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보님의 시평론과 답글
<임보 교수님의 시평론>
새해 첫 소풍날에
-정봉현 지음[경남 진주 거주.학원 영어 선생님]-
이 밤 다 가기 전에
바다를 헤쳐 솟아오는 해를 보러 가리라
사랑하는 사람들 잠든 세월을 깨워
저마다 젊은 파랑새 한 마리씩 짝을 지워
짙은 어둠 토해버릴 해를 맞으러 가리라
아픈 자의 병상에 빛을,
가난한 자의 심장에 불을,
고독한 자의 눈에 소망을,
교만한 자의 가슴에 믿음을 잉태시키던
삼백 육십 오일 그 붉었던 사랑을
삼백 육십 오일 늘 푸를 사랑에게 바치는
太初 그 거룩한 의식을 하얀 맨살로 품으리라
바라보는 눈길 하나 하나에
등돌렸던 아픔 가닥 가닥 담고
내쉬는 숨결 한 올 한 올에
들이쉰 생명 모락 모락 심어
숙이는 고개 마디 마디
나 아닌 나를 채우리라
내가 아닌 너를 채우리라
오늘은 어제의 거울, 그 자체로 하여
아름답고,
오늘은 내일의 마음, 그 자체로 하여
풍요로운 새해의 첫 소풍날,
사랑하는 사람들 손에 손잡고
어둠 삭혀 마시며 해맞이 가는 날.
2002, 1, 1.
<새해 첫 소풍날에>를 읽고
임보
새해 아침의 해맞이를 소재로 한 작품이군요.
사물을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바라다보는 자세가
마음에 듭니다.
그러나 부분적으로는 표현의 조화로움에
아쉬움이 있어 지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제1연의 1행 '이 밤 다 가기 전에'는
가는 '밤'에 대한 아쉬움이 느껴지는 것 같아서 마음에 걸립니다.
'새날의 동이 트기 전에'로 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제2연은 연인들의 해맞이 정황인데
1행에서 '잠든 세월을 깨워'는 의미가 불분명하니 없어도 좋을 것 같고
2행의 끝 '지워'는 '하여'가 어떨까요. 그리고
3행의 '토해버릴'은 '삼켜버릴'이 어둠을 소멸시키는 표현으로는
더 적절할 것 같습니다.
제3연은 아침의 태양이 여러 경우에 긍정적으로 작용한다는
사실들을 나열해 보이고 있군요.
제1행은 삭제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 다음에 제시된 상황들과 잘 어울리지 않습니다)
제2,3,4행에서 서로 연관지어 제시된 사물들이 다음과 같습니다.
(가난--심장--불
고독--눈---소망
교만--가슴--믿음)
'불, 소망, 믿음'을 '풍요, 기쁨, 겸손'으로 바꾸고 싶군요.
그렇게 해야 앞의 결손(가난, 고독, 교만)에 대한 보상이 이루어지니까요.
그리고 4,5,6행의 시제들을 현재 시제로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제4연 2행 끝 '담고'는 '풀고'로
3행의 처음 '내쉬는'은 '들이쉬는'으로
4행의 처음 '들이쉰'은 '새'로
바꾸면 어떨까요.
제5연의 첫 세 행은 너무 관념적이어서
삭제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지적이 많아서 너무 복잡하지요?
작품 전체를 다시 정리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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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 소풍날에>
새날의 동이 트기 전에
바다를 헤쳐 솟아오른 해를 보러 가리라
사랑하는 사람들
저마다 젊은 파랑새 한 마리씩 짝을 하여
짙은 어둠 삼켜버릴 해를 맞으러 가리라
가난한 자의 심장에 풍요를
고독한 자의 눈에 기쁨을
교만한 자의 가슴에 겸손을 잉태시키는
삼백육십오 일 그 붉은 사랑을
삼백육십오 일 늘 푸른 사랑에게 바치는
태초의 그 거룩한 의식을 하얀 맨살로 품으리라
바라보는 눈길 하나 하나에
등돌렸던 아픔 가닥가닥 풀고
들이쉬는 숨결 한 올 한 올에
새 생명 모락모락 심어
숙이는 고개 마디 마디에
나 아닌 나를 채우리라
나 아닌 너를 채우리라
풍요로운 새해의 첫 소풍날,
사랑하는 사람들 손에 손잡고
어둠 삭혀 마시며 해맞이 가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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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필을 빌어 마지않습니다. 임보.
<지은이의 답글>
우선 바쁘신 중에도 시간을 내어 많은 가르침을 주신 임보 교수님과 그 기회를 주신 운영자님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평을 보고 나서 더욱 신중한 자세로 글쓰기에 임해야 겠다는 생각이 가득합니다. 하지만 고쳐 놓으신 글이 제가 이 글을 처음 쓸 때의 마음과는 약간 다른 감이 있어 감히 제 의견도 드리고자 합니다. 배우고자 하는 자세이고 어느 정도의 글에 대한 애착이니 너그럽게 보아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저는 2001년 12월 31일 일부러 잠을 이루질 않았습니다. 이른 새벽 사랑하는 가족들과나의 가족같은 사람들을 깨워 해맞이를 가고자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과 함께 해를 보면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달라고 염원하고 싶었고, 지난 해의 잘못과 얼룩을 털어내고 지우면서 새로운 희망과 계획으로 대체하고자 했습니다. 새해의 아침은 꼭 새 것만을 바라는 것이 아니고 옛 것을 새 것으로 대체하는 마음의 작업을 하는 것, 그래서 새해의 첫 날이 희망만이 솟는 하루가 아니고 지난 해를 떠올려 반성할 수 있고 그리하여 새해의 각오를 더욱 다질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기에 한 줄 한 줄의 제 의도는 이런 것이었습니다.
새해 첫 소풍날에
-정봉현 지음[경남 진주 거주.학원 영어 선생님]-
이 밤 다 가기 전에
바다를 헤쳐 솟아오는 해를 보러 가리라
(한 해를 보내는 아쉬움이 담겨 있으며 하지만 이 밤 다 가기 전에 솟아오는 해를 보아야만 과거의 아쉬움과 반성할 것들을 해를 보면서 밀어내고 채울 수 있다는 의도였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 잠든 세월을 깨워
저마다 젊은 파랑새 한 마리씩 짝을 지워
짙은 어둠 토해버릴 해를 맞으러 가리라
(여기서 사랑하는 사람들은 남녀 연인들이 아니라 제 사랑하는 가족들과 이웃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잠들어 깨지 않고 있기에 한 해(과거)를 반성하고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세월을 놓쳐 버릴 거라고 생각해습니다. 그래서 반성할 시간과 새로운 것을 계획할 수 있는 시간을 그들에게 주고 싶었습니다. 그들이 서로 짝을 하는 게 아니라 제가 그들에게 희망의 파랑새, 그것도 많은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젊은' 파랑새를 짝을 지어 주어서 지난 해의 어둠을 토해버릴 해, 즉 희망의 해를 보러 가게 하고 싶었습니다.)
아픈 자의 병상에 빛을,
가난한 자의 심장에 불을,
고독한 자의 눈에 소망을,
교만한 자의 가슴에 믿음을 잉태시키던
삼백 육십 오일 그 붉었던 사랑을
삼백 육십 오일 늘 푸를 사랑에게 바치는
太初 그 거룩한 의식을 하얀 맨살로 품으리라
(빛, 불과 소망은 직설적인 대체보다는 의미를 조금씩 숨기면서 드러내려는 의도였고,
4행의 과거행과 5행의 과거행은 1,2,3,행의 일을 지난 해의 태양이 해왔던 것을 나타내고 그 신성한 임무를 다시 오늘부터 시작될 미래의 태양에게 전한다는 의미에서 6행이 나왔고 과거와 미래를 이어주는 의식은 태초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이라 여겼기에 순수하고 신성한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 '태초 그 거룩한 의식'이라는 말을 사용하였습니다. 그리고 저도 순수하게 그 사명을 받아들인다는 의미에서 하얀 맨살이 나왔습니다.)
바라보는 눈길 하나 하나에
등돌렸던 아픔 가닥 가닥 담고
내쉬는 숨결 한 올 한 올에
들이쉰 생명 모락 모락 심어
숙이는 고개 마디 마디
나 아닌 나를 채우리라
내가 아닌 너를 채우리라
(다른 연들처럼 이 연도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아우러지게 하고자 했습니다. 단지 미래의 희망만을 얘기하는 새 날이 아니라 현재의 해를 보면서 지난 날, 내가 외면했던 아픔을 하나 하나 생각해 보고, 숨을 내쉬면서 과거에 들이쉰 생명들을 떠올려보면서 반성의 고개를 숙이고, 미래의 다짐을 하는 장면입니다. 이제부터는 과거의 나가 아닌 나, 나보다 더 너를 사랑하는 세월을 살아가겠다고 다짐을 합니다.)
오늘은 어제의 거울, 그 자체로 하여
아름답고,
오늘은 내일의 마음, 그 자체로 하여
풍요로운 새해의 첫 소풍날,
사랑하는 사람들 손에 손잡고
어둠 삭혀 마시며 해맞이 가는 날.
(마지막 연도 다른 연과 마찬가지로 과거와 미래를 연결시키는 새해의 첫 날을 얘기하고자 했습니다. 오늘이라는 현재는 어제(과거)를 반성할 수 있게 해주는 시간이라서 더욱 의미있고 아름다우며, 내일(미래)의 희망을 바랄 수 있는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시간이라서 더욱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좋은 시간을 나 혼자만 느끼는 것이 아니고 내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맞고 싶었고, 그들도 과거를 반성하며 털고 새해의 희망을 맞으러 함께 간다는 의미에서 마지막 행을 썼습니다. 마지막 행에도 과거와 현재, 미래가 함께 들어가도록 했습니다.)
(전체적으로 새해 첫 소풍날은 미래의 희망만을 가지는 날이라기보다 과거를 생각해보고 반성하면서 이 해를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는 희망으로 채우며 살아가려는 날이라는 의미로 담고자 했던 게 제 의도였습니다.)
2002, 1, 1.
(저의 이 글을 쓸 때의 첫 의도는 이런 마음이었기에, 전체적인 시각에 좀 차이가 있는 것 같아 부끄러움을 무릎쓰고 답글을 남겨 봅니다. 다시 한번 교수님께서 주신 정성과 가르침에 머리 숙여 감사드리며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써, 빈약한 마음이나마 저의 열정을 교수님께 전하고자 하오니 널리 혜량하여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시란 무엇인가?
1) 시란 무엇인가?
- 김 지 향 -
시를 읽기 전에 먼저 알아야 할 문제가 있다. 시란 무엇인가? 라는 문제이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해서 아무도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없다. 그것은 시 독자들이 시의 정체를 이미 다 밝혀내어 터득하고 있어서 일까? 아니면 알고 싶지 않아서 일까?: 아마도 정확한 대답을 도출해내지 못해서 일 것이다. 시는 정답이 없다 는 것이 정답이기 때문이다. 오늘날까지 많은 시인이나 시 연구가들이 시에 대하 각각 자기 나름의 개성 있는 정의를 피력해 왔다. 그러나 그 정의가 시의 얼굴에 각양각색으로 색칠을 해 놓고 있어 어느 한 지점에 통일시키기가 어렵다. 그만큼 통일한 한 개의 해답을 산출해 낼수 있을 만큼 시가 단순하거나 간단한 것이 아니다. 아주 다양한 무한다면체 또는 철면 조의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 개의 정확한 해답에 나올 수 없다는 것이 시의 특성이다.
동서양의 시의 원조로 알려진 두 사람의 시의 정의를 보자. 먼저 동양의 대 석학인 공자(孔子)는 시를 사무사(思無邪), 즉 생각에 사투함이 없는 것으로 해석했으며 서양의 대 철학자 아리스도텔레스(Atistoteles)는 시를 운율적 언어에 의한 모방 즉 사물의 형상을 운율적 언어에 담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리고 보면 동양의 공자는 시의 정신면에 서양의 아리스토텔레스는 시의 기법면에서 치우친 인상이 짙다. 따라서 동양의 그것이 관념적이라면 서양의 그것은 실제적임을 알 수 있다. 이 두 사람만의 해석을 놓고 볼 때도 보는 관점이 이렇게 차이가 있는데 열사람 의 해석은 열 가지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전혀 다른 해답은 아니다. 다면체 시의 어느 일면의 해명은 되는 것이다. 하지만 다면체 시 전면을 해명하는 정의가 나오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시는 정답이 없다는 것이 정답일 수 밖에 없다. 시는 시대와 개인의 시각에 따라 편차를 보일뿐 아니라 그 다양한 성질과 요소가 모두 인간의 체험을 담아내는 그릇에 다름 아니다. 그러므로 시는 인간에 대한 천작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시의 제재가 자연이든 우주이든 결국 인간 문제에 귀결되며 인간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에 대한 수 많은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시인들은 인간존재의 근원인 삶을 탐색하게 되면 그러한 과정 속에 시는 삶을 반영하는 도구로 원용된다. 따라서 시는 인간에게 카다르시스를 제공해야 하며 이러한 정화적용은 인간의 정서를 순화하고 감동과 진실을 공급하며 상상력을 통한 추경험의 기회를 마련해 준다는 의미에서 시는 궁극적으로 보다 향상된 삶보다 풍요로운 인생을 위한 양식이며 토양이며 자극제가 된다. 그러므로 시가 진정한 생명력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삶 속에 표출되는 인간의 진실을 포착하는데 있다. 말하자면 시는 인간을 인간이게 하고 나아가 카다르시스를 통해 성숙된 의식의 소유자로 완성되어 간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시는 절제된 언어 속에 인간의 진실을 함축 시켜야 하므로 흔히 시인을 언어의 발견자, 또는 창조가로 지칭한다.
2) 시의 형태
무한다면체의 시는 논작에 따라 여러 갈래의 형태로 구분할 수 있다. 운율적인 면 내용적인 면 시대적인 면 등으로 대변될 수 있다. 운율적인 면에서는 정형시, 자유시로 구분할 수 있으며 내용적인 면을 기준으로 대변한다면 서정시, 서사시로 그리고 시대를 원칙4으로 나눌 때는 고대, 근대, 현대등으로 대변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반드시 고정불변의(관례에 따른) 원칙은 아니다. 구분자에 따라 얼마든지 상이하게 또는 세부적으로 나눌 수가 있다. 그러나 팔자가 섬세하게 세분하지 않는 것은 여러분의 시 읽기의 이해를 돕기 위해 혼란스러워 현낙적 세분을 퇴하고 간략하게 분류한 것이다. 따라서 편의상 정형시와 자유시의 형태에 국한시키고자 한다.
(가) 정형시
운율을 기반으로 하는 고정된 틀을 갖춘 시를 말한다. 운율은 시가 갖추어야 할 기본요소 중 하나로서 시의 형태미를 이루는 기본 틀이 된다. 이것은 또한 서정시의 기반이 되는 요체이며 언어질서를 제한하는 언어의 율동이다, 정형시의 기반을 이룬 이 운율(음악성)은 고조선 시대의 여성 여옥이 공후라는 악기에 실은 애절한 가락의 노래말로부터 시작된 공무도하가를 출발점으로 삼고 잇다. 이러한 노랫말이 시대의 흐름에 따라 정형시로 장착이 되었으며 정형시의 자구나 음수율이 일정하게 고정된 것도 노랴 가사에 알맞은 짜임새에 기인한 다고 볼 수 있다. 이 짧은 형태의 정형시는 3 4 4 4, 3 4 4 4, 3 5 4 3 의 자수율을 기본형태로 삼는다. 그러나 반드시 이러한 기분형태를 지키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종창의 초구 3자와 다음의 5자는 지키도록 지키도록 되어있는 것이 시조다.
정형시(시조)의 운율이 오늘날 자유시의 바탕이 되어있다. 자유시의 시행이나 언어배열을 운율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초보자들은 정형시를 먼저 익힌 후에 자유시로 가는 것이 운율 훈련을 위해선 자연스런 순서가 될 것이다. 여운과 완결의 면에서 정형시를 능가할 시가 없기 때문이다.
(나)자유시
정형시가 전통적인 일정한 형태적 틀에 얽매여 있다면 자유시는 이름 그대로 일정한 형태적 구속에서 벗어난 시를 말한다. 말하자면 외적 형태에 구애 받지 않고 체험내용에 따라 독자적인 형태를 갖게 된다. 즉 정형시가 작은 고정된 형, 고정된 운, 고정된 억양율을 갖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시인 각자의 선택에 따라 각자의 개성을 발휘할 수 있는 형태의 시다. 그러나 시적인 요소를 완벽하게 구비해야 할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행이나 연 구 분은 물론 중요한 요소인 운율(내재율)도 무시해서는 안 된다.
문명의 발달로 인간체험의 폭이 증폭되고 다원화됨에 따라 작은 그릇의 한정된 정형시에 만족하지 못한 시인들이 자유시를 개발해 냈으나 자유시에도 다양한 체험을 완전히 담아 낼 수 없다. 자유시라고 해서 무한히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무한히 자유롭고 싶은 사람들로 하여 산문시라는 것이 나오고 있다. 이것은 행 연의 구분이나 운율의 구속까지 모두 벗어버린 이름 그대로 가까운 것이다. 말하자면 자유시와 산문 사이의 모호한 위치에 있다. 전혀 시의 매력을 느낄 수 없는 시다.
3) 시의 요소
시가 되려면 구유 해야 할 요소들이 있다. 이를 자잘하게 세분한다면 역시 삶속에 체험되는 모든 사물에 명칭을 부여하여 열거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관례대로 몇 가지 즉 언어, 상상, 비유 등으로 간략하게 정리하려고 한다.
(가) 언어
시는 말의 예술이며 시인은 언어의 연금술사라고도 한다. 그만큼 언어가 시의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언어에 의해 죽은 시 살아 있는 시로 가름 된다. 그러므로 시인들은 시속에서 일상어와 시어를 구분하도 있다. 그러나 언어가 처음부터 시어와 일상어로 구분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쓰는 언어는 모두가 일상어이고 시에 쓰이는 언어도 일상어로 적조 된다. 따라서 그 일상어는 하나 하나 명확한 독자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시 속에 도입된 일상어, 그 자체로는 시적가치를 말하지 못한다. 다만 그것이 문맥사이에 놓여서 특수한 작용을 하기 위해 다른 언어와 연결되어 특수한 수법으로 특수하게 사용 될 때 비로소 시어로 전이되어 특수한 효과를 나타내게 된다. 그러므로 시인들은 일상어를 시어화 하는 작업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으며 독자들은 시어화 된 언어를 통해 시인의 체험을 추경화하게 된다. 그러나 주의 할 것은 시 읽기 에 있어 시어로 전이 되기 이전의 일상적 의미, 즉 낱말의 외연적 의미를 명확하게 파악하고 나서 전이된 시어 속의 효과 즉 상징성, 암시성 또는 함축성(내포적 의미)을 파악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시어로 전이된 언어(시)를 읽을 때 가장 두드러진 현상 즉 표현이 매우 구체적이며 미적기능을 지향하고 있으며 논리적 관계가 표면화되지 않고 표현 속에 감추어져 있다는 사실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하늘에 쌓인 비
울이 풀렸다.
터진 실밥이 날리다가
와르르 치마폭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려
땅 위의 무덤 같은 내 초막을 덮쳤다
졸시 < 봄꿈.1호> 중에서
올 이란 낱말은 일상적으로 실이나 줄의 가닥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이것을 일상어로 읽으려면 이 시에선 합리성이 없다. 비는 실이나 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 대신에 빗방울 이라고 쓴다면 합리성은 있어도 암시성은 없어진다. 따라서 올이 풀렸다 라든가 터진 실밥이 날리다가 와르르 치마폭이 한꺼번에 무너져 내려 라는 표현은 폭우가 쏟아지는 현상을 묘사한 것으로 읽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보다 중요한 것은 삶의 고뇌 라는 일상어 대신 비 라는 상징성을 거느린 언어로 묘사함으로써 미적감각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다.
(나) 심상(Image)
복합 구조물인 시의 몇 가지 요소 중 비교적 비중이 큰 것이 심상이다. 심상을 영상(暎像) 또는 사상(寫像)이라고도 하며 이것을 심리학에서는 인간의 감각적 체험을 해석하는데 사용된 용어 로 풀이 하고 있다. 그러나 문학이 전용한 이래, 문학에서는 사물을 지칭하는 언어로 해석하고 있다. 가령, 백합꽃 이라는 말을 할 때 우리 의식 속에 하얀 꽃송이가 감각적으로 떠오르게 된다. 그러므로 백합꽃 이라는 이 언어가 심삼 곧 이미지인 셈이다. 문학용어 사전에도 이미지를 어떤 사물을 감각적으로 정신 속에 재생되도록 자극하는 말로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한다면 구상어 는 모두 이미지일 수 있다. 그런데 이 이미지를 두 갈래로 해석하는 학자도 있다. 포괄적 개념적 개념과 협의적 개념이 그것이다. 포괄적 개념은 모든 대상의 윤곽을 의식 속에 환기시키는 것을 말하고 협의적 개념은 시각적 대상을 비유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언어로 해석하고 있다. 그렇다면 협의적 개념의 그것은 눈썹 이라는 언어는 이미지가 될 수 없다. 비유적 표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달 같은 눈썹 한다면 이미지가 된다. 눈썹이 반달에 비유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감각적 체험을 재생시키는 언어는 모두 이미지에 속하지만, 비유적 표현이 시로써는 생동감이 지배하는 이미지에 와 있다. 그것은 문명의 발달로 인간의 지능도 듣기 보다 보기 쪽으로 발달한 연유로 보인다. 그러므로 보여주는 이미지가 현대시의 육체라 할만 하다. 그리고 보여주는 시는 감각적 체험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도 알아야 할 것이다. 가령 비가 온다 라고 하면 이미지가 없는 사실기록의 직접진술에 불과하다. 비가 어떻게 오는지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집 전체를 차지하고도 배가 고픈/
비가/
사방으로 갈기를 뻗어/
떠 내 려오는 비명을 걷어 감키고도 배가 고픈/
비가/
등줄기를 치켜들고 바람이 되어 달린다//
라고 한다면 폭우가 쏟아지는 현상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시는 직접진술을 피하고 그림을 그려 보여주듯하는 묘사로 일관 시켜야 한다. 그리고 또 한가지 A사물을 끝까지 A사물로 끌고 가는 것보다 B사물로 바꿔버리는 쪽이 매력을 더한다. 여기서는 비가 바람으로 전이된 사실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현실을 재구성이나 전이 시키지 않으면 사실의 기록 이 될 수 밖에 없다. 사실의 기록은 시가 될 수 없다. 그러므로 재구성과 전이 는 시의 중요한 수사적 기능이다. 여기서 다양한 이미지의 기능을 요약정리 하자면
구체적 묘사를 위한 사물성
환상적 기능
감각적 호소력
개념, 관념, 상사의 산물화 등이다.
그리고 이미지의 종류도 매우 다양하지만 지면상 생략하기로 한다.
(다) 비유
우리의 언어는 한정적인데 반해 사물의 종류는 무한정적이다. 게다가 사물은 모두 개성을 지니고 있다. 그 개성을 제대로 나타내려면 비유법을 통하지 않을 수 없다. 비유란 비교를 통해서 사물의 특성을 드러내는 수사의 일종이다. 다시 말하면 비유는 한정적인 언어가 비유에 의해 언어의 한계성을 초월하여 무한한 의미를 표현하는 수사법이라 할 수 있으며 시에서는 중요한 기능으로 꼽힌다. 이러한 방법은 간접표현이기 때문에 매우 암시적이다. 말하자면 우리가 모르는 미지의 사물을 표현 하려고 할 때, 우리는 이미 알고있는 기지의 사물을(객관적 상관물)끌어와서 비교함으로써 미지의 사물을 파악 하게 하는 방법을 말한다. 그러므로 비유는 비교를 통한 사물해명의 수사법이다. (유의)이 결합된 형태이다. 따라서 비유의 요소는 본의, 유의, 유사성, 이질성 등이며 본의, 유의가 유사성, 이질성을 거느리고 있다. 그리고 비유의 사명은 독특한 인식과 새로운 발전을 기성품인 언어를 가지고 비교를 통해 의미의 변화 또는 언어전이를 모색함으로써 새로움을 획득하는 데에 있다. 또한 비유에는 직유, 은유, 제유, 환유, 인유, 의성어, 의태어, 의인법등 여러 종류가 있지만 대표적인 것은 은유다.
(라)직유
사상(寫像)을 선명히 드러내는 강의적 효과가 있어 명유라고도 하는 이 직유는 유사하지 않은 두 개의 사물에 대한 직접적인 비교의 언술을 말한다. 이러한 형식은 비교하는 사물과 비교되는 사물이 처럼, 마냥, 같이, 듯이, 만큼, 보다 등이 비교조사에 의해 원관념과 보조관념이 결합되는 경우이다. 관념과 보조관념이 결합되는 경우이다. 따라서 비유의 네 요소가 모두 표현화 되며 또한 원래의 모습을 그대로 지니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직유의 종류는 기술적 직유(단일, 확장)와 강의적 직유가 있으며 구성에 있어서는 대체로 3단계의 구성법을 지니고 있다. 그 1단계는 무덤같은 초막 처럼 원관념, 보조관념이 한 단어로 결합되는 경우를 말한다. 그리고 2단계는 바아뒤 점같은 나를 싸악, 쓸어 줘며, / 비가 땅끝으로 가는 중이다, 와 같이 한 문장으로 결합되는 경우이고 3단계는 기둥과 함께 나둥그러져/ 머리에 대못으로 박히는 비의 부리를 / 두 주먹으로 짓 으깼지만 / 머리칼 하난 남기지 않고 / 벌초나 하듯 싸악. 쓸어 쥐며 / 바다 위 점 같은 나를 싸악 쓸어 줘며 / 비가 땅끝으로 가는 중이다, // 와 같이 한 연으로 이뤄지는 경우이다. 따라서 비유는 비교하는 두 사물이 동직성이기 보다 이질성 속의 동질성을 발견하여 연결하는 것이 더욱 효과가 있다.
(마)은유
메타퍼(metaphor)라고도 말하는 은유는 원관념과 보조관념 사이의 연결이 없이 바로 직결하는 수사법이다. 그러므로 암시성이 강하며 암유(闇喩), 간유(肝油)라고도 한다. 그것은 비유의 요소 중 원관념, 보조관념만 밖으로 드러나고 이질성, 유사성은 숨겨져 있기 때문에 매우 함축적이다, 따라서 현대사에서 압도적으로 쓰이는 가장 비중이 큰 요소인 만큼 형식에 구애 받지 않고 비유의 세계를 넓게 열어놓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은유는 원관념과 보조관념이 원형을 유지하지 않는 것도 비유와 다른 점이다. 그것은 보조관념이 원관념을 다른 의미로 바꿔놓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제3의 새로운 의미를 창출해 내는 것이다. 이것을 언어적이 라고 하며 전이된 언어 속에 함축된 상징적 의미는 독자의 몫이다. 그러므로 은유야 말로 독자의 상상력 개발에 기여할 뿐 아니라 시인의 능력을 가름하는 척도가 된다. 그런데 문제는 언어전이로 이뤄지는 새로운 의미의 언어는 언제나 1회적이란 점이다. 그 속은 같은 언어를 반복 사용할 땐 아무리 새로운 언어였더라도 낡은 언어가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시인은 언제나 예리한 언어감각으로 비유의 기능을 최대한으로 발휘하여 새롭고 참신한 언어를 계속 창출해 내야 한다. 은유의 종류는 병치, 치환, 확장 등 여러 가지가 있다.
4) 시의 경향
시대변천에 따라 인간의 감수성도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인간의 감수성에 따라 시의 흐름도 변화를 보이게 마련이다. 인간의 감수성은 낡은 것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움을 찾아 나아가는 경향이 있다. 말하자면 메마르고 딱딱한 고전주의에 만족하지 않고 거기에 반대되는 몽환적인 감정의 세계인 낭만주의를 발견해 낸 것이다. 이것은 영접을 지향하는 무한의 세계를 노래하며, 이러한 꿈과 이상이 현실에 실현되지 않을 땐 허무에 빠지게 되고 허무의식으로 탄식과 통곡을 거느린 우울한 정서에 탐닉하게 된다. 그러므로 시인들은 이러한 세계에 오래 있지 못한다. 또 다른 세계로 비약하고자 하는 것이다. 정서의 강렬성을 작품 속에 담아내던 낭만주의에서 구성의 강렬성을 강조한 이미지즘 시가 고개를 내밀게 된 것이다. 감정이나 관념 등의 대상을 객관적으로 사물화 시켜서 사물의 유추에 의해 이미지를 전개 시켜 나가는 방법을 사용한다. 여기서 머물지 않고 시인은 새로운 세계를 시도하게 된다.
이간의 경험은 복잡하고 다원적이며 이러한 다원적인 경험을 우리는 모두 정신 속에 저축하게 되는데, 이런 한 이질적인 여러 경험을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예술적 정서로 승화시켜 형이상 시를 만들어 내게 된다. 형이상 시는 상상력이 크게 작용한다. 그것은 형이상적 세계, 즉 영적세계를 탐색하게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초현실주의 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현실 세계와 대비되는 꿈 과 자동연상 의 세계인 것이다. 현실은 거짓으로 가려져 있어 진실성이 없기 때문에 무가치하다는 인식에서 나온 발상이다. 그러므로 현실을 떠나 초월적인 우주와 관계를 맺는 4차원의 세계인 것이다. 여기엔 의식적인 논리나 계산이 개입될 수 없으며 완전히 무의식이 이미지를 과감하게 그대로 기술토록 방치하는 자동기술법에 의존한 시다. 그러므로 특수한 인간 정신의 내부를 투사한 시로 볼 수 있다. 이어서 단명하지만, 실험적인 경향의 시도 순환궤도를 스쳐 지나가고 있다. 젊은 계층에 유행되던 포멸, 투사, 해체 등의 유형이 그것이다. 해체 시는 한 때 젊은 시인들을 매료시킨 적이 있다. 이름 그대로 형태의 해체, 언어의 해체, 의식의 해체 등으로 기형적인 시 형태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시 속에 단편적인 스토리를 삽입하는 시 소설 이란 시도 시도되고 있다. 어떻든 시는 시여야 하고 시는 결국 인간탐구 라는 인식에 촛점을 맞추어 읽어야 한다.
풍경(영역시)
Landscape
written by Habaraki
On the leaves of bamboos inviting moonlight to their nest
The back yard is brimming with cozy gleam.
On the terrace where jars are placed
As if to listen to the lecture of Heaven
Swelling jars are giving a deep bow grasping their hands on the knees.
Silver ray is falling down over their heads.
Somewhere desolate east wind blows.
All at once river revives fluttering her fins.
Clean and blue sea falls into the jars obsessed with 'Croak. Croak'.
On white sands, as angelic children are stamping their feet,
Raising their cute hands, shouting,"I am here. I can do it."
They have the dew of dawn on their pupils.
I am happy enough not to shut my mouth.
I am hesitating to whom to step up and speak
Applying saliva to the tip of my index finger.
translated by ENARO
2002, 4, 3.
가벼워짐에 대하여 - 1 -
***habaraki*** 지음
댓잎들 사각거리는 뒤올 안에
달빛이 고봉으로 내립니다
장독대 헛배부른 항아리들이 깍지 무릎을 끼고
머리를 조아리고 있습니다
머리통들 위에 은빛살 환합니다
어디서 소슬한 동부새 한 줄금 불어오자
지느러미 파닥이며 살아나는 강물, 항아리들은
맹꽁이 울음을 싣고 그대로 청랑빛 바다입니다
하얀 모랫벌 저요, 저요 발동동 구르는
고사리손들 보입니다
나는 오진 마음에 입 다물지 못하고
어느것에게로 가서 먼저 가만 말 건네볼까
검지손가락 침 묻혀가며 망설이고 있습니다.
영시 한 편
Afternoon on a Hill ( 삶 )
-Edna st. Vincent Millay (1892 - 1950):An American poetess and playwright
I will be the gladdest thing 나 태양아래
Under the sun! 나의 자유를 맘껏 누리리!
I will touch a hundred flowers 모든 걸 다 해 보고 싶어
And not pick one. 하나도 빠짐없이.
I will look at cliffs and clouds 고난의 세월도 나를 찾겠지
With quiet eyes, 하지만 나는 알아
Watch the wind bow down the grass, 인생은 울며 절다
And the grass rise. 다시 일어나는 것이라는 걸
And when lights begin to show 어느 듯 세상의 윤곽이 보이고
Up from the town, 나의 고지도 드러날 때쯤
I will mark which must be mine, 정녕 내가 있어야 할 곳을 향해
And then start down! 다시 발을 내딛을 거야!
난 태양아래 무엇보다
제일 즐겁게 놀 거야!
오만 가지 꽃 만져 봐야지
한 송이도 꺽진 않을 테야.
그윽한 눈으로
절벽과 구름 바라보고
바람결에 풀이 고개 숙였다
다시 일어서는 걸 지켜볼 테야.
그러다 저 아래 도시에
불 들어오기 시작하면
내 불빛 찾아 마음에 새겨 두고
산을 내려갈 테야!
정지용 시인
20세기 한국어 발명한 최초 전문詩人
- 정지용 탄생 100주년에 부쳐- 柳宗鎬(연세대 석좌교수)
올해는 시인 정지용과 김소월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두 시인이 동갑임을 알고 놀라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생물학적 연령이야 어쨌든 두 시인의 시세계는 적어도 한 세대 이상의 차이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정지용은 최초의 모더니스트란 호칭을 받아왔다. 그렇지만 시란 언어로 빚어진다는 사실을 열렬히 자각하고 실천한 그를 20세기 최초의 전문적 시인이라고 부르는 편이 더 어울린다. 만해와 소월도 현대의 고전이 된 시집을 선보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만해에게 시는 여기(餘技)였고, 소월은 25세가 넘어서도 시인으로 남아 있기를 지향하는 시인은 아니었다. 25세 전에 '진달래꽃'을 낸 소월은 그후 이렇다할 작품을 보여주지 않았다. 정지용에게 시는 사춘기 감정을 무절제하게 토로하거나 축축한 감상(感傷)주의에 탐닉하는 일이 아니었다. 그는 엄격한 기율을 스스로에게 과하여 적정하고 경제적인 언어 구사를 통해 개개 시편의 완벽성을 지향하였다. 그리하여 그 이전의 시가 가지고 있는 우리 시에 구정주의적 엄격성의 본을 보여준 것이다. 시의 일반적 수준이 정지용 이후 한수 높아지게 된다. 특히 토박이말의 발굴과 활용에서 보여준 그의 선구적 기여는 우리 시의 성숙에 결정적으로 기여하였다. 그가 구사한 언어는 발명이란 이름에 값할 만큼 창의적이고 개성적이다. 그 영향력은 압도적이어서 윤동주·청록파·김춘수의 시는 그의 선구적 시범없이는 불가능 했을 것이다. 서정주·유치환·오장환·이용악 등에게도 그는 극복해야 할 반면(反面)교사였다. 초기의 바다 시편에 잘 드러나는 감각적 성향은 후기의 산(山)시편에서 정신적인 깊이로 성숙한다. 시집 '백록담'의 고요와 무심(無心)의 경지를 통해 그는 동양 전통으로 회귀한다. 그것은 일제 말기를 대과없이 보내게 한 구심력이 되었으나 광복 이후 정치적 격동기에는 시에서 멀어지는 원심력이 되었다. 이 때의 정치적 행보 때문에 오랫동안 그는 금지의 시인으로 남아있었다. 해괴하고 애석한 일이다. 해금과 함께 그는 채동선 가곡 '고향' 및 박인수 애창 '향수'의 시인으로 우리에게 돌아왔다. 오늘 정지용의 시는 다소 퇴색해 보인다. 반세기 동안에 축적된 새 업적이 휘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옛것의 과거성과 역사성도 작품 가치의 일부를 이룬다. 정지용에게는 은은한 옛 내음이 있고 그것은 심미성의 한 부분이 된다. 이른바 세계화나 지구화의 회오리 앞에서 오늘 민족과 민족어도 시련에 직면해 있다. 인터넷의 폭력적 은어와 비속어는 우리말을 덧내고 훼손시키고 있다. 폭력적 언어는 물리적 폭력의 징조이자 예고이다. 사태를 극도로 단순화하는 하나의 원리가 푹력이라 할 때 선동적 푹력의 언어가 난무하고 있다. '언어미술이 존속하는 이상 그 민족은 열렬하리라'고 일제 암흑기에 적었던 정지용은 이제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언어에 대한 기율은 동시에 자기자신에 대한 기율이다. 대중적 영합에 일고한되게 저항하고 의연했던 정지용은 문학의 지평을 넘어서 사회적 전범으로까지 되어 있다. 시가 분수 모르는 산문으로 전락해 가고 기율이 사라져가는 시대에 정지용은 우리가 되풀어 뒤돌아 보아야 할 역사적 선례이다. 문학행위는 선인에 대한 빚갚기이다. 엄격성과 기율을 통해 민족어의 탄력성과 유연성 조성에 기여하는 것이 당대 문학인의 빚갚기일 것이다. 정지용은 여전히 오늘의 시인으로 남아있다. (조선일보 5월 7일자 신문에서 퍼옴)
도종환 시인(퍼온 글) 문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위해, 한 사이트를 소개합니다. '연호정과 추억만들기'라는 곳인데, 주소는 www.spoem.com입니다. 아래의 글도 그 곳에서 퍼온 글임을 밝혀 두고자 합니다. "詩는 내 눈물 닦아준 스승이자 애인"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34. 도종환 우리에게 문학은 무엇인가? 오늘 내 삶의 모습을 비추어 보는 거울인가. 지친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나팔소리인가. 다시 또 싸움터로 달려나가게 하는 깃발인가. “내 시 여기서 더 이상 필요없어, 나 또한 필요없게 되었다”며 목숨을 끊은 시인처럼 시가 곧 내 목숨인가, 나의 전부인가. 아니면 내 이름을 조금 더 돋보이게 하는 장식품에 불과한가. 먹고 살기 위한 노동일 뿐인가. 내 문학은 가난과 외로움에서 출발했다. 평화롭던 날들은 열 몇 살 전후해서 끝났다.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여 고향을 뜨면서 우리 가족은 해체되었다. 나는 외가에 맡겨졌고 앞못보는 할아버지는 고모네 집에 고단한 육신을 의탁해야 했으며 어머니 아버지는 강원도로 떠났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혼자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고, 방학 때가 되면 편지봉투에 쓰여 있는 주소를 들고 어머니 아버지를 찾아 다녔다. 부모가 있는 곳을 찾아 고등학교 진학을 했지만 거기서도 정착을 할 수 없었던 아버지가 또 경기도로 떠나면서 나 혼자 객지에 남겨지게 되었다. 자주 양식이 떨어졌고 낯선 도시의 겨울은 혹독하게 추웠다. 가난하기 때문에 포기했던 대학을 돈 제일 안 들어가는 대학, 돈 제일 안 드는 학과를 선택하여 시험이나 한 번 쳐 보라는 친척들의 권유로 사범대학에 입학하고 나서도 나는 겉돌 수밖에 없었다. 월세 이천 원짜리 단칸방에서 우리는 살았고 사 년 내내 구들장 위에 온기라곤 느낄 수 없는 냉방에서 잠을 자며 대학을 다녔다. 살아 있다는 것은 절망스러운 일이었다. 도시락 대신 소주병을 싸들고 일터로 나가는 아버지, 고모네 목욕탕에서 막일을 하는 어머니, 정신지체 장애아인 여동생, 음성 나환자인 삼촌, 둘러보아도 사방팔방 절망 아닌 것이 없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사치스럽게 무슨 대학을 다닌단 말인가. 남들과 잘 어울리기 싫었고 자폐증, 대인기피증 비슷한 걸 앓았다. 나는 내 깊은 절망 속으로만 침잠했다. 그리고 거기서 문학을 만났다. 문학을 이야기하고 철학을 거론하는 자리에서만 눈빛이 반짝였다. 사르트르와 까뮈와 키에르케고르와 고흐와 이중섭과 장용학과 손창섭과 고은과 최인훈을, 차이코프스키의 비창을 이야기할 때만 살아 있는 것 같았다. 실존주의의 치열한 여름과 퇴폐적 낭만주의의 황폐한 가을, 그리고 지독히도 가난한 겨울이 몇 번을 찾아왔다가 나를 쓰러뜨려 놓고 지나갔다. 질척한 페시미즘과 우울한 낭만주의 문학에서 내가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전혀 엉뚱한 데서 나를 찾아왔다. 80년 광주였다. 그때 나는 군복을 입고 있었다. 광주에서 여수 쪽으로 내려오는 무장한 시민군 차량들을 저지하기 위해 십칠 번 국도의 한 고갯마루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언덕 양쪽에 호를 팠다. 그렇게 대치한 채 뜬눈으로 새우던 그 오월의 밤에 나는 참으로 많은 고민을 했다. 그리고 M16 소총의 탄창을 몰래 빼서 맨 위의 실탄을 거꾸로 장전해 놓았다. 방아쇠를 당겨도 총알이 나가지 않게 해 놓으면서 나는 두려웠으나 이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람을 향해서 총을 쏠 수는 없었다. 그리고는 군복 윗주머니에 들어 있는 군용수첩에다 시를 썼다. 그때까지 썼던 100여 편 가까운 시들을 다 버리게 하는 시였다. “십칠 번 국도 위에서 역사를 우롱하던 바람은/ 한 찰나도 빼놓지 않고 피묻은/ 뻐꾹새 울음을 귓가에 실어오고/ 부대끼는 밤구름을 능선 위에 옮겨왔다./ 안전장치를 풀고 방아쇠를 당겨도/ 이제 나의 개인화기는 발화하지 않을 것이다/ 참으로 부끄럽지 않은 사람은 누구인가/ 역사여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는 역사여…” ‘사격명령’이란 시였다. 개인적인 절망에서 역사와 사회와 현실 쪽으로 유턴을 하게 한 시였다. 그러나 광주의 체험은 나 하나의 알량한 양심을 지킨 것으로 끝나지 않는 부끄러운 기억이었고, 살아 있는 동안은 언제나 갚아야 할 부채였다. 그렇게 역사를 끌어안고 눈물 흘리고, 시대의 고통과 함께 괴로워하면서 나의 문학은 현실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로부터 꼭 이십 년이 지난 어느날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박하사탕’ 중에 나오는 광주 장면을 보다가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 눈물은 극장을 나와 길을 걸어가면서도 멈추지 않았다. 제대 후 문단에 나올 무렵, 우리에게는 발표지면이 없었다. 창비와 문지는 폐간되고 신문과 방송도 마구잡이로 통폐합될 때였다. 우리가 발표할 지면을 스스로 만들자, 그렇게 생각하면서 배창환 김용락 김창규 시인등과 함께 ‘분단시대’라는 동인지를 만들었다. ‘오월시’ ‘삶의 문학’ ‘시와 경제’ ‘자유시’ 등의 동인지와 ‘실천문학’ 같은 무크지가 문단의 돌파구를 만들어 나가던 무렵이었다. 창비에서 첫 시집 ‘고두미마을에서’를 낸 것도 그 무렵이었다. 결혼 이년 여 만에 아내와 사별한 것도 비슷한 팔십년대 중반이었다. 절망은 내가 저를 떠났다고 저도 나를 떠난 건 아니었다. 많이 힘들었고 많이 아팠다. 그 어려운 시기에 실의와 좌절의 늪에서 나를 건져준 것은 시였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거냐고 빈 하늘을 향해 소리칠 때 시가 대답을 해 주었다. 내 외로움, 내 그리움, 내 슬픔도 시가 어루만져 주었다. 암병동 날바닥에 앉아 희망이 있는 싸움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암 환자들은 가장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끝까지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죽음과 맞서 싸우는데, 살아 있는 동안 반드시 이길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하는 싸움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암병동’이란 시를 썼다. “희망이 있는 싸움은 행복하여라.” 이 시는 내 삶의 나머지 날들을 사는 동안 내 좌우명이 되었다. 전교조를 만드는 일에 참여했다가 어미 없는 어린 자식들을 두고 감옥에 들어갔을 때, 감옥에서 아들이 보낸 편지를 받고 감옥의 벽에 십자가를 그어놓고 울면서 기도할 때 시가 있어서 다시 일어날 수 있었다. 해직교사 생활을 시작하면서 막막해 할 때도 시가 길이 되어 주었다.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모두들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담쟁이’란 시처럼 내게 길이 되어 준 시가 많았다. 십 년 해직교사 생활을 마치고 다시 학교로 돌아가게 되었을 때 나는 ‘부드러운 직선’이라는 시어와 만났다. 원칙을 잊어버리지 않으면서도 유연한 삶의 자세, 그것을 우리나라 고건축의 추녀는 잘 보여주고 있었다. 부채살처럼 퍼지는 추녀의 아름다움과 곡선의 미학은 휘어진 나무가 아니라 곧게 다듬은 나무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거리에서 머리띠를 묶으며, 싸움의 한복판에서 짐승처럼 끌려다니기도 하면서, 함성과 구호를 외치면서 살아오는 동안 거칠어질 수 있는 심성을 다시 온유하게 감싸준 것은 시였다. 시는 내 가장 가까운 길벗이었고 스승이었으며 애인이었다. 나를 이끌어주고 위로해주고 눈물을 닦아준 것도 시였다. 무엇보다 내 삶의 고비고비마다 길이 되어준 것이 시였다. 문학이었다. 길을 찾게 해 주었고 길을 놓치지 않고 갈 수 있게 불 밝혀 주었다. 이 땅에 가진 것 없이 외롭고 가난하게 태어나 문학을 할 수 있었던 것을 나는 감사하게 생각한다. 나를 사람으로 만들어주고 절망과 시련에서 빠져 나올 수 있게 해 준 것이 문학이라서 문학을 하며 살게 된 것을 정말 고맙게 생각한다. 아직도 우리가 던진 교육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책임져야 할 몫이 남아 있어서 복직한 시골학교에 묻혀서 산다. 모순의 한가운데서 나를 다시 검증하고 거기서 다시 출발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때가 언제일는지 모르지만 “할 수만 있다면 한적한 강마을로 돌아가/ 외로워서 여유롭고 평화로워서 쓸쓸한 집 한 채 짓고/ 맑고 때묻지 않은 청년으로 돌아가고 싶다.” 거기서 정말 마음껏 읽고 공부하고 글을 쓰면서 살고 싶다. 연보 ▦1954년 충북 청주 출생 ▦1977년 충북대 국어교육과 졸업 ▦1984년 동인지 ‘분단시대’에 시 ‘고두미 마을에서’ 등 5편 발표 등단 ▦1977년 충북 옥천 청산고교 교사 1989년 전교조 활동으로 해직 1998년 복직 현재 충북 진천군 덕산중학교 교사 ▦시집 ‘고두미 마을에서’ ‘접시꽃 당신’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지금 비록 너희 곁을 떠나지만’ ‘당신은 누구십니까’ ‘사람의 마을에 꽃이 진다’ ‘부드러운 직선’ ‘슬픔의 뿌리’ 산문집 ‘지금은 묻어둔 그리움’ ‘그때 그 도마뱀은 무슨 표정을 지었을까’ ‘마지막 한 번을 더 용서하는 마음’ 동화 ‘바다유리’ 등 ▦신동엽창작기금(1990) 민족예술상(1997) 등 수상 <사진설명> 충북 진천군 덕산면의 덕산중학교는 소나무숲의 품에 안긴 곳이다. 방과 후 만난 도종환 시인은 가버린 아이들의 온기를 느끼려는 듯 오랫동안 학교 뒤뜰에 앉아 있었다. /진천=조영호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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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백석 시인 白石의 미공개 산문 ‘해빈수첩’ 찾았다 1934년 日유학 당시 '伊豆의 해변'이 배경 '개' '가마구' '어린 아이들' 등 세 편의 짧은 글 1937년 함흥 영생고보 교사 시절의 백석.그 는 1930년대 문단의 최고 미남중 한 사람으로 꼽혔다. 한국 현대 시사(詩史)의 또한사람 전설적 시인 백석(白石·1912~1996)의 미공개 산문이 발굴됐다. ‘남에는 정지용, 북에는 백석’으로 불릴 정도로 1930년대의 대표적인 시인으로 평가 받던 그가 1934년 일본 유학 당시 쓴 산문 ‘해빈수첩’(海濱手帖)’이다. ‘개’ ‘가마구(까마귀)’ ‘어린 아이들’ 등 세 편의 짧은 글로 이루어진 이 산문은 모두 200자 원고지 12장 정도의 분량. 1988년 정부가 월북 문인 해금 조치를 발표한 이후 실천문학사의 ‘백석 전집’(1997·김재용 편)과 창작과비평사의 ‘백석 시전집’(1999·이동순 편)이 나오며 전면적인 재조명을 받았지만, 이 산문들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이번에 발굴된 ‘해빈수첩’이 수록된 지면은 조선일보 장학회의 전신인 ‘이심회(以心會)’의 회원들이 1934년에 만든 회보 창간호. 이 자료를 발견한 시인 유경환(劉庚煥·66)씨는 “1970년대 중반 조선일보 논설위원으로 일하던 당시 사사(社史)를 집필하다가 입수했던 자료”라면서 “당시만 해도 백석이라는 이름이 생소하던 시절이라 주목하지 못했는데, 최근 집에서 자료정리를 다시 하다가 그의 이름을 발견했다”고 했다. 평북 정주 출신인 백석은 193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소설 ‘그 모(母)와 아들’이 당선되어 등단했으며, 그 해에 조선일보 장학생으로 선발됐다. 그는 이 장학금으로 그 해 동경의 아오야마(靑山)학원 영어사범과에 유학했는데, 이 글은 1934년 귀국 직전에 쓴 것으로 보인다. 1934년 3월 22일 발행된 이심회 회보에는 부록으로 ‘회원약력’이 실려있는데, 백석은 “1934년 3월 동경청산학원 고등학부 영어사범과졸업예정”으로 적혀 있다. 글 맨 말미에 ‘남이두시기해빈’(南伊豆枾崎海濱)라고 적혀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산문이 씌어진 곳은 일본 동경 근처 이즈반도 남단에 있는 가키사키(枾崎) 해안이었음을 밝히고 있다. 백석 시 전집 ‘모닥불’(이동순 엮음)에는 ‘가키사키의 바다’라는 시가 수록돼 있어 이 산문과 같은 시기 이즈반도 여행 체험을 반영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해빈수첩’은 백석 특유의 향토적이고 서정적이면서도 모더니즘 풍의 세련된 언어감각을 ‘개’ ‘까마귀’ ‘어린 아이들’이란 소재에 담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 “~로 모이다”를 “~로 ?이다”로 적는 등 1930년대 당시의 표기법인데다 ‘왕구새’(왕골 자리) 등 시인의 고향인 평안도 방언이 자주 사용되어 현대인들에게는 낯선 부분도 적지 않다 . 제목으로 쓰인 ‘해빈(海濱)’은 해변(海邊)의 동의어로 일본에서 주로 쓰이는 용어다. 1936년 모더니즘 계열의 첫 시집 ‘사슴’을 펴내며 단숨에 한국문학사로 떠오른 문단의 별이었지만, 그의 산문은 남아있는 작품이 거의 없다. 창비와 실천문학사에서 나온 전집에서도 수록된 산문은 각각 7편에 불과하다. ‘해빈수첩’을 검토한 연세대 유종호(柳鍾浩·67) 석좌교수는 “워낙 과작(寡作)이었던 작가이기 때문에 이번 발굴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면서 “이번 작품을 통해 시인 백석의 삶과 문학에 대한 이해를 한층 더 넓힐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魚秀雄기자 jan10@chosun.com ) ---------------------------------------------------------------- ◆ 白石 누구인가 '南엔 정지용, 北엔 백석…' 문단서 평가 최근 10여년 그에 관한 논문만 100여편 ---------------------------------------------------------------- 1912년 평북 정주 출생. 본명은 백기행(白夔行). 같은 정주 출신 시인 김소월과 오산고보 선후배 사이. 1936년 33편의 시가 실린 모더니즘 계열의 서정시집 ‘사슴’을 출간하면서, 문단의 혜성으로 떠오름. 한정판 100부 출간인 탓에 당시 문학 지망생들에게 이 시집을 필사하는 것은 대유행이었고, 윤동주도 이 필사본 시집을 간직했었다. 1934년 조선일보에 입사해 잡지 ‘녀성’ ‘조광’의 편집을 맡았다. 방랑으로 일관하며 시를 쓰다 일제말 창씨개명 강요와 강제징용을 피해 만주에 갔다가 해방을 맞았다. 광복과 함께 고향인 정주로 돌아왔으나 김일성 찬양과 체제 선전에 시가 동원되는 것에 반대, 순수서정적인 시를 고집하다 59년 함경북도 삼수군 국영협동조합에 내려가 양치기로 일했다. 62년 북한 문화계 전반에 내려지 복고주의에 대한 비판과 연관돼 일체의 창작활동 중단했다. 1980년대 말 월북 문인 해금조치 이후 그에 관한 학위-연구논문이 100여편 쏟아져나왔으며, 문학사상사가 6권까지 발간한 ‘나를 매혹시킨 한편의 시’에서 우리나라 현역 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인으로 평가됐다. ------------------------------------------------------------ ◆ '개' /해빈수첩 중에서 ------------------------------------------------------------ 저녁물이 끝난 개들이 하나둘 기슭으로 ?입니다. 달 아레서는 개들도 뼉다귀와 새끼똥아리를 물고깍지아니합니다. 행길에서 것든 걸음걸이를 잊고 마치 밋물의 내음새를 맡는듯이 제발자국소리를 들으랴는듯이 고개를 쑥-빼고 머리를 처들이고 천천히 모래장변을 거닙니다. 그것은 멋이라없이① 칠월장변의 츨게를 생각케합니다. 해변의 개들이 이렇게 고요한 시인이 되기는 하늘에 쪼구랑별 ②들이 자리를박구고 먼 바다에 배ㅅ불이 물길 옮는 동안입니다. 산탁 방성의개들은 또 무엇에놀래어 짖어내어도 이 기슭에서잇는 개들은 세상의일을 동딸이 짖으려하지아니합니다. 마치 고된업고를 떠나지못하는 족속을 어리석다는듯이 그리고 그들은 그소리에서 무엇을 찾으랴는듯이 무엇을생각하는듯이 웃둑서서 고개를들고 귀를 기울입니다. 그들은 해변의 숭엄한 철인들입니다. 밤이들면 물속의고기들이 숨구막질③을 하는때이니 이때이면 이기슭의개들도 든덩의 벌인배우에서 숨구막질을 시작합니다. 그들은 그들의일이 끝나도, 언제까지나 바다가에 우둑하니서서 즈츰걸이며 기슭을떠나려하지 아니합니다. 저달 이제집으로 돌아간뒤에야 조금의들불에게 무슨이야기나잇는듯이. <주> ① 멋이라없이=무에라없이. 딱 집어서 얘기할 수 없으나 어쩐지 ② 쪼구랑별=조그만 별 ③ 숨구막질=숨박꼭질 ※도움말= 이기문 서울대 명예교수와 연세대 유종호 석좌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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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우수작품들) - 퍼온 글
지난 계절의 우수작품 후보작품
{현대시} / 2002년 10월호
1한밤의 모터사이클
강정
몸 안의 뼈들이 문득, 粉塵처럼 느껴지는 순간이다
가루로 흩어진 내 몸이 저 만치 앞질러 미래의 풍경들을 장악한다
(보아라, 시간이 한꺼번에 터져 늘씬하게 드러눕지 않는가)
이 숨막히는 질주는 결국 자기자신의 출생지점으로 되돌아오는 별의 행로와 다를 바 없다
내 몸에서 가장 먼 풍경들을 통하지 않고서는
나는 내 심장박동을 느낄 수 없다
아스라한 소음으로 쓰러지는 가로수들이 귀 먹먹한 어둠 속에서 손을 빼낸다
낡은 시간들을 흔들며 춤추다 사라지는 저것들은 어느덧 영겁으로 변해
쇳덩이에 기름을 바르며 방사하는 내 몸의 비린 녹내를 마신다
내 몸을 실어온 길들이 네모난 창공으로 사방에서 펄럭인다
누워있던 풍경들에서 숨은 바람을 꺼내 흔드는 이 무모한 질주는 도착지가 없어 아름답지 않은가
세계가 가끔, 맹목의 날선 눈물 앞에서나 허물어지는 것처럼
눈물은 사라진 기억들을 불러모으는 나방떼처럼
어둠을 닮은 불꽃으로 터져 나온다, 그건 영락없이 솟구치는 피를 닮았다
바람에 꺾인 모가지로 후진하는 내 몸의 여린 마디들이여
한낱 시간의 가루에 지나지 않는 내 몸이 허공에서 부서진 불꽃의 잔해로 우수수 지워지고 있다
얼마나 가벼운 이름인가, 아프릴리아 1500*
구비도 절경도 움푹 꺼진 절벽도 없는 평면을 절해의 고도로 바꾸는
늘씬한 음탕함이여,
속도는 속도를 반성하지 않는다,* 고? 아니다
속도는 속도 자체를 배반하며 정직하게 얼어붙는다
이 차가운 열망은 이미 반성 이전의 자각 아닌가
속도가 세계의 지평을 바꾸는 저 검은 풍광들 속에서 문득, 풍경 바깥으로 사라졌던 내가 걸어나온다
땅 밑 어둠마저 불덩이로 달궈온 그 몸은 속도계 눈금을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파르라니 떨게 만든다
아프릴리아여, 그대의 현묘한 연료주입구에 그 몸을 담그게 하라
그대가 쓰러뜨린 풍경 속에서 살아 돌아온 나는 이미 시간 밖의 사물, 외계에서 귀환한 나의 후손이다
그대의 몸 안에 외계의 분비물이 넘쳐나게 하라
내 벌거벗은 귀두를 그대의 질주 속에 고요히 얼어붙게 하라
* 오토바이 상표
* 김수영의 시 ?절망?에서
2나는 푸른 트럭을 탔다
박찬일
사람들아 미안하다 나는 푸른 트럭을 탔다 푸른 트럭에서 나는 그대들 전부를 잊기로 한다 나도 잊기로 한다
푸른 트럭에서, 나는,
오이 당근을 파느라 감자 고구마를 파느라 양파를 파느라 시금치 마늘을 파느라
푸른 트럭에서 나는 수박 참외를 파느라 토마토 사과 귤을 파느라 배를 파느라 계란을 파느라 정신이 없다.
이면수 꽁치를 파느라 조기를 파느라 고등어를 파느라 푸른 트럭에서
푸른 트럭을 파느라 푸른 트럭만 남기고 파느라
싱싱한 야채 있습니다 싱싱한 과일 있습니다 싱싱한 계란 있습니다 싱싱한 생선 있습니다 녹음기에 녹음하느라
녹음기를 켜놓느라 싱싱한 야채 있습니다 싱싱한 과일 있습니다 싱싱한 계란 있습니다 싱싱한 생선 있습니다 정신이 없다.
미안하다 사람들아 나는 정신이 없다
푸른 트럭에서 나는 그대들 전부 잊었다 나도 잊었다 푸른 트럭으로 사라지려고 한다 푸른 트럭을 몰고 사라지려고 한다 미안하다 사람들아 나는 푸른 트럭에 있다
정신이 없다 나는 포도주를 마신다 푸른 트럭에서 포도주를 마신다 야채를 팔아 과일을 팔아 계란을 팔아 생선을 팔아 포도주를 마신다 포도주만 마신다 정신이 없다
사람들아 미안하다 나는 푸른 트럭을 탔다 푸른 트럭에서 팔러 다닌다 푸른 트럭을 팔러 다닌다 푸른 트럭만 빼고 팔러 다닌다 푸른 트럭에서 마신다 붉은 포도주를 마신다 그와 함께 붉은 포도주를 마신다 미안하다 사람들아
나는 푸른 트럭을 탔다
- 제3회 <박인환 문학상> 수상작
3슬픈 아일랜드 1
강성철
어디서 發源하는가, 저 강물은
東高西低의 꿈길 따라
서쪽으로, 서쪽으로 숨가쁘게 달려와
이 곳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西域으로 가는 길은 멀기만 한데
어느새, 강가에 고이는 핏빛 노을
나는 모래 섬 발치에서
노을과, 다가오는 어둠 사이로
간신히 지친 몸을 밀어 넣는다
하나, 둘씩 서둘러 빠져나간
터-어엉 빈 공간엔,
음모와 배신과 욕망의 시체들이 뒤엉키고
나는 오래된 안경을 벗어든 채,
녹슨 기억들을 하나씩 쓸어모아
부질없이 모래성을 쌓아본다
그 옛날, 기억의 아스라한 경계선 따라
세월의 긴 강을 건너온 카라반 대상이
고단한 꿈을 풀고 가는
이 곳, 모래밭에
바벨탑처럼 63빌딩이 솟아오르고
사라져간 누란 왕국 너머로는
방송국들과 국회의사당,
그리고 금융기관들이
점령군처럼 접수하였다.
아, 언제부터인가?
카라반대상들이 스쳐간 자리엔
전갈과 독사들이 우글거리고.
하여, 이 곳에서 나의 꿈은
이미 오래 전에 상실되었다.
* "슬픈 아일랜드"는 윤정모씨의 소설 제목
4냉장고
조말선
냉장고를 열었어요 냄새가 지독했어요 입을 아, 벌린 냉장고 속에 오래된 가족들이 비좁았어요 먹어도 먹어도 줄어들지 않는 가족들이에요 구석에는 누군가의 썩어가는 팔목이 있었어요 누군가의 흰 허벅지도 봉지 속에서 짓무르고 있었어요 얼른 쓰레기통에 비웠어요 냉장고 속에 있는 것들은 버려지기 위해 썩어요 입만 커다란 아버지를 나에게 비웠어요 꼭 맞아요 배만 뚱뚱한 엄마를 나에게 비웠어요 꼭 맞아요 머리만 커다란 나를 나에게 비웠어요 꼭 맞아요 냉장고 속에 든 가족사는 저장용이에요 시간이 지나면 쓸데없이 자리만 차지하는 임시보관용이에요 냉장고를 열었어요 냄새가 지독했어요 아버지가 된 나를 나에게 비웠어요 꼭 맞아요 엄마가 된 나를 나에게 비웠어요 꼭 맞아요 내가 된 나를 나에게 비웠어요 꼭 맞아요
- {애지} /2002년 가을호
5나비夢
나비야
아니, 나뷔야, 흰 나뷔야
나는 지금 널 이렇게 불러야 한다
나뷔야, 너는 어느 뜨거운 입술이 열릴 때 왔느냐
지천에 피어난 꽃잎들 저마다 뿌리를 단장하고 나온 얼굴들,
가장 달뜬 피가 도는 입술들, 풀잎들, 겹겹의 땅을 뚫고 올라온 가장 단단한
입술들, 나의 어머니와 죽은 아버지와 아버지가 부르는 아버지와 아버지와
아버지가 부르는 아버지의 꿈들……,
말라간 입술들, 닫히지 않는 입술들,
그리고 왔느냐, 내 사랑, 젖어 오는 입술.
한 곳에 오래 앉지 마라
한 곳에 너무 오래 입맞추지 마라
흰 빛들, 지천에 팔랑거리게 하라
- {작가마당} / 2002년 가을호
6마리오 루폴로
먼 성지에서 돌아온
고단한 순례자인 듯
나, 상처 난
갈색 구두 한 켤레와
노란 빗살무늬 넥타이 한 장과
잿빛 양복 한 벌을 향하여
오늘도 머리 숙여 경배하리니
아, 발끝마다 기억된
수많은 神들의 집과
悅樂을 꿈꾸었던
그 무수한 길들, 그러나
정작 이제부터 내가 해야할 일은
혼자 남은 날을 위하여
시간의 붉은 吸盤에다
내 영혼을 구겨 넣는 것, 이를테면
저 아드리아海의 빛나는 햇살 속으로
내 詩를 죄다 쑤셔 박는 것이다
* 마리오 루폴로 : 영화 <일 포스티노>에 등장하는 주인공 우편 집배원
- {시와 정신} / 2002년 가을 창간호
7오늘 나는 사랑을 먹으러 간다
정철훈
사랑,
너는 썩을수록
사랑이다
빗소리들, 빗방울들
저 쏟아지는 사랑들
날 간지럽히는 세상
가려워 득득 긁는 세월
사랑이 불어온다
바람을 견딜 수 없는
낙엽들, 나뭇가지들
썩어가는 것들
사랑,
너는 사랑일수록
썩는다
젖지 않고 젖어드는
이 메마른 雨期
나무들의 징그런 교미
꽃 피우지 못하는 식물들의 절규
사랑,
너는 절규할수록
사랑이다
오늘 나는 너를 먹으러 간다
- {시와 정신} /2002년 가을 창간호
8풍선 노래
문정희
나를 가지고 놀아 줘
허공에 붕붕 띄워 줘
좀 더 좀 더 입으로 불어 줘
뜨거운 바람 넣어 줘
부드럽고 탱탱한 살결
주물러 터뜨려 줘
아니, 살살 만져 줘
그만 터져 버릴 것만 같아
내 전신은 미끄러운 빙판
생 전체가 위험에 노출되어 있어
날카로운 시간의 활촉이 나를 노리고 있어
열쇠는 필요 없어
바람의 순간을 즐겨 줘
아니, 신나게 죽여 줘
- {시와 정신} / 2002년 가을 창간호
9저 목소리,
분명 무슨 말인가 하고 있었을 텐데
한 마디도 알아듣지 못했다
바깥으로 자신을 쏟아 붓는 비,
바깥으로 자신을 쏟아 붓는 꽃,
술병을 휘두르며 고래고래 자신을 쏟아 붓는 사내,
지루한 고함 사이로 비는 쏟아지고
눅눅한 빗소리 사이로 꽃은 쏟아지고
활짝 핀 꽃송이 사이로 사내는 쏟아지고
나는 머뭇대며 젖어 있었다
설마, 그대도 나처럼 할 말을 하지 못하고
글썽이는 눈물을 하늘에다 닦았을까
저 빗방울, 저 꽃송이, 저 울부짖는 사내,
바깥으로 자신을 쏟아내며
무슨 말인가 끊임없이 했을 텐데
저 목소리들은 모두 어디로 열려있는 것일까
내가 알아듣지도 못하는 속으로
바깥으로 자신을 쏟아 붓는 저 목소리들,
- {시와 사상} /2002년 가을
10나는 달을 만들었다
- 개기일식
유수연
나는 내 몸의 기억들을 저며서 달을 만들었다 그를 담아두었던 뇌세포
하나하나, 슬픔 지나가던 눈동자 낱낱을,
내가 완성되었을 때 세상은 잠시 어두워지겠지만 그 어둠의 깊이를 그
는 손을 담가 휘저어도 가늠하기 어렵겠지만 그럴 때 그는 내 지문에 새
겨진 몸을 아주 잃어버릴 테지만
- {시와 사상} /2002년 가을
11파도 여인숙
하재연
눈을 감아야 환한 밀물이 밀려들어오지 끼룩끼룩 너 우는 거니 따뜻한 모래성 네 가슴이 스르르 흘러내릴 것 같아 아무리 세게 쥐어도 움켜지지 않는 걸 안을 수 없는 이 보드라운 평화 속눈썹으로 떨어져 내리는 꽃무늬 분홍 꽃무늬들 네 머리카락에 묻어 오는 물풀 냄새가 날 숨막히게 해 아주 먼 곳에서 도착했다고 말하지는 마 끼룩끼룩 울지도 말고 불을 끌 테니 제발 눈을 감아 아무도 문을 두드리지는 않을 거야 다만 꿈속으로 잠겨드는 환한 밀물
우리를 가두는 이 어둠 창 밖의 불빛에 눈 돌리지 마 제 몸을 방류시키는 희미한 깜박거림 고요한 손짓 끼룩끼룩 네 꿈속의 날갯짓을 잊는 거야 짜고 축축한 모래알들이 묻어나 견딜 수가 없어 나직하게 노래를 불러 줄께 먼 곳의 기척에 혼자 귀를 기울이지는 마 너를 실어온 것은 세상의 물결이 아닌 거지 끼룩끼룩 뒤척이지 마 네게서 자꾸 일렁이는 물결 물결들 몸을 실으면 푸르게 스며드는 이 한없는 어둠 분분히 날려 오는 분홍 꽃잎들
- {애지} /2002년 가을호
12적천사 가는 길
서규정
수경아 산천은 지금 한창 푸르름이다
淸道에 내려 소싸움 터를 혼자 어슬렁거리다
묻고 물어 적천사 찾아가는 길
수도 없이 기차를 잡아먹는
뱀굴 같은 터널을 옆구리에 끼고,
사천왕의 입술보다 붉은 표지판을 따라 가면
직각이었다
뱀굴에서 설익어 나온 기차가 악을 쓰며 벌겋게 벗겨져 가는
건널목에 서서 우리 삶이 빛나는 건
누구에겐가 제대로 먹혔을 때가 아닐까 생각했다
직각의 모퉁이에 잠시 기댄 어깨야
언젠가는 돌고 돌아 둥그런 마을도 만들 테지만
산다는 것의 배려란 가령 이런 것이리
내 몸은 불볕에 타도 옆 사람 타지 않게
양산을 받쳐주듯
내 몸을 그림자에게 주고
홀홀히 떠나간 모습을 이 땅에 누가 다시 복사하는가
뜨겁다, 저 이발소 그늘 밑에 모여 노는 노인들의
쭈글쭈글한 껍질이 몸에서 제일로 멀듯, 헐렁한 껍질은 아득타
질기고 질긴 가죽에 대한 예의 같은
예리한 면도솜씨와 땀과 피와 눈물
맨 나중엔 다 방울의 것인, 방울 속을 들켜서 살아간다
우린 모두 들켜야 산다
다음 세상을 기약하는 모퉁이의 지혜와
땡볕을 지탱해 주던 그림자의 서슬에 기대어
어느 각도에서건
마음 편편한 자리 한 곳을 버섯처럼 돌고 돌 수 있다면
물 그친 적천사 계곡을 따라
푸른 산빛을 조금만 더 들추면
生의 발원을 다시 잡을 것 같다, 이슬
수경아 우리는 서로를 흐르고 있다
- {현대시} /2002년 9월호
13여자들의 품
김행숙
영원히 여자들 품에 안긴 여자애기를 원했어요. 나는 그녀들의 애기를 귀에 꽂고 다녔어요. 내 입에서 그녀들이 흘러나와
깜짝, 놀라기도 했어요. 그녀의 테이프가 늘어져서 우린 조금씩 어지러워지거나 천천히 섞였지만
이미 우리는 다 외워 버렸는걸요. 어쩌면 더 많은 얘기를 할 수 있을 지도 모르죠. 녹색의 시냇물이 삼부아파트 101棟 102棟 103棟…… 새를 흐르고
우린 영원히 발을 담그고,
- {현대시학} /2002년 9월호
14언니라는 말의 배꼽
이성복
누이들은 서로서로 이용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들은 피와 피가 서로 엉켜 있으니까요.
- 라이너 마리아 릴케 : 「누이들」
아내가 자기 언니 보고 언니! 그럴 때는, 반쪽 짝 갈라놓은 水晶의 내부 같은 것이 보인다. 촘촘한 보랏빛 각진 기둥들이 지키는 原石의 내부, 아내에게도 언니에게도 없는, 언니라는 말의 내부, 한번도 따라 들어가 본 적 없지만, 한번도 따라 들어가지 못한 나만이 아는 내부, 자기 언니를 '언니!'하고 부르는 아내를 나는 생전 알지 못 할 것이다. 그러나 자기 동생의 아내한테 '언니!' 부를 때는,마른 감꽃처럼 닫힌 어떤 皮質의 문 앞에 나는 선다. 그 또한 내가 들어갈 수 없는 언니라는 말의 배꼽.
- {현대시학} /2002년 9월호.
15業
김언
내가 왜 사업을 벌였는지 모르겠다) 내가 왜 한 사람의 재능을 책임지고 한 사람의 미래를 추켜세웠는지 모르겠다) 여자를 꼬드기듯 한 사람을 뽑고 한 사람의 목을 꺾는 것도 내가 벌인 사업이다) 시인 앞에서 주제넘는 사랑을 하는 것도 내 사업이고 미련없이 손을 떼고 미련없이 이불을 덮어쓰는 것도 내 사업이다 내가 벌인 사업이다) 세상에 조용한 사업이란 없다 나는 내 사업을 어수선한 거리 한가운데서 포기해버렸다)고 말하는 것도 내게는 사업이다 내가 벌인 내 사업이다 시대가 엉터리라도 그걸 일깨우는 내 나이가 엉터리라도 먼지를 믿는 것이 먼지의 고마움을 아는 것*이 내 사업이다) 끝도 없이 늙어가는 계단 앞에서 까닭없이 웃는 것도 내 사업이다) 시대가 시대를 배신하듯 나는 내 모멸감마저도 사업으로 키운다 이게 사랑이라고 그래도 이게 사랑이라고 눈물을 꾹꾹 눌러 담는 것도 담아서 키워야 하는 것도 내게는 사업이다 내가 사랑하는 내 사업이다) 끝도 없이 사업은 커져가는데 내가 내 글을 여기서 마쳐야 하는 것도 내게는 사업이다 내가 벌이고도 내가 끝내고 싶은 내 사업이다 내가 왜 사업을 벌였는지 모르겠다)
* 이건 소설가 곰치씨가 벌이는 사업이다.
- {리토피아} /2002년 가을호
16원룸
여정
이 놈의 방, 변기와 식탁이 함께 놓여 있는, 밥그릇에 똥덩이가 가득 담겨 있는, 이 구린내, 세면대에서 설거지를 하고, 개수대에서 낯을 씻고, 두 개의 줄이 끊긴 기타가 두 개의 줄이 끊긴 노래를 부르고, 구두엔 뿌연 먼지들만 쌓여가는, 이 망할 놈의 방, 먼지 쌓인 구두가 발목을 자르고, 두 개의 줄이 끊긴 노래가 두 개의 갈비뼈를 부러뜨리고, 얇게 썬 면상들을 개수대에서 건져내고, 씻은 그릇들을 면상에 잘 포개어놓는, 이 구린내, 변기에 걸터앉아 죽을 쑤는, 나 하나로도 꽉 차 통풍이 잘 되지 않는, 이 죽일 놈의 방
- {리토피아} /2002년 가을호
17지금은 영혼을 팔기에 좋은 계절
이원
지금은 모든 것이 초록인 계절. 모든 것이 초록으로 흔들리는 계절. 우리도 흔들리는 두 팔과 두 다리 몸통과 머리 그리고 두 손과 두 발이 있어요. 자르고 갈고 붙이고 맞추고 쇠나 플라스틱을 끼울 수도 있어요. 공구세트는 당일 배송되요.지금은 초록의 계절.모든 것이 초록 아니면 안되는 계절. 살은 다 발라내고 싶은 계절. 팔 다리 몸통 머리 그런 분할은 너무 도식적이니 단면으로 지하 1층에서부터 옥상까지처럼 몸을 통째로 쓱 자르는 거죠. 3천여 개의 칼이 완비된 칼마트에서 종합조리용 장미목식도 세트를 팔고 있어요. 왼손잡이용 칼 사용법도 동영상으로 배울 수 있어요. 지금은 진초록의 계절. 나무들의 잎잎이 공포로 꽉 찬 지금은 영혼을 팔기에 좋은 계절. 쓰지 않는 영혼을 팔아 고원이나 북극으로 떠나기 좋은 계절. 바람이 좋아서요 햇빛이 좋아서요.
- {리토피아} /2002년 가을호
18흰 소가 길게 누워
김선우
제주 우도에 들어간 밤 흰소를 낳는 꿈을 꾸었다 풀밭 위에 치마를 펴고 벌린 내 가랑이 사이로 어린 소가 뭉클, 쏟아졌다 안간힘으로 일어서려는 어린 것이 자꾸 쓰러졌다 달빛이 밀반죽처럼 어린 소의 등을 타고 내렸고 몸 속에 붉은 빛을 감춘 어린 흰소가 댓잎처럼 울었다 서서 견뎌야 할 시간이 너무도 기니 누워라 흰 빛 속의 붉은 어둠아 달빛이 눈도 못 뜨고 여린 몸으로 뒤채였다 어미 소는 물 위를 걸으며 쑥돌같은 파도를 뜯어 삼키고 있었다 어미 소가 파도를 뜯어 삼킨 자리로 돛배가 몇 척 지나갔다 사월 제주 밤바다엔 혼령 실은 돛배들 반디처럼 고와서 울금빛 유채꽃이 뿌리부터 아팠다 간신히 네 발로 선 어린 흰소가 어미 소의 가랑이에 얼굴을 들이민다 누워라 서서 견뎌야 할 시간이 너무 기니, 흰 소가 길게 누워 내 옆구리를 핥았다 오래 전 나를 낳은 흰 소의 되새김질 속에서 따뜻하고 비린 물이 왈칵 토해졌다 어미 소의 흰 배를 베고 눕는다 내 아랫배를 쓰다듬으며 덜 비린 바닷물이 더 비린 바닷물에게로 흘러간다
- {애지} /2002년 가을호
19새 한 마리
이수명
공중에서 새 한 마리
떨어지고 있어요
내가 쏘았어요
내가 물감을 쏟았어요
웃으며 달려갔지만
아무도 없어요
새가 떨어진 자리에
새는 없어요
나 혼자 물감을 쏟았어요
공중에서 새 한 마리
떨어지고 있어요
내가 쏘았어요
내가 물감을 쏟았어요
웃으며 달려갔지만
새는 없어요
새 혼자 물감을 쏟았어요
20풀
풀을 핥았다
풀을 잠재우려고
풀 속 깊이 누우려고
풀을 핥았다
혀를 베며
혀 속 깊이 자라나는
뿌리 없는 혀들을 베며
풀을 핥았다
풀 아닌 것에
풀보다 가까운 것에
풀 속에 또아리 튼 뱀에 이르기 위해
풀을 핥았다
풀에서 멀어져가는
풀에서 깨어나는
새로운 풀을 쫓아
풀을 핥았다.
- {문학과의식} /2002년 가을호
21목수를 엿듣다
정철훈
노동판이니까
나는 육십 넘은 노인을
형이라 부른다
그 방법밖에 없다
우리는 쬐그만 존재니까
처음에는 살아보자던 가락이 있었지만
노동판에 우릴 내놓은 우리는
그 가락을 모른다
형과, 육십칠세 먹은 형과
사십오세 내가 그래서 형제가 된다
형, 일당이 얼마요?
다 내 잘못이다 처음에
내가 잘했어야 하는 건데
형, 우리가 일당과 동격이었구려
어차피 통짜로 짜는 거야, 통을 짜서
윈도우를 짜서 통으로 짜악,
벽에 붙이는 거야
우리는 결국 노동판의 효과를 노린다
그려, 맞는 야그여
천장에서 떨어져나온
형과 나의 존재
노동판이니까
비가 와서 노동은 스멀스멀
형과 나를 웃긴다
그날 비가 와서 노동의 반응을
우리는 잘 모르지만
우리는 배꼽을 잡고 그날을 웃는다
노동판이니까
우리는 쬐그만 존재니까
- {창작과비평} 2002년 가을호.
22저수지에 빠진 의자
유종인
낡고 다리가 부러진 나무의자가
저수지 푸른 물속에 빠져 있었다
평생 누군가의 뒷모습만 보아온 날들을
살얼음 끼는 물속에 헹궈버리고 싶었다
다리를 부러뜨려서
온몸을 물속에 던졌던 것이다
물속에라도 누워 뒷모습을 챙기고 싶었다
의자가 물속에 든 날부터
물들도 제 가만한 흐름으로
등을 기대며 앉기 시작했다
물은 누워서 흐른 게 아니라
제 깊이만큼의 침묵으로 출렁이며
서서 흐르고 있었다
허리 아픈 물줄기가 등받이에 기대자
물수제비를 뜨던 하늘이
슬몃 건너편 산을 데려와 앉히기 시작했다
제 울음에 기댈 수밖에 없는
다리가 부러진 의자에
둥지인 양 물고기들이 서서히 모여들었다
- {창작과비평} /2002년 가을호
23소리들
장만호
고향집 함석지붕에
비 내리는 소리
누이들이 듣는 라디오 소리
텃밭에 감 떨어지는 소리
쿵, 쿵, 하나씩
터져나가던 대지의,
한 해 치의 붉은 심장 소리
그리고는,
모과나무에 빗발 듣는 냄새를
약으로 들으시던
할머니의 기침 소리와
젖은 정지에서 밥을 지으시는
어머니의 딸그락거리는 소리를,
네 귀를 들고 듣던
옛 집의 침 넘기는 소리
- {현대문학} 2002년 8월호
24수레바퀴 지나간 길
이재훈
귓속에서 말이 끄는 수레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모두들 잠을 자고 있을 때, 한 아기가 태어난다. 위대하여라. 대장간에서 들려 오는 풀무질 소리.나는 주일날 하루 종일 TV를 보다가 뻣뻣해진 머리 위로 내리꽂히는 쇠망치 소리를 듣는다. 대장장이가 아이에게 반지를 만들어 준다.아이는 반지를 끼고 축제에 간다. 바람이 북쪽으로 불고 검은 구름이 몰려온다.
나는 사랑하는 일이 계명을 어기는 일이라는 걸, 지금에서야 알았다. 아이는 축제에서 뜨거운 입술을 가진 사람을 만나 춤을 추다가 반지를 잃어버렸다. 그리곤 장님이 되었다. 텅텅 대장간에서 쇠망치 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시장 어귀 할매집에서 저녁으로 순대국을 먹고 방에 들어와 명화극장을 본다. 뻣뻣해진 머리 위로 내리 꽂히는 말발굽 소리. 방바닥에 길게 엎드린다. 아이가 말이 끄는 수레바퀴에 담겨 있다. 가슴에 수레바퀴 자국이 깊게 파인다.
- {리토피아} 2001년 가을
25물고기 편지
김형술
어떤 날은
흰 물고기들이 벽들 뚫고 쏟아져 나와
구름 사이를 날아다닌다 딱딱한
등줄기를 거슬러 오른다
투명한 지느러미를 가진 물고기들
쩔렁쩔렁
빈 호주머니 속의 손금이 된다
기호가 아닌, 상징이 아닌
아름다운 날것들의 날카로움
햇빛이 우레처럼 쏟아져
내 속의 빈 어항들을 깨트린다
반짝이는 한 잎 비늘인 채로
햇빛을 건너가는 벽의 꿈
물고기의 꿈
어떤 날은 푸른 지느러미들이
벽을 무너뜨리고 날아 나온다
벽 속, 벽 너머
깊이 모를 어떤 시간들로부터
- {리토피아} 2001 겨울호
26의자
이정록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 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주말엔
아버지 산소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 애 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
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라도 깔고
호박에 똬리도 받쳐야겠다
그것들도 식군데 의자를 내줘야지
싸우지 말고 살아라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 데다가
의자 몇 개 내놓는 거여
- 현대시학 11월호 <이달의 작품>
27저녁
정일근
아침에 반가사유하던 저 목련, 저녁에 꽃문을 연다
봅날 햇살은 고양이 목덜미 털처럼 따듯하고
바람은 고양이 목을 쓰다듬는 착한 손길처럼 부드러웠다
나는 한낮에 나무 그늘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가는
저녁에는 꽃 그늘에서 빛나는 시집을 읽는다
스스로 꽃문을 열어 빛나는 나무의 연꽃들
그 빛에 젖어 함께 부활하는 행간의 아름다운 침묵을
무당벌레 한 마리가 제 꽃등에 지고 돌아온다
세상의 어느 손과 어떤 주술이 꽃문을 열 수 잇으랴
꽃의 닫힌 문을 연 봄날 하루는 위대하였으니
하루가 경건한 느낌표로 남아 묵상하는 이 저녁
땅에는 목련꽃이 하늘에는 별이 불을 밝힐 것이다.
머지않아 밤 휘파람새가 우듬지로 날아와 노래할 것이다.
-2002, 겨울호. <시향>
28가구가 운다, 나무가 운다
이정환
한밤중 한 시간에 한 두 번쯤은 족히
찢어질 듯 가구가 운다, 나무가 문득 운다
그 골짝
찬바람 소리
그리운 것이다
곧게 뿌리내려 물 길어 올리던 날의
무성한 잎들과 쉼 없이 우짖던 새 떼
밤마다
그 곳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다
일순 뼈를 쪼갤 듯 고요를 찢으며
명치 끝에 박혀 긴 신음 토하는 나무
그 골짝
잊혀진 물소리
듣고 있는 것이다.
-2002. 겨울호. <시향>
29상처
문수현
호수에 돌을 던진다
호수는 전신으로 일어서서
돌맹이를 받는다
아픔의 실핏줄이 사방으로 퍼져간다
점차 고요가 밀려들고
상처 자국은 흔적도 없이 아문다
내가 무심히 던진 말 한 마디에
일순 비틀거리는 그대
마음의 거울이 깨어지고
다시 아물어도 상처로 남아
오래오래 흔적으로 지워지지 않는지
무시로 아픈 소리 튀어나온다
깨어진 수면이 아물 듯이
그대의 상처 또한 아물어
켜켜로 쌓인 수심이 될 수는 없는가
-계간 <문학과 문화> 가을호-
1997 계간 자유문학으로 등단
30자매
최금진
사과를 깎아먹으며 TV를 보는 자매
여우원숭이처럼 킥킥킥 웃으며
주름이 지문을 다 파먹어버린 손으로
손톱을 세워 미끄러운 사과를 집는다
이를 잡아 주듯 서로
사과쪽을 권하기도 하면서 가끔은
가려운 잇몸을 포크로 벅벅 긁기도 하면서
<동물의 왕국>을 본다 오후 다섯 시의
햇살이 누런 바나나 껍질처럼
반지하 셋방 창살 틈으로 던져지고
눈두덩이에 검은 기미로 안경을 해 쓴 자매
작은 꽃밭 같은 꽃이불 속에 들어앉아
알록달록 칼라로 꽃피는 TV를 본다
설인 사스콰치처럼
눈꽃 한 다발씩 머리에 이고
어쩌다 우리가 이렇게 폭삭 늙었나
서로를 쓰다듬으며 보듬으며
웅크리고 앉아 모아 쥔 손으로
사과를 먹는다, 오물오물 맛있게 먹는다
2002, <시안> 가을호
최금진:
2001년 <창작과 비평>으로 등단
31겨울, 안면도
박진성
잠을 자지 못하는 날엔 하늘보다 먼저 소나무가 흔들렸다 海松 지나 바람 센 바닷가 걷는다 물결 대신 바람의 결 따라 안면도 일대 흔들리고 깊이 잠든 기억 몇 개 성긴 눈발 속 서성거린다 당신은 언제부터 예쁜 수련꽃을 피우기 시작했는가 침침한 시야 너머 당신 발자국 하나 둘 뒤 따라 오고 바람 속에 세운 나라들이 흔들린다 내 안 통째로 훑고 가는 바람과 성긴 눈발이 그려내는 불안한 삽화 몇 점과 안테나 잘 서지 않아 팬드폰 높이 들어야 했던 그리운 안부만 해심 같은 심장으로 자맥질해 들어온다 왜 당신의 음성은 가라앉는가 어떤 바닥을 찾아서 자꾸만 가는가 겨울 안면도, 당신의 깊은 잠결 속으로 내 발자국 따라 들어가면...... 나도 당신도 얼굴 지워지고, 나의 不眠과 당신의 安眠 사이로 눈 내린다 이 섬에서는 영원히 잠들지 못해도 좋으리
2002, <현대시학> 10월호
32바다에는 뽈락이 살지 않는다
변종태
바다에는 고기가 살지 않는다
바다에는 바다라는 말만 살고 있다
뽈락은 살지 않고, 뽈락이라는 말만 살고 있다
장승포 여객선 부두 방파제에서
내가 드리운 낚시에 걸려 올라오는 것은
고기가 아니라
뽈락이 아니라
뽈락이라는 낱말일 뿐,
뽈락의 ㅃ, 그것도 앞의 ㅂ부분이 낚시바늘에 꿰어 올라오는
허탈함, 말도 가시를 한껏 날카롭게 세우고
내 손을 찌르려 겨냥하는
뽈락이라는 낱말
바다에는 뽈락이 살지 않는다
여객선이 데모크라시 1호가 떠나버린 뒤에는.
<문학마을> 가을호
33장미와 장마 사이
박진성
장미가 시들면서 기온이 올라가고
습도가 높아졌다 추악하게
가지 끝에 매달려 잇는 장미가
저기압의 구름들을 모으기 시작한 것이다
28번을 타보면 안다 우이동에서부터
강남 일대까지 장미 군단이 서울을 점령했다
오월의 겨드랑이나 허벅지 같은 곳 이를체면
홍릉 수목원 버드나무 아래에서 연니들은 키스를 해댔다
이파리에서 가지로 점프하는 벌레, 어머니는
김치를 가방에 담아서 올라왔다 등이 굽은 노인이
느릿느릿 걸어가고 아이들은 철수 바보, 영순이 병시
이런 글자들을 벽에 음각했다 어떤 절실함도 없이
애인을 만나고 돌아오는 새벽
측백나무 뵤족한 가시가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장미, 장미, 장미의 계절, 공중에서 부유하는
날벌레 때가 가로등에 모이기 시작했다
반지하 창문 아래에 누워서 빗소리를 들어도
뿌리까지 젖지는 못했다 나무의 뿌리 깊이에서
다운받은 음악 파일을 밀어 올려도
옆집 여자는 카드 빚을 진 아들과 자꾸만 싸웠다
장마가 올 것이다 기다렸다는 듯
습기가 파고들겠지 어서 오시라
모든 것이 부패할 준비가 되어 있는 집
방부제처럼 나는 혼자서 싱싱하리라
<문학마을> 가을호
34캠프 화이어
최문자
불꽃을 보고 있으면
또 보인다
사방에 돋아나는 재를
미끄러져 들어온 바람이
불을 지폈다가
다시 나가고,
불 사이로 다시 들어온다
캠프가 끝나는 밤은
왜 저마다 가슴에 불을 놓는가?
장작의 마른 키를 일으켜 세우며
탁, 탁, 피 타는 소리,
와, 와, 함성 사이로 몰래
무엇을 태우려드는가?
불이 몸 속으로 들어가고
불꽃의 몸이 펄럭일 때
나는 느낀다
저들 몸 속에 돋아나는 재를.
<다층> 가을호
최문자: 서울 출생. 성신여대 대학원 졸업. 1982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귀 안에 슬픈 말 있네> <나는 시선 밖의 일부이다> <울음소리 작아지다> 현재 협성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35정거장
최문자
강 건너 저 편
내 철없는 정거장에
기차 한 대 멈춰서 있었다
긴 가을 건너
아무렇지도 않게 내게 도착한 기차
가슴까지 밟고 서 있다가
슬금슬금 떠나고 나니
번갯불로 바퀴를 껴안았던 레일
쓰러져 울다 지쳐 잠들었다
들꽃 한 무더기가
피다 흔들리다 흠뻑 비를 맞는 곳
강 건너 저 편
철없는 내 자리에
싹을 못내는 검은 침목들을 눕히며
새로 레일을 놓는다
안개 낀 가슴
한 가운데를 가로지르며
들이닥칠 기차를 위하여
<다층>가을호
36그녀와 의자 3
최문자
얼마 전 주인이 새로 의자 하나 사들인 뒤
그녀는 밀린다
새로 사온 의자에게 밀려났다
밀리고 밀리다
베란다 창가로 바짝 밀려났다
주인은 말라죽는 화분을 그녀 머리 위에 올려놓았다
수분 없는 화분을 이고]하루 종일 창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24시간 단단하고 단단해지는 침묵
18층 우리문 밖엔 아무 것도 없었다
하얀 피가 흐르는 구름이 배경일 뿐
주인은 지금 저 안에 있다
울음 반 웃음 반으로 끝낸 애끓던 사랑도
저 안에 있다
나는 안에 있어도 바깥에 있다
밖에 새워둔 자리에 그대로 있다
머나먼 저 안
유리문 하나 사이로
앉아있었던 의자의 기억은 작아지고
등 돌리고 앉아
다른 것에 뒤척이는 주인.
<다층> 가을호
37냇가로 끌려간 돼지
김충규
냇가로 끌려가면서 돼지는 똥을 쌌다
제 주검을 눈치챈 돼지는
아직 익지 않은 똥을 수레 위에 무더기로 쌌다
콧김을 푹푹 내쉬며 꿀꿀거렸다
입가에는 거품이 부글부글 끓었다
하늘은 창자처럼 붉었다
내일 있을 동네 잔치로 어른이나 아이
할 것없이 한껏 부풀어 있엇다
돼지가 냇가에 도착했을 때
거기 먼저 도착해 있는 것은
숫돌을 갈고 있는 칼이었다
칼이 시퍼런 미소를 짓고 있었다
체념한 듯 돼지는 사람들을 둘러본 뒤에
씩 웃었다 그 순간, 쑥 들어오는 칼을
돼지의 멱은 더운 피로 어루만졌다.
계간 <시작> 가을호
38금들은 상처의 힘이다
서안나
내 몸이 언제부터 유리였을까.
누군가의 날카로운 말 한마디
돌멩이처럼 내게 날아와 쩍쩍 금이 된다.
언어가 상처가 되는 힘.
그 힘들이
내 몸 안에서 거미줄처럼 서로의 몸의 끝을 붙잡고 있다.
그 힘들은 은폐하고 싶은 나의 기록들의 변형이다.
야생의 나무들처럼
내 온몸에 실뿌리를 가득 뻗어 내린다.
푸른 실핏줄처럼 뻗어 나간 금들은 상처의 힘이다.
금은 비늘처럼
내 살갗을 세밀하게 덮어
나를 물고기처럼 상처 속에 헤엄치게도 한다.
깊게 상처를 핥으며 내 안의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는 길.
바람이 분다.
한 생 안에 소름처럼 까슬하게 돋아나는 상처들의 힘.
2002, 9. <다층 사람들. 문학마을 가을호>에서
39스타킹 속의 세상
서안나
스타킹를 신을 때면
잘 풀리지 않는 세상일처럼 조잡하게 말려 있는 두 가닥의 길. 풀기 없이 뭉쳐져 있는 길들. 그 길 속으로 조심스럽게 발을 디디면 망사그물처럼 단단하게 조여오는 아픈 기억들.
스타킹을 신을 때면
열 손가락에 힘을 주고 잡아당기면 뱀 아가리처럼 순식간에 내 몸을 삼켜버리는 탄력적인 길들. 위험스런 길속엔 함정처럼 꽃들이 피고 지고 꽃잎에 진딧물처럼 얹혀진 푸른 골목길. 푸른 골목길에서 누군가가 담장에 기대어 조급하게 기침을 한다. 기침소리처럼 쏟아지는 꽃보다 습한 기억들. 골목에선 사람들이 잠 속에서도 두 눈을 감지 못한다. 검은 내장을 우우 떨며 담장들이 목덜미가 하얀 여자를 뱉아 낸다. 절벽처럼 각이 진 얼굴이 낯익다. 슬픈 내력을 지닌 무성한 소문들이 골목 안에 가득 들어찬다. 여자의 슬픈 발걸음이 낙타 발자국처럼 따뜻한 담장 안에 고요하게 찍힌다. 발자국 마다 길들이 열린다. 길들이 여자를 휘감는다. 꽃잎들이 여자 목덜미에 서둘러 피어난다. 스타킹을 신다보면 꽃처럼 붉은 길들이 망사그물처럼 단단하게 조여온다.
2002 9. <다층사람들. 문학마을 가을호>에서
40부르지도 않았는데
김언희
부르지도 않았는데 돌아보는 저 여자 목 없는 여자
지금 당신과 밥상을 받고 있는 여자 목 없는 여자
싱크대 앞에 서서 설거지를 하고 있는 여자 목 없는 여자
당신과 나란히 앉아 마감 뉴스를 보고 있는 여자 목 없는 여자
어쩌면 당신과 헐헐헐 섹스를 하고 있는 여자 목 없는 여자
당신의 뒤통수 너머로 목 없이 거울을 바라보는 여자 목 없는 여자
거울의 목구멍에 걸려있는 질긴 고깃덩이를 가랑이로 삼켜 넘기고 목 없이
목 없이 목 없이 목 없는 시를 쓰는 여자
목 없는 여자 잘린 제 머리를 쟁반 위에 받쳐들고 춤추는 여자 목 없는 여자
부르지도 않았는데 돌아보는 저 여자
얼굴 없는 구루터기로 돌아보는 저 여자
-<문학과 세상> 9월호
41몽대항 폐선
김영남
저기 졸고 있는 개펄의 폐선 한 척이
앞에 서 있는 여자 한 명을, 아니
그 옆의 친구들의 친구들까지를
그립게 했다가 외롭게 했다가 한다
그렇게 밀고 당기는 속성이
그 폐선 위에도 살고 있는 것인지
기러기가 몇 마리 뜨니 더욱 그립다
난 예 풍경을 눈에 꼭 담고 상상한다
폐선이란
낡아 저무는 모습이 아니라
저물어선 안 될 걸
환기시키는 어떤 힘이라는 것을
그런 힘이 밀물 썰물처럼
주변을 끌어당겼다 놓았다 할 때
그게 진짜 아름다운 폐선이란 것을,
나도 언젠가는 저처럼
누굴 그립게 끌어당겼다 놓았다 하는
몽대항 폐선이 되리란 꿈을 꾼다.
<현대시> 9월호
42얼음공원
금기웅
오래된 나무들이 쓰러져 있는 것을 본다
어떤 것들은 뿌리 밑둥까지 뽑힌 채
경계석 위에 엎드려 울고
또 어떤 것들은 껍질 벗겨진 하이얀 알몸으로
두 발 허공을 향해 발버둥치고 있다
채념으로 누워 있는 저 침묵 덩어리들
햇볕은 천천히 다가가 그들을 위로하고 있다
까마귀들은 작은 빛살들이 그곳을 관통할 때마다
큰 소리로 문상하고 있다
그들이 잘게 부서지며 휴식을 취하는 사이
기억들은 어른거리는 햇살 사이로 재빨리 사라질 것이다
수묵화처럼 죽죽 내려 뻗은
검은 나무들 끝에서 몇 번 혼자서 맴돌다가
한 발자국 한 발자국씩 제 자리를 떠나가는 미련들
툭툭 울음을 내뱉으며 그들은 문진하던 산새들은
아예 마지막 진맥까지 포기하고 어디론지 날아가 버린다
시신들 사이로 눈발들 기웃거리며 내려꽂힐 때
혹시 한 번 일어서나 볼까
오래된 고사목들이 잠깐 흔들리다 멈추어 선다
<현대시>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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