 사랑이 슬퍼, 방황하는

         둘이 있되 너는 너이고 나는 나인

         슬픈 사랑의 상처인 것이다

 

 

삶과 죽음의 귀로에서


죽음을 생각켜는 길로 곧장 돌아선

인기척없는 혼자만의 공간을 찾아 헤메던

나는 안으로 떠밀어지고

하루를 가르는 사이

별도 숨어 바람만 이는 기슭에 선 채

댓잎 푸른 노래

갈-잎 설운 노래를 듣는다


나서 지고

오고 감을 �는 약속된 시간을 기다리며

늪으로 향하는 걸음은

겨울새의 차디찬 울음 마냥

길게 짧게 연이어가다 문득

연륜은 왜 이다지도 붉을까


강물로 얼굴을 적신다


이 시간

오늘을 지나 다시 오늘로 가는 시간

임이 주신 마지막 약속의 자유로

나를 연장시키는 이유는


강물이 흘러

고독의 시체를 지나는

다시 차운 강물로 얼룩을 지운다

님의 은혜로 나는 살고 싶다


                           1985, 12, 3.

                 

       無

 

가슴으로 데운 태양이 닳아

가을에 기대어 내가 우는데

어둠에 익숙하던 아픔이여


비어있는 시대는 미래의 유희를 더욱 원하고

하늘로 통하는 길목엔 내가 버려진 채

쭈그려 달아나는 내 女人의 뒷덜미


오늘밤만은 

정적으로 쌓이지 않은

그녀의 눈동자가 생각나지 않는 곳으로

여행을 떠나고 싶다


서로의 생활을 이야기하며

잠자리를 향하는 사람들틈에 섞여

어느 조그마하고 술내나는 마을에 기차를 내리면

그 밤만은 정녕 너를 잊고 지새울 수 있으리라


행여 그 곳이 바다가 보이는 마을이라면

더 바랄 것도 없이

욕심없는 누이와 한 끼 식사를

바다에 노을이 들고

어느듯 한 잔의 술을 마주하면

나는 내 살던 세상 얘기를 들려 주며, 그 땐

누이의 치마를 흥건히 눈물로 적셔도 좋으리


하지만 

지금 나는 비릿한 세상에 묻혀


꽃이 없다면

사랑없는 세상에서 살아가야지

사랑없는 세상에서 과연 나는 살아 있을까

 

주인없는 꿈은 무너져 내리고

술잔은 오늘의 공기를 아파 한다


비어 있는 시대

비 내리는 가을 종착지

나의 女人이 길을 떠나고 있다

저.멀.리

너무도 허~연 뒷 목덜미


                                1988, 10,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