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LLETIN BOARD

명사와 관사의 원리 이해 특강(2)

ENARO 2008. 5. 21. 03:02
[제 목] [강좌] 영문법 콤플렉스 벗어나기 -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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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법 콤플렉스 벗어나기 - 열 네 번째 이야기




< '명사(A) of 명사(B)'구문은 어떻게 해석하는 것이 좋을까요? >




문장을 보다 보면 '명사(A) of 명사(B)'로 된 구조를 많이 대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어구를 보통은 "B의 A"라고 해석하고 넘어가더군요. 그런데 이렇게 해서는 의미가 잘 통하지 않는 경우도 사실 많지 않던가요? 물론 그렇게 해석하는 것이 틀렸다는 말은 아닙니다. 단지 다른 식으로 해석해야 정확한 경우도 있는데, 한 가지만 고집하는 방식이 잘못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은 것입니다.

비유를 들자면, 나사는 홈이 일자로 된 경우도 있지만, 십자로 파인 경우도 있습니다. 또 그 홈의 크기도 일정한 것은 아니고요. 그렇다면 나사를 돌리는 드라이버가 하나만 있는 경우와 여러 가지를 구비하고 있는 경우 중에서, 어느 것이 더 효율적인지는 누구나 다 의견이 일치할 것입니다. 제 말의 핵심은 바로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열어놓고 접근하자는 것입니다. 무조건 한 가지 잣대만을 적용하면, 억지 해석이 나올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진다는 것은 뻔한 결과일 테니까요.

참, 영어 문장을 우리말로 옮길 때, 뒤에 있는 어구부터 의미를 새기는 아주 좋지 않은 습관이 있는데, 그건 정말로 버려야 합니다. 정보가 제시되는 순서대로, 그러니까 문장을 읽으면서 곧장 우리말 구조로 변환시켜서 이해하도록 훈련을 해야 합니다. 물론 구조적인 차이 때문에 뒤에 나오는 어구부터 먼저 의미를 푸는 것이 더 부드러운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경우도 대부분은 내려서 해석하는 것이 습관이 되지 않아서 어색한 느낌이 들 뿐이거든요. 일단은 죽기살기로 내려가면서 해석하려고 시도하세요. 그러면 독해 실력이나 독해 속도가 금방 향상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 '명사 (A) of'이 다음에 나오는 명사를 수식하는 경우는요 >

a variety of roses라는 표현은 어떻게 해석을 할까요? "장미들의 다양함"이라고 해서는 "이게 무슨 말인가?"하면서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되죠? 뒤부터 해석하는 것이 습관이 돼서 그래요. 어렵다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이런 문장은 여러분들이 다 해석할 수 있습니다. 영어에 대해서 잘 모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사실은 굉장히 많은 내용들을 알고 있거든요. 다만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을 제대로 활용하지 않고 있을 뿐이죠.

"설마 그럴 리가"라고요? 그럼 증거를 보여드릴까요. a lot of dogs는 어떻게 해석하나요? 이것은 "개의 다수"라고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많은 개들"이라고 해석하잖습니까. 이 경우야 숙어라고 생각할런지 모르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거든요. 바로 내려가면서 해석하고, 전치사 다음에 나오는 명사에 의미상 초첨이 맞춰지는 표현의 예문인 것이죠. 그래서 아까 표현도 'a lot of'과 마찬가지로 'a variety of'을 하나의 형용사구로 이해해서, "다양한 장미들"이라고 하시면 쉽게 해석이 되잖아요? 물론 형용사로 고쳐서 various roses라고 하는 것도 가능하죠.




a number of countries (많은 나라들)

an assortment of clays (갖가지 진흙들)

a wide range of diseases (광범한 질병들)




그럼 a beast of a wife라는 표현은 무슨 뜻일까요? 문법책에서 이와 유사한 표현을 많이 접했을 텐데, 이 경우도 역시 내려가면서 전치사 다음에 나오는 명사를 수식하는 의미로 해석하면 돼요. 단지 차이가 있다면,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처럼"이라고 비유적으로 표현했다는 것 뿐입니다.




on Sundays he has a mountain of dirty clothes to wash.

일요일이면 그 남자는 빨래를 산더미처럼 한다.

It is impossible to take a walk in the country with an average townsman without being amazed at the

vast continent of his ignorance.

일반적인 도시 사람과 시골을 산책해보면 항상 그 사람이 (자연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굉장히 많다는 점에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근데 이 문장은 쉽게 말이 잘 풀리지 않았을 수도 있어요. 우리말에서는 "많다, 크다"는 것을 강조하는 비유적 표현으로 "산더미 같은, 집채만한"이라는 것은 있어도 "대륙 같다"는 말은 없거든요. 우리나라는 대륙국가가 아니기 때문이죠. 그러면 the continent of을 "대륙 같은"이라고 해석한다면, 분명 글자는 한글이지만 우리가 실제로 사용하지 않는 표현이기 때문에 전혀 의미가 통하지 않습니다. 해석이란 바로 우리가 현실 생활에서 사용하는 우리말 표현으로 이해하는 것이라고 했던 것을 명심하세요. 그래서 농담조로 말하면, 해석을 할 때는 늘 가슴에 손을 얹고, "내가 정말 이런 말을 쓰나?"라고 생각을 해야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 'of 명사 (B)'부분이 앞에 있는 명사를 수식하는 경우도 있어요 >

a man of character라는 표현은 아마 들어본 적이 있을 겁니다. 사전을 찾아보면 "인격자"라고 숙어처럼 나오거든요. 그런데 사실 이것도 숙어가 아닌데요. 전치사 다음에 나오는 character라는 명사에 관사가 없는 것은 추상명사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전치사 of에 추상명사가 결합되면, 그 전치사구는 형용사의 용법으로 쓰입니다. 그런데 왜 명사 뒤에 나오냐고요? 영어에서 어구를 배열하는 원칙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길면 뒤로'라는 규칙이거든요. 즉 길이가 긴 어구들은 모두 뒤쪽에 둔다는 원칙입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형용사는 명사의 앞에서 수식하지만, 형용사구, 예를 들면 전치사구, 분사어구, 부정사구, 형용사절처럼 길이가 긴 놈들은 항상 명사의 뒤에서 수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표현은 "인격이 있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이런 경우에도 역시 그 전치사구를 하나의 형용사로 고쳐서 명사 앞에 배치해도 좋습니다. 다양하게 표현하려고 시도하는 것, 이것이 언어를 풍부하게 하고, 여러분의 언어 감각을 배가시키는 비결이라는 점을 명심하세요.




a man of resource (= a resourceful man, 지략이 있는 사람)

a man of courage (= a courageous man, 용기가 있는 사람)

a man of promise (= a promising man, 장래가 있는 사람)




여기까지 이해하기가 그렇게 어렵지는 않죠? 자, 그러면 이제부터 '숙제 검사'!!! 으잉, 뭣이라고? 아직 안 했다고라? 좋아요. 그럼 숙제 검사는 내일 명사에 대해서 요점 정리를 하면서 한꺼번에 하기로 하죠. 사실 쓰다 보니 숙제로 드린 문장까지 설명하려면, 분량이 너무 많아질 것 같아서요. 내일로 미룰게요. 죄송합니당...

내일 봐요~~~

삐딱이




[제 목] [강좌] 영문법 콤플렉스 벗어나기 15-명사 총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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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법 콤플렉스 벗어나기 - 열 다섯 번째 이야기




< 이것만은 기억해둡시다 >




1.

영어의 명사에서 가장 중요한 관점은 그 명사가 단수인가, 복수인가라는 수의 개념입니다. 우리말에서는 이러한 것이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명사가 나올 때마다 의식적으로 확인하는 습관을 길러둬야 합니다.




2.

명사의 수를 판단할 때는, 명사만 보지 말고, 명사 앞에 오는 한정사와 명사 다음에 오는 동사, 대명사에 연결되는 수의 흐름을 함께 살펴봐야 합니다. 한정사와 명사, 동사, 그리고 대명사는 항상 수를 통일되게 맞추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수의 일치'라고 합니다.




3.

'셀 수 없는 명사'란 그 명사가 눈에 보이지 않거나, 둘로 나누는 것이 불가능하거나, 그럴 필요가 없는 대상이라는 의미입니다. 셀 수 없는 명사는 이렇게 개체성을 따질 수 없는 대상이기 때문에, '둘, 셋, 또는 여러 개'라는 의미를 부여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셀 수 없는 명사는 항상 단수로 취급해야 하며, 이런 종류로는 물질명사와 추상명사가 있습니다.




4.

복수형인 명사라 하더라도 그 명사가 학문이나 게임의 이름을 나타내거나, 여러 개로 이루어진 하나의 구성체를 의미하거나, 하나의 기준이나 단위를 나타내는 의미로 쓰이는 경우에는 단수로 취급합니다.




5.

family와 같은 집합명사는 문장에서 쓰이는 의미에 따라 단수도 되고 복수로도 간주됩니다. '(가족) 집단'이라는 전체적인 의미일 때는 단수로 취급하고, '(가족) 구성원'이라는 의미일 때는 복수로 취급합니다.




6.

어떤 명사의 소유격을 나타낼 때, 생물 명사에는 -'s라는 형태를 쓰고, 무생물 명사이면 전치사 of을 씁니다. 이때 전치사 of은 '소유'의 의미라기 보다는 '구성이나 부분'의 의미를 나타냅니다.




7.

동격이란 앞에 제시된 명사어구에 대해서 추가로 정보를 제공하는 형태의 표현을 말하는 것입니다. 동격의 유형으로는 명사를 나열하는 경우와 'of 명사구', 또는 'that 절'을 붙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 대명사는 절대로 동격 표현으로 활용하지 않기 때문에, 명사 다음에 대명사가 나오는 경우는 없습니다.




8.

여성형 접미사는 성차별적인 요소를 담고 있기 때문에 현대 영어에서 가급적 쓰지 않고, 대신 성의 구별이 드러나지 않는 표현을 활용합니다.




9.

영어는 동사를 명사로 고침으로써 절을 구의 구조로 간결하게 표현합니다. 이때 '자동사 + 전치사 + 전치사의 목적어'의 구조는 '기본동사 + 자동사의 명사형 + 전치사 (주로 원래 있던 것) + 전치사의 목적어'로 고치면 됩니다. 그리고 '타동사 + 목적어'인 경우에는 '기본동사 + 타동사의 명사형 + 전치사 (주로 of) + 목적어'로 바꿉니다. 또 부사절이 나오는 경우에는 부사절을 명사어구로 고친 다음, 그 명사를 주어로 활용하는 경우와 그 명사어구 앞에 접속사와 의미가 같은 전치사를 붙여서 부사구로 활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 숙제 검사 !!! >

자, 이제부터 그저께 나간 숙제를 검사해 볼까요.




1. The acid has eaten through the metal.

eat through라는 표현은 사전을 찾아도 아마 나오지 않을 겁니다. 그럼 eat into를 찾아보세요. 아마 여러 가지 의미가 나올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경우에 대부분의 그 의미들은 연결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무작정 외우지 말고, 기본적인 개념을 파악한 다음, 다른 의미들을 끌어내면 됩니다.

즉 'eat into'라는 말은 '먹어 들어가다'라는 것이 기본적인 의미입니다. 이 뜻을 끌어내기는 어렵지 않죠? 그럼 그 의미를 한자어로 쓰면 '잠식하다'라는 뜻이 되고, 특히 초산 따위가 금속을 잠식하는 경우에는 '부식하다'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저축 따위를 잠식하는 상황이라면 어떤 말이 적절할까요? 예, '야금야금 다 써버리다'라고 의미를 확장되면 됩니다. 어구의 의미는 이렇게 실체적인 것에서 추상적인 것으로 확장되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러니까 이 문장의 전치사가 into라면 "초산이 금속을 부식시켰다"라고 쉽게 해석했겠죠?

그런데 이 문장에서 전치사가 into가 아니라 through거든요. 사전에도 나오지 않는 표현이니까 막막한가요? 명심하세요. 사전에서 제시하는 표현이란 많은 경우에 기본적인 표현 방법을 제시한 것이지, 언제나 그런 식으로만 쓰라는 말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사전에 없다고 해서 이상하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기본형에서 어떤 부분이 달라졌다면, 그 부분의 의미만 다르게 이해하시면 되는 것입니다. 전치사가 동사와 결합할 때, 본래 갖고 있던 뜻과 다소 다른 의미를 생성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 전치사의 기본적인 의미를 유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전자의 경우에는 보통 고정된 형태로 쓰이기 때문에 외워둬야 합니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에는 다른 의미를 적용하기 위해서 다른 전치사를 활용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Seoul처럼 도시의 이름을 나타내는 명사의 앞에는 어떤 전치사를 붙일까요? 사실 이런 질문처럼 엉터리인 것도 없어요. 왜냐하면 자기가 담아내고 싶은 의미에 맞게 전치사를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것이거든요. '서울에서'라고 하면 'in Seoul', '서울 근처'라고 쓰려면 'near Seoul', '서울을 향해'라고 하려면 'for Seoul', '서울로부터'라고 말하려면 'from Seoul', 또 '서울을 지나'라면 'through Seoul'라는 식으로 나타내면 되는 겁니다.

through라는 전치사에는 지금 보신 것처럼 '~을 지나'라는 '관통'이라는 핵심적인 의미가 들어갑니다. 그래서 이 문장은 "초산이 금속을 부식시켜 구멍을 내버렸다"라는 뜻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이런 의미의 문장을 영작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대부분은 '부식시키다'와 '구멍을 내다'라는 두 개의 상황이 제시되니까, 동사어구를 두 개 사용하기 쉽습니다. 물론 그렇게 표현할 수도 있지만, 이렇게 전치사만 간단하게 바꾸면 훨씬 간결하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것도 역시 두 개의 동사, 그러니까 두 개의 절을 활용할 문장을 하나의 동사로 압축시켜 버린 것입니다. 이렇게 전치사가 동사를 대신해서 문장을 줄이는 경우도 있어요. 그런데 요건 조금 까다롭게 생각할지 모르니까, 일단은 동사를 명사로 고치는 구조부터 익혀두세요.




2. People in primitive ages had to find caves to live in and a regular supply of water.

자, 이 문장도 해석이 잘 되지 않는다면, 아마도 a regular supply of water 부분에서 막히지 않나요? 이 표현을 평소처럼 뒤부터 해석해서 "물의 정기적인 공급"이라고 하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잖아요?

그럼 자연스럽게 의미를 풀어볼까요? 이 문장에는 원시 시대의 사람들이 찾아야 했던 대상이 두 개 제시되고 있는데요. 하나는 동굴이고, 또 하나는 뭐죠? supply인가요, 아니면 water입니까? 그야 의미상 당연히 water겠죠? 그렇다면 의미상 초점은 전치사 of 앞에 있는 명사가 아니라, 다음에 있는 명사라는 말이네요? 그럼 내려가면서 water를 수식하는 형용사로 해석해 보세요.

"원시 시대의 사람들은 거주할 동굴과 일정한 양의 물을 찾아야만 했었다." 이제는 의미가 통하지 않나요? a lot of, a number of와 같은 표현들을 숙어로 기억하지 말라고 했던 이유를 짐작할 수 있겠어요?




여기까지가 명사에 관한 얘기입니다. 물론 이것이 명사의 모든 것은 아니지만, 상당히 많은 부분을 다뤘어요. 여러 종류의 책을 보는 사람들도 있는 데, 절대로 그러지 마세요. 교재를 여러 가지 본다고 공부가 잘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정도면 상당히 높은 수준이거든요. 일단은 적어도 문법은 다른 책을 보지 마시고, 제 강의만 충실하게 따라오세요. 이것을 충분히 소화하고 난 다음에, 다른 방법을 찾는 것이 효과적이거든요.

그럼 복습해 보시고, 내일부터는 관사에 대해서 말을 해볼게요. 관사하면 어렵게 생각하는 데,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것들이 더 많거든요. 내일부터는 너무너무 재미 있는 얘기들이 나올 겁니다. 기대해도 좋아요...

삐딱이.




[제 목] [강좌] 영문법 콤플렉스 16-관사의 거품을 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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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법 콤플렉스 벗어나기 - 열 여섯 번째 이야기




< 도대체 관사란 뭔가요? >




영어의 문법을 공부하면서 아마도 거의 대부분이 이 관사를 정말 어렵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영어의 관사는 불어나 독일어의 관사와는 판이하게 달라서 그 용법이 상당히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영어에서 이 관사의 용법이 개입되지 않는 문장은 거의 없기 때문에 무작정 피해갈 수만은 없는 것도 현실이거든요. 그래서 관사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이란 정면으로 부닥치면서, 관사의 용법이라는 것들을 이해하는 것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관사의 쓰임새가 어렵다고 말하기는 했지만, 사실 우리가 공연히 어렵게 공부한 부분도 있는 게 사실이거든요. 제가 생각하기에 관사를 공부할 때 나타나는 문제점은 일단 두 가지입니다. 아마도 대개는 영어를 처음 배울 때, "a 또는 an이라는 부정관사는 '하나'라는 의미가 있는 데, 우리말로는 해석하지 않아도 되고, the라는 정관사는 '그'라고 해석하면 된다"라는 식으로 배웠을 것입니다. 이것부터 잊어버려야 돼요. 관사라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단어이기 때문에 무조건 관사의 용법을 외울 것이 아니라, 그 의미를, 그 원칙을 이해해야 제대로 쓸 수 있거든요.

관사는 명사와 결합해서, 그 명사를 어떤 의미로 사용했는지를 표시해주는 지시 어구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관사란 어떤 명사의 의미를 결정해주는 장치이고, 그래서 명사의 의미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우리는 명사와 관사가 별개의 대상인 것처럼 접근하고 있고, 이런 공부 방법이 바로 관사를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게 하는 두 번째 장애물인 것입니다.

예를 들어 보면, paper라는 단어의 뜻은 뭐죠? 보통은 "종이, 신문..."이라고 대답하겠죠.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이 명사가 원초적으로 지니고 있는 여러 가지 의미일 뿐, 실제로는 이렇게 쓰이지 않거든요.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paper라는 명사는 문장이라는 개별적이고 특정한 상황에서는 이 의미들 중 구체적으로 어느 한 가지 의미로 쓰인다는 말입니다. 마치 야구 감독이 여러 명의 투수 가운데, 어느 한 선수를 그 경기의 선발 투수로 내세우는 것처럼 말이죠.

그럼 문장에서 a paper라면 무슨 뜻일까요? 이때는 부정관사가 붙었으니까 셀 수 있는 명사라는 의미, 즉 "신문"이라는 의미로 이해하라는 표시입니다. 반면에 관사가 없는 paper라면 그때는 관사를 붙일 수 없는 명사, 즉 "종이"라는 물질명사의 의미로 이해하라는 것입니다. 관사와 명사는 이렇게 그 의미에 따라서 상호 지시적으로 결합하는 것이므로, 항상 명사의 의미를 파악하고, 그에 어울릴만한 관사를 선택해야 하는 겁니다. 여러분에게 익숙한 명사를 이 책의 처음에 배치한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부정관사란 다음에 오는 명사가 특정하지 않은 대상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표시어구이고, 반면에 정관사란 다음에 오는 명사가 특정한 대상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표시어구입니다. 이것이 관사의 핵심입니다. 자 그럼 이제부터 이런 원칙이 적용되는 여러 가지 상황을 구체적으로 살펴 볼까요.




< a와 an은 다음에 나오는 단어의 철자가 아니라, 발음에 따라 결정한다 >




먼저 부정관사에는 a와 an이라는 두 가지 형태가 있는데, 다음에 나오는 단어가 자음으로 발음되면 a를, 모음이면 an을 씁니다. 이것은 다음에 나오는 단어와 연결해서 발음할 때 부드럽게 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일 뿐, 의미상으로는 아무런 차이도 없습니다.

영어의 부정관사와 마찬가지로 발음을 부드럽게 하기 위한 이러한 장치는 사실 우리말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주어 다음에 '-은/-는' 또는 '-이/ -가'라는 어미를 붙이는 경우와 목적어 다음에 '-을/-를'이라는 어미를 붙이는 경우를 생각해 보세요. 즉 '곰'과 같은 단어처럼 받침이 있는 경우에는, 소리 값이 없는 어미를 붙여서 '곰은/곰이/곰을'이라고 발음합니다. 반면에 '사자'처럼 받침이 없는 단어의 다음에는 실제 소리가 나는 어미를 붙여서 '사자는/사자가/사자를'이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 원리인 것입니다.




I think that he told a lie.

나는 그가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한다.

There was an unsafe place on that road.

그 길에는 안전하지 않은 곳이 있었다.

The athlete has been swimming for an hour.

그 선수는 한 시간째 수영을 하고 있다.




마지막 예문처럼 hour라는 명사의 첫 글자는 분명히 h라는 자음이지만, 발음이 되지 않기 때문에 부정관사 a가 아니라, an을 써야 합니다. 이쯤 되면 "그런 건 이미 다 알고 있는 얘기"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쉽다고 생각하는 이 문법도 실제로 두 가지 경우에서는 자주 틀리더군요. 예를 들어 영국의 하원의원을 Member of Parliament라고 하는데, M.P.라는 약자로 쓰기도 합니다. 그럼 "하원의원 한 사람"이라고 할 때에는 각각 어떤 부정관사를 쓸까요?




______ Member of Parliament

______ M.P.




처음 경우에는 자음으로 발음되니까 당연히 a를 쓰겠죠. 하지만 두 번째 경우에, M이라는 약자가 철자상으로는 분명히 자음이지만, 발음으로는 [em]이라는 모음이기 때문에 an을 써야 합니다. 이렇게 약자로 썼을 때 철자상으로는 자음이지만, 모음으로 발음되는 '무늬만 자음'인 놈들을 조심해야 합니다. 이렇게 속기 쉬운 철자들로는 'F, H, L, M, N, R, S, X' 여덟 가지가 있습니다.




I have to go and have an X-ray tomorrow.

나는 내일 방사선 사진을 찍어야 한다.

Yesterday I bought an LD Kenny G Live.

어제 나는『Kenny G Live』라는 레이저디스크를 샀다.




그리고 두 번째로 조심할 대상은 [j]와 [w]로 발음되는 단어들입니다. [j]는 모음과 결합해서 '야, 여, 요, 유'와 같은 발음이 나고, [w]는 모음과 결합해서 '와, 워, 웨' 따위의 발음을 만듭니다. 이 두 가지?? 모두 우리말에서는 모음이지만, 영어에서는 자음으로 분류되거든요. 그래서 이런 발음이 나는 단어 앞에서 부정관사는 an이 아니라, a가 되니까 조심해야 합니다.




The lady I saw at the party is a European.

파티장에서 내가 봤던 그 숙녀는 유럽 사람이다.

A university is an institution where students study for degrees and where academic research is done.

대학이란 학생들이 학위를 얻기 위해서 공부하고, 학술 연구를 하는 기관이다.

A wish means a longing or desire for something, often something that is difficult or

impossible to achieve.

소망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때로는 이루기 어렵거나 불가능한 것에 대한

갈망이나 욕망을 의미한다.

It was a once-in-a-lifetime chance to me.

나에게 그것은 평생에 한 번 있는 기회였다.




이제 부정관사의 형태에 대한 의문은 모두 폴렸겠죠? 그러면 이제부터 정말 본격적으로 관사의 거품을 하나씩 없애버리겠습니다. 내일은 부정관사의 모든 것을 설명드리겠습니다. 부정관사의 핵심은 놓치고, 엉뚱한 얘기들만 얼마나 신나게 외웠는지 확인해 보세요. 자, 부정관사로 종족 전체를 나타내는 용법이 있다고 하죠? 그렇게 무작정 쓰다가는 큰 일 날 수도 있어요. 왜 그런지 생각해보세요.

그럼, 이만...

삐딱이.




[제 목] [강좌] 문법 콤플렉스 17-부정관사의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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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법 콤플렉스 벗어나기 - 열 일곱 번째 이야기




< 단수명사에 부정관사를 붙이면 '종족 전체'를 나타낸다고요? >




그럼,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관사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부정관사에 대해서 잘못 알고 있는 얘기부터 시작할까요. '종족 전체를 나타낸다'는 어떤 집단에 속해 있는 대상들을 전체적으로 지칭한다는 말입니다.




A dog is a faithful animal.

개는 충성스러운 동물이다.




이 예문은 많이 봤을 것입니다. 이 문장에서 a dog은 "한 마리의 개"라는 의미가 아니라, 개라는 동물 전체를 대표하는 의미이고, 이런 경우를 흔히 '대표 단수'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어떤 종족 전체를 대표 할 때, 부정관사를 붙이는 대신 정관사를 붙여서 the dog이라고 하거나, 또는 복수형을 써서 dogs라고 할 수도 있다고 배웠을 겁니다.

특정하지 않은 개 한 마리를 지칭함으로써 그 종족 전체를 나타낸다는 이 말이 그럴 듯하기는 합니다. 제유법(synecdoche)이라고 해서, 어떤 대상의 일부로 그 전체를 나타내는 문학적인 표현 방식도 있거든요. 하지만 이 조항이 항상 적용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신중하게 사용하지 않으면, 자기가 의도한 바와는 다른 내용을 전달할 수도 있습니다.




*A lion is numerous in this part.




이 예문은 문법적으로 틀렸는데, 왜 그럴까요? 어떤 명사에 부정관사를 쓴다는 것은 그 명사가 특정하지 않은 대상이라는 의미와 함께, 부정관사만이 갖고 있는 고유한 의미, 즉 "하나"라는 수의 의미를 나타냅니다. 따라서 이 문장을 그대로 해석하면 "이 지역에는 사자 한 마리가 많다"라는 뜻이 됩니다. 그런데 하나의 개체에 대해서 "많다"라는 표현을 쓸 수는 없는 일 아니겠어요? 그러니까 주어에는 부정관사가 붙어서 한 개라는 단수의 의미를 나타내고 있는데 반해서, 다음에 나오는 numerous라는 말은 "아주 많은"이라는 뜻으로 복수의 의미를 나타내기 때문에 의미상 충돌이 발생한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부정관사가 붙으면 그 명사는 일단은 한 개라는 수를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되기 때문에 어떤 집단을 대표하는 의미로 부정관사를 붙이는 용법은 가급적 피하는 게 안전하다고 말한 것입니다.




*A tiger is on the edge of extinction.

호랑이 한 마리가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

*The Caribbean abounds with an island.

카리브해에는 섬 하나가 많다?




이 예문들이 틀린 이유도 역시 마찬가지인데요. extinction(멸종)이라는 말은 어떤 식물이나 동물의 집단에게 붙일 수 있는 표현이기 때문에 '한 마리'를 나타내는 a tiger와는 의미가 연결되지 않는 것입니다. 또 두 번째 예문에 나오는 abound(~이 많다)라는 동사도 역시 여러 개의 대상을 전제로 하는 표현이기 때문에 다음에 나오는 단수명사와 어울릴 수 없는 것이고요.

그렇다면 부정관사 대신 정관사를 붙여서 '종족 전체'라는 의미를 나타내는 것은 가능할까요? 정관사에는 부정관사와 같은 수의 의미가 없기 때문에 이런 용법으로 쓰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표현 역시 피하는 게 좋습니다. 일반적으로 어떤 명사에 정관사를 붙이면 '특정한 대상'이라는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 일차적인 용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총체적인 의미를 나타내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그런데 잠깐만요. 총체적이라는 말은 그 대상이 '어느 하나'이거나, '특정한' 대상이라는 뜻은 아니잖아요? 그래서 명사에 이런 식의 의미를 부여하는 관사를 붙이지 않음으로써 그 명사가 일반적인 대상이라는 의미를 담아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투표를 하지 않고 기권하는 것도 나름대로 의사를 표현하는 방식이듯이, 관사를 쓰지 않는 경우도 이유가 있는 표현 방법이라고 이해해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관사를 공부할 때는 정관사와 부정관사의 용법 말고도, 관사를 붙이지 않는 경우도 적극적으로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영어에서 관사란 부정관사, 정관사, 그리고 무관사, 이 세 가지가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때 생각할 점이 하나 있는데요. 셀 수 있는 명사가 단수형일 때는 몇 가지 경우를 제외하고는 관사 같은 한정사를 반드시 붙여야 한다는 원칙이 있거든요. 그래서 셀 수 있는 명사로 종족 전체를 나타낼 때는 관사를 붙이지 않는 대신 복수형으로 쓰는 것입니다. 그리고 셀 수 없는 명사는 어차피 복수형이라는 것을 쓸 수 없으니까, 그냥 관사를 붙이지 않은 형태로 종족 전체를 나타내는 용법으로 활용하는 것이고요.




Lawyers are well paid.

변호사들은 봉급을 많이 받는다.

Whales are mammals.

고래는 포유 동물이다.

Oil floats on water.

기름은 물에 뜬다.

Children learn a lot from playing.

어린아이들은 놀이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







< 부정관사는 '하나'라는 수의 의미를 갖는다니까요 >




부정관사에는 개수의 의미가 들어간다고 그랬죠? 이 말은 부정관사가 "(여러 개 중에서) 하나"라는 의미를 전달한다는 뜻이거든요. 이런 점에서 셀 수 없는 명사 앞에는 부정관사를 쓸 수 없는 것입니다. 참고로 "하나"라는 의미를 나타낸다는 점에서 부정관사는 one과 같습니다. 단 one을 쓰면 부정관사를 쓸 때보다 더 강한 의미를 전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따라서 특별하게 강조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부정관사를 쓰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He didn't say a word. (그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He didn't say one word. (그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또 어떤 명사에 부정관사를 붙인다는 것은 그 명사의 개체가 하나라는 사실을 나타내기 때문에, '둘 이상의 개체'를 나타내는 복수명사 앞에 쓰는 경우에도 의미가 서로 어긋날 수 밖에 없겠죠? 그래서 복수명사 앞에도 부정관사를 쓰는 경우는 절대로 없는 것입니다. 결론을 말하자면, 단수명사에 부정관사를 붙인다는 것은 그 명사가 '여러 개 중에서 구체적이지 않은 어느 하나'의 대상이라는 정보를 전달하는 지시어구라는 말입니다.




I bought a pear and an apple.

나는 배와 사과를 하나씩 샀다.

Rome was not built in a single day.

로마는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물질명사나 추상명사에는 부정관사를 붙이지 않는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붙이는 경우도 있어요. 사실 이런 경우는 그 명사의 의미가 달라진 경우, 그러니까 부정관사와 결합할 수 있는 명사, 즉 셀 수 있는 명사의 의미로 바뀐 경우입니다. 하지만 관사를 공부할 때, 이런 것들이 우리를 굉장히 혼란스럽게 하는 게 사실이거든요. 그래서 일단은 관사의 기본 용법부터 익히고, 그 다음 단계로 관사를 붙일 수 없다고 알고 있는 명사에 관사가 붙는 경우에 그 의미를 이해하는 방법을 설명하도록 할게요. 하지만 복수명사에 부정관사를 붙이는 경우는 절대로 없다는 점은 꼭 기억해 두세요.

반면에 정관사에는 부정관사에서 보았던 수의 의미가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설명을 하면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하늘에 있는 달처럼 '하나 밖에 없는 대상'에는 부정관사가 아니라, 정관사를 쓰지 않느냐? 그렇다면 정관사에도 역시 '하나'라는 수의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거든요. 하지만 어떤 대상이 '유일한 존재'라고 하면, 그 말에는 '둘이나 셋'이라는 복수의 경우는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다는 전제가 깔려있는 것이 아닌가요?

부정관사에 개입되는 수의 개념은 "(여럿 중에서) 불특정한 하나"를 나타낸다는 것이라고 그랬죠? 하지만 유일한 대상에 정관사를 붙이는 것은 그 명사가 여럿일 수도 있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 밖에 없으니까 자연히 구체적이고 한정된 대상일 수 밖에 없다는 맥락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이해해야 정확합니다. 이렇듯 '한 개'라는 의미가 없기 때문에, 부정관사와는 달리 정관사는 복수명사하고도 결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참고로 하나 더 하면 부정관사가 the same(동일한)이라는 의미로 쓰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용법을 참고로 설명하는 것은 그만큼 신경을 쓰지 않아도 좋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용법은 격언이나 속담에서나 등장하지, 요즘에는 쓰지 않거든요. 비유를 하자면, 마치 아무런 기능도 없으면서 우리 몸에 남아있는 꼬리뼈와 마찬가지로, 이제는 화석처럼 굳어진 용법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확인해 보세요. 문법책에서는 대부분이 이 용법을 상위 랭킹에 올려놓고 있을 겁니다. 이 용법은 부정관사의 맨 마지막에 공부하세요. 귀찮으면 하지 않아도 상관없고요.




Birds of a feather flock together. (깃털이 같은 새들은 끼리끼리 모인다, 유유상종.)

These boys are all of an age. (= These boys are the same age. 이 아이들은 동갑이 다.)




하나 더요. 이렇게 예문으로 속담을 들어주는 경우가 꽤 많은데, 교사의 입장에서는 좀 더 신중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속담이라는 것은 사회나 언어 표현의 변화를 곧장 반영하지 않기 때문에, 이제는 적용되지 않는 예전의 문법 조항들이 남아있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물론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사고 방식을 이해하거나,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서 속담이나 격언을 알아둘 필요는 있지만, 문법 사항을 증명하는 예문으로는 가려서 쓰는 것이 좋다는 말입니다.

자, 부정관사라는 놈이 조금은 감이 잡히나요? 일단은 이쯤 해두고, 내일은 정관사의 기본 개념을 살펴보고, 그와 비교해서 다시 정리를 하도록 할게요. 이쯤에서 숙제를 내야 겠죠? 처음 나온 명사에는 부정관사를 쓰고, 그 명사가 다시 나오면 정관사를 쓴다는 말이 있는 데, 이렇게 하면 틀린 문장이 되기 싶거든요? 그 이유를 생각하세요. 또 최상급이나 서수사에는 정관사를 붙인다고 철썩같이 믿고 있을 텐데, 그 이유는요?

자, 그럼 내일 봅시다.

삐딱이.







[제 목] [강좌] 문법 콤플렉스 18-정관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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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cture-18.doc

영문법 콤플렉스 벗어나기 - 열 여덟 번째 이야기

<처음 제시되는 명사에는 부정관사를 붙이고, 그 명사가 반복되면 정관사를 붙인다고요? >




어떤 명사가 처음으로 문장에 등장한다는 것은 대체로 그 문장을 대하는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그 명사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아직 확보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머리 속에 그 명사에 대해 분명한 그림이 떠오르지 않는 상태인 것이죠. 처음 무대에 서는 신인 가수를 관객들이 잘 모르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문장에 처음 제시되는 명사에는 부정관사를 붙여서 이런 상황임을 밝혀주는 것입니다.




Please pass me a fork.

포크를 건네주시겠습니까?

I want to be a doctor.

나는 의사가 되고 싶다.

A student came to see me.

어떤 학생이 나를 보러 왔다.




반면에 그 명사가 다시 나오면, 그때는 막연한 대상이 아니라, 앞에 나왔던 그 명사, 즉 특정한 대상을 지칭하는 것이므로 정관사를 붙여주는 것입니다. 그 문장을 접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 명사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이제는 확보하고 있을 테니까요.




The day before yesterday I met a boy and the boy was flying a kite.

그저께 나는 어떤 남자 아이를 만났다. 그 아이는 연을 날리고 있었다.




이건 이해하기 어려운 얘기가 아니죠? 처음에 나오는 boy는 구체적으로 어떤 아이인지 정보가 제시되지 않았기 때문에 부정관사를 썼습니다. 하지만 다음에 나오는 boy는 바로 앞에 제시된, "(내가 만났던) 그 아이"라는 특정한 대상을 가리키기 때문에 정관사를 쓴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명사가 반복되는 경우, 그 명사 앞에는 정관사를 붙인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주 당연한 것 같고, 그래서 정관사를 공부할 때 가장 먼저 배우는 이 용법도 조심해서 적용해야 한답니다. 학자들이 일반적으로 지적하는 바에 따르면, 이렇게 동일한 명사가 반복되는 경우에는 정관사만 달랑 붙일 것이 아니라, 대명사를 활용하는 것이 더 좋은 표현이라고 하거든요. 즉 지금처럼 형용사도 없이 단순하게 명사만 반복되는 경우에는 새롭게 제시되는 정보가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그 명사를 불필요하게 반복하는 것 보다는 간결하게 대명사로 지칭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말이죠. 그러니까 이 문장의 the boy는 he라는 대명사로 쓰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다.




< 정관사란 그 명사가 특정하거나 문맥상 분명한 대상이라는 것을 표시하는 단어입니다 >




문장에서 처음 언급되는 명사에는 부정관사를 붙인다고 했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수업시간에 선생님께서 "칠판을 보라"고 말씀하셨다면, 어느 칠판을 보겠습니까? 당연히 그 교실에 걸려 있는 칠판을 보겠죠? blackboard라는 명사가 처음 등장한다 하더라도, 그런 상황에서는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칠판이 어느 것인지는 누구나 알고 있을 테니까요. 그래서 이럴 때는 blackboard에 부정관사가 아니라, 정관사를 붙이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어떤 명사가 어느 것을 말하는 지 분명할 때, 쉬운 말로 하자면 어느 것인지 구체적으로 손가락으로 가리킬 수 있는 상황에서는 그 명사에 정관사를 붙이는 것입니다.

또 식사를 하다가 상대방쪽에 있는 후추를 달라고 한다면, 이 때에도 어떤 후추를 말하는지 분명하게 알 수 있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겠죠? 바로 이런 경우에 정관사를 쓰는 것입니다.




Pass me the pepper, please.

후추 좀 건네주시겠어요?

Turn down the AC, please.

냉방기의 온도를 내려주시겠습니까?

Excuse me, please. Can you tell me how to get to the airport?

죄송하지만 공항으로 가는 길을 알려주시겠습니까?

Don't stay in that hotel. The beds are very uncomfortable.

그 호텔에는 묵지 마세요. 침대가 아주 불편하거든요.

If you live in a foreign country, you should try and learn the language.

만일 네가 외국에서 산다면, 그 나라의 말을 배우려고 노력해야 한다.




어떤 명사가 '처음 제시되는가, 아니면 반복되는가'라는 것도 관사를 결정하는 중요한 관점이기는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정관사라는 단어가 갖고 있는 의미를 파악하는 것입니다. 어떤 명사에 정관사를 붙인다는 행위는 바로 그 명사가 보편적인 대상이 아니라, 특정한 대상이라는 정보를 전달하는 방법인 것입니다. 그런데 정관사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용법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러다 보니 정관사의 용법이니, 관사를 생략하는 경우니 하면서 문법책마다 제시하는 수 십 가지의 사례들을 그저 외우려고 시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게다가 더 심각한 문제는 그저 암기만 하고 있을 뿐, 실제 문장에서는 활용하지도 못하는 절름발이 공부를 하고 있다는 것이고요. 그런데 이 다양한 상황들도 바로 이제까지 보았던 관사의 기본적인 의미를 염두에 두면, 대부분은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 서수사나 형용사의 최상급 앞에는 정관사를 붙인다고요? >




문법책을 보면 '서수사나 형용사의 최상급 앞에는 정관사를 붙인다'는 조항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 이유에 대한 설명은 한 마디도 없더라고요. 현재 시중에 나와있는 문법책의 대부분을 보면, 일단은 아주 불친절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책을 쓰는 분들 입장에서야 다 알고 있는 내용이라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실제 수용자들이 궁금하게 생각하는 것은 단순한 문법 조항의 나열이 아니라, 그 원리와 이유에 대한 설명입니다. 그런데 별다른 설명이 없이 어떤 조항과 그에 관련된 예문 몇 개만 던져주고 그런데 별다른 설명이 없이 어떤 조항과 그에 관련된 예문 몇 개만 던져주고 마는 것이 현실이잖아요? 우리 주위에는 소비자와 눈높이가 맞지 않는 문법책들만 가득한 셈이죠. 그러니 일반 학습자들로서는 이해하는 것은 고사하고, 외우는 것도 벅찰 노릇이거든요. 그렇다면 대관절 무슨 말 못할 이유가 있어서, 서수사나 형용사의 최상급 앞에는 정관사를 붙이는 것일까요?

먼저 서수사라고 하는 것부터 살펴볼까요. 우리말의 "첫째, 둘째, 셋째..."하는 말처럼 영어의 "first, second, third ..."는 순서를 나타내는 표현, 즉 서수사입니다. 선생님들께서 흔히 하시는 말씀을 예로 들어 볼까요. "이 줄 뒤에서 세 번째, 너 나와서 이 문제 풀어봐." 등골이 오싹해지는 말이죠. 이런 말을 들을 때면 다들 지목을 받은 그 불행한 사람이, 모두를 위해 희생되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해 볼 것입니다. 그러고는 안됐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한 편으로는 "휴, 살았다"라는 안도의 한숨을 쉬곤 하죠. 이런 경험은 아마 거의 다 갖고 있지 않나요? 서수사란 바로 지금 예로 들은 상황에서 확인한 것처럼 '몇 번째에 있는 특정한 대상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서수사 다음에 나오는 명사는 한정된 대상일 수 밖에 없는 것이고, 그렇게 한정된 대상이라는 것을 표시해주는 단어인 정관사를 붙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럼 최상급은 또 어떻게 된 영문일까요? 최상급이란 '셋 이상의 대상들 가운데 가장 ~한 대상'을 나타내는 표현이잖아요? 그럼 최상급 표현이 붙은 경우도 서수사와 마찬가지로 그 다음에 오는 명사가 일반적인 대상이 아니라, '(가장 ~한) 특정한 대상'이라는 것을 의미하게 되겠죠? 그래서 이 경우에도 역시 정관사로 표시하는 것이고, 이 용법이 특별할 이유는 문법책 어느 구석에도 없는 것입니다. 서수사나 최상급 앞에는 정관사가 붙는다는 식으로 무작정 외울 것이 아니라, 이렇게 한정된 의미의 명사라는 사실을 나타내는 단어가 바로 정관사라는 기본을 확실하게 이해하고, 응용하세요. 별 얘기도 아닌 것을 어렵게 접근할 필요가 뭐 있나요?




Adam is the first man.

아담은 최초의 인간이다.

This is the best dictionary you can buy.

이 사전이 당신이 살 수 있는 최고의 것이다.

Tom sat down the chair nearest the door.

톰은 문에서 제일 가까이에 있는 의자에 앉았다.

Give me the larger of the two.

그 둘 중에서 더 큰 것을 주세요.




그런데 마지막 예문은 비교급인데도 정관사가 붙었죠? of the two라는 어구가 오는 경우에는 비교급이라도 정관사를 쓰라고 흔히 가르치는데요. 이건 그렇게 접근할 상황이 아닙니다. 두 개의 대상에 대해서는 그 중 더 큰 것을 말하건, 작은 것을 말하건 특정해질 수 밖에 없으니까, 정관사를 붙인 것입니다. 비교급이건 최상급이건 간에 명사의 의미가 한정되면 정관사를 붙여서 표시를 하는 것이니까요. 이상할 이유가 없죠?




He is happiest when he is working.

그는 일하고 있을 때가 제일 행복하다.




"어? 이상하다. 이 문장에는 최상급이 있는 데도 정관사가 없네?" 관사를 공부할 때, 마치 특별한 조항이기라도 한 것처럼 '서술적 용법으로 쓰인 형용사의 최상급에는 정관사를 붙이지 않는다'라고 가르치는 경우입니다. 아니, 이런 것을 왜 그렇게 힘들게 외워야 할까요? 열심히 외워봐야 피상적인 지식이 될 뿐, 관사의 실제 용법은 모두 놓치고 마는 데요. 생각해 보세요. 관사는 어떤 품사하고 결합하나요?

그렇죠. 관사는 반드시 명사와 결합합니다. 그럼 여러분도 다 설명할 수 있습니다. 영어 문법을 공부할 때 고시 공부하듯이 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보통은 책에 나와 있는 말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똑같이 암기하잖아요? 그런데 그런 문법 조항이 나오게 된 원리를 이해하면 되는 것이지, 기본은 모르면서 외우기만 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어떤 문법 조항에 대해서 진술하는 문장이 문법책마다 약간은 다른데, 그럼 다른 책을 볼 때마다 다른 얘기처럼 새롭게 외워야 되겠습니까? 그렇게 단순해 질 필요는 없는 것 아니겠어요?

그럼 간단하게 설명을 해볼까요. 이 문장에는 형용사의 최상급이 있는데, 그 다음에는 명사가 없잖아요. 형용사가 이렇게 명사를 수식하지 않는 경우를 서술적 용법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관사는 반드시 명사 앞에 온다는 가장 기본적인 규칙을 떠올려 보세요. 명사가 없는 데, 관사를 쓸까요? 그런 경우는 없습니다. 명사가 없으니 관사도 없다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지, 뭘 그리 복잡하게 공부하려고 그럽니까?




Summer is hottest.

여름이 제일 덥다.

Summer is the hottest season.

여름은 제일 더운 계절이다.




아, 힘들다!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정관사가 어떤 놈인지 대충 감이 오나요? 그러면 내일은 정관사에 대한 몇 가지 오해를 풀어보고, 정말 중요한 얘기를 할게요. 숙제는 뭐냐고요? 다음 문장을 해석해 보세요.

Instead of being dumped into a nearby river or lake, Sewage is sent to a giant tank where the water is purified.

[제 목] [강좌] 문법 콤플렉스 19-한정되면 정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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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cture-19.doc

영문법 콤플렉스 벗어나기 - 열 아홉 번째 이야기




< 전치사구나 관계절로 한정된 명사에는 정관사를 붙인다? >




영어에서 명사를 수식할 수 있는 품사는 오직 형용사 어구 밖에 없습니다. 아, 형용사 어구라는 이 말부터 설명하는 것이 순서겠네요. 이것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형용사를 포함해서, 형용사의 용도로 쓰이는 어구들, 그러니까 명사를 수식해주는 부정사구, 분사구, 전치사구, 관계절을 모두 포함하는 용어입니다. 그리고 문장의 흐름상 어떤 어구를 수식하는 말은 그 왼쪽에 오는 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에 명사를 수식하는 형용사는 명사의 왼쪽에 오는 것이 일반적인 어순입니다. 하지만 어구를 배열하는 원칙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길면 뒤로'라는 규칙이거든요. 그래서 전치사구나 관계절처럼 긴 어구들은 명사의 오른쪽에서 수식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명사가 전치사구나 관계절의 한정을 받는다는 말은 결국 그런 형용사 어구의 수식을 받는다는 말로 이해하면 되겠네요. 그런데 형용사가 명사를 수식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예를 들어 그?

? 책이라고 하면, 세상의 수많은 책들이 모두 포함됩니다. 하지만 영어라는 말을 앞에 붙이면요? 그럼 책의 범위가 영어에 관한 책으로 줄어들겠죠. 하나 더 할까요. 문법이라는 말을 더 붙이면, 영어 책 중에서도 어휘나 독해에 관한 것은 제외되고, 문법이라는 특정한 분야에 대한 책으로 그 범위가 더욱 좁아질 것이고요. 그래서 명사에 형용사가 붙는다는 것은, 그 명사의 의미를 더욱 구체적으로 제한해 주는 상황이 된다는 뜻입니다.




I want a loaf of bread.

나는 빵 한 조각을 원한다.

I want the loaf of bread (that is) on the table.

나는 식탁에 있는 빵을 원한다.




첫 예문은 구체적으로 지시하지 않고 막연하게 한 개의 빵을 나타내는 의미이기에 부정관사를 썼습니다. 하지만 다음 문장에서는 '(that is) on the table'이라는 전치사구 또는 관계절이 나왔고, 그래서 어느 빵인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잖아요. 이렇게 특정한 의미의 명사라는 것을 표시하는 단어가 바로 정관사라는 것, 기억하고 있겠죠?



Pass me the book on the desk.

책상 위에 있는 책을 저에게 주세요.

With the end of the Ice Age around 8,000 B.C., mammoths disappeared from th is planet.

기원전 8천년 경 빙하시대가 끝나면서, 지구상에서 맘모스는 사라졌다.

This is the man whom I met yesterday.

이 사람이 내가 어제 만났던 남자다.

There's a small supermarket at the end of the street I live in.

내가 사는 거리의 끝에는 작은 슈퍼마켓이 하나 있다.




전치사구나 관계절로 한정된다고 해서 항상 정관사를 쓰는 것이 아니라, 부정관사를 쓰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를 접하면, 우리는 일단 무조건 틀렸다던가, 황당하다고 생각을 하잖아요? 하지만 언어란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기 때문에, 활용하는 사람이 다른 정보를 제공하고 싶다면 다르게 쓸 수도 있는 것입니다. 물론 명사가 이런 어구의 수식을 받는 상황에서는 정관사를 쓰는 경우가 많으니까, 일단은 정관사를 쓰는 것을 기본값으로 설정하세요. 하지만 다른 표현도 가능하다는 것 자체를 배제하지는 마세요. 선입견을 버리고, 등장하는 어구에 맞춰서 자연스럽게 의미를 이해하면 되니까요.

이렇게 관계절이 수식하는 경우에 굳이 부정관사를 쓴 것은 정관사로는 나타낼 수 없는 부정관사의 고유한 의미, 그러니까 '특정하지 않은' 또는 '하나'라는 의미를 나타내기 위한 부득이한 선택이라는 말입니다. 문법 규칙은 물론 준수해야 겠지만, 지나치게 얽매이지는 마세요. 말이란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으니까, 우리도 열린 자세로 접근하지 않는다면 친해질 수 없을 테니까 말입니다.



Anesthetics is a substance that has a strong depressant effect on human nervous system.

마취제는 인간의 신경 체계에 강력한 진정 효과를 내는 어떠한 물질이다.

I need a person who can speak English.

나는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한 명 필요하다.




< 전치사 다음에 오는 명사가 '신체의 일부'를 나타낼 때 소유격 대신 정관사를 쓴다? >




이 조항은 정말 길죠? 이것을 외우려면 고생깨나 할 걸요. 그런데 기껏 외우고 나서, 다른 문법책을 보니까 "'동작 + 대상 + 부분'의 표현에서 부분을 나타내는 명사에 소유격 대신 정관사를 쓴다"라고 나와 있더라고요. 그럼 다시 외워야 할 까요? 모두 다 '절대로' 외우지 마세요. 그러면 영어를 망치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문법 조항의 자구가 아니라, 그 조항에 담겨있는 관점이라고 했던 말을 여기에서 또 확인해 볼까요.




Tom kissed his wife on the cheek.

톰은 자기 부인의 뺨에 입을 맞췄다.




그냥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세요. face라는 명사에는 정관사가 붙어있는데요, 톰이 입을 맞춘 것은 자기 뺨입니까, 아니면 부인의 뺨인가요? "뭐, 그런 질문이 다 있느냐? 그야 당연한 것 아니냐"라고 도로 질문할지도 모르겠네요. 그래요. 이런 경우에는 이미 앞에 his wife라는 목적어가 나왔기 때문에, 누가 봐도 그 뺨(the cheek)이 부인의 뺨(her cheek)이라는 것은 문맥상 분명하지 않나요?

그런데 이렇게 의미가 한정되는 명사 앞에 붙이는 단어가 뭐였죠? 아직 잊어버리지 않았죠? 바로 정관사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 문장의 소유격은 그렇게 분명한 대상을 지칭하기 때문에 정관사로 바뀐 것입니다. 그러니까 소유격의 용법까지도 정관사가 대신하는 경우인 셈이죠. 그러면 정관사가 그렇게 남?

? 용법까지 뺏어올 수 있는 배짱은 어디에서 생겼을까요? 바로 그 명사가 문맥상 분명한 대상이고, 그런 의미를 담아내는 단어가 정관사이기 때문인 것이 아닐까요? 제가 굳이 이렇게 긴 조항을 제목으로 내세운 의도는 '일단 외우고 보기'가 얼마나 비효율적인 방법인가를 증명하려는 것이었어요.

물론 이 문장은 "Tom kissed his wife's cheek."라고 쓸 수도 있습니다. 단 이런 경우에는 반드시 정관사가 아니라, 소유격을 써야 합니다. 아까 문장에서는 이미 앞에 his wife라는 근거가 있기 때문에 다시 her라는 소유격을 쓰는 것도 중언부언인 셈이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잖아요? 말이란 이렇게 할 수도 있고, 또 다른 식으로도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니까요. 동해 물이 마르도록 한 가지 표현만 계속 활용했다면, 언어가 지금처럼 다양한 모습으로 발전하지 못했을 테니까요.




He struck me on the hand. (= He struck my hand.)

그는 내 손을 쳤다.

He caught me by the sleeve. (= He caught my sleeve.)

그는 내 소매를 잡았다.

A big rock struck him on the head, and he was unconscious for nearly an hour.

커다란 바위에 그는 머리를 맞았다. 그 바람에 그는 거의 한 시간 동안이나 의식을 잃었다.







< 문맥상 동의어를 만드는 정관사의 용법 >




문법책에서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지는 않지만, 독해나 작문을 할 때 상당히 중요한 것이 이 '문맥상 동

의어'라는 용법입니다. 동일한 단어나, 어구, 구조를 반복해서 사용하면, 신선도도 떨어지고, 단조롭기 짝이 없는 문장이 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글을 쓸 때는 이미 썼던 어구보다는 가능한 동의어를 활용해서, 다양하게 표현하는 것이 훨씬 더 영양가 있는 문장입니다.

갑자기 작문 얘기를 꺼내니까 어리둥절한가요? 사실 독해와 작문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습니다. 우리말로 정확하게 옮길 수 있는 감각을 가지고 있다면, 영어 작문도 마찬가지로 훌륭하게 할 수 있거든요.그러니까 일단은 우리말로 된 책을 많이 보면서 언어적인 감각을 키우는 것이 영어를 잘 할 수 있는 비결이라면 비결입니다. 모국어로 제대로 된 문장을 쓰지 못하는 사람이 외국어로는 명문을 만들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영어에 관련된 무수한 책들은 거의 대부분이 영어 예찬론을 펼치는 해바라기들이거든요. 마치 조선시대에 한자가 누렸던 특권적인 위치를 이제는 영어가 차지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죠. 물론 헤게모니를 장악한 세력을 따라가는 발 빠르고 실리적인 자세라고 강변한다면야 할 말이 없지만요. 하긴 제 나라 땅도 돌아보지 않으면서, 해외여행은 목숨 걸고 가야하는 필수 과정으로 생각하는 것이 현실이니까 그럴 수도 있겠죠. 일년가야 국내작가의 시나 소설은 한 편도 읽지 않으면서, 워즈워드나 셰익스피어의 위대함에 대해서 논문을 쓰는 영문도 모르는 영문학 박사님들도 있는 것이 새로운 천년을 대비한다는 이 땅의 모습이니까요. 그러니까 영어로 된 문장을 자연스러운 우리말로 옮겨보고, 그 다음에는 그것을 다시 영어식 문장구조와 표현법으로 써보면서 훈련하면, 영어를 구사하는 능력을 쉽게 키울 수 있습니다. 물론 두 언어의 유사한 점과 차이점을 음미해가면서 말입니다.

그럼 숙제로 드렸던 다음 예문을 제가 제대로 해석을 했는지 확인해 보세요.




Instead of being dumped into a nearby river or lake, sewage is sent to a giant tank where the water is purified.




근처에 있는 강이나 호수에 버려지는 대신에, 하수 오물은 거대한 탱크로 보내지고, 그 곳에서 물이 정화된다.




어때요? 부드럽게 해석을 잘 했죠? 그런데 이 해석은 사실 오역이거든요. 어디가 틀렸는지 찾았나요? 만일 못 찾았다면, 아직도 관사를 정확하게 이해한 것이 아니라, 건성으로 또는 빼고 해석하는 습관이 남아있다는 표시입니다. 보세요, water가 셀 수 없는 물질명사라는 점은 알고 있죠? 그렇다면 당연히 관사를 쓰지 말아야 하는데, 이 문장에는 정관사가 있어요. 그럼 이 글을 쓴 사람은 무슨 의도에서 굳이 정관사를 붙였을까요? 그것은 바로 일반적인 물이 아니라, 특정한 물이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그런 것입니다. 즉 이 문장에서 the water는 앞에 있는 sewage와 같은 의미로 쓰인 것입니다.

물론 이 두 단어의 본래 의미는 서로 다르지만, 이 문장에서는 동의어로 쓰였습니다. 그것을 읽는 사람들이 오해하지 않도록 바로 정관사로 표시를 한 것이죠. 관사는 절대로 사소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항상 눈을 크게 뜨고 꼼꼼하게 살펴봐야만 글을 쓴 사람의 의도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처럼 사전상으로는 동의어가 아니지만, 특정한 문장에서 동일한 의미로 쓰이는 단어를 말 그대로 '문맥상 동의어'라고 부르기로 할께요. 해석을 할 때는 오히려 이런 표현을 더 조심해야 합니다. 정관사의 이런 용법은 자칫하면 의미를 새기지 않고 그냥 넘어가기 쉽거든요. 그러면 운전할 때 신호를 위반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명사에 붙어 있는 신호를 무시하는 것이기에, 의사소통은 이루어지지 않게 됩니다. 결론을 말하자면 정관사가 붙어있는 명사가 나오면, 한 번 더 생각하세요. "왜 정관사를 붙였을까? 어떤 한정된 의미일까?"




The formation of the sun, the planets, and other stars began with the condensation of an interstellar gas cloud.

태양과 행성들과 그 외의 별들은 행성 사이의 가스층이 압축되면서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 해석도 역시 틀렸습니다. 여기도 planets라는 복수명사에 역시 정관사가 붙어있잖아요. 그렇다면 이 경우도 일반적인 행성이 아니라, 특정한 행성들이라는 의미입니다. 앞에 the sun이 있는 것으로 짐작할 수 있겠죠? the planets는 바로 '태양계의 행성들'이라는 뜻입니다.




이해하시겠어요? 본질을 파악하면, 관사라는 놈도 그렇게 복잡한 것도 아니고, 무지막지하게 외워서 될 일도 아니고, 나무에서 감이 떨어지듯이 무작정 쓰면서 감각을 키울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현실은 그렇지 않거든요. 그러면 내일부터는 이렇게 외우지 말아야 할 관사의 용법들을 해체해 버릴게요. 우선 방위와 계절을 나타내는 명사에 관사를 붙일지 말지를 생각해 보세요.




그럼 이만...

삐딱이.







[제 목] [강좌] 영문법 콤플렉스 20-방위/계절과 정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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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cture-20.doc

영문법 콤플렉스 벗어나기 - 스무 번째 이야기




< 방위와 계절을 나타내는 명사에는 정관사를 붙일까? >




자, 오늘은 방위나 계절을 나타내는 명사에 관사를 붙이느냐는 문제를 살펴볼까요. 동쪽, 서쪽 같은 방위 앞에는 정관사를 쓸까요, 말까요? 방위를 측정하는 나침반이라는 기구를 생각해 보세요. 어느 장소에서 측정하건 간에 나침반이 가리키는 동쪽은 달라지지 않죠? 또 여러분이 낯선 지방을 여행할 때, 남쪽이 어느 방향인지 알고 싶으면 어떻게 하나요? 해가 뜨고 있으면, 그 쪽을 보고 섰을 때, 오른쪽이 바로 남쪽이고, 또 밤이라면 북극성이 있는 쪽이 북쪽이라고 판단하잖아요? 동서남북이란 이렇게 고정되어 있는 대상이므로, 방위를 나타내는 명사 앞에는 정관사를 쓰는 것입니다.

그럼 봄, 여름, 가을, 겨울처럼 사계절의 이름을 나타내는 명사에는 정관사를 쓸까요? 겨울이라고 하면 대체적으로 어떤 상황을 나타내는 계절이라고 정의할 수는 있지만, 그 상황이 일정하지는 않습니다. 어떤

계절의 날씨는 지역에 따라 다를 수도 있기 때문에 고정되어 있는 상황을 생각하기는 다소 어렵거든요. 이런 관점에서 사계절의 이름 앞에는 관사를 쓰지 않는답니다.



The wind blows from the south.

남풍이 불고 있다.

Winter has gone and spring has come.

이제 겨울은 가고, 봄이 왔다.



반면에 rainy season (장마)나 dry season (우기) 또는 monsoon (남아시아 지역의 우기)와 같은 경우에는 그 기간의 날씨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는 고정된 상황을 생각할 수 있어요. 그래서 이런 경우에는 방위와 마찬가지로 정관사를 쓴답니다.



In the dry season, the stream often disappears completely.

건기가 되면, 그 개울은 완전히 말라버리는 경우가 흔히 있다.

In the monsoons, there is a lot of very heavy rain.

몬순 기간에는 굉장히 많은 비가 내린다.



그리고 사계절을 나타내는 명사는 셀 수 있는 명사로 쓰이기도 하기 때문에, 부정관사나 복수형으로 쓰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in이나 during같은 전치사가 오는 경우에는 정관사를 붙이기도 합니다.



We are having a harsh winter this year.

올해 겨울은 정말 춥다.

We had two summers in Florida.

우리는 두 해 여름을 플로리다에서 보냈다.

In (the) winter, he sometimes goes skating on the lake.

겨울이면 이따금씩 그는 호수에 스케이트를 타러 간다.




그럼 이 예문을 보세요.




The island is 30 kilometers in length from south to north.

그 섬은 남북의 길이가 30킬로미터이다.




어, 이상하죠? 방위를 나타내는 명사에는 분명히 정관사를 쓰는데? 그런데 아까 배운 것과 달리 south, north 다음에는 관사가 없어요. man to man이라고 들어봤죠? 농구에서 대인 수비하는 것을 이렇게 말하잖아요. 또 hand in hand(손에 손잡고)라는 표현도 많이 들어봤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때 man이나 hand는 셀 수 있는 명사인데 관사가 없잖아요? 잘 보세요. 이런 표현에서는 두 개의 명사가 전치사로 나란히 연결되어 있어요? 이렇게 대칭적으로 연결되는 명사에는 관사를 쓰지 않는 답니다.

예를 들어달라고요? 까짓거, 못들어줄 내가 아니죠!




side by side (나란히)

from time to time (때때로)

face to face (얼굴을 맞대고, 나란히)

shoulder to shoulder (어깨를 걸고 나란히)

hand in hand (= day by day, 나날이)

from year to year (해마다)




자, 문법 공부를 하다보면, 하나의 어구에 두 가지 문법 조항이 동시에 적용될 때가 있는데요, 이런 경우에는 어떤 것을 먼저 적용하느냐라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방위를 나타내는 명사에는 정관사를 쓰는 것이 원칙이지만, 이런 경우에는 생략 규정을 먼저 적용해서, 간결하게 관사를 쓰지 않는 것입니다.



The DMZ lies east and west.

비무장 지대는 동서로 걸쳐 있다.




이 문장에서도 east와 west 앞에 정관사가 없는데, 이건 왜 그럴까요?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상황과 다른 표현이 나오면, 일단은 "이상하다"고 생각을 하는데요. 하지만 이제는 바꾸세요. "뭔가 이유가 있겠지"라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관사가 붙어야 할 곳에 관사가 없거나 다른 관사가 있다는 것은 그 단어의 의미나 품사가 달라졌다는 표시로 이해하라는 말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렇게 형태가 달라질 이유가 없으니까요. 지금 문장에 나온 east와 west도 사실은 명사가 아니라, 부사거든요. 품사가 달라질 때, 형태가 변하지 않는 놈들도 있죠?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관사는 반드시 명사에 붙는 단어이니까, 부사인 east에는 당연히 관사가 붙을 이유가 없는 것이죠.




My hometown is about 100 miles north of London.

내 고향은 런던에서 약 100마일 북쪽에 있다.

The expedition excavated prehistoric remains in the forest to the north of the ancient city.

탐사대는 고대 도시의 북쪽에 있는 숲에서 선사 시대의 유물들을 발굴했다.




어렵다고 생각하지 말고, 이 경우도 방금 말한 관점으로 접근해 보세요. 첫 문장에서 north에 정관사가 없다는 것은 그 단어가 명사가 아니라 부사로 이해하라는 표시입니다. 그래서 north of는 "~의 북쪽에, ~의 북쪽으로"라는 의미입니다. 반면에 두 번째 문장의 the north처럼 정관사가 있다면, 그때는 명사라고 이해하면 되는 것이죠. 따라서 the north of는 "~의 북쪽"이라는 뜻이고요. 관사는 명사와 결합하는 단어라는 점을 늘 떠올리고 있어야 합니다.

이와 유사하게 last year와 the last year도 쓰임새가 약간 다릅니다. last year(작년에)는 관사가 없는데, 그것은 이 어구가 명사가 아니라 부사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부사니까 전치사는 올 수 없을 테고요. 반대로 the last year(지난 해)에 관사가 있는 것은, 그 어구가 명사라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고, 그 앞에는 in이나 during같은 전치사가 당연히 올 수 있습니다.

개별적인 문법 조항들은 워낙 다양하다 보니, 때로는 정반대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그래서 문법의 숲에서 길을 잃고 우왕좌왕하다가 포기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하는 것이고요. 자, 야구에서 훌륭한 타자는 항상 자기의 중심을 확실하게 잡고 있는다고 하더군요. 그래야 직구건 변화구건 자기 스윙을 하면서 안타를 칠 수 있데요. 문법 공부도 마찬가지로 주관을 확실하게 가져야 방황하지 않습니다. 항상 원칙을 중심에 놓고, 다양한 표현들에 접근해야 문법의 체계와 질서를 잡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관사를 우리말로 해석하는 과정에서 어떤 의미를 넣을 것인지, 아닌지는 문장의 상황에 따라 다릅니다. 하지만 그건 이차적인 문제이고, 명사가 나오면 일단은 관사가 있는지 없는 지를 항상 유심히 보고, 그 의미 차이가 무엇일까를 늘 생각하는 습관을 기르도록 훈련해야 관사가 자기 것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그러면 오늘은 여기까지 하기로 하고, 내일은 정말 재미있는 얘기를 할게요. 뭔고 하니, 두 가지를 가지고 풀어나갈 건데요, 첫째는 the poor가 무슨 뜻인지는 아시죠? 그런데 그런 의미가 나오는 이유는 뭘까요? 그리고 tennis와 같은 경기 이름과 piano와 같은 악기 이름 중에서 관사를 붙이는 경우는 어느 것일까요? 그리고 그 이유는요?

궁금하죠? 그럼 내일 접속하세요! 이상은 예고편이었습니다.



삐딱이.




[제 목] [강좌] 문법 콤플렉스(21)-게임에 왠 정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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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cture-21.doc







영문법 콤플렉스 벗어나기 - 스물 한 번째 이야기







< the + 형용사 >




자, 그러면 관사는 명사와 결합한다는 원칙을 조금 더 연결해 볼까요. 우리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그렇지 못한 게 또 있어요. the poor라는 말은 무슨 뜻이죠? 아마도 "가난한 사람들"이라고 금방 대답할 것입니다. 그리고 문법 공부를 열심히 한 사람은 설명도 하더군요. 정관사와 형용사가 결합하면 복수명사의 의미가 된다고요.

예, 맞습니다. 그럼 왜 그런 의미가 생기는 것일까요? 그 점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불행하게도 거의 대부분은 그저 관용적이라는 식으로 타협하고 넘어갑니다. 수많은 시간과 노력을 영어 공부에 투자한 만큼, 우리의 머리 속에는 상당한 정도의 지식이 쌓여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지식이 개별적인 사항들로만 존재하지,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 문법의 연결 관계도 생각하지 않는 것

이고요. 아니 그런 것은 생각하지 않아도, 문제를 푸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기 때문에, 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는 것이, 또 그렇게 설명을 해주는 교재가 없었다는 것이 정확한 이유일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공부하는 사람들의 잘못이 절대 아닙니다. 우리의 영어 공부 방식이, 천박한 사회 문화 풍토가 죄인인 것이죠.

자, 정관사가 없이 poor만 있으면 보통 "가난한"이라고 해석하죠? 품사는 형용사고요. 그런데 관사가 붙었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요? 관사란 명사 앞에서 그 명사의 의미를 규정해 주는 지시어구라고 했습니다. 기억 나세요? 그렇다면 형용사 앞에 정관사를 썼다는 것은 이 단어를 형용사가 아니라 명사로 썼다는 것을 표시하는 것이 아닐까요? 그런데 왜 부정관사가 아니냐고요? 부정관사는 '하나'라는 의미를 갖기 때문에 복수의 의미를 갖는 단어에는 붙일 수 없다고 했으니까요. 또 이런 표현이 때로는 셀 수 없는 명사, 즉 추상명사의 의미로 쓰이기도 합니다. 셀 수 없는 명사에는 부정관사를 쓸 수 없으니 역시 정관사를 붙인 것이고요. 어때요? 명사와 결합한다는 관사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에 근거해서 생각해보면, 공감할 수 있는 대목이 아닌가요?




The time seems to have come when we should pay attention to the needs of the needy.

가난한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에 관심을 기울일 때가 온 것 같다.




The rich (=The rich people) are not always happier than the destitute.

부자가 가난한 사람들보다 항상 더 행복한 것은 아니다.




The true (= Truth) is higher than the beautiful (=beauty).




진실은 아름다움보다 더 고귀한 것이다.




그리고 분사형에 정관사를 붙여도 역시 명사로 쓰이게 됩니다. 이것도 마치 '분사의 특별 용법'인 것처럼 배우는데 말이죠. 뭐 그렇게도 '특별 용법'이 많은지 원. 분사는 형용사 용도로만 쓰이거든요. 그럼 그 얘기하고 연결해서 생각해 보세요. 뭐가 특별하냐는 말이죠? 어쨌든 형용사에 정관사가 결합된 형태이고, 관사가 있으니 명사로 이해하라는 말이긴 매한가지인걸요.




The dead and wounded were increasing in number.

사상자의 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The unexpected has happened.

예기치 못했던 일이 일어났다.



The deceased (= the departed, the lamented) was a broad-minded person.

고인은 도량이 넓은 사람이었다.




바로 앞의 문장에서 예로 들은 단어는 단수로 쓰이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그 단어들의 의미 때문에 그래요. 일반적으로 장례식장의 고인이나 법정의 피고인은 한 사람인 경우가 많으니까요. 반면에 the bereaved (유족)이라는 단어는 주로 복수로 쓰입니다. 왜 그런지 이해할 수 있죠?







< 게임이나 악기, 식사를 나타내는 명사에 관사를 쓸까? 말까? >




드디어 관사에 대한 문법 중에서 제가 제일 짜증스럽게 생각하는 부분이 나왔습니다.




Linda is playing _____ tennis.

Linda is playing _____ piano.




자 tennis라는 운동 경기와 piano라는 악기, 이 두 개의 명사 중 어느 쪽에 관사를 쓰나요? 예, tennis에는 관사가 없고, piano에는 정관사를 씁니다. 그런데 왜요? 이런 경우도 역시 이유는 접어두고, 그저 관용적인 표현인 것처럼 암기하고 있죠? 그런데 이건 외우고말고 할 것이 아니라, 관사의 원칙을 생각하면 누구나 그런 표현을 만들 수 밖에 없는 경우거든요.

일단 '일반적으로 물질명사, 추상명사 같은 셀 수 없는 명사와 복수명사에는 관사를 붙이지 않는다'는 기본적인 원칙부터 알아 둡시다. 이제 따져 볼까요. 예를 들어 할아버지께서 손자에게 심부름을 시키셨습니다. "가서 바둑을 좀 사 오너라/가서 바둑알을 좀 사 오너라." 이 두 가지 말 중에서 옳은 표현은 어느 것입니까? 이건 쉽죠? 여러분이야 한국어의 native speaker니까요. 마찬가지로 영어도 말이니까, 동일한 언어적인 감각으로 접근하시면 됩니다. 영어라고 해서 화성의 외계인들이 쓰는 말이 아니잖습니까?

바둑은 살 수가 없죠? 그런데 왜 살 수 없을까요? "우리 동네에는 안 파니까? 다 팔리고 없으니까?" 바둑이라는 것은 두 사람이 가로와 세로로 19개의 줄이 그어진 판에 검은 돌과 흰 돌을 번갈아 놓은 다음에, 집이 더 많은 사람이 이기는 게임입니다. 바둑을 두는 사람이나 바둑알 따위는 형체가 있고, 즉 보통명사

입니다. 하지만 바둑이란 서로 간에 정해놓은 규칙에 따라, 약속에 따라 진행하는 행동이지, 실체가 있는 것은 아니거든요. 이렇게 실체가 없는 대상을 지칭하는 것을 추상명사라고 하잖아요? 그렇다면 게임을 나타내는 명사는 추상명사니까 관사를 붙이지 않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어요?

tennis도 마찬가지입니다. 정확하게 얘기하면 테니스 선수, 테니스 공, 라켓 등 테니스를 구성하고 있는 여러 가지 요소들이 보이는 것이지, 테니스라는 약속 자체가 보이는 것은 아닙니다. 운동 경기나 게임의 이름들은 이처럼 모두 추상명사이기에 관사가 붙지 않는 것이지, 악기와 비교해서, play라는 동사와 연결해서 관사를 선택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린 방향을 잘못 잡아도 한참 잘못 잡고 있다는 말입니다.




He has taken up playing squash for two years.

그는 2년째 취미로 스쿼시를 하고 있다.




그럼 악기 이름은 어떻게 된 것일까요? 악기라는 것은 눈으로 볼 수 있는 실체가 있고, 개체성도 갖고 있습니다. 그러면 셀 수 있는 명사이니까, 관사를 붙여서 표현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요? 사실 이것도 관사의 원칙을 생각하면 아주 간단하게 이해할 수 있는 일 아니겠어요?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tennis와 piano라는 명사에 관사를 붙이는 문제를 이 땅에서는 무척이나 중요한 것처럼 다루고 있습니다. 사실 이런 경우를 원어로 된 문법책에서는 별로 다루지 않는데, 그것은 관사와 명사의 원칙이 적용되는 전형적인 경우지, 특별하거나 색다른 표현이 전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예문을 왜 동시에 가르치는지 짜증이 나는 정도를 넘어서 저는 정말로 이해할 수가 없어요. 일부러 어렵게 하려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생각해 보세요. 도대체 악기 이름하고 운동 경기의 이

름이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아무런 관계도 없잖아요. 그런데 왜 굳이 연결해서 공부하고, 공식처럼 외우고, 혼동하지 않으려고 필요 없는 에너지를 낭비하느냐는 말입니다. 아마도 이런 부류의 명사들에는 play라는 동사를 흔히 쓰기 때문에 그렇게 패키지로 묶어서 가르치는 것 같은데, 이게 관사 공부를 망치는 지름길입니다. 이런 명사들 앞에 오는 동사가 play만 있는 것이 아닌 이상, 본질적인 차이를 말해줘야 하는 데도 불구하고, 한 가지 상황만 고집스럽게 외우라고 가르치고 있다는 말입니다. play라는 동사에서 각기 다른 의미가 나오는 것이 아닌데도 말이죠.

실제로 영어를 처음 배울 때, 선생님이 "How are you?"라고 물어보면, 모두다 앵무새처럼 "I'm fine. Thank you. And you?"라고 대답했던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 질문에 대답하는 하나의 방식을 마치 공식처럼 외웠던 것입니다. 이렇게 주입식으로 문법을 익히면, 아까 드렸던 질문에도 답을 맞출 수는 있겠죠. 하지만 거기까지만 알게 될 뿐이고, 그 이상 발전할 수는 없는 것이죠.

물론 관사라는 것이 항상 이런 식으로 쉽게 설명되지는 않습니다. 때로는 문화상의 차이 때문에, 또는 정말 관용적인 표현이기 때문에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영어를 쓰는 사람들이 어떤 명사에 관사를 쓸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하는 기준은 지금까지 살펴본 내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쉽지는 않겠지만 어떤 표현을 암기하기 보다는 일단 이해하려고, 그 이유를 찾으려고 생각하는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관사를 이해하면 이전에는 단순하게 넘어갔던 문장들의 미묘한 의미나 관점의 차이까지 음미할 수 있기 때문에 영어의 새로운 맛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악기 이름 앞에 왜 하필이면 정관사를 쓰느냐고요? 그것도 물론 설명이 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I can play the piano (나는 피아노를 칠 줄 안다)'는 문장은 의미상 '일반적인 피아노'를 연주할 수 있다는 의미이지, '한 대의 피아노'를 연주할 줄 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이 문장의 piano는 한 개라는 개체의 의미로 쓰인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즉 수의 의미가 들어가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죠. 그렇다면 수?

? 나타내는 부정관사가 아니라, 정관사를 쓰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물론 이와 반대로 수의 의미를 개입시킨다면, 부정관사를 쓸 수도 있고, 여러 개를 나타낼 때는 복수형으로 쓸 수도 있는 것이죠. 반면에 이미 앞 장에서 배웠듯이 게임을 나타내는 명사들은 비록 형태가 복수라도 항상 단수 취급합니다. 바로 추상명사이기 때문이죠.




His house has a piano in each room.

그의 집에는 방마다 피아노가 한 대씩 있다.

These two pianos were donated last year.

이 두 대의 피아노는 작년에 기증 받은 것이다.




이런 식으로 하나 더 볼까요? lunch와 같은 식사 이름에는 관사를 쓸까요? 점심이라는 식사는 뚜렷하거나 일정한 형체를 갖고 있나요? breakfast나 dinner와 같은 말들은 그 시간대에 먹는 음식을 총칭적으로 지칭하는 표현이지, 특정한 음식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렇다면 이런 명사들도 역시 일정한 모양을 갖고 있지 않은 추상명사라고 할 수 있겠죠? 따라서 관사는 당연히 붙이지 않는 것이고요.


Let's take time off for lunch.

잠깐 쉬고 점심을 먹자.




그럼 참고로 몇 가지만 더 말해볼게요. 이제는 약간은 감이 잡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금만 무리를 할게요. 뭔고 하니, 식사를 나타내는 명사에 형용사가 붙는 경우에는 부정관사를 흔히 붙인답니다.




We had an early dinner.

우리는 일찍 저녁을 먹었다.

Because I had a heavy lunch, I have no appetite.

점심을 잔뜩 먹었더니, 식욕이 없다.




그리고 이와 비슷하게 정관사를 주로 붙이는 moon에도 half이나 full같은 형용사가 붙는 경우에는 달의 여러 가지 모양 가운데 하나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부정관사를 흔히 붙입니다. 또 moon이 "(지구의 위성인) 달"이라는 유일한 대상이 아니라, "(행성의) 위성"이라는 의미로 쓰일 때는 복수형도 가능합니다.




A full moon is coming up over that mountain.

저 산 위로 보름달이 뜨고 있다.

How many moons does Saturn have?

토성에는 위성이 몇 개 있는가?




오늘은 분량이 조금 많았죠? 그래서 내일은 조금만 할게요. 내일 할 내용은 오늘과 비슷한 얘기입니다. 뭐냐고요? 그냥은 말해줄 수 없고, 숙제로 낼게요. 왜, go to school하고 go to the school은 의미가 어떻게 다르죠? 이 정도는 알고 있다고요? 그럼 그 이유를 생각해 보세요. 내일 접속하면, 그 간단하지만, 놓치고 있던 이유를 알게 될겁니다.

그럼 이만...




삐딱이.







[제 목] [강좌] 문법 콤플렉스(22)-go to school? (t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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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cture-22.doc

영문법 콤플렉스 벗어나기 - 스물 두 번째 이야기




< go to school과 go to the school은 왜 의미가 다를까? >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표현을 하나 더 살펴 볼까요? go to school하고 go to the school은 의미가 어떻게 다른가요? 처음 표현은 "공부하러 (학교에) 가다"라는 뜻이고, 다음 것은 "(공부가 아닌 다른 일로) 학교에 가다"라는 말이라고 배웠을 것입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럼 이번에도 이 표현들이 의미가 서로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요? 어떤 문법책을 보니까 '공공기관이 본래의 목적으로 쓰이는 경우에는 관사가 붙지 않는다'라는 식으로 설명하는데, 이런 말은 정말 엉터리입니다.

간단하게 봅시다. 실제로 간단한 경우거든요. go to school과 go to the school이라는 표현을 비교해보세요. 어느 부분이 다른가요? 그렇죠, 한 쪽에는 관사가 있고, 다른 쪽에는 관사가 없어요. 그럼 첫 문장에서 school이라는 명사의 앞에 관사가 없다는 것은 무슨 의미이겠습니까? 모르겠다고요? 방금 전에 봤는데요. 아까 물질명사나 추상명사에는 일반적으로 관사가 없다고 했었죠? 그럼 어떤 명사의 앞에 관사가 없다

는 것은 그 명사가 관사를 붙일 수 없는 의미라는 점을 나타내는 것이고, 관사가 있으면 그 관사를 붙일 수 있는 뜻으로 쓰였다는 표시인 셈이죠.

그래서 the school은 "학교 (건물)"이라는 보통명사이고, 관사가 없는 school은 "공부, 교육"이라는 추상명사의 의미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이해하면 됩니다. school이라는 명사가 이렇게 다른 의미로 쓰였다는 것을 구별할 수 있도록 표시한 장치가 바로 관사입니다. 그래서 관사는 명사의 의미와 상호 지시적으로, 즉 서로 어울리면서 쓰인다고 하는 것이고요. 그런데 문법책에서 이런 용법의 예문이랍시고 들어주는 것들이 주로 go to see (선원이 되다), go to prison (감옥에 갇히다), go to church (예배 보러 가다), 이런 것들입니다. 친절하게도 의미를 혼동하지 말라는 부탁까지 하면서 말이죠. 게다가 이런 예문들은 흔히 앞에 go라는 동사가 나옵니다. 그러다 보니 go와 연결되는 관용적인 표현이라고 오해를 하는 경우까지 생기더군요. 이런 표현들도 사실 go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즉 관사를 결정하는 것은 go라는 동사가 아니라, 다음에 나오는 명사의 의미라는 말입니다.




*At 15 he quit the school to become a writer.

15살 때 그는 작가가 되기 위해서 학교를 그만 뒀다.




이 문장이 틀린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예문에서도 "학교를 그만두다"라는 표현에 쓰인 school이라는 명사는 "공부, 학업"이라는 의미이지, "학교 (건물)"이라는 의미로 쓰인 것은 아니잖아요? 그렇다면 개념이나 행위를 나타내는 셀 수 없는 명사로 쓰인 것이기 때문에 관사가 없어야 마땅한 것입니다.

이 문장이 틀린 이유를 찾아내지 못했다면, 그것은 그만큼 여러분이 영어를 공부하면서 문법을 이해하기 보다는 암기하는 아주 나쁜 습관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주는 것입니다. 조금 전 go를 쓴 예문은 ?

퓜見? 잘 구별하면서도, 동사가 quit으로 바뀌니까 당장 적응을 못하잖아요? 아까 보여드린 두 개의 표현을 구별할 줄 안다면, 이 문장도 당연히 틀린 것을 지적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동일한 문법 조항을 물어보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 할까요? 여태까지 죽어있는 문법을 배웠다는 점을, 문법의 원리를 이해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죠. 앵무새처럼 '이거면 저거'라는 식의 공식을 많이 알고 있고 또 문제는 잘 풀면서도, 올바른 문장을 만들지 못하는 지적 불구가 된 이유는 바로 문법의 원리를 이해하고, 자기 것으로 소화시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모두가 소화불량에 걸려 있는 것이지요. 자기가 소화를 못시킨다고 해서, 음식이 맛이 없다고 할 수는 없는 것처럼, 문제는 문법 자체가 아니라, 우리의 접근 방식이 지나치게 어렵다는 말입니다.




They were at table when I went in.

내가 들어 갔을 때, 그들은 식사 중이었다.

They were at the table when I went in.

내가 들어 갔을 때, 그들은 식탁에 있었다.




He died in office.

그는 일하다가 죽었다.

He died in the office.

그는 사무실에서 죽었다.




< 언어의 이름에는 관사를 쓰지 않는다? >




이렇게 단편적으로 알고 있는 경우를 하나 더 보기로 하죠. 보통 언어의 이름에는 관사를 쓰지 않는다고 합니다. 물론 English, Spanish처럼 고유명사를 쓰는 경우에는 관사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단어들을 다음에 language라는 명사를 붙여서 고유형용사로 쓰는 경우에는 관사를 붙여야 합니다.

language라는 명사도 "말"이라는 의미로 쓴다면, 그때는 추상명사의 의미이니까 관사와 결합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2외국어를 몇 개나 할 줄 아십니까?"라고 물어볼 때처럼 "(특정) 언어"라는 의미로 쓸 때는 셀 수 있는 명사이기 때문에 관사를 붙여야 합니다. 그런데 앞에 고유 형용사가 붙는다면 고유한, 즉 특정한 대상을 지칭하는 상황이므로 당연히 정관사와 결합하는 것입니다.




Teaching English is my bread and butter.

영어를 가르치는 것이 내 밥줄이다.

Can you speak the Spanish language?

스페인어를 할 줄 아나요?




자, 이제 go to school하고 go to the school이 서로 의미가 다른 이유를 이해할 수 있겠어요? 그럼 "버스를 타고"라고 할 때는 어떻게 표현하나요? 흔히 by bus라고 하죠? 그럼 오늘은 일단 여기까지 하고, 내일은 바로 이 부분에 대해서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숙제는 이겁니다. 이런 경우에 bus 앞에는 왜 관사가 없을까? bus 앞에는 항상 이렇게 관사가 없을까? 그리고 왜 하필이면 전치사로 by를 썼을까 하는 거요. 고민해 보세요.




삐딱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