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속의 나그네(걷기 대회 참가기)
축제 속의 나그네(진고 교지에 실려 있는 글)
부제:나의 어린 왕자들과 공주들을 위하여...
글쓰기에는 전혀 재주가 없어 게으름만 배어 나오는 내가 이렇게 감히 펜을 드는 것도 이번 걷기대회가 나에게 준 가르침이라는 것을 부인할 길이 없다. 古 정주일님이 말씀하셨던가? "일단 한 번 해 보시라니깐요." 그래, 길은 끝없이 이어져 있지만, 떠나는 길에는 목적지가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 끝을 확인하기까지에는 얼마나 많은 우여곡절과 자신과의 부단한 싸움이 기다리고 있을 것인지도 떠나서 겪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것이리라.
흐릿한 일상에 길들여진 나를 밀어내고 길들여지지 않은 나를 발견할 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그리고 사랑하는 동생 그리고 조카(정현우)와 인생의 큰 추억을 함께 만들어 보고 싶은 설레임 등등의 의미를 부여하며 '진주를 걷는 사람들(진걷사)'이란 단체가 주관하는 '진주라 천리 길 걷기 대회(55Km)'에 발을 내디뎠다. 진주 물 박물관 앞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식전 행사의 리듬에 몸을 맡기고 마음의 준비를 가다듬고 있었다. 아마, 나처럼 다리가 허용하는 거리까지 만이라도 걷기에 최선을 다해 길들여져 보리라는 마음가짐을 한 사람들도 상당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자위를 하며 무덤덤한 현우의 얼굴만 흘낏거리고 있었다. 괜히 '현우! 할 수 있겠지?'하며 자문하는 듯 타성에 젖은 물음을 여러 번 허공에 날리고 있을 그 순간에 드디어 출발 신호가 떨어졌다. 정말 몰랐던 길고도 긴 극기 체험 학습의 시작이었다.
물 박물관을 출발하여 시원한 저녁 공기가 허허거리는 평거동, 신안동 강변도로 길을 따라 걸어 멋들어진 음악 분수 공연에 이르러서는 감탄사를 연발하다가 보무도 당당하게 진주성안으로 진입하였다.
평소 같으면 꽤 먼 거리였지만 워낙 가야할 길이 멀었던 터라 아주 경쾌한 한 시간 여의 유희였었다.
진주성내를 걸으며 남강을 바라보니 '진주 국제 등 축제'가 열리고 있는 촉석루 앞과 주변의 야경은 양쪽에 있는 진주 남강 다리와 천수교의 불빛과 어울려 정말 신비로운 풍광을 뽐내고 있었다. 진주성 정문을 빠져 나와 아래에 있는 강변도로 길을 따라 시원한 강바람을 온 몸으로 느껴 가며 걷고 걸어 뒤벼리 도로 밑 오솔길을 즐기며 가노라니 뒤벼리가 끝나는 지점에서 우리를 맞이하는 첫 번째 확인 지점, 그 곳에서 우리는 등이나 가슴에 부착하고 있는 참가 번호증 위에다 토끼 도장을 받았다. 제 1확인 도장과 토끼와의 연관성을 생각해 보면서 발길은 어느새 진양교를 건너고 있었다.
진양교를 지나 칠암동 강변도로 길을 따라 거니는 맛은 또 다른 정감을 불러 일으켰다. 아마 익숙한 무엇이 나의 마음을 끌어 당기고 있었으리라. 내 사랑하는 어린 왕자들은 지금 자고 있겠지. 꿈 속에서 나를 찾고 있을까? 금빛 여우의 목덜미를 만지며 다른 행성을 찾아 여행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을까? 문득 보고 싶다는 간절함이 가슴을 치는 걸 보니 벌써 나의 다리가 길들여진 만큼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것인가? 토실한 그리움을 토해내는 사이, 어느 듯 우리는 흐느적거리는 불빛을 머금고 고대의 신전마냥 우뚝 서 있는 문화 예술 회관을 지나 축제 분위기를 한껏 돋우고 있는 노점들을 지나치고 있었다. 가슴속에 꿈 하나 숨기고 자신을 팔기 위해 무거운 가방 들고 이 곳에 모여 든 사람들... 그들의 하루 하루 속 자그마한 순간이라도 축제 분위기에 춤추는 자신을 발견하기를, 아니 춤출 수 있기를... 세일즈맨의 죽음에 나오는 윌리 로우맨처럼 비록 한 평생 축제 속의 나그네일지라도 술 한 잔에 목을 축일 시각만큼은 그들의 삶이 바로 축복 내린 축제이기를... 사람들의 행렬에 뒤섞여 남강을 임시로 건널 수 있도록 연결해 놓은 부교 입구에 다다르자 나그네인 우리들에게만 특권이 부여되었다. 아니, 이런 행운이... 가슴속을 새털로 간질이는 듯한 이 기분... 걷기 대회 참가자들만 부교를 이용해 남강을 건널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사-알-랑 사-알-랑 흔들리는 부교 중간쯤에서 빛으로 물들여진 형형색색의 온갖 등들을 바라보노라니 감동에 젖어 시간을 잊고 마냥 머물고 싶었지만, 늘 그래 왔듯이 오늘밤도 나는 나그네였다. 마음 작정한 나그네였다. 부교를 건너 다시 진주성내를 거쳐 보건소 옆 진주성 담을 따라 걷다가 음악 분수 공원에 이르러 남강변의 산책로로 접어들었다. 차츰 왼쪽 다리에 통증이 전해 오고 있었다. 오금이 당기기 시작했다. 나는 오늘 내 삶의 진정한 교통순경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 강변로가 끝나갈 무렵 대회에 참가한 사람들과 함께 앉아 스트레칭을 하며 근육의 긴장을 풀었다. 다시 출발, 금강 주유소에 도착하니 18km지점이라고 알려주었다. 왼쪽과 직진의 갈림길, 내 마음의 교통순경은 왼쪽을 은근히 가리키고 있었지만, 어린 왕자는 아무런 흔들림도 없이 곧장 앞으로 치달았다. 표정의 변화도 없었다. 내 안의 교통순경은 이미 고개를 숙이고 홀린 듯 어린 왕자를 따라 발길을 터억 디뎌 놓고 있었다. 지나고 나면 돌아올 수 없을 그 길을 우리는 그렇게 떠나가고 있었다. 현우의 우스개 소리를 들으며 진양호 공원 안으로 들어서 제 1 매표소를 지나 길잡이를 맡으신 pacemaker께서 제 2 매표소 쪽으로 방향을 틀 것이라 예상을 했지만 그것은 완전히 우리만의 생각이었다. 사전에 걷기 대회 코스를 봐 두지 않은 것이 예상치 못한 마음의 고초를 겪게 하는 첫 순간이었다. 어린 시절 어린이날 부모님을 따라 놀러와 올라가 보곤 처음으로 보는 365계단을 올라야 하는 것이었다. 주최측의 치밀함에 우리의 추억은 더욱 진해지고 단단해져 있지만, 그것을 오를 당시에는 365계단을 비추는 아치형의 조명등마저 밉상스럽게 보일 정도였다. 현우도 처음에는 계단수가 3백 6십 5개가 맞는지 헤아려 본다며 여유를 부렸지만 반쯤 올라간 이후에는 말마저 잃고 힘든 기색이 역력했다. 드디어 제 2 체크 포인트! 모두들 바닥이나 바위에 털썩 주저앉아 휴식을 취하며 걸어 왔던 길에 대한 음미보다는 가야할 길에 대한 설레임으로 마음을 다독이며 한 켠의 두려움을 밀어 내고자 정신을 재무장시키는 듯 보였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제 3의 안식과 그리움을 향하여 진양호 밤길을 걸어 내려갔다. 인기척이라곤 밤길을 걷는 걷기 대회 참가자들뿐, 동물들도 모두 잠들어 버린 이 시간을 우린 이미 내일의 해를 향하여 한 걸음 한 걸음을 보태어 나갔다. 온갖 동물들의 배설 냄새가 밤 공기를 뒤덮어 버린 듯 숨결 마디 마디 코를 찔렀다. 이제는 오른쪽 다리마저 오금이 저려 오고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파 오기 시작했다. 다시금 정말 가야 하는가라는 생각이 다리와 허리의 신경을 파고 들며 바늘로 찌르는 듯 했다. 어둠으로만 뒤덮인 길, 간간이 보이는 동반자들의 야광 팔찌들만이 우리가 아직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었다. 아직 반도 못 걸었는데, 얼마나 아파야 얼마나 괴로워야 이 고달픈 여행이 끝날 것인가? 그래, 우선 컵라면 맛이나 한 번 보고 결정을 하자. 현우가 그 때쯤에는 나의 마음을 편하게 들어주지 않을까? 그래 일단은 그 곳까지 가보는 거다. 전에는 차를 타고 가면서 무심코 지나쳤던 길이기에 얼마를 걸어야 기다리던 장소에 도착하는 지를 알 수 없어 더욱 우리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드디어 25km지점, 많은 사람들이 제각기 가장 편한 자세로 휴식을 취하며 밤참을 즐기고 있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먼저 그 자리를 점하고 있으리라고는 생각을 하지 않았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 특히 연세가 있는 분들께서도 완보는 당연한 일이라는 듯 태연한 표정을 달빛에 내맡기고 있어 컵라면과 막걸리 한 잔을 마시며 슬밋 완보를 하는 쪽으로 욕심보를 내밀어 보았다.
현우는 그런 우문은 아예 던지지도 말라는 표정이었으니까. 또 걸음을 재촉했다. 절룩 절룩, 절룩 절룩.
휴식처에서 모퉁이를 돌아설 때쯤 다리를 펼 수 없을 정도로 오금이 저려 왔다. 혼자 몇 발치 떨어져서 다리를 억지로 뻗어 보았다. 조금 나아진 것 같았다. 아직 1km도 못 걸었는데 벌써부터 이래서야, 과연 갈 수 있을까? 현우가 뒤를 돌아 보았다. 나는 다시 걷고 있었다. 이야기라도 조금 나누면 괜찮을 것 같아 우리는 밤 공기에 이런 저런 얘기를 수놓으며 빨리 이 시간이 지나 훗날 좋은 추억거리가 되게 해 달라며 우리의 고통을 달래어 보았다. 추측하건대 아마 한 55km의 반을 통과하고 30km지점이라고 여겨지는 곳에 다다르자 제법 위용이 있는 나무자락아래 노곤한 몸을 누이고 다리의 근육을 풀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커다란 물집이 잡혀 있는 천근 만근 되는 다리를 끌고 그 곳을 파고 들었다. 어둠 속이 아니었어도 체면을 내세울 형편은 전혀 못 되었으리라. 하지만 현우는 앉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앉았다 일어서면 물집이 잡힌다며 끝내 서성이면서 다리의 피로를 풀고 있었다. 태권도 3단이 될 때까지 익힌 그만의 know-how일 거라 생각했다. 마냥 머물러 있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흐르지 않는 물과 짖지 않는 개다.'라는 대학 시절 교수님의 말씀을 떠울리며, 나는 또 흘러가야 했다. 제 3지점의 접선을 위하여 걷는 게 아니라 현우의 도도한 물결 속에 이끌려 가야 했다. 정말 소리내어 울고 싶을 만큼 두 다리는 오금이 저려 아예 펼 수도 없을 지경이었지만 소리없이 속으로 피빛 울음을 삼키며 흐르다 주저 앉고 질퍽거리다 끊어지고 다시 숨결을 불어 넣어 녹록치 않은 여정을 이어 나가야 했다. 대평벌로 들어가는 입구에 다다르자 대회 운영을 돕고 있는 차량 한 대가 시야에 들어왔다. 달콤한 유혹이었다. 하지만 나의 멘토는 벌써 그 짙은 어둠 속으로 길을 잡은 터였다. 왜 하필 그 때, 영미문학을 통틀어 가장 위대한 여류시인의 한 사람으로 회자되는 에밀리 디킨슨의 시가 뇌리를 스쳤는지... "사랑은 - 생명 이전이고 죽음- 이후이며 천지창조의 시작이고 지구의 해석자" 지친 육신은 영락없는 패잔병의 모습일지라도 정신만은 천지 창조의 시작을 위해 다가가는 거룩한 영혼의 모습이고 싶었다. 하지만 곧 '갈까 쉴까 말까'를 헤매는 길바닥 위의 영혼이었음이 드러났을지라도...
진양호 자락을 따라 대평들로 가는 그 길이 그토록 굽이가 많은 줄 몰랐다. 시시각각 변하는 나의 변덕 만큼이나 저 굽이를 돌아서면 따뜻한 꿀차가 기다리고 있는 대평벌, 아니 저 굽이만 돌아서면, 아니 저 굽이만... 아스팔트 바닥에 쓰러져 하늘을 보아도 별은 보이지 않고, 그 누구의 희망 어린 속삭임도 나의 가슴을 쓸어 주지 않았다. 왼쪽 다리는 오른쪽 다리로, 육체는 정신으로 부축해 가며 그 비명 마디 마디에 불러 보고 싶은 이름들, 부여 잡고 싶었던 순간들, 그리고 앞으로 가야 할 나의 길을 새겨 가며 그렇게 이를 악물고 우리는 제 3 체크포인트인 대평들에 터-ㄹ-썩 주저 앉았다. 새벽 4시. 따뜻한 꿀차를 마셨다. -이제 포기해도 어느 정도 체면은 서리라. 아무런 준비도 없이 이만큼 온 것만 해도 대단해.- 생각은 굴뚝같아도 차마 현우 앞에서는 입에 담을 수 없었다. '아, 과연 얼마만큼 남았을까? 이제는 오로지 정신력 하나로 버티고 가야 한단다. 약 5시간을 걸으면 도착할 수 있을 거란다. 여태껏 정신력으로 이 길을 왔는데, 정신력이 벌써 바닥을 보이고 있는데, 그토록 태연하게 말씀하시는 그 분이 미웠다. 5시간이라니! 1분이 힘겨워 생각만으로도 눈물이 핑 도는데 5시간이라니! 빨리 이 지점이라도 벗어나야겠다.' 저 깊은 어둠 속에서 한참 공사 중인 남강 박물관이 우리를 끌어 당기고 있었다. 한 걸음 한 걸음이 꼭 천 걸음같은 고뇌를 절며 절며 시꺼먼 강물이 출렁이는 다리 위를 건너 나아갔다. 반을 지났다는 위안 때문인지 이제 현우는 물론이고 동생마저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되뇌이면서 이를 악물었다.. 나는 그렇게 끌려가고 있었다. 또 얼마를 걸었을까, 기어코 왼 발바닥의 물집이 터지고 말았다. 미리 준비를 하여 물집을 바늘과 실로 터뜨려야 했지만, 귀찮은 마음 반, 신발을 벗기도 싫을 정도로 지쳐 버린 탓에 그냥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놔 둔 것이 결국 터지고 말았다. 발바닥을 바닥에 정면으로 대일 수가 없었다. 눈물이 찔끔 나올 정도로 쓰리고 아팠다. 결국 도로 가에 주저 앉아 버렸다. 왼쪽 양말은 터져 나온 물기로 젖어 있었다. 오른쪽 양말을 벗으니 이 놈의 발바닥도 터질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었다. 동생과 현우의 발도 나의 발과 다르지 않았다. 우리는 터지지 않은 발이라도 휴대폰의 희미한 불빛을 빌려 핀으로 물기를 빼내야 했다. 가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20km는 더 남았을 것 같은데, 그래도 가기 위해서는. 이제는 아예 하나의 육체가 천당과 지옥으로 나뉘어져 버렸다. 상체가 아무런 고통도 없이 그냥 다리 따라 이끌려 가는 천국이요 유토피아라면, 허리 아래로는 구석 구석에서 살려 달라 아우성치는 아귀들의 지옥이었다. 나는 그 지옥의 사슬들을 철거렁 철커덩거리며 천국을 떠받들고 가는 고행자요 순례자였다. 천국과 지옥은 이 세상마냥 나의 한 몸 속에서 그렇게 잉태되어 서로가 서로를 밀어내며 버둥거리고 있었다. 뒤쳐져서 따라가다 보면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더욱 강해질까 봐 염치없이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왼쪽 다리를 더욱 절룩거리며 조금 나아가다 쉬고 다시금 조금 나아가다 쉬고 어느덧 날이 서서히 밝아와 현우, 동생, 그리고 나는 바로 그 날이면서도 다른 하루의 아침에 다시 일어서고 있었다. 우리는 하나로 누구도 스러지지 않고 하루를 넘어서고 있었다. 해는 서서히 우리를 비추고 우리가 가야 할 길을 보여 주니 아주 잠깐이었을지라도 목표 의식이 생기고 한결 마음이 밝아지는 것 같았다. 저 멀리 다른 걷.는. 사.람.들.도 눈에 들어왔다. 달리 길은 없었다. 울며 절며 가는 수 밖에. 진수 대교를 한 5km 남겨 둔 지점에서 완전히 짜내지 못한 오른쪽 발바닥의 물집마저 결국 터지고 말았다. 다행히 왼쪽 발바닥은 모든 물기를 다 쏟아 내고 어느 정도의 고통에는 적응을 한 후였고, 때마침 4.5km pacemaker께서 오른쪽 발바닥 물집 터진 곳 위에 테이프를 발라주신 것이 아주 도움이 되었다.(이 글을 통해서나마 그 인자하게 생기신 그 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꽤 먼 거리를 전진, 또 전진해 나아갔다. 대략 4km정도는 족히 됨 직한 거리를 쉬지 않고 죽을 힘을 다해 걸어갔다. 어젯밤 내내 그리던 진수대교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움이 지나치면 병이 된다던가?' 좀 쉬고 싶었다. 아니 쉬어야 했다. 진수 대교를 눈 앞에 두고 우리는 다시 주저 앉아 정신을 추스린 후에 진수대교를 향해 나아갔다. 드디어 제 4체크포인트인 진수대교에 들어섰다. 하지만 다시 진수 다리 초입에서 우리의 다리를 10여분간 다독거려 주어야 했다. '이제부터 10km. 기어서라도 가지, 그걸 못 가겠어.' 마음만은 분명 그러했을 것이리라. 오기라도 부리고 싶었으리라. 인천에 있는 막내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앞으로 남은 거리를 얘기하니 함께 고통을 느끼기라도 하듯 애처로워 하는 목소리가 귓전을 타고 폐부 깊숙이 들이 박혔다. 그 붙박힌 정으로 우리의 정신은 우리의 육신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 다시 출발, 진수대교 정말 롱(long) 다리였다. 걸을 때는 1km를 넘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다리를 지나고 나서 현우가 확인시켜 준 길이는 830m, 어쨌든 이제 남은 거리가 한자리수로 접어들었다. 또 쉬었다. 진양호반의 아름다움도 이미 지옥길의 한 배경이었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진양호를 따라 끝간 데없이 이어져 있는 그 길을 쉬고 걷다, 쉬고 걷다를 얼마나 반복했을까? 호수길을 벗어나 또 우리는 쉬었다. 저 굴다리만 지나 왼쪽으로 돌면...^^ 조금씩 얼굴에 웃음이 돌았다. 육신은 이제 천국 쪽으로 향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죽을 힘을 다해 다시 걸었다. 굴다리 건너편에선 대회 운영을 도와 주시는 두 분이 안내를 하고 계셨다. '나의 얼굴에 미소마저 감돌고 있는 게 아닐까?^^' 겸연쩍은 탓에 얼굴을 숨기고 싶어 바닥에 시선을 드리운 순간, 이게 무슨 일인가? 아니 왜 버-ㄹ-건 화살표가 오른쪽으로 틀어져 있을까? 잘못 보았겠지. 아니 다른 화살표도 분명 왼쪽이 아니라 오른쪽을 가리키고 있는 게 아닌가? 아울러, 안내하시는 분들의 손짓도 분명 오른쪽이었다. 아니 뭐 이런 ...! 그냥 주저 앉고 싶었다.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들며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고 싶었다. 온갖 못되고 못난 생각이 밀려왔다. 바로 달려가 이 분노를 터뜨리고 싶었다. 하지만, 우리는 절대 달려갈 수가 없었다. 아니, 걸어갈 수도 없었다. 기어갈 수도 없었다. 그러나 주저앉아 그대로 포기할 수는 더더욱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지 가야 했다. 현우도 동생도 기대감이 무너져 내린 그 허망함을, 그 분노의 에너지를 완보하고 말겠다는 의지로 휘휘 감아 우리는 다시금 그 큰 키를 조금씩 조금씩 쓰러뜨려 갔다. 마지막 지점에서 우리는 머리를 짓이기며 통과하리라. 마지막 체크포인트, 유수교. 이제 목적지까지 4.5km. 가자, 가자, 가자, 가자, 가자, 죽을 힘을 다해! 유수교를 건너 삼계 4거리로 가는 중간지점에서 어머님과 첫째 동생의 응원을 받았다. 늘 고마운 가족들. 정말 종착점이 보이는 듯 했다. 꽝. 꽝. 꽝. 지금 당장 어디에라도 누이고 싶은 나그네의 그 지옥같은 육신을 끌고 축제속 천당으로 우린 달려 들어갔다. 장장 14시간 20분 여의 여정이었다.
마지막으로, 이 고난의 여정 동안에 나의 못난 소리를 들으며 기분이 상했을 하늘, 땅, 바람, 강물, 동생과 현우,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직 길들여지지 않아 가슴앓이를 하던 내 안의 나에게 용서를 구하고 싶다. 그리고 무던히도 우리의 완주를 도와 주기 위해 도움과 격려를 아끼지 않으신 대회 관계자 분들과 함께 대회를 수행하면서 우리의 어린 왕자 정 현우의 힘을 북돋워 주신 모든 분들께 늦게나마 이 글을 통해서 감사를 드립니다.
토요기행
요즘은 시절도 하수상하여 독립기념관을 방문해보고 싶었다.
경상남도 진주에서 차를 달려 거의 3시간 남짓한 거리, 아침부터 서두르지 않으면 하루만에 다녀오기엔 벅찬 일임엔 틀림없었다. 어제는 고조부님 제사를 모신 관계로, 늦잠이 그리운 토요일 아침, 하지만 나의 아이들에게 이 나라의 참모습을, 질곡의 역사를 수박겉�기로나마 보여주고 싶었다. 아니 각인되었으면 했다. 어머님을 모시고 아내와 아들 두 놈과 함께 길을 떠났다. 그런데, 이게 왠 일인가? 첫걸음부터 좀체없던 실수를 하고 말았다. 고속도로 차선을 잘못 탄 것이었다. 그저께와 어제 2틀동안의 피곤이 풀리지 않은 탓이라 여겼다. 실없는 농담 한마디로 20분 뒤쳐진 기분을 추스리며 대진(대전-진주)고속도로에 우리를 진입시켰다. 동생들로부터 전화가 한 통화씩 왔다.(합이 세 통^^)너무나 먼 여행길이라 다른 형제들의 걱정도 컸지만, 특히 대전에 둥지를 틀고 있는 막내동생의 걱정은 그리움을 너무 둘둘 말아놓은 듯했다.^^ 사랑스러운 나의 가족들. 잔뜩 큰 소리를 치며 앞으로 앞으로 내달았다. 함양 휴게소에서 잠시 커피 한 잔에 하늘 한 번 보고, 곧장 독립기념관까지 치달려, 도착한 시간은 11시 48분. 더욱 훈훈한 봄기운을 느끼며 독립기념관안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둘째놈은 감기탓에 좀 칭얼거렸지만, 정면에 서서 한국인의 기상을 보여주는 듯한 거대한 탑이 우리를 반겨주었고, 어떤 외적도, 특히 쪽발이놈들은 얼씬도 못하게끔 휘날리는 수없이 많은 태극기들이 진법을 구사하며 서 있었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충무공 이순신장군의 진법인지, 삼국지에 나오는 진법인지는 중요하지도 않았다. 한승조나 지만원같은 이 나라의 기생충들이 오금을 펴지 못할 것이라는 느낌만이 그득했다. 더구나 태상왕, 광개토대왕비에 이르러서는 좁쌀같은 일본놈들의 왜곡이 그 큰 의기앞에서 으스러져 형체도 없이 사라지는 것 같아 저절로 어깨가 세워지는 듯 했다. 잠시 후엔 기와 지붕을 이고 있는 백악관의 40배정도(단기로 따져 한민족의 역사가 미국의 역사의 약 40배)되는 앞이 훤히 트인 건물 앞에 도착했다. 조금 뒷 편의 양쪽에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한국인을 담은 부조를 양 팔 삼아 8도를 나타내는 8인상이 하늘을 향해 치닫듯 거대하게 얽혀 있었다. 숙연함속에서 저 상의 크기만한 한민족의 기상을 떨칠 날을 기원하면서 전통체험관을 시작으로 우리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비통했던 과거들을 다시 한번 더 심장 가득 담아두려 동분서주했다. 어머님과 아내는 일제시대의 만행, 특히 고문하는 장면을 보여주는 곳에서는 눈시울이 뜨거워 보였다. 나도 그러하였으니 어머님들이기에 더욱 여린 모습이였으리라. 물론 그 마음속에서 이 세상의 제일 강한 힘이 솟아나는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약 3시간 30분동안 간접체험을 하고 난 모습엔 자부심 마디마디 핏빛 영혼들이 배여 우리의 나아갈 길을 인도하여 주었다. 부디 아팠던, 아니 피눈물나도록 쓰라렸던 과거를 눈에, 심장에 아니 온 몸, 모든 영혼 마디마디 각인, 또 각인시켜서 다시는 그렇게 민족이 짓이겨지는 미래를 만들지 말라는 가르침이었다. 질곡의 물레방아속이 아니라, 위에서 발로 밟으며 물레방아 틈틈이 박혀 있는 검은 사꾸라, 썩은 좁쌀들을 팅팅 튕겨내며 힘차게 다시 돌리라는 진언이었다. 독립기념관 문을 나설때 하늘은 조금씩 여위어 가고 있었지만, 우리들의 가슴속은 뜨거운 핏덩이로 점점이 채워져 있었으리라.
MBC 미디어 비평이라는 프로그램을 보고
솔트 레이크 시티 동계 올림픽,
세계 인류의 평화와 보다 알찬 나아감을 위한 행사라기 보다는 개막식의 찢어진 성조기에 단 하나의 국가를 위해 짜여진 각본에 충실하고자 했던, 그리하여 성조기 이외의 모든 국기에 대한 모멸감을 은연중에 드러내며 일백년 올림픽의 역사에 큰 쇠막대기를 꽃아, 스포츠를 통해 공명정대한 정신을 기르고자 하는 세계인의 정신을 갈기갈기 찢어 발기던 철없는 아해, 골목대장 주도하의 동네 운동회 같았던 그 대회를 보고 나는 울분을 금치 못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아마 이 땅의 거의모든 분들이 저와 같은 심정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반만년의 올바른 심성과 나라를 위한 올곧은 충정으로 살아온 우리는 힘만 믿는 저 오만무도한 침략자의 후손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그러기에 무조건적인 쇼비니즘이 아닌 참다운 애국의 시선으로 느끼는 바가 있어 다음 내용을 올립니다.
며칠 전 날 밤에 저는 MBC의 '미디어 비평'이라는 프로그램을 시청하고 있었습니다. 그 날의 비평은 '솔트레이크 시티 동계 올림픽과 관련된 조선일보사의 잘못된 기사에 관련된 내용'이었습니다. 김동성 선수의 경기 오심과 관련시켜 미국을 비판하는 내용과 김동성 선수가 격분하여 태극기를 내팽겨치는 것을 미국을 비난하는 것과 같은 중량감으로 다룬 조선일보의 기사는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도 문제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잠시후 한때 그 방송사의 '100분 시사토론'을 진행한 바가 있는 한 대학 교수가 나와서 김동성선수가 우리의 얼굴이랄 수 있는 태극기를 내팽겨친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은 예를 들어 설명하는 것을 보고 저는 다시 한번 분통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그는 금메달을 빼앗은 미국을 지하철에서의 성희롱범에 비유를 했고 김동성 선수를 해를 당하는 여자에 비유를 했습니다. 미국을 그런 인간에 비유한 것은 저로서도 가슴이 트이는 비유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이후 그는 희롱을 당하면서 화가 난 여자가 그 남자에게 욕을 하는 것을 김선수가 태극기를 차가운 얼음바닥위에 던진 것에 비유를 하면서, 그런 큰 일을 당하면서 그 여자가 욕을 했다고 해서 그 여자를 나쁜 사람이라고 얘기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커다란 일에 사소한 것을 들추어내는 것은 좋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사회의 식자이면서 지도층인 분의 올바른 판단인 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그건 아니다"라는 확고한 판단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그가 명망있는 사람이라고 해서 다른 사람들이 그의 의견으로 자신의 마음을 덮어 버릴까봐 염려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생각이 옳지 못했다는 것을 밝히고자 합니다. 우선 그가 김동성 선수를 성희롱당하는 여자에 비유한 것이었습니다. 아픔의 경중을 따지기에 앞서, 분명 김동성선수는 한 개인의 자격으로서가 아닌, 4천만 민족의 대표로서 태극기를 가슴에 달고 경기에 임하는 사람이었기에 비유가 너무나 적절치 못했다는 생각입니다. 덧붙여서 우리 국가의 상징인 태극기를 내팽겨 친 것이 어찌 욕지거리에 비할 만한 내용이겠습니까? 그 철면피한 오심에 온 국민이 분노하고 그 분노는 국가의 분노요, 그것은 우리의 상징인 태극기의 분노일 것인데 자신의 분신이요, 국민의 얼굴인, 자신을 위해 울부짖고 있는 태극기를 내팽겨 치다니요. 그는 국가의 대표였기에 어린 나이를 핑계삼아서도 안된다는 생각입니다. 분명 그는 우리의 태극기를 앞세우고 경기를 한 '국가, 국민, 태극기대표선수'였습니다. 그런 판정이 날수록 그 가엾은 깃발을 부둥켜 안았어야 옳다고 생각합니다, 찬 빙판에 내던져 버릴 것이 아니라... 욕을 당하는 여자의 부모님이 그 못된 인간을 벌할 수 없을 정도로 무능하다고 해서 여자가 부모님을 원망하면서 내팽겨친다면 나는 그 여자를 절대 올바른 여자로 보지 않을 것이고, 우리의 대표로 보내지 않을 겁니다, 그가 아무리 한 분야에 세계 최고의 능력을 가졌다 할지라도... 그의 연장자로서, 그의 후견인으로서(모든 국민은 김동성 선수의 후견인입니다), 그의 슬픔을 안아 어우르고 그를 위로하고 격려하되, 그가 올바르지 못한 점이 있다면 그를 위해, 힘없는 이 나라의 보다 나은 결속과 발전을 위해 올바른 애국심을 가르쳐주고 심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저의 마음입니다. 올바른 언론매체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 같아, 혹시 지면 언론과 화면 언론의 사소한 국지전은 아니었나라는 생각이 든 것은 제 잘못된 소견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끝으로 김동성 선수의 선전에 미진한 사람이지만 태극기를 사랑하는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무한한 찬사를 보내며, 아울러 터무니없는 침략적 판정에 대해 김동성 선수의 깊은 아픔과 슬픔을 함께 느끼고자 합니다. 계속 최고의 자리를 놓치지 않기를 바라며...
유시민, 그를 사랑하며
유시민의 '항소이유서'
柳時敏의 <항소이유서>
본 적 : 경상북도 월성군 내남면 망성동 163
주 소 : 서울특별시 구로구 시흥 1동 한양아파트 11동 1107호
성 명 : 류 시 민
생년월일 : 1959년 7월 28일
죄 명 : 폭력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
요 지
본 피고인은 1985년 4월 1일 서울지방법원 남부지원에서 폭력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선고 받고 이에 불복 다음과 같이 항소이유서를 제출합니다.
다 음
본 피고인은 우선 이 항소의 목적이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거나 1심 선고형량의 과중함을 호소하는데 있지 않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두고자 합니다. 이 항소는 다만 도덕적으로 보다 향상된 사회를 갈망하는 진보적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다하려는 노력의 소산입니다. 또한 본 피고인은 1심 판결에 어떠한 논란거리가 내포되어 있는지 알지 못하며 알고 싶은 생각도 없습니다. 자신의 행위의 정당성을 판단하는 기준으로서 본 피고인이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하느님이 주신 양심이라는 척도이지 인간이 만든 법률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법률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는 본 피고인으로서는 정의로운 법률이 공정하게 운용되는 사회에서라면 양심의 명령이 법률과 상호적대적인 모순관계에 서게되는 일은 결코 일어날 수 없으리라는 소박한 믿음 위에 자신의 삶을 쌓아올릴 수밖에 없었으며 앞으로도 역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인간과 인간, 인간집단과 인간집단 사이에서 일어나는 모든 폭력행위는 본질적으로 그 사회의 현재의 정치적·사회적·도덕적 수준의 반영인 동시에 미래의 그것을 결정하는 규정 요인중의 하나입니다. 따라서 “폭력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률”(이하 폭행법이라 함) 위반 혐의로 형사소추되어 1심에서 유죄선고를 받은 본 피고인으로서는 자신이 관련된 사건이 우리 사회의어떠한 정치적·사회적·도덕적 상태의 반영이며 또 미래의 그것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규명함과 동시에 사건과 관련된 각 개인 및 집단의 윤리적 책임을 명백히 밝힐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우리 사회가 젊은 대학생들이 동 시대의 다른 젊은이들을 폭행하였다는 불행한 이 사건으로부터 “개똥이와 쇠똥이가 말똥이를 감금 폭행하였다. 그래서 처벌을 받았다”는 식의 흔하디흔한 교훈밖에 배우지 못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사건 자체보다 더 큰 비극이라 아니할 수 없을 것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이 항소이유서는, 부도덕한 개인과 집단에게는 도덕적 경고를, 법을 위반한 사람에게는 법적 제재를, 그리고 거짓 성령 속에 묻혀 있는 국민에게는 진실의 세례를 줄 것을 재판부에 요구하는 청원서라 하겠습니다. 거 듭 밝히거니와 본 피고인은 법률에 대해 논한다는 것이 아니므로 이 글 속에서 ‘책임’ ‘의무’ ‘과실’ 등등의 어휘는 특별한 수식어가 없이 사용된 경우, 그 앞에 ‘윤리적’ 또는 ‘도덕적’이라는 수식어가 생략된 것으로 간주하여 무방합니다. 그리고 본 피고인이 특히 힘주어 말하고 싶은 단어나 문장에는 윗점을 사용하였습니다.
본 피고인은 우선 이 사건을 정의(定義)하고 나서 그것을 설명한 다음 사건과 관련하여 학생들과 현정권(본 피고인이 신봉하는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원칙에 비추어 제 5 공화국이 합법성과 정통성을 갖추지 못하고 있음을 표시하기 위해 정부대신에 정권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각자가 취한 행위를 분석함으로써 이 글의 목적을 달성코자 합니다.
이 사건은 학생들에 의해서는 ‘서울대 학원프락치사건’으로, 정권과 매스컴에 의해서는 ‘서울대 외부인 폭행사건’으로 또는 간단히 ‘서울대 린치사건’이라 일컬어지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사건명칭의 차이는 양자가 사건을 보는 시각을 전혀 달리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현상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건의 본질 자체가 달라질 리는 만무한 일입니다. 본 피고인이 가능한 한 객관적인 입장에서 이 사건을 정의하자면 이는 정권과 학원간의 상호적대적 긴장이 고조된 관악캠퍼스 내에서, 수사기관의 정보원이라는 혐의를 받은 네명의 가짜학생을 다수의 서울대 학생들이 연행·조사하는 과정에서, 혹은 약간의 혹은 심각한 정도의 폭행을 가한 사건입니다.
‘정권과 학원간의 상호적대적 긴장상태’를 해명하기 위해서 우리는 4월 민주혁명을 짓밟고 이땅에 최초의 군사독재정권을 수립한 5·16 군사쿠데타 이후 4반세기에 걸쳐 이어온 학생운동의 반독재 민주화 투쟁혈사(血史)와 아울러 가열되어온 독재정권의 학원탄압사를 살펴 보아야 할 터이지만, 이 글이 항소이유서임을 고려하여, 1964~65년의 대일 굴욕외교 반대투쟁(소위 6·3사태), 1974년의 민청학련투쟁, 1979년 부산마산지역 반독재 민중투쟁 등을 위시한 무수한 투쟁이 있어 왔다는 사실을 지적하는데 그치기로 하고 현정권의 핵심부분이 견고히 형성되어 사실상 권력을 장악한 1979년 12월 12일의 군사쿠데타 이후 상황만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의 경제적 모순·사회적 갈등·정치적 비리·문화적 타락은 모두가 지난 날의 유신독재 아래에서 배태·발전하여 현정권 하에서 더욱 고도성장을 이룩한 것들입니다. 현 정권은 유신독재의 마수에서 가까스로 빠져나와 민주회복을 낙관하고 있던 온국민의 희망을 군화발로 짓밟고, 5·17 폭거에 항의하는 광주시민을 국민이 낸 세금과 방위성금으로 무장한 ‘국민의 군대’를 사용하여 무차별 학살하는 과정에서 출현한 피묻은 권력입니다. 현정권은 정식출범조차 하기 전에 도덕적으로는 이미 파산한 권력입니다. 현정권이 말하는 ‘새시대’란, 노골적·야수적인 유신독재헌법에 온갖 화려한 색깔의 분칠을 함으로써 그리고 총칼의 위협아래 국민에게 강요함으로써 겨우 형식적 합법성이나마 취할 수 있었던 새로운 ‘유신시대’이며, 그들이 말하는 ‘정의(正義)’란 소수군부세력의 강권통치를 의미하며, 그들이 옹호하는 ‘복지’란 독점재벌을 비롯한 있는 자의 쾌락을 뜻하는 말입니다.
‘경제성장’ 즉 자본주의 발전을 위하여 ‘비효율적인’ 각종 민주제도(삼권분립, 정당, 노동조합, 자유언론, 자유로운 집회결사) 등을 폐기시키려하는 사상적 경향을 우리는 파시즘이라 부릅니다. 그리고 그러한 파시스트 국가의 말로가 온 인류를 재난에 빠뜨린 대규모 전쟁도발과 패배로 인한 붕괴였거나, 가장 다행스러운 경우에조차도 그 국민에게 심대한 정치적·경제적 파산을 강요한 채 권력내부의 투쟁으로 자멸하는 길뿐임을 금세기의 현대사는 증명하고 있습니다. 나찌 독일, 파시스트 이탈리아, 군국주의 일본은 전자의 대표적인 실례이며, 스페인의 프랑코 정권, 합법정부를 전복시키고 등장했던 칠레·아르헨티나 등의 군사정권, 하루저녁에 무너져버린 유신체제 및 지금에야 현저한 붕괴의 조짐을 보이고 있는 필리핀의 마르코스 정권 따위는 후자의 전형임에 분명합니다.
국가는 그것이 국가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만이 구성원 모두에게 서로 방해하지 않고 자유롭게 행복과 자아실현을 추구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주기 때문에 존귀합니다. 지난 수년간, 인간다운 삶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을 요구하며 투쟁한 노동운동가, 하느님의 나라를 이땅에 구현하기 위해 노력한 양심적 종교인, 진실과 진리를 위하여 고난을 감수한 언론인과 교수들, 그리고 민주제도의 회복을 갈망해온 민주정치인들의 선봉에 섰던 젊은 대학인들은, 부도덕하고 폭력적이며 비민주적일 뿐만 아니라 반민중적이기 때문에, 국민이 자유롭게 보고 듣고 말할 수 있는 조건 아래서라면 단 한주일도 유지될 수 없는 현 군사독재정권이 그토록 존귀한 우리 조국의 대리인이 될 수 없음을 주장해 왔습니다. 우리 국민은 보다 민주적인 정부를 가질 자격과 능력이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현정권은 12·12 군사쿠데타 이후 4년동안 무려 1,300여명의 학생을 각종 죄목으로 구속하였고 1,400여명을 제적시키는 한편 최소한 500명 이상을 강제징집하여 경찰서 유치장에서 바로 병영으로 끌고 갔습니다. 뿐만 아니라 교정 구석구석에 감시초소를 세우고 사복형사를 상주시키는 동시에 그것도 모자라 교직원까지 시위진압대로 동원하는 미증유의 학원탄압을 자행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한번도 이러한 사실을 시인한 적이 없으며, 1982년 기관원임을 자칭한 괴한에게 어린 여학생이 그것도 교정에서 강제추행을 당하는 기막힌 사건이 일어났을 때조차, 최고위 치안 당국자는 국회 대정부 질의에 대하여 “교내에 경찰을 상주시킨 일이 없다. 유언비어의 진원지를 밝혀내 발본색원하겠다”고 태연하게 답변하였을 정도입니다. 현재 학원가를 풍미하고 있는 전경 특히 경찰에 대한 불신과 적대감은 이와 같은 정권의 학원탄압 및 권력층의 상습적인 거짓말이 초래한 유해한 결과들 중의 한가지에 불과합니다.
이솝우화의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은 양떼를 잃어버리는 작은 사건을 낳는데 그쳤지만 주 유왕(周 幽王)이 미녀 포사(褒似)를 즐겁게 하기 위해 거짓봉화를 울린 일은 중국대륙 전체를 이후 500여년에 걸친 대 전란의 와중에 휩쓸리게 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현명한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양치기 소년의 외침을 외면한 마을사람들이나 오랑캐에게 유린당하기까지 주(周)왕실을 내버려 둔 제후들을 어리석다 말하지 않습니다. 정권의 주장이라면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믿지 않으려는 학생들의 불신은 과연 누구의 책임이겠습니까?
더 욱이 야만적이고 부도덕한 학원탄압은 전국 각 대학에서 목숨을 건 저항을 유발하였고 그 결과 일일이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은 학생들이 생명을 잃거나 중상을 당했습니다. 서울대학교에서만도 고 김태훈·황정하·한희철 등 셋이나 되는 젊은 생명이 희생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으로 83년 12월의 소위 자율화조치 이후에도 주전선(主戰線)이 교문으로 이동하였다는 단 한가지를 제외하면 거의 변함없이 계속되어 왔으며, 특히 지난해 9월 총학생회 부활을 전후하여 더욱 강화되었던 수사기관의 학원사찰, 교문앞 검문검색, 미행과 강제연행 등으로 인해 양자간의 적대감 또한 전례없이 고조된 바 있습니다. 즉 소위 자율화조치 이후에도 ‘학원과 정권 사이의 적대적 긴장상태’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사건은 바로 이와 같은 조건 하에서 수명의 가짜학생이 수사기관의 정보원이라는 혐의를 받을만한 행위를 하였기 때문에 거의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난 예기치 못한 사건입니다. 이들의 의심을 받게된 경위 및 사건경과는 이미 밝혀진 바이므로 재론할 필요가 없지만 여기에서 가짜학생에 대해서는 약간의 부연설명이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들이 실제로 정보원인지 그 여부는 극히 중요한 정치적 관심사임에 분명하지만 사건의 법률적·윤리적 측면과는 거리가 있는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학생들이 연행·감금·조사 또는 폭행한 것은 결코 정보원이나 단순한 가짜학생이 아닌 ‘정보원 혐의를 받고 있는 자‘들이기 때문에 폭력 자체가 정당할 수는 없으며 또 아니라고 해서 학생들의 일체의 행위가 모두 부당했다고 말할 수도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본 피고인이 이 문제에 대해 재론하지 않는 것은 그들이 정보원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니라 바로 위의 이유에 의해서입니다.
갖가지 목적으로 학생처럼 위장하고 캠퍼스를 배회하는 수많은 가짜 학생들, 이들은 소위 대형화·종합화된 오늘날의 대학에서, 졸업정원제·상대평가제 등 대학을 사회현실에 대한 비판의식이 마비되어 제 한 몸 잘사는 일에만 관심이 있는 전문기능인의 집단양성소로 전락시키기 위해 독재정권이 고안해 낸 각종 제도가 야기한 바 대학인의 원자화·고립화 등 비인간화 현상을 틈타 캠퍼스에 기생하는 반사회적 인간집단으로서, 교내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절도·사기·추행·학원사찰의 보조활동(손형구의 경우처럼) 등과 복합적인 관련을 맺고 있음으로 해서 대학인 상호간에 광범위한 불신감을 조성하고 대학의 건강한 공동체문화를 파괴하는 암적 존재입니다. 현정권은 이들이 대학인의 일체감을 파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교내에 사복경찰을 상주시킴으로써 야기된 숱한 문제들마저 이들에게 책임전가시킬 수 있다는(여학생 추생하건 때처럼) 이점 때문에 가짜학생의 범람현상을 방관 또는 조장하여 온 것입니다. 따라서 학생들이 이들에 대해 평소 품고 있는 혐오감이 어떠한가는 설명할 필요조차 없는 일입니다.
이들이, 이들 가짜들이, 혹은 복학생들의 소규모 집회석상에서 혹은 도서실에서, 법과대학 사무실에서, 강의실에서, 버젓이 학생행세를 하면서 학생활동에 대한 정보 수집활동을 하다가 탄로났을 경우, 법이 무서워서 이를 묵과하는 것이 윤리적으로 올바른 일이겠습니까? 상호적대적인 분위기 속에서, 바로 그들을 보냈으리라 추정되는 수사기관에, 정보원 혐의를 받고 있는 가짜학생의 신분조사를 의뢰하는 일어날 수 있겠습니까? 물론 대학의 교정은 개방된 장소이므로 은밀한 사찰행위뿐만 아니라 예전처럼 수백 수천의 정·사복 경찰이 교정을 온통 휘젓고 다닌다 할지라도 이는 전혀 비합법 행위는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본 피고인은 이러한 행위가 도덕적으로 바람직하다고 하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반면 이러한 부도덕한 학원 탄압행위에 대한 학생들의 여하한 실질적 저항행위도, 비록 그것이 윤리적으로 정당한 일이지만, 현행법률에 대한 명백한 침해가 될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정의로운 사회에서라면 존재할 수 없는 법과 양심의 상호적대적인 모순관계가 필연적으로 발생합니다. 그 누구도 이 상황에서 법과 양심 모두를 지키기란 불가능합니다. 이 사건이야말로 우리 사회 전체가, 물론 대학사회도 포함하여, 당면한 정치적·사회적 모순의 집중적 표현이라는 학생들의 주장은 바로 이와 같은 논거에 입각한 것입니다. 법은 자기를 강제할 수 있는 힘을 보유하고 있지만 양심은 그렇지 못합니다. 법은 일시적 상대적인 것이지만 양심은 절대적이고 영원합니다. 법은 인간이 만든 것이지만 양심은 하느님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본 피고인은 양심을 따랐습니다. 그것은 법을 지키는 일이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양심의 명령을 따르는 일이 더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본 피고인뿐만 아니라 모든 학생들이, 이 사건에서만이 아니라 그 이전의 어느 사건에서도 그랬습니다.
지 난해 9월, 10일간에 걸친 일련의 사건은 이렇게 하여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나 자체로서 그리 복잡하지 않은 이 사건은 서울대생들의 민한당사 농성사건, 주요 학생회 간부들의 제적·구속, ‘학생운동의 폭력화’에 대한 정권과 매스컴의 대공세, 서울대 시험거부 투쟁과 대규모 경찰투입 등 심각한 충격파를 몰고 왔으며 공소 사실을 거의 전면부인하는 피고들에게 유죄를 선고함으로써 일단락된 바 있습니다.
사건종료 다음날인 9월 28일 전학도호국단 총학생장 백태웅과 뒤늦게 프락치사건 대책위원장 겸 사회대학생장 오재영군 등이 지도한 민한당사 농성은 자연발생적·비조직적으로 일어난 이 사건을 부도덕한 학원사찰 및 정권의 비민주성을 비판하는 조직적 투쟁으로 고양시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비로 가짜 학생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의 법률적·윤리적 과실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 때문에 학원사찰의 존재라는 별개의 정치적 문제를 덮어둘 수는 없는 일이므로 이 투쟁은 그 자체로서 완전히 정당한 행위였다고 본 피고인은 생각합니다.
이 일이 있은 다음 날인 9월 29일 저녁 학교당국은 이정우·백기영·백태웅·오재영 등 4명의 총학생회 주요간부를 전격적으로 제명 처분하였으며 본 피고인은 9월 30일 하오 경찰에 영장없이 강제연행 당한 후 며칠간의 조사를 받고 구속되었습니다. 본 피고인이 가장 먼저 연행당한 것은 미리 도피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도피하지 않은 것은 필요를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고, 필요를 느끼지 않은 것은 도망칠만큼 잘못한 일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본 피고인은 경찰·검찰에서의 조사 및 법정진술시 기억력의 한계로 인한 사소한 착오 이외에 여하한 수정·번복도 한 바 없었으며 오직 사실 그대로를 말했을 따름입니다.
어 쨌든 서울시경국장은 10월 4일 소위 ‘서울대 외부인 폭행사건’의 수사결과를 도하 각 신문·TV·라디오를 통해 발표하였는데, 그에 의하면 4명의 외부인을 감금·폭행한 이 일련의 사건이 복학생협의회 대표였던 본 피고인 및 학생대표들의 합의 아래 의도적이고 조직적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10월 4일 이전에 경찰에 연행된 몇몇 학생들 중(본 피고인을 포함) 어느 누구도 이 발표를 뒷받침해줄 만한 진술을 한 바 없으며, 이후에 작성된 구속영장·공소장 및 관련학생들의 신문조서들이 모두 이 발표의 기본선에 맞추어 만들어진 것임은, 만일 이 모든 서류를 날짜별로 검토해 본다면, 누구의 눈에나 명백한 일입니다.
한 마디로 10월 4일의 경찰발표문의 본질은 모종의 정치적 목적을 위한 견강부회·침소봉대·날조왜곡 바로 그것입니다. 그 목적이란 다름이 아니라 학생운동을 폭력지향적인 파괴활동으로 중상모략함으로써 이 사건의 정치적 성격은 물론 현정권 자체의 폭력성과 부도덕성을 은폐하려는 것입니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이 사건이 비조직적·우발적으로가 아니라, 학생단체의 대표들에 의해 조직적이고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어야 했습니다. 그래야만 몇몇 관련 학생뿐만이 아니라 학생운동 전체를 비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총학생회장, 학도호국단 총학생장, 프락치사건 대책위원장, 복학생협의회 대표 등은, 그가 구체적으로 어떤 인간이며 어떤 행위를 실제로 했는가에 관계없이 선전을 위한 가장 손쉬운 희생물이 되어야만 했던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수법은 지난 수십년간 대를 이어온 독재정권들이 기회 있을 때마다 상투적으로 구사해온 낡은 수법을 그대로 답습한 것에 지나지 않으며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현정권은 막 출범한 서울대 학생회의 주요 간부의 활동을 실질적으로 봉쇄하는 동시에, 60만 대군을 동원해도 때려부술 수 없는 학생운동의 도덕성을 훼손시키는 데에 어느 정도는 성공한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마치 자신이 더 도덕적인 존재가 된 듯한 자기만족조차 조금은 맛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검찰 역시 사실을 밝혀내는 일보다는 경찰의 발표를 뒷받침하기에만 급급하여 대동소이한 내용의 공소를 제기하고 그것에만 집착하여 왔습니다. 사건 발생후 일개월도 더 지난 작년 11월, 관악경찰서 수사과 형사들이 김도형·손택만군 등 무고한 학생들에게 가혹한 고문을 가함으로써 공소사실과 일치하는 허위자백을, 형사들 자신의 표현을 빌자면, 짜내었다는 사실이 그 증거입니다. 즉 경찰은 본 피고인들이 ‘폭행법’을 위반하였다는 증거를 바로 그 ‘폭행법’을 위반하여 관련된 학생들을 고문함으로써 짜낸 것입니다. 그 짜내어진 허위자백이 증거로 채택된다는 사실을 못 본 체 하더라도 ‘법앞에서의 평등’이라는 중대한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전 혀 정당한 윤리적 기초를 갖지 못하였기 때문에 양심인으로서는 복종의 의무를 느낄 필요가 없었던 지난날의 긴급조치나 현행 ‘집시법’과 달리 이 ‘폭행법’은 지켜져야 하며 또 지켜질 수 있는 법률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각인은 현정권에 대한 정치적 견해에 따라 이 법 앞에서 불평등한 위치에 놓여 있습니다. 본 피고인은, 과분한 탓인지 모르겠으나, 학생들을 상습적으로 폭행·고문하는 각 대학 앞 경찰서의 정보과 형사들이 그 때문에 ‘폭생법’ 위반으로 형사소추당했다는 비슷한 이야기조차 들은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지난해 5월 19일, ‘민주화운동 청년연합’이 주최한 광주항쟁 희생자 추모집회에 참석하였다가 귀가하는 길에, 그녀 자신 제적학생이면서 역시 고려대학교 제적학생인 서원기씨의 부인 이경은씨가 동대문 경찰서 형사대의 발길질에 6개월이나 된 태아를 사산한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 부부는 이 법의 보호 밖에 놓여 있음이 누구의 눈에나 명백히 드러났습니다. 고소장을 접수하고서도, 검찰은 수사조차 개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본 피고인 역시 여러차례 수사기관에 연행되어 조사받는 과정에서 폭행당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지만 이 법의 보호를 요청할 엄두조차 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 누구에게도 협박 또는 폭행을 가한 일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본 피고인은 폭력법으로 유죄를 선고받고 말았습니다. 본 피고인이 굳이 지난 일을 이렇듯이 들추어냄은 오직, 흔히 이야기되고 있는 바 검찰의 정치적 편향성의 존재를 환기하기 위한 것입니다. 즉 이 사건을 담당한 경찰관 역시 앞에서 밝힌 바 현정권의 정치적 음모와 무관하지 않았음을 지적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결 론적으로 검찰이 주장하는 바 공소사실의 대부분은 불순한 정치적 목적을 위해 경찰이 날조한 사건 내용을 뒷받침하기 위한 것으로서, 한편에 있어서는 정권과 매스컴이 공모하여 널리 유포시킨 일반적인 편견이 기초 위에 서 있으며,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경찰이 고문수사를 통해 짜낸 관련 학생들의 허위자백에 의해 지지되고 있는 공허한 내용으로 가득찬 것입니다.
그러나 본 피고인이 이 사건에서 드러난 학생들의 과실과 본 피고인 자신의 법률적·윤리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하여 이렇듯 정권의 부도덕을 소리 높이 성토하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가짜학생에 대한 연행·조사가 윤리적으로 정당하다손치더라도, 이들에게 가한 폭행까지를 정당화할 의향은 없습니다. 조사를 위한 감금은 가능한 한 짧아야 하며 폭행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물론 현상적으로 폭력처럼 보인다고 해서 그것이 본질상 다 폭력의 영역에 속할 수는 없지만, 무력한 개인에게 다중이 가한 폭행은 비록 그것이 경찰에 대한 이유있는 적대감의 발로인 동시에 그들이 상습적으로 학생들에게 가해온 고문을 흉내낸 것이라 할지라도 학생운동의 비폭력주의에서 명백히 이탈한 행위라고 판단해야 할 것입니다. 또 폭행을 가한 당사자들이 스스로 나서서 책임을 감당하지 않은 것 또한, 비록 그것을 어렵게 만든 당시의 특수한 정치적 사정이 개재됐다손치더라도, 학생들이 가진 윤리적 결함의 표현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자신 폭행과 절대로 무관하며사건 전체와도 전혀 관계가 없다고 하여 틀림이 없을 총학생회장 이정우군이 스스로 모든 책임을 떠맡아 항소조차 포기했다고 하는 아름다운 행위가, 그 누구도 선뜻 폭행의 책임을 감당하려 하지 않음으로써 발생한 윤리의 공백상태를 어느 정도는 메꾸어 주었다고 본 피고인은 확신합니다.
본 피고인은 역시 언행이나 조사를 지시한 사실이 없지만(지시할 필요가 없었으므로), 만일 그럴 필요가 있었다면 언제라도 기꺼이 직접 그들을 연행·조사하였을 것입니다(그것이 위법임은 물론 잘 알지만). 본 피고인은 복학생 협의회의 사실상의 대표로서 개인적으로 비폭력의 원칙을 준수해야 할 소극적 의무에 부가하여 학생운동의 전체수준에서도 이 원칙이 관철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적극적 의무 또한 완수해야 할 위치에 있습니다. 따라서 문제의 9월 26일 밤 전기동·정용범 양인이 구타당하는 광경을 잠시 목격하고서도 그것을 제지하려 하지 않았던 본 피고인에게는 다른 학생들보다 더 큰 윤리적 책임이 있음에 분명합니다(법률적 측면에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또한 임신현·손형구의 경우에도 본 피고인이 사건에 접했을 때는 이미 감금 및 조사가 진행 중이었으므로 어떠한 지시를 내릴 필요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나 본 피고인 자신 조사를 위한 감금에 명백히 찬동했으며 또 잠시나마 직접 조사에 임한 적도 있기 때문에 법률을 어긴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며 그에 따른 책임이라면 흔쾌히 감수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의 경우, 가능한 한 짧은 감금과 비폭력이라는 원칙을 관철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며 실제로 이 원칙이 관철되었으므로 본 피고인은 아무런 윤리적 책임도 느끼지 않습니다.
어쨌든 상당한 정도의 법률적·윤리적 책임이 자신에게 있음을 떠맡기 위해 이정우군처럼 처신할 수도 있었을 것이며 그 또한 나쁘지 않은 일이었으리라 믿습니다. 그러나 이미 밝힌 바와 같이 너무나도 명백한 정권의 음모의 노리개가 될 가능성 때문에 본 피고인은 사실과 다른 것은 그것이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결코 시인하지 않으리라 결심하였고 또 그런 자세로 법정투쟁에 임해 왔습니다. 그래야만 본 피고인은 자신이 느끼고 있는 책임감이, 공소사실을 기정사실화시키기 위해 우격다짐으로 요구하는 그것과는 성질상 판이한 것임을 보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본 피고인은 이 사건의 재판이 갖는 정치적 의미가 무엇이며 이 사건을 우리 사회의 도덕적 진보의 계기로 삼으려면 사법부가 본연의 윤리적 의무를 완수해야 함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이 사건은 누적된 정권과 학원간의 불신 및 적대감을 배경으로 하여 수명의 가짜학생이 행한 전혀 비합법적이라 할 수 없지만 명백히 부도덕한 정보수집행위가 본질적으로 부도덕하지 않으나 명백히 비합법적인 학생들의 대응행위를 유발함으로써 빚어진 사건입니다. 지난 수년간 현정권이 보여준 갖가지 부도덕한 행위들 - 학원내에 경찰을 수백명씩이나 상주시키면서도 온국민에게 거짓증언을 한 치안당국자의 행위, 소위 자율화조치라고 하는 아름다운 간판 위에서 음성적인 확원사찰을 계속 해온(이에 관해서는 법정에서 상세히 밝힌 바 있음) 수사기관의 행위, 불순한 정치적 목적을 위해 이 사건조차 서슴지 않고 날조·왜곡한 행위 등 - 은 같은 뿌리에서 돋아난 서로 다른 가지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이 재판은 사건의 진정한 원인을 규명하여 그에 대한 처방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행위중 비합법적인 부분만을 문제삼아 처벌하기 위한 것입니다. 아마도 사법부 자체는 이처럼 부도덕한 정권의 학원난입 행위를 옹호하려는 의도가 없을런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사태의 전후맥락을 모조리 무시한 채 조사를 위한 연행·감금마저(폭행부분이 아니라) 형사처벌의 대상으로 규정한 1심의 판결은 지금 이 시간에도 갖가지 반사회적 목적으로 위해 교정을 배회하고 있을 수많은 가짜학생 및 정보원의 신변안전을 보장한 ‘가짜학생 및 정보원의 안전보장 선언’이 아니라 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본 피고인은 결코 학생들의 행위 전부에 대한 무죄선고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반복되는 말이지만, 부도덕한 자에 대한 도덕적 경고와 아울러 법을 어긴 자에 대한 법적 제재가 가해져야 하며, 허위선전에 파묻힌 국민에게는 진실의 세례를 주어야 한다는 것, 사태의 책임소재를 분명히 하지 않고서는 우리 모두의 도덕적 향상은 기대될 수 없는 것을 주장할 따름입니다. 법정이 신성한 것은 그것이 법정이기 때문이 결코 아니며, 그곳에서만은 허위의 아름다운 가면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때로는 추악해 보일지라도 진실의 참모습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 일 오늘날의 사법부가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正義)를 세우며, 또 그 정의가 강자(强者)의 지배를 의미하지 않는다면, 1심의 재판과정에서 매장당한 진실이 다시금 생명을 부여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본 피고인은 믿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아마도 이 사건으로 인하여 그렇지 않아도 쉽게 허물어버리기 어려울 만큼 높아져 있는 현재의 불신과 적대감의 장벽 위에 분노의 가시넝쿨이 또 더하여지는 것을 보아야 할 것이고, 언젠가는 더욱 격렬한 형태로 폭발할 유사한 사태를 반드시 만나게 될 것입니다.
지난 5년간 현정권에 반대했다 하여 온갖 죄목으로 투옥되었던 1,500여명의 양심수들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이 ‘신성한 법정’에서 정의로운 재판관들에 의해 유죄선고를 받았습니다. 야수적인 유신독재 치하에서도 역시 그만큼 많은 분들이 전대미문의 악법 ‘긴급조치’를 지키지 않았다 하여 옥살이를 하였습니다. 긴급조치 위반사건의 보도 또한 긴급조치 위반이었으므로 아무도 그 일을 말할 수조차 없었습니다. 변론을 하던 변호사도 그 변론 때문에 구속당했습니다. 지금에 와서 긴급조치가 정의로운 법이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별로 없지만, 그리고 그때 투옥되신 분들이 ‘반사회적 불순분자’ 또는 ‘이적행위자’였다고 말하는 이도 거의 없지만, 그분들을 ‘죄수’로 만든 법정은 지금도 여전히 ‘신성하다’고 하며 그분들을 기소하고 그분들에게 유죄를 선고한 검찰과 법관들 역시 ‘정의구현’을 위해 일하고 있다고 합니다. 누 군가가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사법부가 정의를 외면해 왔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법정이 민주주의의 처형장으로 사용되어 왔다”는 뜻일 것입니다. 누군가가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사법부가 정의를 세워왔다”고 말한다면, 그리고 그가 진정 진지한 인간이라면, 그는 틀림없이 “정의란 독재자의 의지이다”고 굳게 믿는 인간일 것입니다.
본 피고인은 그곳에 민주주의가 살해당하면서 흘린 피의 냄새가 짙게 배어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곳에서만은 진실의 참모습을 만날 수 있다는 의미에서의 신성한 법정에서 재판을 받고 싶습니다. 본 피고인은 자신에게 유죄를 선고하는 재판관이 ‘자신의 지위가 흔들리지 않는 한도 내에서만 정의에 관심을 갖는’ 그런 정도가 아니라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를 세우는’ 현명한 재판관이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실을 밝히는 일이야말로 정의가 설 토대를 건설하는 일이라 믿습니다.
이상의 논의에 기초하여 본 피고인은 1심판결에 승복할 수 없는 이유를 간단히 언급하고자 합니다. 본 피고인은 판결문을 받아보았을 때 참으로 서글픈 심정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무려 7회에 걸쳐 진행된 심리과정에서 밝혀진 사건의 내용과 거의 무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본 피고인이 그토론 진지하게 임했던 재판의 전과정이 단지 예정된 판결을 그럴듯하게 장식해주기 위해 치루어진 무가치한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았음을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우선, 「판결이유」의 ‘범죄사실’ 제 1 항 중 “······임신현이····· 구타당하는 것을 목격하고, 피고인 유시민은 성명불상 학생들에게 위 임신현의 신분을 확인·조사토록 하고···”라는 부분은 형식논리상으로조차 성립할 수 없었습니다. 본 피고인에게 지시를 받은 학생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이 증명되었다면, 어떻게 그가 성명불상일 수가 있습니까? 그리고 본 피고인이 한번도 이를 시인한 바 없으며, 백수택군 등 여러학생들의 진술은 물론이요, 임신현 자신의 법정진술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할지라도, 본 피고인이 임신현이 연행 구타되던 현장에 있었음을 증명하기란 불가능한 일인데 하물며 본 피고인이 성명불상의 누군가에게 어떠한 지시를 내렸다는 일이 어찌 증명 가능하겠습니까? 사실 본 피고인은 그때 그곳에 있지 않았습니다.
다음, ‘범죄사실’ 제 2 항 중 “·····위 김도인은 피고인 백태웅과 피고인 유시민 앞에서····· 구타하여 동인(손형구를 말함)에게 전치 3주간의·····다발성 좌상을 가한·····” 부분 역시, “백태웅과 유시민에게 조사받는 동안 한번도 폭행당한 일이 없다”고 한 손형구 자신의 법정진술에조차 모순됩니다.
그리고 ‘범죄사실’ 제 3 항 중 “피고인 유시민은·····동일(9월 26일을 말함) 21:00경부터 익일 01:00까지 피고인 윤호중, 같은 오재영 및 백기영, 남승우, 오승중, 안승윤 등과 같이·····(정용범을)·····계속 조사하기로 결의하고·····” 및 ‘범죄사실’ 제 4 항 중 이와 유사한 대목 역시, 본 피고인이 당시 진행중이던 총학생회장 선거관리 및 학생회칙의 문제점에 관해 선거관리 위원들과 장시간에 걸쳐 논의한 사실을 왜곡해 놓은 것에 불과하며, 이는 오승중, 김도형 등의 진술에 의해서도 명백히 밝혀진 일입니다.
이 몇가지 예는 특히 현저하게 사실과 다른 부분을 지적한 것에 불과하며 판결문 전체가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의 유사한 모순점을 내포하고 있음은 두말할 나위조차 없습니다. 이는 사건 전체가 본 피고인 및 학생대표들의 지히 아래 의도적으로 진행된 것처럼 보이게 하려는 정권의 의도를 반영하는 현상으로서, 기실 판결문의 내용중 대부분이 침소봉대·견강부회·날조왜곡된 지난해 10월 4일 경찰발표문을 원전(原典)으로 삼아 구속영장·공소장을 거쳐 토씨하나 바꾸어지지 않은 그대로 옮겨진 것에 대한 증거입니다.
1심판결은 이러한 이유로 인하여, 사건과 관련된 각 개인 및 집단의 윤리적 법적 책임을 명확히 함으로써 우리 사회 전체의 도덕적 향상에 기여해야 할 사법부의 사회적 의무를 송두리째 방기한 것이라 판단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거듭 밝히거니와 본 피고인이 이처럼 1심판결의 부당성을 구태여 지적한 것은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타당한 이유에 의한 유죄선고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끝으로, 현재 마치 '폭력 과격 학생'의 본보기처럼 되어 버린 본 피고인은 이 항소이유서의 맺음말을 대신하여 자신을 위한 몇 마디의 변명을 해볼까 합니다. 본 피고인은 다른 사람보다 더 격정적이거나 또는 잘난 체하기 좋아하는 인간이 결코 아니며, 하물며 빨간 물이 들어 있거나 폭력을 숭배하는 젊은이는 더욱 아니기 때문입니다. 본 피고인은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장 평범한 청년에 지나지 않으며 늘 "불의를 보고 지나치지 말라", "이웃의 아픔을 나의 아픔처럼 생각하라", "거짓말하지 말라"고 가르쳐 주신, 지금은 그분들의 성함조차 기억할 수 없는 국민학교 시절 선생님들의 말씀을 불변의 진리로 생각하는, 오히려 조금은 우직한 편에 속하는 젊은이입니다. 본 피고인은 이 변명을 통하여 가장 순수한 사랑을 실천해 나가는, 조국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실천하는 행위, 곧 민주주의의 재생을 요구하는 학생들의 투쟁 전체를 옹호하고자 합니다.
지 금으로부터 7년 전인 1978년 2월 하순, 고향집 골목 어귀에 서서 자랑스럽게 바라보시던 어머니의 눈길을 등뒤로 느끼면서 큼직한 짐보따리를 들고 서울 유학길을 떠나왔을 때, 본 피고인은 법관을 지망하는 (그 길이 여섯이나 되는 자식들을 키우시느라 좋은 옷, 맛난 음식을 평생토록 외면해 오신 부모님께 보답하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또 그 일이 나쁜 일이 아님을 확신했으므로) 아직 어린 티를 벗지 못한 열아홉 살의 촌뜨기 소년이었을 뿐입니다. 모든 이들로부터 따뜻한 축복의 말만을 들을 수 있었던 그때에, 서울대학교 사회계열 신입생이던 본 피고인은 '유신 체제'라는 말에 피와 감옥의 냄새가 섞여 있는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유신만이 살길이다"고 하신 사회 선생님의 말씀이 거짓말일 수도 없었으니까요, 오늘은 언제나 달콤하기만 했으며, 생각하기만 해도 가슴 설레던 미래는 오로지 장밋빛 희망 속에 감싸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진달래는 벌써 시들었지만 아직 아키시아 꽃은 피기 전인 5월 어느 날, 눈부시게 밝은 햇살 아래 푸르러만 가던 교정에서, 처음 맛보는 매운 최루 가스와 걷잡을 수 없이 솟아나오던 눈물 너머로 머리채를 붙잡힌 채 끌려가던 여리디 여린 여학생의 모습을, 학생 회관의 후미진 구석에 숨어서 겁에 질린 가슴을 움켜쥔 채 보았던 것입니다. 그날 이후 모든 사물이 조금씩 다른 의미로 다가들기 시작했습니다. 기숙사 입구 전망대 아래에 교내 상주하던 전투 경찰들이 날마다 야구를 하는 바람에 그 자리만 하얗게 벗겨져 있던 잔디밭의 흉한 모습은 생각날 적마다 저릿해지는 가슴속 묵은 상처로 자리잡았습니다. 열여섯 꽃 같은 처녀가 매주일 60시간 이상을 일해서 버는 한달치 월급보다 더 많은 우리들의 하숙비가 부끄러워졌습니다. 맥주를 마시다가도, 예쁜 여학생과 고고 미팅을 하다가도 문득문득 나쁜 짓을 하다가 들킨 아이처럼 얼굴이 화끈거리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이런 현상들이 다 ‘문제 학생’이 될 조짐이었나 봅니다. 그리고 그 겨울, 사랑하는 선배들이 ‘신성한 법정'에서 죄수가 되어 나오는 것을 보고 나서는 자신이 법복 입고 높다란 자리에 않아 있는 모습을 꽤나 심각한 고민 끝에 머리 속에서 지워버리고 말았습니다.
다 음해 여름 본 피고인은 경제학과 대표로 선출됨으로써 드디어 문제 학생임을 학교 당국 및 수사 기관으로부터 공인받았고 시위가 있을 때면 앞장서서 돌멩이를 던지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점증하는 민중의 반독재 투쟁에 겁먹은 유신정권이 내분으로 붕괴해 버린 10·26정변 이후에는, 악몽 같았던 2년간의 유신 치하 대학 생활을 청산하고자 총학생회 부활 운동에 참여하여 1980년 3월 '총학생회 대의원회 의장'이라는 중요한 직책을 맡게 되었습니다. 잊을 수 없는 그 봄의 투쟁이 좌절된 5월 17일, 본 피고인은 갑작스러이 구속 학생이 되었고, ‘교수와 신부를 때려준 일’을 자랑삼는 대통령 경호실 소속 헌병들과, 후일 부산에서 ‘김근조 씨 고문 살해'사건을 일으킨 장본인들인 치안 본부 특수 수사관들로부터 두 달 동안의 모진 시달림을 받은 다음, 김대중 씨가 각 대학 학생회장에게 자금을 나누어 받았다는 허위 진술을 해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구속 석 달 만에 영문도 모른 채 군법 회의 공소 기각 결정으로 석방되었지만, 며칠 후에 신체 검사를 받자마자 불과 40시간 만에 변칙 입대당함으로써 이번에는 ‘강집 학생'이 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입영 전야에 낯선 고장의 이발소에서 머리를 깎이면서 본 피고인은 살아 있다는 것이 더 이상 축복이 아니요 치욕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날 이후 제대하던 날까지 32개월 하루동안 본 피고인은 ‘특변자(특수 학적 변동자)'라는 새로운 이름을 가지게 되었으며 늘 감시의 대상으로서 최전방 말단 소총 중대의 소총수를 제외한 일체의 보직으로부터 차단당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그리고 영하 20도의 혹한과 비정하게 산허리를 갈라지른 철책과 밤하늘의 별만을 벗삼는 생활이 채 익숙해지기도 전인 그해 저물녘, 당시 이등병이던 본 피고인은 대학시절 벗들이 관계한 유인물 사건에 연루되어 1개월 동안 서울 보안사 분실과 지역 보안 부대를 전전하고 대학 생활 전반에 대한 상세한 재조사를 받은 끝에 자신의 사상이 좌경되었다는, 마음에도 없는 반성문을 쓴 다음에야 부대로 복귀할 수 있었으며 동시에 다른 연대로 전출되었습니다. 하지만 본 피고인은 민족 분단의 비극의 현장인 중동부 전선의 최전방에서, 그것도 최말단 소총 중대라는 우리 군대의 기간 부대에서 3년을 보낼 수 있었음을 크나큰 행운으로 여기며 남에게 뒤지지 않는 훌륭한 병사였음을 자부합니다.
그런데 제대 불과 두 달 앞둔 1983년 3월 또 하나의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지난해 세상을 놀라게 한 ‘녹화 사업' 또는 ‘관제 프락치 공작'이 바로 그것입니다. 인간으로 하여금 일신의 안전을 위해서는 벗을 팔지 않을 수 없도록 강요하는 가장 비인간적인 형태의 억압이 수백 특변자들에게 가해진 것입니다. 당시 현역 군인이던 본 피고인은 보안 부대의 공포감을 이겨 내지 못하여 형식적으로나마 그들의 요구에 응하는 타협책으로써 일신의 안전을 도모할 수는 있었지만 그로 인한 양심의 고통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처럼 군사 독재정권의 폭력 탄압에 대한 공포감에 짓눌려 지내던 본 피고인에게 삶과 투쟁을 향한 새로운 의지를 되살려준 것은 본 피고인과 마찬가지로 강제 징집당한 학우들 중 6명이 녹화 사업과 관련하여 잇달아 의문의 죽음을 당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동지를 팔기보다는 차라리 죽음을 택한 순결한 양심의 선포 앞에서 본 피고인도 언제까지나 자신의 비겁을 부끄러워하고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순결한 넋에 대한 모욕인 탓입니다. 그래서 1983년 12월의 제적 학생 복교 조치를 계기로 본 피고인은 벗들과 함께 ‘제적 학생 복교추진 위원회'를 결성하여 이 야수적인 강제 징집 및 녹화 사업의 폐지를 위해 그리고 진정한 학원 민주화를 요구하며 복교하지 않은 채 투쟁하였습니다. 이때에도 정권은 녹화 사업의 존재, 아니, 강제 징집의 존재마저 부인하면서 우리에게 ’복교를 도외시한 채 정부의 은전을 정치적 선동의 재료로 이용하는 극소수 좌경 과격 제적 학생들'이라는 참으로 희귀한 용어를 사용해 가면서, 어용 언론을 동원한 대규모 선전 공세를 펼친 바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9월 여러가지 사정으로 복학하게 되었을 때 본 피고인은 ‘민주화를 위한 투쟁은 언제 어디서나 어떤 형태로든 계속되어야 한다'는 소신에 따라 ‘복학생 협의회'를 조직하였습니다. 그러나 불과 복학한 지 보름 만에 이 사건으로 다시금 제적 학생 겸 구속 학생이 되었슬 뿐만 아니라 본 피고인의 이름은 ‘폭력 학생'의 대명사가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본 피고인은 이렇게 하여 5.17폭거 이후 두 번씩이나 제적당한 최초의 그리고 이른바 자율화 조치 이후 최초로 구속 기소되어, 그것도 ‘폭행법'의 위반으로 유죄 선고를 받은 ‘폭력 과격 학생'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본 피고인은 지금도 자신의 손이 결코 폭력에 사용된 적이 없으며 자신이 변함없이 온화한 성격의 소유자임을 의심치 않습니다. 그러므로 늙으신 어머니께서 아들의 고난을 슬퍼하며 을씨년스러운 법정 한 귀퉁이에서, 기다란 구치소의 담장 아래서 눈물짓고 계신다는 단 하나 가슴 아픈 일을 제외하면 몸은 0.7평의 독방에 갇혀 있지만 본 피고인의 마음은 늘 평화롭고 행복합니다.
빛나는 미래를 생각할 때마다 가슴 설레던 열아홉 살의 소년이
7년이 지난 지금 용서받을 수 없는 폭력배처럼 비난받게 된 것은
결코 온순한 소년이 포악한 청년으로 성장했기 때문이 아니라,
이 시대가 ‘가장 온순한 인간들 중에서 가장 열렬한 투사를 만들어 내는'
부정한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본 피고인이 지난 7년간 거쳐온 삶의 여정은 결코 특수한 예외가 아니라 이 시대의 모든 학생들이 공유하는 보편적 경험입니다. 본 피고인은 이 시대의 모든 양심과 함께 하는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에 비추어, 정통성도 효율성도 갖지 못한 군사 독재 정권에 저항하여 민주 제도의 회복을 요구하는 학생 운동이야말로 가위눌린 민중의 혼을 흔들어 깨우는 새벽 종소리임을 확신하는 바입니다.
오 늘은 군사 독재에 맞서 용감하게 투쟁한 위대한 광주 민중 항재의 횃불이 마지막으로 타올랐던 날이며, 벗이요 동지인 고 김태훈 열사가 아크로폴리스의 잿빛 계단을 순결한 피로 적신 채 꽃잎처럼 떨어져 간 바로 그날이며, 번뇌에 허덕이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부처님께서 세상에 오신 날입니다. 이 성스러운 날에 인간 해방을 위한 투쟁에 몸바치고 가신 숱한 넋들을 기리면서 작으나마 정성들여 적은 이 글이 감추어진 진실을 드러내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것을 기원해 봅니다.
모순투성이이기 때문에 더욱더 내 나라를 사랑하는 본 피고인은 불의가 횡행하는 시대라면 언제 어디서나 타당한 격언인 네크라소프의 시구로 이 보잘것 없는 독백을 마치고자 합니다.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
1985년 5월 27일
성명 류 시 민
서울 형사 지방 법원 항소 제5부 재판장님 귀하
광우병은 반드시 막아야 합니다
소의 심막(bovine pericardium)으로 가공하여 만든 인조뇌막과 관련한 논문을 쓰면서
알게 된 사실(2002년도 기준)은 광우병의 원인물질인 프리온을 제거하는 방법으로 현재 유일하게
(그러나 그 것이 100 % 프리온 제거하는 방법은 아니라는 전제하에..) 인정받는 방법은
양잿물에 (당시 논문에서 제시한 시간: 약 48시간) 담가놓는 것입니다.
식용에는 적용할 수 없는 방법이지요. 농림부 통상사무관은 광우병이 뭔지도 모르면서 협상에 임한 것입니다.
이 것이 대한민국입니다. 보건복지부의 광우병 예방 지침을 읽어보면 기가 막힐 것입니다.
한 정부에서 하나의 사실에 대해 전혀 다른 말을 하고 있으니말입니다.
이미 정부에서는 (복지부) 알고 있습니다. 광우병이 심각한 질환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정체도 잘 모르고 치료법도 없습니다. 저는 미국 소 도축장에는 가보지 못했습니다.
이건 제 상상입니다만, 도축시에 사용하는 전기톱이 항상 소 등뼈를 피해간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일부 자료 화면 보면 전기톱으로 등뼈를 가르는 것 같습니다. )
설사 아니라고 해도 어쩌다 이 전기톱이 등뼈 부위를 약간 건드리고 척수와 주변에
뇌척수액이 줄줄흐르는 상황을 만들면 어떻게 될까요?
그 소와 도축에 사용된 전기톱은 프리온으로 범벅이 될 것입니다. 이걸 어떻게 할 까요?
양잿물에 48시간 담궈놓을까요? 작업하다 말고? 글쎄요..
미국은 이미 영국에서 200 여명이 넘는 사람이 광우병으로 죽은 것을 알면서도
목축업자들의 이익을 대변해서... 소의 부산물로 소에게 사료를 먹일수 없게 하니까 이제는 소 도축 후에 남은 온갖
내장 뇌 뼈를 갈아서 닭 오리에게, 다시 닭오리가 죽으면 그걸 도축해서 다시 소에게 먹이는 ....
참 내 .. 이걸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그야말로 인면수심입니다..
최소한의 인간성을 잃어버린 나라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이런 나라에서 이런 방식으로 키우고 도축한 소고기를 수입하는 거
자체가 위험한데...
미국 지들은 물론 남들 다 안먹는 30 개월 이상 소를 부위에 상관없이.. 수입해다가
곰탕, 수육, 편육을 만들어 먹으면... 우리나라는 거대한 광우병 임상 실험장이 될 겁니다. 단연코... 가장 먼저 들어갈 곳은 학교와 군부대....
이 나라에서 가장 어리고 꽃같은 청춘들을 대상으로
인류 역사상 전무 후무한 실험이 광범위하게 진행될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단순히 안좋은 소고기를 수입한 것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희망이 없습니다.
단연코... 군대에서 소고기국을 어떻게 끓이는지 생각해 보면 금방 답이 나옵니다.
지금처럼 미국산 소고기가 안전하다고 국민을 기만하는 정부하에서는
당연히 학교 군부대는 미국산 소고기가 도배를 할 것입니다.
대한민국도 돈 앞에서는 장사 없습니다.
학교 교장선생님들도 급식 관련 비리로 문제가 되지 않습니까?
믿을 사람 없습니다. 정부도 저모양인데... 아마도 우리나라는 10 여년 후에는 광우병 역학에 관한한 가장 많은 증례와
가장 많은 데이터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인류 공영에 이바지 할 수 있겠네요...
초등학생부터 감염된 경우 .. 청년기에 감염된 경우 어떻게 될지... 비교도 해보고 ... 한민족이 희생해서 지금 아는 것 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은 광우병에 대해서
전인류가 정말 많은 것을 알게 되니..... 그러나 아마도 한민족은 전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환영 받지 못할 것입니다.
걸어다니는 광우병 위험물질로 간주될테니...
국적을 바꾸는게 현명할 것입니다. 대규모 광우병 발병 전에 말이지요...
정말 말로 다할 수 없이 두렵습니다. 이 것이 정녕 과장이라면 좋겠습니다.
미국산 소고기 자체를 싫어하는 것이 아닙니다.
미국산 소고기는 자국에서 생산하는 소고기에 대해서 철저한 검역을 하지 않습니다.
걷지도 못하는 광우병의심소를 도축해서 저소득층 학교 급식에 공급했다가 방송나가자 리콜했습니다. 자본주의 를 넘어선 돈에 미친나라 미국.. 이 곳에서 만들어지는 생명을 위협하는 불량식품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안먹으면 되지 않느냐..
맑은 물에 잉크 한방울 떨어지면 다시 맑게 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 물 다 버려야 합니다.
육수를 만들어서 먹는 우리 민족 식습관을 생각해보세요..
미국산 소고기를 다루는 식당에서 사용하는 도마와 칼을 생각해 보세요...
제가 얘기 하나 해드릴께요.. 해태 타이거스 모 투수가 간질로 선수생활을 마감했습니다.
원인은 뇌낭미충증.. 돼지고기를 날로 먹어서 기생충이 뇌로 들어가 석회화되면서 간질이 발생한 것이지요..
의대교수님들은 소고기 돼지고기 함께 다루는 식당에서 소고기 육회 절대 안먹습니다. 왜? 도마 칼을 같이 쓸테니.... 실제로 도마 칼 자국 사이 사이에 기생충 충란 들어갑니다. 돼지고기 썰때에.. 프리온은? 아마 촉촉히 젖어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위험한 소고기를 우리 땅에 들이는 것 자체가 어떤의미인지 아시겠지요?
쇠고기는 라면스프에도 들어가고 화장품에도 첨가됩니다.
단순히 소고기 안먹겠다고 해서 끝나는 게 절대 절대 아니란 말입니다.
참 불쌍한게 라면을 주식으로 드시는 저소득층 노인들 TV에서 본적이 있는데... 참 눈물 납니다.
우리는 지금 (잘사는) 미국*들도 안먹는 쓰레기 고기를 수입하려하고 있습니다. 지금 전세계를 떨게한 서브프라임 부실문제 도 미국놈들 잔머리쓰다가 이제는 도대체
손실이 얼마인지도 모르는 상황이 되어버렸습니다.
이제 미국이 또하나의 선물을 우리에게 주려 합니다.
광우병... 이미 알려진 위험물질을 이렇게 다루는 것은 미필적 고의 살인입니다.
(유럽은 이런 면에서 동물성 사료를 금하는 것에 엄격합니다. 이미 확인하고 봤으니까..
미국은? 알지만 그냥 무시합니다. 목축업자들의 이익을 위해서...
이쯤 되면 미국은 본질적으로 경찰국가가 아니라 깡패국가라는 생각이 드는 군요..)
이런식으로 불량소고기 공급하면 내가 지금 함께 살고 있는 아내 자식들이 프리온에
감염되었는지 불안해 하며 살날이 오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일본은 미국산 소고기 광우병 위험과 관련하여 학자들의 의견을 구하였는데,
돌연 학자들이 사퇴하였습니다. 정부가 정해진 답을 요구했기 때문이지요..
이 것은 당시 일본에서 대단한 충격이었습니다. 5명의 학자가 자문을 포기하고 사퇴해버린 것입니다. 또하나... 지금 헌혈 수혈 장기 기증 ..가장 큰 문제가 무엇입니까? 바로 감염입니다.
스크리닝에 의해서 100 % 걸러낼 수 없는 바이러스 질환 특히 에이즈, c형 간염 등이 문제가 되지요..
열심히 한다고 해도 수혈사고로 문제가 생기고 있습니다.
광우병이 발생하고 실제로 문제가 된다고 인식되는
15년 쯤 후에는 가공할 공포가 엄습할 것인데
그중 에서 가장 주목할 곳은 바로 병원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광우병 센터가 어디있는지 아십니까? 평촌 성심병원입니다.
이 곳에서 관련 부검을 다한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광우병 환자를 부검하면 수술 당시 사용한
수술 기구들은 버려야합니다. 병원마다 다 그럴 필요가 없고 그만큼 위험하니까
사실 어느 병원도 선뜻하려하지 않을것입니다. 그런면에서 성심병원에 고마워해야할 거 같군요..
어쨋든 ..
어느 병원 어느 의사도 광우병 부검을 원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광우병이 실제 발병보다 훨썬 적은 숫자만 드러난다는 말이 여기서 나옵니다.
아시겠지요.. 의심 가도 유가족도 부검을 원치 않고
(그 가족들은 광우병에서 자유로울까요? 가능성이 더 높지요..)
의사들도 적극적으로 권하지 않습니다.
부검에 들어간 사람들도 에이즈 만큼 두려운게 광우병이란 말이지요. 지금 이렇게 허술하게 일을 벌여서 대규모 광우병 발병이 실제 상황이 되면
종합병원 메이저 수술은 아수라장이 될것입니다.
바이러스와 비교도 할 수 없이 작은
프리온을 걸러내는 게 쉬울까요?
바이러스 양이 아주 적으면 검사기록지에 not detectable 이라고 뜹니다.
검사기계가 찾아내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없는게 아니라 못 찾아낸다고요...
수술 앞둔 환자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수혈 받으며 수술을 할 건지
아니면 죽든지 결정해야할 것입니다....
결국 지금 죽든지 나중에 광우병으로 죽든지.. 과장이라고 생각될지 모르겠지만...
아마 의사들도 수술장에서 철수 할지 모릅니다.
헌혈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 수술한
수술 기구가 오염되었는지에 의심가는 상황이 오면
답이 안나옵니다. 대란이 올 수 있습니다. 일본 녹십자회사는 에이즈 환자의 혈청이 들어있는 혈액을 포함한 다수의 혈액을 pooling하여
여기서 추출한 혈액응고인자를 만들어 팔았더랬습니다.
미국의 혈우병 소년들이 이거 사다가 맞았다가 에이즈로 사망하고
이 회사는 손배소 걸려서 파산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딱히 이 경우처럼 인과 관계가 명확하지 않은 식품의 경우는 손배소도 못해요.. 미국은 광우병 환자가 우리나라에서 발병하면, 그 것이 미국 소고기와 관계가 있다는 걸
증명하라고 할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정확히 말하면 우리나라 정부는 그 걸 증명할 의지도
능력도 없을 것입니다. 왜? 소고기 이력 시스템도 없고 유통되는 소고기를 제대로 파악 못하고
있으니까. 자료도 없을테고 역학조사나 인과관계도 증명 못할 것입니다. 미국은 자동 면피입니다. 우리가 광우병에 걸리든 말든 그건 지들과는 관계 없는 일이란 말입니다. 우리가 정신차리고 지켜도 모자랄 판에 온통 미국*들이 주무르는 국제 수역 사무국이 먹으라면
먹겠다는 것은 미쳤다고밖에는 달리 설명할 수 없습니다. 네 정확히 미쳤습니다. 종합해보면 아직까지는 위험이지 실제 상황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위험은 우리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위험입니다.
일본은 이미 6년전에 겪은 일을, 그보다 더 최악의 선택을 하고 있는 이 정부를 보면서
이 명박대통령의 가벼움, 일구 이언, 남대문 화재가 예사로이 넘길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불길한 생각이 듭니다.
차라리 노무현 전대통령의 말은... 듣기는 거북해도 타당한 말이었건만, 이 건 .... 기만입니다.
전문가들은 알고 있습니다.
인의협 오늘 성명발표했습니다. 정치색이 있지만 문제 없는 걸 죽는 병이라고 할 사람들은 결코 아닙니다. 의사 협회 건의했습니다. 금명간 성명서 정도는 나올 거 같습니다. 저는 아들 학교에 가서 학교 선생님들 대상으로 강의 할 겁니다. 내 자식이 지금
위험합니다. 안된다면 급식때문에 유학 보낸다 말 .. 나올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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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들도 광우병으로 사망했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11년간 채식했는데…인간광우병으로 생명 잃어
▲ 11년간 채식했지만 결국 인간광우병으로 사망한 크레어 톰킨스. ⓒBBC
1997년 8월, 이미 수십 명의 목숨을 앗아간 인간광우병으로 24세의 여성, 크레어 톰킨스가 생명을 잃었다. 그의 죽음은 당혹스러웠다. 그는 11년 동안 육류를 섭취한 적이 없는 채식주의자였다. 1986년 이전에 그가 먹은 쇠고기가 문제였을까? 그 때는 아주 극소수의 소만이 광우병 증상을 보이던 시점이었다.
인간광우병처럼 동물의 뇌에 스펀지처럼 구멍이 뚫려 죽는 전염성 해면상 뇌증 연구로 노벨상을 받은
칼턴 가이듀섹은 이렇게 설명한다. "(소뿐만 아니라) 닭도 (광우병 소의 뼈를 갈아 만든) 사료를 먹고
감염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닭에게 그런 것을 먹이면 배설물로 빠져나오지.
그리고 닭똥은 채소의 비료를 만드는 데 사용된다네." 채식주의자도 결코 안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에서도 지적된 이른바 '교차 감염'의 위험성을 지적한 것이다. 돼지, 닭에게 충분한 단백질을
보충하기 위해서 소의 뼈를 갈아 만든 사료를 먹인다. 이렇게 비육한 돼지, 닭을 도축한 후, 다시 그 뼈를 갈아
만든 사료를 소에게 먹이게 되면 결과적으로 광우병이 계속 확산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우유, 버터 역시 안전하지 않다. 1995년 인간광우병으로 사망한 18세의 남학생은 8년 동안 매년
고모의 농장을 방문해 살균 처리하지 않은 생우유를 마셨던 것으로 확인됐다. 비록 그 농장의 소 떼에서는 1995년 당시까지는 광우병이 보고되지 않았지만 말이다. 광우병 잠복기의 소에서 나온 우유가 그 남학생의 목숨을 앗아갔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지난 2월 9일 영국에서는 수혈로 인한 3번째 인간광우병 전염 사례가 확인됐다. 적혈구, 혈장, 혈소판 등이 모두 인간광우병의 매개가 된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가디언>은 3월 27일 "인간광우병이 수혈이나 외과 수술 장비를 통해 과거에 알려진 것보다 더 쉽게 전염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경고했다. 한국도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니다. 2000년대 이후 국내에서는 인간광우병으로 의심되는 환자가 여러 명 있었다. 2001년 3월 서울대병원은 한 36세 환자를 인간광우병 환자로 판명했다. 그러나 유족의 반대로 부검을 못해서 최종 판단은 유보되었다. 즉 '비공식'적으로는 이미 한국도 인간광우병 발생국일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정부는 좀 더 철저한 대책을 세우기보다는 광우병 위험이 큰 미국산 쇠고기를 전격 수입하는 결정을 내렸다. 미국은 위험한 쇠고기를 국력을 앞세워 국외로 수출한다는 눈총을 받자 최근에는 소에 대한 광우병 진단 수준을 10분의 1로 낮추는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상당수 전문가들이 미국의 광우병 실태가 은폐됐다고 여기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 정부, 10년 전 영국 정부 '판박이'
▲ <죽음의 향연>(리처드 로즈 지음, 안정희 옮김, 사이언스북스, 2006) ⓒ프레시안
이 책은 1990년대 중반, 인간광우병으로 공황 상태에 빠진 영국에서 정부가 얼마나 사태를 악화시키는 역할을 했는지 냉소적으로 묘사한다. 영국 정부는 광우병 소로부터 전염된 것이 분명한 15세 여학생 빅토리아 리머의 가족을 찾아가 이렇게 경고한다. "경제를 생각하셔야지요. 유럽 공동시장을 생각해 보세요." 당시까지 영국 정부는 광우병 소가 인간에게 인간광우병을 유발할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뿐만이 아니다. 수많은 과학자의 자문을 받은 한 영국 정부의 보고서는 이렇게 쓰고 있다. "최선의 방법은 향후 20년 이상 동안 영국에서 발생하는 모든 인간광우병 사례를 모니터하는 것입니다." 한 양심적인 과학자는 이렇게 비판했다. "그들은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아내기 위해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죽는지 지켜보자'고 말하고 있다."
결국 영국 정부는 광우병이 본격적으로 나타난 지 10년이 지난, 1996년 공식적으로 광우병이 인간광우병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음을 인정했다. 그나마 발표도 비정상적으로 이뤄졌다. 보수당 내각 관료들이 모두 '쉬쉬'하며 발표를 주저하자, 보건부 장관 스티븐 도럴이 하원에서 연설을 하던 중 관련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이런 영국의 경험을 보자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지금 한국 정부의 모습과 똑같기 때문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를 위해서 수년간의 '통상 현안'이었던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쉽게 허락한 한국의 농림부는 '유럽 공동시장' 운운한 영국 정부와 다르지 않다. 무조건 "미국산 쇠고기는 안전하다"고 강변하는 모양도 어쩌면 그리 똑같은가?
불행히도 현재까지는 인간광우병에 걸리면 죽을 수밖에 없다.
인간광우병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진 변형 프리온은 고온, 고압으로도 제거되지 않는다.
음식물 속에 숨어 있는 이 질병은 감염 후에 몇 달 혹은 몇 년이 지나서 뇌 손상이 진행되기 전에는
근본적으로 확인도 불가능하다. 오죽하면 가이듀섹은 장미와 같은 꽃을 키울 때 흔히 사용하는 동물성 비료의 사용도 자제할 것을 경고했겠는가. 실제로 광우병이 영국에서 한창 확산될 때 영국왕립원예협회는 정원사들에게 이렇게 공지했다. "장미, 관목에 혈액과 뼈를 원료로 하는 비료를 줄 때에는 장갑, 방진 마스크를 꼭 착용하시오." 영국의 한 과학자는 1990년대 후반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수백 명 정도에서 그칠 수도 있지만 유럽 전체에 번져서 성서에 나오는 수준의 재앙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수만 명의 환자가 발생하는 대재앙의 가능성을 마주보아야 한다. (…) 지금 당장 행동에 나서야 한다. 우리는 해답을 찾아야 한다."
미국 국민들도 미국산 쇠고기 먹기 불안해한다.
미국의 시민단체와 언론들도 미국산 쇠고기의 위험성을 심각하게 경고하고 있습니다.<뉴욕타임즈> "살코기는 안전하다"는 주장만을 되풀이하는 정부를 믿을 수 없다며 "티본 스테이크나 갈비처럼 뼈가 붙은 부위의 살코기를 먹는 것은 위험하며, 뇌나 척수 등의 신경조직이 포함되기 쉬운 분쇄육과, 뼈 부근의 조각고기로 만드는 소시지, 피자토핑, 미트볼, 햄버거 패티등도 피해야 한다"는 지침서를 만들었습니다.
미국 치매환자 13%는 인간광우병 환자. 인간 광우병과 비슷한 증세를 보이는 치매환자가 1979년 653명이었던 것에 반해 2002년에는 58,785명으로
무려 9,000%에 육박하는 증가율을 보이고 있습니다.
피츠버그 의대의 보고서는 이 중 13%가 인간광우병으로 추정된다고 보고했습니다.
광우병 위험성 은폐하는 미국정부 미국의 쇠고기 수출업체인 크릭스톤핑스가 자비로 자사의 소를 모두 광우병 검사하겠다고 하자
미국 정부가 금지시켰습니다. 미국인들은 안전하다고 미국산 쇠고기를 먹는 것이 아니라,
정부의 은폐속에서 광우병의 위험성을 미쳐 모르고 먹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 연간 3700만 마리 도살, 단 0.1%만 광우병 검사 99.9%의 미국산 쇠고기는 광우병 감염여부를 확인조차 할 수 없습니다. 연간 평균 500만 마리를 도살하고
이를 모두 검사하는 일본은 현재까지 광우병 발생이 30마리가 넘는데 3700만 마리를 도살하는 미국은
단 3마리만이 광우병 발생이 보고되었습니다.
2004년의 미 농무부 감사관 보고서에 "소도축장의 광우병 특정위험물질 제거관리가 부적절하며,
광우병 검사방법이 육안으로만 이루어졌고, 그 육안검사도 5~10만 이루어졌으며,
또한 감시대상 도축장 1/6에서 광우병으로 의심되는 소가 식육으로 처리되고 있다."고 보고되고 있습니다.
살코기만 먹으면 되지? 변형 프리온 단백질은 주로 뇌,척수, 척추, 내장 등 주로 신경조직에 많이 분포되어 있다고 알려졌지만,
최근 연구를 통하여 근육이나, 살코기로도 전염되고, 오줌, 혈액, 젤라틴, 우유등에도
광우병 유발물질이 들어있음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미국은 갈비를 포함한 뼈를 포함 전면개방 요구하고 있고, 지금까지의 정부의 태도를 보면 추석 차례상에서
미국 소갈비를 보게 되리라는 것을 예상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끓여먹으면 �찮을까? 광우병의 원인체인 변형 프리온은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아니기 때문에 600도가 넘는 온도에서도,
포르말린에도 죽지 않으며, 땅에 묻어도, 심지어 방사선이나 자외선에도 살아남아
현재까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소독법으로는 파괴할 수 없습니다.
치료하면 되지? 치사율 100% 인간광우병 광우병은 뇌의 신경세포가 죽으면서 스펀지처럼 구멍이 숭숭 뚫려 이상을 불러우는 병으로,
인간 광우병은 광우병에 걸린 소를 먹은 인간에게 발병합니다. 인간광우병은 발병하면 치료방법이 없는,
걸리면 무조건 죽을 수 밖에 없는 무서운 질병입니다.
특히 광우병은 잠복기가 짧게는 수년에서 길게는 수십년에 이르기 때문에 한 세대 뒤에 광우병 공포가 전면화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미국산 쇠고기 안 먹으면 되지??
음식점 ' 원산지 표시제도'가 제대로 시행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미국산 쇠고기를 한우(및 호주산 쇠고기)로 속여서 파는지 알수 없습니다.
더 큰 문제는 저가이므로 학교(교내식당,급식소), 병원, 군부대, 식당 등 대량 급식소에 공급될 가능성이 높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미국산 쇠고기를 먹게 됩니다.
아울러 냉면육수, 라면스프, 화장품 등 소를 이용해 만드는 용품이 600가지가 넘는데
언제 어디에 미국산 쇠고기가 쓰였는지 알 수 없습니다.
한국인에게 특히 위험한 광우병 한국인은 예로부터 광우병 위험 부위인 소머리 사골, 갈비, 내장 부위 등을 즐겨 먹는데다,
전 세계에서 인간광우병에 걸릴 확률이 가장 높은 유전자형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은 MM 형, MV형, VV형 세 가지 단백질유전자형이 있는데,
지금까지 확인된 인간광우병 환자는 모두 MM유전자형이었습니다.
유럽이나 미국인의 경우에는 MM형이 35%에 지나지 않으나, 한국인은 무려 95%나 되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신뢰할 수 없는 쇠고기 검역체계 한국 뼛조각 발견 못하고 통과 한국은 국립수의과학검역원에서 X선 이물질검출기를 통한 투시검사, 육안검사 등 수입쇠고기에 대한 검역을 하고 있고, 길이 규정에 따라 3mm 이상의 뼛조각이 발견되면 수입금지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지난 7월 29일, 대형마트인 H매장에서 판매한 미국산 쇠고기에서 7mm와 1cm의 뼛조각이 발견되었었고, 이제는 30개월 미만의 미국산 LA갈비가 졸속협상을 통해 빠르면 5월 중순에 수입이 재개됩니다.
美 쇠고기 생산현장…"나는 `지옥`을 보고 왔다"
한국방송(KBS)의은 오는 29일 오후 8시에 '얼굴 없는 공포, 광우병' 프로그램을 방송할
예정이다. 이 프로그램을 연출한 이강택 PD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체결 이후 멕시코의 상황을 다룬 'NAFTA 12년,
멕시코의 명과 암'을 제작해 지난 6월 4일 방송되도록 함으로써 한미FTA에 비판적인 방송 보도의 물꼬를 텄다. 이강택 PD는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던 지난 8월부터 이 프로그램을 준비했으며, 10월에는 미국을 직접 방문해 미국
축산자본이 운영하는 '공장형 농장(factory farm)', 쇠고기 수출작업장, 동물성 사료 제조공장 등을 직접 둘러봤다. 이
PD는 현지취재 소감을 한 마디로 요약했다. "나는 지옥에 다녀왔다."
▲ 분뇨 위에서 뒹굴고 있는 미국의 소떼. ⓒKBS
- 동물성 사료를 생산하는 공장도 직접 취재했다는데, 실태는 어떤가?
과연 미국 정부와 한국 정부가 공언한 대로 광우병으로부터 안전한가? "안전? 현장을 보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현재 미국 정부는 소의 뼈, 뇌를 갈아서 만든 '육골분 사료'를 금지했을 뿐 동물성 사료는 여전히 허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랜더링 공장은 낮에는 가동하지 않는다. 왜 그런지 의아했는데, 정문에서 지켜보고 서 있으니까 저녁 무렵에 트럭이 줄지어 공장으로 들어가더라. 그 트럭에는 그날 인근에서 소비된 온갖 음식물 쓰레기, 각종 도축장에서 온 부산물이 가득하다. 그것이 그대로 분쇄돼 동물성 사료로 가공된다. 그 음식물 쓰레기 안에는 온갖 것, 예를 들어 광우병 감염 위험이 높은 부위도 들어 있을 것이다. 육안으로도 소의 뼈, 내장 등이 트럭에서 쏟아져 내리는 것이 보였다." - 미국 정부는 쇠고기 수출 작업장에서 광우병 감염 위험이 높은 부위를 철저히 제거하고 있음을 강조해 왔다. "웃기는 소리다. 현장에 가봐야 하는데…. 일단 바닥에 피가 흥건히 고여 있는 지저분한 곳에서
아주 빠른 속도로 작업이 이뤄진다. 그런 속도로 작업이 진행되는데
광우병 감염 위험이 높은 부위가 섞이지 않는다면 그게 이상한 일이다.
더구나 기계톱이 사용되기 때문에 쇠고기의 뼛조각이 살코기에 섞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종양 등을 포함한 오염된 살코기가 그대로 소비자에게 공급될 가능성도 높다. 현지 시민단체가 실상을 고발하기 위해서 잠입해서 찍은 영상을 보면 그런 실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타이슨푸드, 카길 등이 돈을 벌기 위해서 소비자의 건강은 헌신짝처럼 저버리고 있는 실상을 사람들이 더 많이 알아야 한다."
▲ 동물성 사료를 만들기 위해 뼈, 부산물 등을 옮기고 있다. ⓒKBS
- 미국 사람은 쇠고기를 잘 먹는데, 그런 실상이 미국 안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고 있나? "거대 축산자본이 온갖 수단을 통해 실상이 알려지지 못하도록 훼방을 놓고 있다. 일단 언론의 취재가 거의 불가능하다. 아담스 농장, 랜더링 공장을 취재하면서 여러 차례 취재를 제한받았다. 물리적 폭력의 위협에 처하기도 했다. 이 축산자본은 온갖 로비, 징벌적 손해배상 소송 제기 등으로 양심적인 정치인이나 언론인의 입을 막는다. 미국에서는 오염된 쇠고기에 대한 리콜이 실시될 때도 그것을 판매한 기업의 이름은 공개되지 않는다. 오프라 윈프리가 1996년 '죽은 소를 갈아서 살아 있는 소에게 먹인다'는 내용의 책 <미친 카우보이(Mad Cowboy)>의 저자 하워드 라이먼의 얘기를 듣고 "다시는 햄버거를 먹지 않겠다"고 발언했다가 텍사스 목장주협회로부터 1200만 달러의 손해배상 소송을 당한 것도 한 예일 것이다. 그래도 점차 미국 사람도 쇠고기의 위험을 알아 가고 있다.
1990년대부터 미국 안에서 쇠고기 소비량이 급감하고 있다.
미국의 축산자본이 국외 시장에 눈독을 들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한미 FTA를 위해서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을 허용하고 말았으니 그들로서는 얼마나 환영할 만한 일이겠는가?"
▲ 기계톱을 사용하기 때문에 살코기에 뼛조각이 섞일 수밖에 없다. ⓒKBS
- 이미 미국산 쇠고기 수입은 결정이 됐다. 어떤 대응 방법이 있을까? "일본과 비교해보면 한국 정부의 대응은 아쉽기만 하다. 일본 정부는 국내 450만 마리에 해당하는
모든 소에 대해서 광우병 검사를 실시하고, 고기를 구입하는 소비자가 해당 고기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춘 후 미국과의 협상 과정에서 자국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다. 일본 국민은 이마저도 못 믿겠다며 수입재개가 허용된 지 두 달이 지난 지금도 60% 이상이
미국산 쇠고기를 기피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은 어떤가? 그 흔한 공청회 한번 열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미국산 쇠고기가 들어오면 학교급식,병원급식 등에는
광우병 위험이 있는 값싼 미국산 쇠고기가 무방비 상태로 공급될 게 뻔하다.
한국 정부는 뒷일을 어떻게 감당하려고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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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우병 쇠고기에 대하여 미국은 자국내에선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전량 리콜을 하고,
국민 전체가 비상한 관심을 보이는 반면,
우리는 안 먹으면 그만이지라는 의식이 아직도 팽배한 것 같습니다.
또한 값싸게 한 번 실컷 먹어보자라는 의견도 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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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우병을 발병시키는 변형 프리온 단백질은 단 0.001g만 있어도 광우병을 유발하지만
600도 이상의 고온에서도 파괴되지 않습니다. 먹는 것 뿐만 아니라
소를 원료로 하는 젤라틴(아이들이 먹는 젤리), 인공관절, 의약품, 화장품, 라면 스프 등에도
들어가기 때문에 결코 안전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출처] '채식'하면 안전할까…광우병의 모든 것 알려주마 -광우병 관련기사입니다(한울벗채식나라 ° °。) |작성자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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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도 5년후면 광우병이 발병해 사지를 비틀며 죽어갈지도 모릅니다.
광우병은 치사율 100%입니다.치료법도 없기때문에 격리되서 죽어가는 길 뿐입니다.
당신은 설마 안걸릴꺼 라구요?
소가 얼마나 다양한곳에 들어가는지 아시나요? 이제 부터 열거해 보겠습니다.
라면스프- 쇠고기분말
젤리- 젤라틴
마시멜로(초코파이 및 기타 여러식품)- 젤라틴
각종 조미료- 쇠고기 분말
햄버거- 각종 부위를 갈아넣음
스포츠 드링크
과자- 쇠고기분말과 칼슘 분말
설렁탕
갈비탕
사골국(곰국)
곱창
만두-갈은 소고기
우유-프리온 단백질 존재하는걸로 확인 됨
알약캡슐-젤라틴
탈지분유(아기분유,케�,쿠키,과자등에 들어감)
오뎅
피자
스테이크
갈비
김밥
비빔밥
육개장
냉면
장조림
떡볶이
육포
샤브샤브
불고기
볶음밥
카레
미역국
돈가스소스
외 기타 쇠고기가 들어가는 모든 음식
그리고 화장품까지
광유병균이 가장 많이 있는곳이 머리고기 부분인데 한국인은 이 머리부분을 즐겨먹죠.
당신은 하루종일 위에 열거한것중에 적어도 하나는 섭취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식당에 가서 고기가 안들어간 메뉴를 시켜 먹어도 음식에
광우병걸린 소고기가 들어간 조미료를 썼다면요? 광유병균은 살균해도 방사선에도 죽지 않습니다.
만약 식당에 갔는데 광우병걸린 소고기를 썰었던 칼로 당신이 먹을 채소를 썬다면요?
100%걸립니다. 5년이든 30년이든 발병해 죽어가는 일만 남은거죠.
[출처] 광우병과 미국 소고기 수입에 관하여... ( 첫번째 )|작성자 태 자
광우병의 증상
인간광우병은 증상이 바로 나타나지않고 잠복기간이 짧으면 3년~5년에서 길면 10년으로
잠복기간에도 아픈데 하나없이 평상시 같습니다.
그렇기때문에 자신이 광우병에 걸렸는지 안걸렸는지,
혹은 증상이 언제부터 나타날지 모르기때문에 더 무서운거죠
인간 광우병증상
난데없이 웃고 울고 잠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소리를 지름
증상이 심해지며 심지어 혼자서 계속 넘어지기까지 한다.
나중에는 몸을 움직이지도 못하고 음식물도 삼키지 못해
생명을 연장하려면 배에 호스를 꼽아 영양분을 보급해야하며
후에는 고통스러워서 소리없이 울다가 죽는다.
시체를 해부해보면
뇌에 구멍이 뻥뻥뚫려있음..
그러나 광우병 진행중에 자기자신은 치매상태..
초기에는 자기 무시, 무감동, 안절부절 양상의 치매증세를 나타내며 쉽게 피로하거나,
과다수면이나 불면의 수면 장애와 방향감각 상실이나 다른 고도 대뇌기능 이상이 나타난다.
간대성 경련이 대개 질병 시작 6개월 이내에 나타나며 그 외 소뇌 기능장애나 대뇌 신경마비가 오게 된다.
대개의 환자는 증상이 나타난 후 3~6개월 내에 사망하게 되며, 5~10%의 환자는 2년 이상 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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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긴 글 읽느라 수고하셨습니다.
관심깊게 읽어 내려오신 분들은 현 사태의 심각성을 아시겠죠
윗 글에 나열된 것들을 제외하고도 광우병 감염자의 타액이나
심지어 수돗물 또는 공기를 통해서도 감염될 수 있다고 하니
5월, 미국산 소고기가 우리나라로 들어오는 순간,
광우병 감염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볼 수 있겠군요.
아니, 어쩌면 피할 방법도 있을지 모르겠네요
어떤 음식도, 물도 먹지않고 숨도 쉬지 않는다면 말이죠...
이런 정보들을 가능한한 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심각성을 깨달을 수 있도록 퍼트려야 합니다
그리고 어떻게든 막아야 합니다
가만히 눈뜨고 앉아서 당할수만은 없는 일이지 않습니까
지금 막지 못한다면,
5년뒤 혹은 10년뒤의 상황은 말안해도 잘 아시리라 봅니다.
감사합니다.
미국 거주 유학생이 본 광우병 사태
(필독) 재미교포의 새로운 글공감 : 5 ( 5 - 0 )뉴욕한인회장의 "미국 사람들도 다 먹는 거니까 괜찮다"라는 입장 표명에 반발하여 미국 교포가 모 의원 게시판에 적을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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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의원님.
저는 뉴욕에서 공부하고 있는 유학생입니다. (6년 전에 왔습니다.)
이번 한미-FTA 굴욕협상을 보면서,
솔직히 정치에 관심없었던 많은 유학생과 교포들조차도 멀리서 고국과 동포들걱정에
일상생활에 지장받을 정도의 스트레스와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음식 앞에 이념없다고, 이 것은 반미도, 반이명박도, 반한나라당도 아닌
국민의 가장 기본적인 생존권에 관련된 문제이기에
정치라면 신물나고, 생각한 적도 없었던 사람들조차도
이 먼곳까지 와서 공부하면서, 힘든 이민 생활하면서도 걱정이 태산이란 말씀입니다.
며칠전 뉴욕한인회장 이세목부터 시작해서 조금전 청문회에서 워싱턴 전한인협회회
장? 이란 사람이 나와서 하는 말까지 보고서, 정말이지 더이상은 참을 수 없어서 의원
님의 이름을 검색후 뉴욕시간으로 지금 새벽 4시가 넘었음에도 가입하고, 글을 남깁
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1. 미국에 살고있는 미국인과 한국교포 및 유학생들은
한국으로 수입되는 30개월 이상의 소를 절대 먹지 않습니다.
이 곳 마트에서 유통되는 미국소는 등급별로 나뉘어져 있는데,
프리미어, 초이스, 셀렉트, 스탠다드 가 이것입니다.
프리미어가 가장 최상급, 스탠다드가 하위급인데,
통상 미국가정집에서 사용되고 있는 소고기는 초이스급 이상이며,
가장 낮은 스탠다드 급도 30개월 미만의 소. 입니다.
물론 그보다 낮은 등급의 소고기도 있는데, 이것이 바로 육골분사료와 애완용동물의 사료에 들어가는 등급으로 일반마트나 식당엔 유통이 금지된 것입니다.
법적으로 30개월 이상의 소를 미국소비자들은 마트에서
절대 구할수가 없단 말입니다.
2. 뉴욕과 엘에이 그리고 워싱턴 등 한인회장은 제멋대로 성명서를 발표하고
그것이 마치 전교포의 뜻인양 행세하고 있는데, 절 대 아 닙 니 다 !
그들은 여기서 한인회장의 감투.는 쓰고 있을지몰라도 대다수의 교포 및 유학생은
그들을 인정하지 않을 뿐더러, 알고 있지도 않습니다.
한인회장 투표율이 몇 프로 인지 아시나요? 5프로 입니다 5프로 ㅎㅎ
정말 똑똑하고 능력있는 교포분들은 그 쓰레기집단근처엔 가지도 않습니다.
한인회장이니 뭐니 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여기서 유통업,부동산업,요식업을 하던
사람들이 자기네들끼리만 회장이네 뭐네 하는거란 말입니다.
참고로 뉴욕한인회장 이세목은 미소고기유통업자 랍니다.
더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시간이 너무 늦은 관계로 오늘은 이만 줄이겠습니다.
제가 지금 너무 피곤해서 말이 두서없었음을 사과드리구요,
오늘 청문회에서 의원님께서 준비해오신 많은 자료와 발언을 보고서, 그래도 국회에
이 먼땅에서조차 지금 모두가 우리나라는 망했다라고 한탄하는 가운데
자격없는 한인회장이란 사람들이 제멋대로 전 미주교민들의 생각을 정반대로
자신들만의 이익으로 거짓말하는 것에 분노한 교민들이 청원을 낸 것입니다.
지금 이 곳 미주한인들이 이용하는 사이트에서도 알바들이 이상한 댓글을 달고,
관리자가 임의로 통보없이 관련글들을 삭제하고 있어 아직 서명수가 작지만,
이것을 시초로 제발 의원님께서 진실된 미주교포들의 억울함을 풀어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축제 속의 나그네(진고 교지에 실려 있는 글)
부제:나의 어린 왕자들과 공주들을 위하여...
글쓰기에는 전혀 재주가 없어 게으름만 배어 나오는 내가 이렇게 감히 펜을 드는 것도 이번 걷기대회가 나에게 준 가르침이라는 것을 부인할 길이 없다. 古 정주일님이 말씀하셨던가? "일단 한 번 해 보시라니깐요." 그래, 길은 끝없이 이어져 있지만, 떠나는 길에는 목적지가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 끝을 확인하기까지에는 얼마나 많은 우여곡절과 자신과의 부단한 싸움이 기다리고 있을 것인지도 떠나서 겪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것이리라.
흐릿한 일상에 길들여진 나를 밀어내고 길들여지지 않은 나를 발견할 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그리고 사랑하는 동생 그리고 조카(정현우)와 인생의 큰 추억을 함께 만들어 보고 싶은 설레임 등등의 의미를 부여하며 '진주를 걷는 사람들(진걷사)'이란 단체가 주관하는 '진주라 천리 길 걷기 대회(55Km)'에 발을 내디뎠다. 진주 물 박물관 앞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식전 행사의 리듬에 몸을 맡기고 마음의 준비를 가다듬고 있었다. 아마, 나처럼 다리가 허용하는 거리까지 만이라도 걷기에 최선을 다해 길들여져 보리라는 마음가짐을 한 사람들도 상당수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자위를 하며 무덤덤한 현우의 얼굴만 흘낏거리고 있었다. 괜히 '현우! 할 수 있겠지?'하며 자문하는 듯 타성에 젖은 물음을 여러 번 허공에 날리고 있을 그 순간에 드디어 출발 신호가 떨어졌다. 정말 몰랐던 길고도 긴 극기 체험 학습의 시작이었다.
물 박물관을 출발하여 시원한 저녁 공기가 허허거리는 평거동, 신안동 강변도로 길을 따라 걸어 멋들어진 음악 분수 공연에 이르러서는 감탄사를 연발하다가 보무도 당당하게 진주성안으로 진입하였다.
평소 같으면 꽤 먼 거리였지만 워낙 가야할 길이 멀었던 터라 아주 경쾌한 한 시간 여의 유희였었다.
진주성내를 걸으며 남강을 바라보니 '진주 국제 등 축제'가 열리고 있는 촉석루 앞과 주변의 야경은 양쪽에 있는 진주 남강 다리와 천수교의 불빛과 어울려 정말 신비로운 풍광을 뽐내고 있었다. 진주성 정문을 빠져 나와 아래에 있는 강변도로 길을 따라 시원한 강바람을 온 몸으로 느껴 가며 걷고 걸어 뒤벼리 도로 밑 오솔길을 즐기며 가노라니 뒤벼리가 끝나는 지점에서 우리를 맞이하는 첫 번째 확인 지점, 그 곳에서 우리는 등이나 가슴에 부착하고 있는 참가 번호증 위에다 토끼 도장을 받았다. 제 1확인 도장과 토끼와의 연관성을 생각해 보면서 발길은 어느새 진양교를 건너고 있었다.
진양교를 지나 칠암동 강변도로 길을 따라 거니는 맛은 또 다른 정감을 불러 일으켰다. 아마 익숙한 무엇이 나의 마음을 끌어 당기고 있었으리라. 내 사랑하는 어린 왕자들은 지금 자고 있겠지. 꿈 속에서 나를 찾고 있을까? 금빛 여우의 목덜미를 만지며 다른 행성을 찾아 여행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을까? 문득 보고 싶다는 간절함이 가슴을 치는 걸 보니 벌써 나의 다리가 길들여진 만큼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것인가? 토실한 그리움을 토해내는 사이, 어느 듯 우리는 흐느적거리는 불빛을 머금고 고대의 신전마냥 우뚝 서 있는 문화 예술 회관을 지나 축제 분위기를 한껏 돋우고 있는 노점들을 지나치고 있었다. 가슴속에 꿈 하나 숨기고 자신을 팔기 위해 무거운 가방 들고 이 곳에 모여 든 사람들... 그들의 하루 하루 속 자그마한 순간이라도 축제 분위기에 춤추는 자신을 발견하기를, 아니 춤출 수 있기를... 세일즈맨의 죽음에 나오는 윌리 로우맨처럼 비록 한 평생 축제 속의 나그네일지라도 술 한 잔에 목을 축일 시각만큼은 그들의 삶이 바로 축복 내린 축제이기를... 사람들의 행렬에 뒤섞여 남강을 임시로 건널 수 있도록 연결해 놓은 부교 입구에 다다르자 나그네인 우리들에게만 특권이 부여되었다. 아니, 이런 행운이... 가슴속을 새털로 간질이는 듯한 이 기분... 걷기 대회 참가자들만 부교를 이용해 남강을 건널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사-알-랑 사-알-랑 흔들리는 부교 중간쯤에서 빛으로 물들여진 형형색색의 온갖 등들을 바라보노라니 감동에 젖어 시간을 잊고 마냥 머물고 싶었지만, 늘 그래 왔듯이 오늘밤도 나는 나그네였다. 마음 작정한 나그네였다. 부교를 건너 다시 진주성내를 거쳐 보건소 옆 진주성 담을 따라 걷다가 음악 분수 공원에 이르러 남강변의 산책로로 접어들었다. 차츰 왼쪽 다리에 통증이 전해 오고 있었다. 오금이 당기기 시작했다. 나는 오늘 내 삶의 진정한 교통순경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 강변로가 끝나갈 무렵 대회에 참가한 사람들과 함께 앉아 스트레칭을 하며 근육의 긴장을 풀었다. 다시 출발, 금강 주유소에 도착하니 18km지점이라고 알려주었다. 왼쪽과 직진의 갈림길, 내 마음의 교통순경은 왼쪽을 은근히 가리키고 있었지만, 어린 왕자는 아무런 흔들림도 없이 곧장 앞으로 치달았다. 표정의 변화도 없었다. 내 안의 교통순경은 이미 고개를 숙이고 홀린 듯 어린 왕자를 따라 발길을 터억 디뎌 놓고 있었다. 지나고 나면 돌아올 수 없을 그 길을 우리는 그렇게 떠나가고 있었다. 현우의 우스개 소리를 들으며 진양호 공원 안으로 들어서 제 1 매표소를 지나 길잡이를 맡으신 pacemaker께서 제 2 매표소 쪽으로 방향을 틀 것이라 예상을 했지만 그것은 완전히 우리만의 생각이었다. 사전에 걷기 대회 코스를 봐 두지 않은 것이 예상치 못한 마음의 고초를 겪게 하는 첫 순간이었다. 어린 시절 어린이날 부모님을 따라 놀러와 올라가 보곤 처음으로 보는 365계단을 올라야 하는 것이었다. 주최측의 치밀함에 우리의 추억은 더욱 진해지고 단단해져 있지만, 그것을 오를 당시에는 365계단을 비추는 아치형의 조명등마저 밉상스럽게 보일 정도였다. 현우도 처음에는 계단수가 3백 6십 5개가 맞는지 헤아려 본다며 여유를 부렸지만 반쯤 올라간 이후에는 말마저 잃고 힘든 기색이 역력했다. 드디어 제 2 체크 포인트! 모두들 바닥이나 바위에 털썩 주저앉아 휴식을 취하며 걸어 왔던 길에 대한 음미보다는 가야할 길에 대한 설레임으로 마음을 다독이며 한 켠의 두려움을 밀어 내고자 정신을 재무장시키는 듯 보였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제 3의 안식과 그리움을 향하여 진양호 밤길을 걸어 내려갔다. 인기척이라곤 밤길을 걷는 걷기 대회 참가자들뿐, 동물들도 모두 잠들어 버린 이 시간을 우린 이미 내일의 해를 향하여 한 걸음 한 걸음을 보태어 나갔다. 온갖 동물들의 배설 냄새가 밤 공기를 뒤덮어 버린 듯 숨결 마디 마디 코를 찔렀다. 이제는 오른쪽 다리마저 오금이 저려 오고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파 오기 시작했다. 다시금 정말 가야 하는가라는 생각이 다리와 허리의 신경을 파고 들며 바늘로 찌르는 듯 했다. 어둠으로만 뒤덮인 길, 간간이 보이는 동반자들의 야광 팔찌들만이 우리가 아직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었다. 아직 반도 못 걸었는데, 얼마나 아파야 얼마나 괴로워야 이 고달픈 여행이 끝날 것인가? 그래, 우선 컵라면 맛이나 한 번 보고 결정을 하자. 현우가 그 때쯤에는 나의 마음을 편하게 들어주지 않을까? 그래 일단은 그 곳까지 가보는 거다. 전에는 차를 타고 가면서 무심코 지나쳤던 길이기에 얼마를 걸어야 기다리던 장소에 도착하는 지를 알 수 없어 더욱 우리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드디어 25km지점, 많은 사람들이 제각기 가장 편한 자세로 휴식을 취하며 밤참을 즐기고 있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먼저 그 자리를 점하고 있으리라고는 생각을 하지 않았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 특히 연세가 있는 분들께서도 완보는 당연한 일이라는 듯 태연한 표정을 달빛에 내맡기고 있어 컵라면과 막걸리 한 잔을 마시며 슬밋 완보를 하는 쪽으로 욕심보를 내밀어 보았다.
현우는 그런 우문은 아예 던지지도 말라는 표정이었으니까. 또 걸음을 재촉했다. 절룩 절룩, 절룩 절룩.
휴식처에서 모퉁이를 돌아설 때쯤 다리를 펼 수 없을 정도로 오금이 저려 왔다. 혼자 몇 발치 떨어져서 다리를 억지로 뻗어 보았다. 조금 나아진 것 같았다. 아직 1km도 못 걸었는데 벌써부터 이래서야, 과연 갈 수 있을까? 현우가 뒤를 돌아 보았다. 나는 다시 걷고 있었다. 이야기라도 조금 나누면 괜찮을 것 같아 우리는 밤 공기에 이런 저런 얘기를 수놓으며 빨리 이 시간이 지나 훗날 좋은 추억거리가 되게 해 달라며 우리의 고통을 달래어 보았다. 추측하건대 아마 한 55km의 반을 통과하고 30km지점이라고 여겨지는 곳에 다다르자 제법 위용이 있는 나무자락아래 노곤한 몸을 누이고 다리의 근육을 풀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커다란 물집이 잡혀 있는 천근 만근 되는 다리를 끌고 그 곳을 파고 들었다. 어둠 속이 아니었어도 체면을 내세울 형편은 전혀 못 되었으리라. 하지만 현우는 앉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앉았다 일어서면 물집이 잡힌다며 끝내 서성이면서 다리의 피로를 풀고 있었다. 태권도 3단이 될 때까지 익힌 그만의 know-how일 거라 생각했다. 마냥 머물러 있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흐르지 않는 물과 짖지 않는 개다.'라는 대학 시절 교수님의 말씀을 떠울리며, 나는 또 흘러가야 했다. 제 3지점의 접선을 위하여 걷는 게 아니라 현우의 도도한 물결 속에 이끌려 가야 했다. 정말 소리내어 울고 싶을 만큼 두 다리는 오금이 저려 아예 펼 수도 없을 지경이었지만 소리없이 속으로 피빛 울음을 삼키며 흐르다 주저 앉고 질퍽거리다 끊어지고 다시 숨결을 불어 넣어 녹록치 않은 여정을 이어 나가야 했다. 대평벌로 들어가는 입구에 다다르자 대회 운영을 돕고 있는 차량 한 대가 시야에 들어왔다. 달콤한 유혹이었다. 하지만 나의 멘토는 벌써 그 짙은 어둠 속으로 길을 잡은 터였다. 왜 하필 그 때, 영미문학을 통틀어 가장 위대한 여류시인의 한 사람으로 회자되는 에밀리 디킨슨의 시가 뇌리를 스쳤는지... "사랑은 - 생명 이전이고 죽음- 이후이며 천지창조의 시작이고 지구의 해석자" 지친 육신은 영락없는 패잔병의 모습일지라도 정신만은 천지 창조의 시작을 위해 다가가는 거룩한 영혼의 모습이고 싶었다. 하지만 곧 '갈까 쉴까 말까'를 헤매는 길바닥 위의 영혼이었음이 드러났을지라도...
진양호 자락을 따라 대평들로 가는 그 길이 그토록 굽이가 많은 줄 몰랐다. 시시각각 변하는 나의 변덕 만큼이나 저 굽이를 돌아서면 따뜻한 꿀차가 기다리고 있는 대평벌, 아니 저 굽이만 돌아서면, 아니 저 굽이만... 아스팔트 바닥에 쓰러져 하늘을 보아도 별은 보이지 않고, 그 누구의 희망 어린 속삭임도 나의 가슴을 쓸어 주지 않았다. 왼쪽 다리는 오른쪽 다리로, 육체는 정신으로 부축해 가며 그 비명 마디 마디에 불러 보고 싶은 이름들, 부여 잡고 싶었던 순간들, 그리고 앞으로 가야 할 나의 길을 새겨 가며 그렇게 이를 악물고 우리는 제 3 체크포인트인 대평들에 터-ㄹ-썩 주저 앉았다. 새벽 4시. 따뜻한 꿀차를 마셨다. -이제 포기해도 어느 정도 체면은 서리라. 아무런 준비도 없이 이만큼 온 것만 해도 대단해.- 생각은 굴뚝같아도 차마 현우 앞에서는 입에 담을 수 없었다. '아, 과연 얼마만큼 남았을까? 이제는 오로지 정신력 하나로 버티고 가야 한단다. 약 5시간을 걸으면 도착할 수 있을 거란다. 여태껏 정신력으로 이 길을 왔는데, 정신력이 벌써 바닥을 보이고 있는데, 그토록 태연하게 말씀하시는 그 분이 미웠다. 5시간이라니! 1분이 힘겨워 생각만으로도 눈물이 핑 도는데 5시간이라니! 빨리 이 지점이라도 벗어나야겠다.' 저 깊은 어둠 속에서 한참 공사 중인 남강 박물관이 우리를 끌어 당기고 있었다. 한 걸음 한 걸음이 꼭 천 걸음같은 고뇌를 절며 절며 시꺼먼 강물이 출렁이는 다리 위를 건너 나아갔다. 반을 지났다는 위안 때문인지 이제 현우는 물론이고 동생마저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되뇌이면서 이를 악물었다.. 나는 그렇게 끌려가고 있었다. 또 얼마를 걸었을까, 기어코 왼 발바닥의 물집이 터지고 말았다. 미리 준비를 하여 물집을 바늘과 실로 터뜨려야 했지만, 귀찮은 마음 반, 신발을 벗기도 싫을 정도로 지쳐 버린 탓에 그냥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놔 둔 것이 결국 터지고 말았다. 발바닥을 바닥에 정면으로 대일 수가 없었다. 눈물이 찔끔 나올 정도로 쓰리고 아팠다. 결국 도로 가에 주저 앉아 버렸다. 왼쪽 양말은 터져 나온 물기로 젖어 있었다. 오른쪽 양말을 벗으니 이 놈의 발바닥도 터질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었다. 동생과 현우의 발도 나의 발과 다르지 않았다. 우리는 터지지 않은 발이라도 휴대폰의 희미한 불빛을 빌려 핀으로 물기를 빼내야 했다. 가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20km는 더 남았을 것 같은데, 그래도 가기 위해서는. 이제는 아예 하나의 육체가 천당과 지옥으로 나뉘어져 버렸다. 상체가 아무런 고통도 없이 그냥 다리 따라 이끌려 가는 천국이요 유토피아라면, 허리 아래로는 구석 구석에서 살려 달라 아우성치는 아귀들의 지옥이었다. 나는 그 지옥의 사슬들을 철거렁 철커덩거리며 천국을 떠받들고 가는 고행자요 순례자였다. 천국과 지옥은 이 세상마냥 나의 한 몸 속에서 그렇게 잉태되어 서로가 서로를 밀어내며 버둥거리고 있었다. 뒤쳐져서 따라가다 보면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더욱 강해질까 봐 염치없이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왼쪽 다리를 더욱 절룩거리며 조금 나아가다 쉬고 다시금 조금 나아가다 쉬고 어느덧 날이 서서히 밝아와 현우, 동생, 그리고 나는 바로 그 날이면서도 다른 하루의 아침에 다시 일어서고 있었다. 우리는 하나로 누구도 스러지지 않고 하루를 넘어서고 있었다. 해는 서서히 우리를 비추고 우리가 가야 할 길을 보여 주니 아주 잠깐이었을지라도 목표 의식이 생기고 한결 마음이 밝아지는 것 같았다. 저 멀리 다른 걷.는. 사.람.들.도 눈에 들어왔다. 달리 길은 없었다. 울며 절며 가는 수 밖에. 진수 대교를 한 5km 남겨 둔 지점에서 완전히 짜내지 못한 오른쪽 발바닥의 물집마저 결국 터지고 말았다. 다행히 왼쪽 발바닥은 모든 물기를 다 쏟아 내고 어느 정도의 고통에는 적응을 한 후였고, 때마침 4.5km pacemaker께서 오른쪽 발바닥 물집 터진 곳 위에 테이프를 발라주신 것이 아주 도움이 되었다.(이 글을 통해서나마 그 인자하게 생기신 그 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꽤 먼 거리를 전진, 또 전진해 나아갔다. 대략 4km정도는 족히 됨 직한 거리를 쉬지 않고 죽을 힘을 다해 걸어갔다. 어젯밤 내내 그리던 진수대교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움이 지나치면 병이 된다던가?' 좀 쉬고 싶었다. 아니 쉬어야 했다. 진수 대교를 눈 앞에 두고 우리는 다시 주저 앉아 정신을 추스린 후에 진수대교를 향해 나아갔다. 드디어 제 4체크포인트인 진수대교에 들어섰다. 하지만 다시 진수 다리 초입에서 우리의 다리를 10여분간 다독거려 주어야 했다. '이제부터 10km. 기어서라도 가지, 그걸 못 가겠어.' 마음만은 분명 그러했을 것이리라. 오기라도 부리고 싶었으리라. 인천에 있는 막내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앞으로 남은 거리를 얘기하니 함께 고통을 느끼기라도 하듯 애처로워 하는 목소리가 귓전을 타고 폐부 깊숙이 들이 박혔다. 그 붙박힌 정으로 우리의 정신은 우리의 육신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 다시 출발, 진수대교 정말 롱(long) 다리였다. 걸을 때는 1km를 넘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다리를 지나고 나서 현우가 확인시켜 준 길이는 830m, 어쨌든 이제 남은 거리가 한자리수로 접어들었다. 또 쉬었다. 진양호반의 아름다움도 이미 지옥길의 한 배경이었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진양호를 따라 끝간 데없이 이어져 있는 그 길을 쉬고 걷다, 쉬고 걷다를 얼마나 반복했을까? 호수길을 벗어나 또 우리는 쉬었다. 저 굴다리만 지나 왼쪽으로 돌면...^^ 조금씩 얼굴에 웃음이 돌았다. 육신은 이제 천국 쪽으로 향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죽을 힘을 다해 다시 걸었다. 굴다리 건너편에선 대회 운영을 도와 주시는 두 분이 안내를 하고 계셨다. '나의 얼굴에 미소마저 감돌고 있는 게 아닐까?^^' 겸연쩍은 탓에 얼굴을 숨기고 싶어 바닥에 시선을 드리운 순간, 이게 무슨 일인가? 아니 왜 버-ㄹ-건 화살표가 오른쪽으로 틀어져 있을까? 잘못 보았겠지. 아니 다른 화살표도 분명 왼쪽이 아니라 오른쪽을 가리키고 있는 게 아닌가? 아울러, 안내하시는 분들의 손짓도 분명 오른쪽이었다. 아니 뭐 이런 ...! 그냥 주저 앉고 싶었다.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들며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고 싶었다. 온갖 못되고 못난 생각이 밀려왔다. 바로 달려가 이 분노를 터뜨리고 싶었다. 하지만, 우리는 절대 달려갈 수가 없었다. 아니, 걸어갈 수도 없었다. 기어갈 수도 없었다. 그러나 주저앉아 그대로 포기할 수는 더더욱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지 가야 했다. 현우도 동생도 기대감이 무너져 내린 그 허망함을, 그 분노의 에너지를 완보하고 말겠다는 의지로 휘휘 감아 우리는 다시금 그 큰 키를 조금씩 조금씩 쓰러뜨려 갔다. 마지막 지점에서 우리는 머리를 짓이기며 통과하리라. 마지막 체크포인트, 유수교. 이제 목적지까지 4.5km. 가자, 가자, 가자, 가자, 가자, 죽을 힘을 다해! 유수교를 건너 삼계 4거리로 가는 중간지점에서 어머님과 첫째 동생의 응원을 받았다. 늘 고마운 가족들. 정말 종착점이 보이는 듯 했다. 꽝. 꽝. 꽝. 지금 당장 어디에라도 누이고 싶은 나그네의 그 지옥같은 육신을 끌고 축제속 천당으로 우린 달려 들어갔다. 장장 14시간 20분 여의 여정이었다.
마지막으로, 이 고난의 여정 동안에 나의 못난 소리를 들으며 기분이 상했을 하늘, 땅, 바람, 강물, 동생과 현우,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직 길들여지지 않아 가슴앓이를 하던 내 안의 나에게 용서를 구하고 싶다. 그리고 무던히도 우리의 완주를 도와 주기 위해 도움과 격려를 아끼지 않으신 대회 관계자 분들과 함께 대회를 수행하면서 우리의 어린 왕자 정 현우의 힘을 북돋워 주신 모든 분들께 늦게나마 이 글을 통해서 감사를 드립니다.
토요기행
요즘은 시절도 하수상하여 독립기념관을 방문해보고 싶었다.
경상남도 진주에서 차를 달려 거의 3시간 남짓한 거리, 아침부터 서두르지 않으면 하루만에 다녀오기엔 벅찬 일임엔 틀림없었다. 어제는 고조부님 제사를 모신 관계로, 늦잠이 그리운 토요일 아침, 하지만 나의 아이들에게 이 나라의 참모습을, 질곡의 역사를 수박겉�기로나마 보여주고 싶었다. 아니 각인되었으면 했다. 어머님을 모시고 아내와 아들 두 놈과 함께 길을 떠났다. 그런데, 이게 왠 일인가? 첫걸음부터 좀체없던 실수를 하고 말았다. 고속도로 차선을 잘못 탄 것이었다. 그저께와 어제 2틀동안의 피곤이 풀리지 않은 탓이라 여겼다. 실없는 농담 한마디로 20분 뒤쳐진 기분을 추스리며 대진(대전-진주)고속도로에 우리를 진입시켰다. 동생들로부터 전화가 한 통화씩 왔다.(합이 세 통^^)너무나 먼 여행길이라 다른 형제들의 걱정도 컸지만, 특히 대전에 둥지를 틀고 있는 막내동생의 걱정은 그리움을 너무 둘둘 말아놓은 듯했다.^^ 사랑스러운 나의 가족들. 잔뜩 큰 소리를 치며 앞으로 앞으로 내달았다. 함양 휴게소에서 잠시 커피 한 잔에 하늘 한 번 보고, 곧장 독립기념관까지 치달려, 도착한 시간은 11시 48분. 더욱 훈훈한 봄기운을 느끼며 독립기념관안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둘째놈은 감기탓에 좀 칭얼거렸지만, 정면에 서서 한국인의 기상을 보여주는 듯한 거대한 탑이 우리를 반겨주었고, 어떤 외적도, 특히 쪽발이놈들은 얼씬도 못하게끔 휘날리는 수없이 많은 태극기들이 진법을 구사하며 서 있었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충무공 이순신장군의 진법인지, 삼국지에 나오는 진법인지는 중요하지도 않았다. 한승조나 지만원같은 이 나라의 기생충들이 오금을 펴지 못할 것이라는 느낌만이 그득했다. 더구나 태상왕, 광개토대왕비에 이르러서는 좁쌀같은 일본놈들의 왜곡이 그 큰 의기앞에서 으스러져 형체도 없이 사라지는 것 같아 저절로 어깨가 세워지는 듯 했다. 잠시 후엔 기와 지붕을 이고 있는 백악관의 40배정도(단기로 따져 한민족의 역사가 미국의 역사의 약 40배)되는 앞이 훤히 트인 건물 앞에 도착했다. 조금 뒷 편의 양쪽에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한국인을 담은 부조를 양 팔 삼아 8도를 나타내는 8인상이 하늘을 향해 치닫듯 거대하게 얽혀 있었다. 숙연함속에서 저 상의 크기만한 한민족의 기상을 떨칠 날을 기원하면서 전통체험관을 시작으로 우리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비통했던 과거들을 다시 한번 더 심장 가득 담아두려 동분서주했다. 어머님과 아내는 일제시대의 만행, 특히 고문하는 장면을 보여주는 곳에서는 눈시울이 뜨거워 보였다. 나도 그러하였으니 어머님들이기에 더욱 여린 모습이였으리라. 물론 그 마음속에서 이 세상의 제일 강한 힘이 솟아나는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약 3시간 30분동안 간접체험을 하고 난 모습엔 자부심 마디마디 핏빛 영혼들이 배여 우리의 나아갈 길을 인도하여 주었다. 부디 아팠던, 아니 피눈물나도록 쓰라렸던 과거를 눈에, 심장에 아니 온 몸, 모든 영혼 마디마디 각인, 또 각인시켜서 다시는 그렇게 민족이 짓이겨지는 미래를 만들지 말라는 가르침이었다. 질곡의 물레방아속이 아니라, 위에서 발로 밟으며 물레방아 틈틈이 박혀 있는 검은 사꾸라, 썩은 좁쌀들을 팅팅 튕겨내며 힘차게 다시 돌리라는 진언이었다. 독립기념관 문을 나설때 하늘은 조금씩 여위어 가고 있었지만, 우리들의 가슴속은 뜨거운 핏덩이로 점점이 채워져 있었으리라.
MBC 미디어 비평이라는 프로그램을 보고
솔트 레이크 시티 동계 올림픽,
세계 인류의 평화와 보다 알찬 나아감을 위한 행사라기 보다는 개막식의 찢어진 성조기에 단 하나의 국가를 위해 짜여진 각본에 충실하고자 했던, 그리하여 성조기 이외의 모든 국기에 대한 모멸감을 은연중에 드러내며 일백년 올림픽의 역사에 큰 쇠막대기를 꽃아, 스포츠를 통해 공명정대한 정신을 기르고자 하는 세계인의 정신을 갈기갈기 찢어 발기던 철없는 아해, 골목대장 주도하의 동네 운동회 같았던 그 대회를 보고 나는 울분을 금치 못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아마 이 땅의 거의모든 분들이 저와 같은 심정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반만년의 올바른 심성과 나라를 위한 올곧은 충정으로 살아온 우리는 힘만 믿는 저 오만무도한 침략자의 후손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그러기에 무조건적인 쇼비니즘이 아닌 참다운 애국의 시선으로 느끼는 바가 있어 다음 내용을 올립니다.
며칠 전 날 밤에 저는 MBC의 '미디어 비평'이라는 프로그램을 시청하고 있었습니다. 그 날의 비평은 '솔트레이크 시티 동계 올림픽과 관련된 조선일보사의 잘못된 기사에 관련된 내용'이었습니다. 김동성 선수의 경기 오심과 관련시켜 미국을 비판하는 내용과 김동성 선수가 격분하여 태극기를 내팽겨치는 것을 미국을 비난하는 것과 같은 중량감으로 다룬 조선일보의 기사는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도 문제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잠시후 한때 그 방송사의 '100분 시사토론'을 진행한 바가 있는 한 대학 교수가 나와서 김동성선수가 우리의 얼굴이랄 수 있는 태극기를 내팽겨친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은 예를 들어 설명하는 것을 보고 저는 다시 한번 분통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그는 금메달을 빼앗은 미국을 지하철에서의 성희롱범에 비유를 했고 김동성 선수를 해를 당하는 여자에 비유를 했습니다. 미국을 그런 인간에 비유한 것은 저로서도 가슴이 트이는 비유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이후 그는 희롱을 당하면서 화가 난 여자가 그 남자에게 욕을 하는 것을 김선수가 태극기를 차가운 얼음바닥위에 던진 것에 비유를 하면서, 그런 큰 일을 당하면서 그 여자가 욕을 했다고 해서 그 여자를 나쁜 사람이라고 얘기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커다란 일에 사소한 것을 들추어내는 것은 좋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사회의 식자이면서 지도층인 분의 올바른 판단인 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그건 아니다"라는 확고한 판단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그가 명망있는 사람이라고 해서 다른 사람들이 그의 의견으로 자신의 마음을 덮어 버릴까봐 염려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생각이 옳지 못했다는 것을 밝히고자 합니다. 우선 그가 김동성 선수를 성희롱당하는 여자에 비유한 것이었습니다. 아픔의 경중을 따지기에 앞서, 분명 김동성선수는 한 개인의 자격으로서가 아닌, 4천만 민족의 대표로서 태극기를 가슴에 달고 경기에 임하는 사람이었기에 비유가 너무나 적절치 못했다는 생각입니다. 덧붙여서 우리 국가의 상징인 태극기를 내팽겨 친 것이 어찌 욕지거리에 비할 만한 내용이겠습니까? 그 철면피한 오심에 온 국민이 분노하고 그 분노는 국가의 분노요, 그것은 우리의 상징인 태극기의 분노일 것인데 자신의 분신이요, 국민의 얼굴인, 자신을 위해 울부짖고 있는 태극기를 내팽겨 치다니요. 그는 국가의 대표였기에 어린 나이를 핑계삼아서도 안된다는 생각입니다. 분명 그는 우리의 태극기를 앞세우고 경기를 한 '국가, 국민, 태극기대표선수'였습니다. 그런 판정이 날수록 그 가엾은 깃발을 부둥켜 안았어야 옳다고 생각합니다, 찬 빙판에 내던져 버릴 것이 아니라... 욕을 당하는 여자의 부모님이 그 못된 인간을 벌할 수 없을 정도로 무능하다고 해서 여자가 부모님을 원망하면서 내팽겨친다면 나는 그 여자를 절대 올바른 여자로 보지 않을 것이고, 우리의 대표로 보내지 않을 겁니다, 그가 아무리 한 분야에 세계 최고의 능력을 가졌다 할지라도... 그의 연장자로서, 그의 후견인으로서(모든 국민은 김동성 선수의 후견인입니다), 그의 슬픔을 안아 어우르고 그를 위로하고 격려하되, 그가 올바르지 못한 점이 있다면 그를 위해, 힘없는 이 나라의 보다 나은 결속과 발전을 위해 올바른 애국심을 가르쳐주고 심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저의 마음입니다. 올바른 언론매체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 같아, 혹시 지면 언론과 화면 언론의 사소한 국지전은 아니었나라는 생각이 든 것은 제 잘못된 소견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끝으로 김동성 선수의 선전에 미진한 사람이지만 태극기를 사랑하는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무한한 찬사를 보내며, 아울러 터무니없는 침략적 판정에 대해 김동성 선수의 깊은 아픔과 슬픔을 함께 느끼고자 합니다. 계속 최고의 자리를 놓치지 않기를 바라며...
유시민, 그를 사랑하며
유시민의 '항소이유서'
柳時敏의 <항소이유서>
본 적 : 경상북도 월성군 내남면 망성동 163
주 소 : 서울특별시 구로구 시흥 1동 한양아파트 11동 1107호
성 명 : 류 시 민
생년월일 : 1959년 7월 28일
죄 명 : 폭력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
요 지
본 피고인은 1985년 4월 1일 서울지방법원 남부지원에서 폭력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선고 받고 이에 불복 다음과 같이 항소이유서를 제출합니다.
다 음
본 피고인은 우선 이 항소의 목적이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거나 1심 선고형량의 과중함을 호소하는데 있지 않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두고자 합니다. 이 항소는 다만 도덕적으로 보다 향상된 사회를 갈망하는 진보적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다하려는 노력의 소산입니다. 또한 본 피고인은 1심 판결에 어떠한 논란거리가 내포되어 있는지 알지 못하며 알고 싶은 생각도 없습니다. 자신의 행위의 정당성을 판단하는 기준으로서 본 피고인이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하느님이 주신 양심이라는 척도이지 인간이 만든 법률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법률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는 본 피고인으로서는 정의로운 법률이 공정하게 운용되는 사회에서라면 양심의 명령이 법률과 상호적대적인 모순관계에 서게되는 일은 결코 일어날 수 없으리라는 소박한 믿음 위에 자신의 삶을 쌓아올릴 수밖에 없었으며 앞으로도 역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인간과 인간, 인간집단과 인간집단 사이에서 일어나는 모든 폭력행위는 본질적으로 그 사회의 현재의 정치적·사회적·도덕적 수준의 반영인 동시에 미래의 그것을 결정하는 규정 요인중의 하나입니다. 따라서 “폭력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률”(이하 폭행법이라 함) 위반 혐의로 형사소추되어 1심에서 유죄선고를 받은 본 피고인으로서는 자신이 관련된 사건이 우리 사회의어떠한 정치적·사회적·도덕적 상태의 반영이며 또 미래의 그것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규명함과 동시에 사건과 관련된 각 개인 및 집단의 윤리적 책임을 명백히 밝힐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우리 사회가 젊은 대학생들이 동 시대의 다른 젊은이들을 폭행하였다는 불행한 이 사건으로부터 “개똥이와 쇠똥이가 말똥이를 감금 폭행하였다. 그래서 처벌을 받았다”는 식의 흔하디흔한 교훈밖에 배우지 못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사건 자체보다 더 큰 비극이라 아니할 수 없을 것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이 항소이유서는, 부도덕한 개인과 집단에게는 도덕적 경고를, 법을 위반한 사람에게는 법적 제재를, 그리고 거짓 성령 속에 묻혀 있는 국민에게는 진실의 세례를 줄 것을 재판부에 요구하는 청원서라 하겠습니다. 거 듭 밝히거니와 본 피고인은 법률에 대해 논한다는 것이 아니므로 이 글 속에서 ‘책임’ ‘의무’ ‘과실’ 등등의 어휘는 특별한 수식어가 없이 사용된 경우, 그 앞에 ‘윤리적’ 또는 ‘도덕적’이라는 수식어가 생략된 것으로 간주하여 무방합니다. 그리고 본 피고인이 특히 힘주어 말하고 싶은 단어나 문장에는 윗점을 사용하였습니다.
본 피고인은 우선 이 사건을 정의(定義)하고 나서 그것을 설명한 다음 사건과 관련하여 학생들과 현정권(본 피고인이 신봉하는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원칙에 비추어 제 5 공화국이 합법성과 정통성을 갖추지 못하고 있음을 표시하기 위해 정부대신에 정권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각자가 취한 행위를 분석함으로써 이 글의 목적을 달성코자 합니다.
이 사건은 학생들에 의해서는 ‘서울대 학원프락치사건’으로, 정권과 매스컴에 의해서는 ‘서울대 외부인 폭행사건’으로 또는 간단히 ‘서울대 린치사건’이라 일컬어지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사건명칭의 차이는 양자가 사건을 보는 시각을 전혀 달리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현상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건의 본질 자체가 달라질 리는 만무한 일입니다. 본 피고인이 가능한 한 객관적인 입장에서 이 사건을 정의하자면 이는 정권과 학원간의 상호적대적 긴장이 고조된 관악캠퍼스 내에서, 수사기관의 정보원이라는 혐의를 받은 네명의 가짜학생을 다수의 서울대 학생들이 연행·조사하는 과정에서, 혹은 약간의 혹은 심각한 정도의 폭행을 가한 사건입니다.
‘정권과 학원간의 상호적대적 긴장상태’를 해명하기 위해서 우리는 4월 민주혁명을 짓밟고 이땅에 최초의 군사독재정권을 수립한 5·16 군사쿠데타 이후 4반세기에 걸쳐 이어온 학생운동의 반독재 민주화 투쟁혈사(血史)와 아울러 가열되어온 독재정권의 학원탄압사를 살펴 보아야 할 터이지만, 이 글이 항소이유서임을 고려하여, 1964~65년의 대일 굴욕외교 반대투쟁(소위 6·3사태), 1974년의 민청학련투쟁, 1979년 부산마산지역 반독재 민중투쟁 등을 위시한 무수한 투쟁이 있어 왔다는 사실을 지적하는데 그치기로 하고 현정권의 핵심부분이 견고히 형성되어 사실상 권력을 장악한 1979년 12월 12일의 군사쿠데타 이후 상황만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의 경제적 모순·사회적 갈등·정치적 비리·문화적 타락은 모두가 지난 날의 유신독재 아래에서 배태·발전하여 현정권 하에서 더욱 고도성장을 이룩한 것들입니다. 현 정권은 유신독재의 마수에서 가까스로 빠져나와 민주회복을 낙관하고 있던 온국민의 희망을 군화발로 짓밟고, 5·17 폭거에 항의하는 광주시민을 국민이 낸 세금과 방위성금으로 무장한 ‘국민의 군대’를 사용하여 무차별 학살하는 과정에서 출현한 피묻은 권력입니다. 현정권은 정식출범조차 하기 전에 도덕적으로는 이미 파산한 권력입니다. 현정권이 말하는 ‘새시대’란, 노골적·야수적인 유신독재헌법에 온갖 화려한 색깔의 분칠을 함으로써 그리고 총칼의 위협아래 국민에게 강요함으로써 겨우 형식적 합법성이나마 취할 수 있었던 새로운 ‘유신시대’이며, 그들이 말하는 ‘정의(正義)’란 소수군부세력의 강권통치를 의미하며, 그들이 옹호하는 ‘복지’란 독점재벌을 비롯한 있는 자의 쾌락을 뜻하는 말입니다.
‘경제성장’ 즉 자본주의 발전을 위하여 ‘비효율적인’ 각종 민주제도(삼권분립, 정당, 노동조합, 자유언론, 자유로운 집회결사) 등을 폐기시키려하는 사상적 경향을 우리는 파시즘이라 부릅니다. 그리고 그러한 파시스트 국가의 말로가 온 인류를 재난에 빠뜨린 대규모 전쟁도발과 패배로 인한 붕괴였거나, 가장 다행스러운 경우에조차도 그 국민에게 심대한 정치적·경제적 파산을 강요한 채 권력내부의 투쟁으로 자멸하는 길뿐임을 금세기의 현대사는 증명하고 있습니다. 나찌 독일, 파시스트 이탈리아, 군국주의 일본은 전자의 대표적인 실례이며, 스페인의 프랑코 정권, 합법정부를 전복시키고 등장했던 칠레·아르헨티나 등의 군사정권, 하루저녁에 무너져버린 유신체제 및 지금에야 현저한 붕괴의 조짐을 보이고 있는 필리핀의 마르코스 정권 따위는 후자의 전형임에 분명합니다.
국가는 그것이 국가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만이 구성원 모두에게 서로 방해하지 않고 자유롭게 행복과 자아실현을 추구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주기 때문에 존귀합니다. 지난 수년간, 인간다운 삶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을 요구하며 투쟁한 노동운동가, 하느님의 나라를 이땅에 구현하기 위해 노력한 양심적 종교인, 진실과 진리를 위하여 고난을 감수한 언론인과 교수들, 그리고 민주제도의 회복을 갈망해온 민주정치인들의 선봉에 섰던 젊은 대학인들은, 부도덕하고 폭력적이며 비민주적일 뿐만 아니라 반민중적이기 때문에, 국민이 자유롭게 보고 듣고 말할 수 있는 조건 아래서라면 단 한주일도 유지될 수 없는 현 군사독재정권이 그토록 존귀한 우리 조국의 대리인이 될 수 없음을 주장해 왔습니다. 우리 국민은 보다 민주적인 정부를 가질 자격과 능력이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현정권은 12·12 군사쿠데타 이후 4년동안 무려 1,300여명의 학생을 각종 죄목으로 구속하였고 1,400여명을 제적시키는 한편 최소한 500명 이상을 강제징집하여 경찰서 유치장에서 바로 병영으로 끌고 갔습니다. 뿐만 아니라 교정 구석구석에 감시초소를 세우고 사복형사를 상주시키는 동시에 그것도 모자라 교직원까지 시위진압대로 동원하는 미증유의 학원탄압을 자행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한번도 이러한 사실을 시인한 적이 없으며, 1982년 기관원임을 자칭한 괴한에게 어린 여학생이 그것도 교정에서 강제추행을 당하는 기막힌 사건이 일어났을 때조차, 최고위 치안 당국자는 국회 대정부 질의에 대하여 “교내에 경찰을 상주시킨 일이 없다. 유언비어의 진원지를 밝혀내 발본색원하겠다”고 태연하게 답변하였을 정도입니다. 현재 학원가를 풍미하고 있는 전경 특히 경찰에 대한 불신과 적대감은 이와 같은 정권의 학원탄압 및 권력층의 상습적인 거짓말이 초래한 유해한 결과들 중의 한가지에 불과합니다.
이솝우화의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은 양떼를 잃어버리는 작은 사건을 낳는데 그쳤지만 주 유왕(周 幽王)이 미녀 포사(褒似)를 즐겁게 하기 위해 거짓봉화를 울린 일은 중국대륙 전체를 이후 500여년에 걸친 대 전란의 와중에 휩쓸리게 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현명한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양치기 소년의 외침을 외면한 마을사람들이나 오랑캐에게 유린당하기까지 주(周)왕실을 내버려 둔 제후들을 어리석다 말하지 않습니다. 정권의 주장이라면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믿지 않으려는 학생들의 불신은 과연 누구의 책임이겠습니까?
더 욱이 야만적이고 부도덕한 학원탄압은 전국 각 대학에서 목숨을 건 저항을 유발하였고 그 결과 일일이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은 학생들이 생명을 잃거나 중상을 당했습니다. 서울대학교에서만도 고 김태훈·황정하·한희철 등 셋이나 되는 젊은 생명이 희생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으로 83년 12월의 소위 자율화조치 이후에도 주전선(主戰線)이 교문으로 이동하였다는 단 한가지를 제외하면 거의 변함없이 계속되어 왔으며, 특히 지난해 9월 총학생회 부활을 전후하여 더욱 강화되었던 수사기관의 학원사찰, 교문앞 검문검색, 미행과 강제연행 등으로 인해 양자간의 적대감 또한 전례없이 고조된 바 있습니다. 즉 소위 자율화조치 이후에도 ‘학원과 정권 사이의 적대적 긴장상태’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사건은 바로 이와 같은 조건 하에서 수명의 가짜학생이 수사기관의 정보원이라는 혐의를 받을만한 행위를 하였기 때문에 거의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난 예기치 못한 사건입니다. 이들의 의심을 받게된 경위 및 사건경과는 이미 밝혀진 바이므로 재론할 필요가 없지만 여기에서 가짜학생에 대해서는 약간의 부연설명이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들이 실제로 정보원인지 그 여부는 극히 중요한 정치적 관심사임에 분명하지만 사건의 법률적·윤리적 측면과는 거리가 있는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학생들이 연행·감금·조사 또는 폭행한 것은 결코 정보원이나 단순한 가짜학생이 아닌 ‘정보원 혐의를 받고 있는 자‘들이기 때문에 폭력 자체가 정당할 수는 없으며 또 아니라고 해서 학생들의 일체의 행위가 모두 부당했다고 말할 수도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본 피고인이 이 문제에 대해 재론하지 않는 것은 그들이 정보원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니라 바로 위의 이유에 의해서입니다.
갖가지 목적으로 학생처럼 위장하고 캠퍼스를 배회하는 수많은 가짜 학생들, 이들은 소위 대형화·종합화된 오늘날의 대학에서, 졸업정원제·상대평가제 등 대학을 사회현실에 대한 비판의식이 마비되어 제 한 몸 잘사는 일에만 관심이 있는 전문기능인의 집단양성소로 전락시키기 위해 독재정권이 고안해 낸 각종 제도가 야기한 바 대학인의 원자화·고립화 등 비인간화 현상을 틈타 캠퍼스에 기생하는 반사회적 인간집단으로서, 교내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절도·사기·추행·학원사찰의 보조활동(손형구의 경우처럼) 등과 복합적인 관련을 맺고 있음으로 해서 대학인 상호간에 광범위한 불신감을 조성하고 대학의 건강한 공동체문화를 파괴하는 암적 존재입니다. 현정권은 이들이 대학인의 일체감을 파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교내에 사복경찰을 상주시킴으로써 야기된 숱한 문제들마저 이들에게 책임전가시킬 수 있다는(여학생 추생하건 때처럼) 이점 때문에 가짜학생의 범람현상을 방관 또는 조장하여 온 것입니다. 따라서 학생들이 이들에 대해 평소 품고 있는 혐오감이 어떠한가는 설명할 필요조차 없는 일입니다.
이들이, 이들 가짜들이, 혹은 복학생들의 소규모 집회석상에서 혹은 도서실에서, 법과대학 사무실에서, 강의실에서, 버젓이 학생행세를 하면서 학생활동에 대한 정보 수집활동을 하다가 탄로났을 경우, 법이 무서워서 이를 묵과하는 것이 윤리적으로 올바른 일이겠습니까? 상호적대적인 분위기 속에서, 바로 그들을 보냈으리라 추정되는 수사기관에, 정보원 혐의를 받고 있는 가짜학생의 신분조사를 의뢰하는 일어날 수 있겠습니까? 물론 대학의 교정은 개방된 장소이므로 은밀한 사찰행위뿐만 아니라 예전처럼 수백 수천의 정·사복 경찰이 교정을 온통 휘젓고 다닌다 할지라도 이는 전혀 비합법 행위는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본 피고인은 이러한 행위가 도덕적으로 바람직하다고 하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반면 이러한 부도덕한 학원 탄압행위에 대한 학생들의 여하한 실질적 저항행위도, 비록 그것이 윤리적으로 정당한 일이지만, 현행법률에 대한 명백한 침해가 될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정의로운 사회에서라면 존재할 수 없는 법과 양심의 상호적대적인 모순관계가 필연적으로 발생합니다. 그 누구도 이 상황에서 법과 양심 모두를 지키기란 불가능합니다. 이 사건이야말로 우리 사회 전체가, 물론 대학사회도 포함하여, 당면한 정치적·사회적 모순의 집중적 표현이라는 학생들의 주장은 바로 이와 같은 논거에 입각한 것입니다. 법은 자기를 강제할 수 있는 힘을 보유하고 있지만 양심은 그렇지 못합니다. 법은 일시적 상대적인 것이지만 양심은 절대적이고 영원합니다. 법은 인간이 만든 것이지만 양심은 하느님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본 피고인은 양심을 따랐습니다. 그것은 법을 지키는 일이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양심의 명령을 따르는 일이 더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본 피고인뿐만 아니라 모든 학생들이, 이 사건에서만이 아니라 그 이전의 어느 사건에서도 그랬습니다.
지 난해 9월, 10일간에 걸친 일련의 사건은 이렇게 하여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나 자체로서 그리 복잡하지 않은 이 사건은 서울대생들의 민한당사 농성사건, 주요 학생회 간부들의 제적·구속, ‘학생운동의 폭력화’에 대한 정권과 매스컴의 대공세, 서울대 시험거부 투쟁과 대규모 경찰투입 등 심각한 충격파를 몰고 왔으며 공소 사실을 거의 전면부인하는 피고들에게 유죄를 선고함으로써 일단락된 바 있습니다.
사건종료 다음날인 9월 28일 전학도호국단 총학생장 백태웅과 뒤늦게 프락치사건 대책위원장 겸 사회대학생장 오재영군 등이 지도한 민한당사 농성은 자연발생적·비조직적으로 일어난 이 사건을 부도덕한 학원사찰 및 정권의 비민주성을 비판하는 조직적 투쟁으로 고양시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비로 가짜 학생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의 법률적·윤리적 과실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 때문에 학원사찰의 존재라는 별개의 정치적 문제를 덮어둘 수는 없는 일이므로 이 투쟁은 그 자체로서 완전히 정당한 행위였다고 본 피고인은 생각합니다.
이 일이 있은 다음 날인 9월 29일 저녁 학교당국은 이정우·백기영·백태웅·오재영 등 4명의 총학생회 주요간부를 전격적으로 제명 처분하였으며 본 피고인은 9월 30일 하오 경찰에 영장없이 강제연행 당한 후 며칠간의 조사를 받고 구속되었습니다. 본 피고인이 가장 먼저 연행당한 것은 미리 도피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도피하지 않은 것은 필요를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고, 필요를 느끼지 않은 것은 도망칠만큼 잘못한 일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본 피고인은 경찰·검찰에서의 조사 및 법정진술시 기억력의 한계로 인한 사소한 착오 이외에 여하한 수정·번복도 한 바 없었으며 오직 사실 그대로를 말했을 따름입니다.
어 쨌든 서울시경국장은 10월 4일 소위 ‘서울대 외부인 폭행사건’의 수사결과를 도하 각 신문·TV·라디오를 통해 발표하였는데, 그에 의하면 4명의 외부인을 감금·폭행한 이 일련의 사건이 복학생협의회 대표였던 본 피고인 및 학생대표들의 합의 아래 의도적이고 조직적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10월 4일 이전에 경찰에 연행된 몇몇 학생들 중(본 피고인을 포함) 어느 누구도 이 발표를 뒷받침해줄 만한 진술을 한 바 없으며, 이후에 작성된 구속영장·공소장 및 관련학생들의 신문조서들이 모두 이 발표의 기본선에 맞추어 만들어진 것임은, 만일 이 모든 서류를 날짜별로 검토해 본다면, 누구의 눈에나 명백한 일입니다.
한 마디로 10월 4일의 경찰발표문의 본질은 모종의 정치적 목적을 위한 견강부회·침소봉대·날조왜곡 바로 그것입니다. 그 목적이란 다름이 아니라 학생운동을 폭력지향적인 파괴활동으로 중상모략함으로써 이 사건의 정치적 성격은 물론 현정권 자체의 폭력성과 부도덕성을 은폐하려는 것입니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이 사건이 비조직적·우발적으로가 아니라, 학생단체의 대표들에 의해 조직적이고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어야 했습니다. 그래야만 몇몇 관련 학생뿐만이 아니라 학생운동 전체를 비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총학생회장, 학도호국단 총학생장, 프락치사건 대책위원장, 복학생협의회 대표 등은, 그가 구체적으로 어떤 인간이며 어떤 행위를 실제로 했는가에 관계없이 선전을 위한 가장 손쉬운 희생물이 되어야만 했던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수법은 지난 수십년간 대를 이어온 독재정권들이 기회 있을 때마다 상투적으로 구사해온 낡은 수법을 그대로 답습한 것에 지나지 않으며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현정권은 막 출범한 서울대 학생회의 주요 간부의 활동을 실질적으로 봉쇄하는 동시에, 60만 대군을 동원해도 때려부술 수 없는 학생운동의 도덕성을 훼손시키는 데에 어느 정도는 성공한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마치 자신이 더 도덕적인 존재가 된 듯한 자기만족조차 조금은 맛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검찰 역시 사실을 밝혀내는 일보다는 경찰의 발표를 뒷받침하기에만 급급하여 대동소이한 내용의 공소를 제기하고 그것에만 집착하여 왔습니다. 사건 발생후 일개월도 더 지난 작년 11월, 관악경찰서 수사과 형사들이 김도형·손택만군 등 무고한 학생들에게 가혹한 고문을 가함으로써 공소사실과 일치하는 허위자백을, 형사들 자신의 표현을 빌자면, 짜내었다는 사실이 그 증거입니다. 즉 경찰은 본 피고인들이 ‘폭행법’을 위반하였다는 증거를 바로 그 ‘폭행법’을 위반하여 관련된 학생들을 고문함으로써 짜낸 것입니다. 그 짜내어진 허위자백이 증거로 채택된다는 사실을 못 본 체 하더라도 ‘법앞에서의 평등’이라는 중대한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전 혀 정당한 윤리적 기초를 갖지 못하였기 때문에 양심인으로서는 복종의 의무를 느낄 필요가 없었던 지난날의 긴급조치나 현행 ‘집시법’과 달리 이 ‘폭행법’은 지켜져야 하며 또 지켜질 수 있는 법률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각인은 현정권에 대한 정치적 견해에 따라 이 법 앞에서 불평등한 위치에 놓여 있습니다. 본 피고인은, 과분한 탓인지 모르겠으나, 학생들을 상습적으로 폭행·고문하는 각 대학 앞 경찰서의 정보과 형사들이 그 때문에 ‘폭생법’ 위반으로 형사소추당했다는 비슷한 이야기조차 들은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지난해 5월 19일, ‘민주화운동 청년연합’이 주최한 광주항쟁 희생자 추모집회에 참석하였다가 귀가하는 길에, 그녀 자신 제적학생이면서 역시 고려대학교 제적학생인 서원기씨의 부인 이경은씨가 동대문 경찰서 형사대의 발길질에 6개월이나 된 태아를 사산한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 부부는 이 법의 보호 밖에 놓여 있음이 누구의 눈에나 명백히 드러났습니다. 고소장을 접수하고서도, 검찰은 수사조차 개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본 피고인 역시 여러차례 수사기관에 연행되어 조사받는 과정에서 폭행당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지만 이 법의 보호를 요청할 엄두조차 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 누구에게도 협박 또는 폭행을 가한 일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본 피고인은 폭력법으로 유죄를 선고받고 말았습니다. 본 피고인이 굳이 지난 일을 이렇듯이 들추어냄은 오직, 흔히 이야기되고 있는 바 검찰의 정치적 편향성의 존재를 환기하기 위한 것입니다. 즉 이 사건을 담당한 경찰관 역시 앞에서 밝힌 바 현정권의 정치적 음모와 무관하지 않았음을 지적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결 론적으로 검찰이 주장하는 바 공소사실의 대부분은 불순한 정치적 목적을 위해 경찰이 날조한 사건 내용을 뒷받침하기 위한 것으로서, 한편에 있어서는 정권과 매스컴이 공모하여 널리 유포시킨 일반적인 편견이 기초 위에 서 있으며,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경찰이 고문수사를 통해 짜낸 관련 학생들의 허위자백에 의해 지지되고 있는 공허한 내용으로 가득찬 것입니다.
그러나 본 피고인이 이 사건에서 드러난 학생들의 과실과 본 피고인 자신의 법률적·윤리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하여 이렇듯 정권의 부도덕을 소리 높이 성토하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가짜학생에 대한 연행·조사가 윤리적으로 정당하다손치더라도, 이들에게 가한 폭행까지를 정당화할 의향은 없습니다. 조사를 위한 감금은 가능한 한 짧아야 하며 폭행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물론 현상적으로 폭력처럼 보인다고 해서 그것이 본질상 다 폭력의 영역에 속할 수는 없지만, 무력한 개인에게 다중이 가한 폭행은 비록 그것이 경찰에 대한 이유있는 적대감의 발로인 동시에 그들이 상습적으로 학생들에게 가해온 고문을 흉내낸 것이라 할지라도 학생운동의 비폭력주의에서 명백히 이탈한 행위라고 판단해야 할 것입니다. 또 폭행을 가한 당사자들이 스스로 나서서 책임을 감당하지 않은 것 또한, 비록 그것을 어렵게 만든 당시의 특수한 정치적 사정이 개재됐다손치더라도, 학생들이 가진 윤리적 결함의 표현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자신 폭행과 절대로 무관하며사건 전체와도 전혀 관계가 없다고 하여 틀림이 없을 총학생회장 이정우군이 스스로 모든 책임을 떠맡아 항소조차 포기했다고 하는 아름다운 행위가, 그 누구도 선뜻 폭행의 책임을 감당하려 하지 않음으로써 발생한 윤리의 공백상태를 어느 정도는 메꾸어 주었다고 본 피고인은 확신합니다.
본 피고인은 역시 언행이나 조사를 지시한 사실이 없지만(지시할 필요가 없었으므로), 만일 그럴 필요가 있었다면 언제라도 기꺼이 직접 그들을 연행·조사하였을 것입니다(그것이 위법임은 물론 잘 알지만). 본 피고인은 복학생 협의회의 사실상의 대표로서 개인적으로 비폭력의 원칙을 준수해야 할 소극적 의무에 부가하여 학생운동의 전체수준에서도 이 원칙이 관철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적극적 의무 또한 완수해야 할 위치에 있습니다. 따라서 문제의 9월 26일 밤 전기동·정용범 양인이 구타당하는 광경을 잠시 목격하고서도 그것을 제지하려 하지 않았던 본 피고인에게는 다른 학생들보다 더 큰 윤리적 책임이 있음에 분명합니다(법률적 측면에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또한 임신현·손형구의 경우에도 본 피고인이 사건에 접했을 때는 이미 감금 및 조사가 진행 중이었으므로 어떠한 지시를 내릴 필요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나 본 피고인 자신 조사를 위한 감금에 명백히 찬동했으며 또 잠시나마 직접 조사에 임한 적도 있기 때문에 법률을 어긴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며 그에 따른 책임이라면 흔쾌히 감수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의 경우, 가능한 한 짧은 감금과 비폭력이라는 원칙을 관철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며 실제로 이 원칙이 관철되었으므로 본 피고인은 아무런 윤리적 책임도 느끼지 않습니다.
어쨌든 상당한 정도의 법률적·윤리적 책임이 자신에게 있음을 떠맡기 위해 이정우군처럼 처신할 수도 있었을 것이며 그 또한 나쁘지 않은 일이었으리라 믿습니다. 그러나 이미 밝힌 바와 같이 너무나도 명백한 정권의 음모의 노리개가 될 가능성 때문에 본 피고인은 사실과 다른 것은 그것이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결코 시인하지 않으리라 결심하였고 또 그런 자세로 법정투쟁에 임해 왔습니다. 그래야만 본 피고인은 자신이 느끼고 있는 책임감이, 공소사실을 기정사실화시키기 위해 우격다짐으로 요구하는 그것과는 성질상 판이한 것임을 보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본 피고인은 이 사건의 재판이 갖는 정치적 의미가 무엇이며 이 사건을 우리 사회의 도덕적 진보의 계기로 삼으려면 사법부가 본연의 윤리적 의무를 완수해야 함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이 사건은 누적된 정권과 학원간의 불신 및 적대감을 배경으로 하여 수명의 가짜학생이 행한 전혀 비합법적이라 할 수 없지만 명백히 부도덕한 정보수집행위가 본질적으로 부도덕하지 않으나 명백히 비합법적인 학생들의 대응행위를 유발함으로써 빚어진 사건입니다. 지난 수년간 현정권이 보여준 갖가지 부도덕한 행위들 - 학원내에 경찰을 수백명씩이나 상주시키면서도 온국민에게 거짓증언을 한 치안당국자의 행위, 소위 자율화조치라고 하는 아름다운 간판 위에서 음성적인 확원사찰을 계속 해온(이에 관해서는 법정에서 상세히 밝힌 바 있음) 수사기관의 행위, 불순한 정치적 목적을 위해 이 사건조차 서슴지 않고 날조·왜곡한 행위 등 - 은 같은 뿌리에서 돋아난 서로 다른 가지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이 재판은 사건의 진정한 원인을 규명하여 그에 대한 처방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행위중 비합법적인 부분만을 문제삼아 처벌하기 위한 것입니다. 아마도 사법부 자체는 이처럼 부도덕한 정권의 학원난입 행위를 옹호하려는 의도가 없을런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사태의 전후맥락을 모조리 무시한 채 조사를 위한 연행·감금마저(폭행부분이 아니라) 형사처벌의 대상으로 규정한 1심의 판결은 지금 이 시간에도 갖가지 반사회적 목적으로 위해 교정을 배회하고 있을 수많은 가짜학생 및 정보원의 신변안전을 보장한 ‘가짜학생 및 정보원의 안전보장 선언’이 아니라 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본 피고인은 결코 학생들의 행위 전부에 대한 무죄선고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반복되는 말이지만, 부도덕한 자에 대한 도덕적 경고와 아울러 법을 어긴 자에 대한 법적 제재가 가해져야 하며, 허위선전에 파묻힌 국민에게는 진실의 세례를 주어야 한다는 것, 사태의 책임소재를 분명히 하지 않고서는 우리 모두의 도덕적 향상은 기대될 수 없는 것을 주장할 따름입니다. 법정이 신성한 것은 그것이 법정이기 때문이 결코 아니며, 그곳에서만은 허위의 아름다운 가면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때로는 추악해 보일지라도 진실의 참모습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 일 오늘날의 사법부가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正義)를 세우며, 또 그 정의가 강자(强者)의 지배를 의미하지 않는다면, 1심의 재판과정에서 매장당한 진실이 다시금 생명을 부여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본 피고인은 믿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아마도 이 사건으로 인하여 그렇지 않아도 쉽게 허물어버리기 어려울 만큼 높아져 있는 현재의 불신과 적대감의 장벽 위에 분노의 가시넝쿨이 또 더하여지는 것을 보아야 할 것이고, 언젠가는 더욱 격렬한 형태로 폭발할 유사한 사태를 반드시 만나게 될 것입니다.
지난 5년간 현정권에 반대했다 하여 온갖 죄목으로 투옥되었던 1,500여명의 양심수들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이 ‘신성한 법정’에서 정의로운 재판관들에 의해 유죄선고를 받았습니다. 야수적인 유신독재 치하에서도 역시 그만큼 많은 분들이 전대미문의 악법 ‘긴급조치’를 지키지 않았다 하여 옥살이를 하였습니다. 긴급조치 위반사건의 보도 또한 긴급조치 위반이었으므로 아무도 그 일을 말할 수조차 없었습니다. 변론을 하던 변호사도 그 변론 때문에 구속당했습니다. 지금에 와서 긴급조치가 정의로운 법이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별로 없지만, 그리고 그때 투옥되신 분들이 ‘반사회적 불순분자’ 또는 ‘이적행위자’였다고 말하는 이도 거의 없지만, 그분들을 ‘죄수’로 만든 법정은 지금도 여전히 ‘신성하다’고 하며 그분들을 기소하고 그분들에게 유죄를 선고한 검찰과 법관들 역시 ‘정의구현’을 위해 일하고 있다고 합니다. 누 군가가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사법부가 정의를 외면해 왔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법정이 민주주의의 처형장으로 사용되어 왔다”는 뜻일 것입니다. 누군가가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사법부가 정의를 세워왔다”고 말한다면, 그리고 그가 진정 진지한 인간이라면, 그는 틀림없이 “정의란 독재자의 의지이다”고 굳게 믿는 인간일 것입니다.
본 피고인은 그곳에 민주주의가 살해당하면서 흘린 피의 냄새가 짙게 배어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곳에서만은 진실의 참모습을 만날 수 있다는 의미에서의 신성한 법정에서 재판을 받고 싶습니다. 본 피고인은 자신에게 유죄를 선고하는 재판관이 ‘자신의 지위가 흔들리지 않는 한도 내에서만 정의에 관심을 갖는’ 그런 정도가 아니라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를 세우는’ 현명한 재판관이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실을 밝히는 일이야말로 정의가 설 토대를 건설하는 일이라 믿습니다.
이상의 논의에 기초하여 본 피고인은 1심판결에 승복할 수 없는 이유를 간단히 언급하고자 합니다. 본 피고인은 판결문을 받아보았을 때 참으로 서글픈 심정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무려 7회에 걸쳐 진행된 심리과정에서 밝혀진 사건의 내용과 거의 무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본 피고인이 그토론 진지하게 임했던 재판의 전과정이 단지 예정된 판결을 그럴듯하게 장식해주기 위해 치루어진 무가치한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았음을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우선, 「판결이유」의 ‘범죄사실’ 제 1 항 중 “······임신현이····· 구타당하는 것을 목격하고, 피고인 유시민은 성명불상 학생들에게 위 임신현의 신분을 확인·조사토록 하고···”라는 부분은 형식논리상으로조차 성립할 수 없었습니다. 본 피고인에게 지시를 받은 학생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이 증명되었다면, 어떻게 그가 성명불상일 수가 있습니까? 그리고 본 피고인이 한번도 이를 시인한 바 없으며, 백수택군 등 여러학생들의 진술은 물론이요, 임신현 자신의 법정진술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할지라도, 본 피고인이 임신현이 연행 구타되던 현장에 있었음을 증명하기란 불가능한 일인데 하물며 본 피고인이 성명불상의 누군가에게 어떠한 지시를 내렸다는 일이 어찌 증명 가능하겠습니까? 사실 본 피고인은 그때 그곳에 있지 않았습니다.
다음, ‘범죄사실’ 제 2 항 중 “·····위 김도인은 피고인 백태웅과 피고인 유시민 앞에서····· 구타하여 동인(손형구를 말함)에게 전치 3주간의·····다발성 좌상을 가한·····” 부분 역시, “백태웅과 유시민에게 조사받는 동안 한번도 폭행당한 일이 없다”고 한 손형구 자신의 법정진술에조차 모순됩니다.
그리고 ‘범죄사실’ 제 3 항 중 “피고인 유시민은·····동일(9월 26일을 말함) 21:00경부터 익일 01:00까지 피고인 윤호중, 같은 오재영 및 백기영, 남승우, 오승중, 안승윤 등과 같이·····(정용범을)·····계속 조사하기로 결의하고·····” 및 ‘범죄사실’ 제 4 항 중 이와 유사한 대목 역시, 본 피고인이 당시 진행중이던 총학생회장 선거관리 및 학생회칙의 문제점에 관해 선거관리 위원들과 장시간에 걸쳐 논의한 사실을 왜곡해 놓은 것에 불과하며, 이는 오승중, 김도형 등의 진술에 의해서도 명백히 밝혀진 일입니다.
이 몇가지 예는 특히 현저하게 사실과 다른 부분을 지적한 것에 불과하며 판결문 전체가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의 유사한 모순점을 내포하고 있음은 두말할 나위조차 없습니다. 이는 사건 전체가 본 피고인 및 학생대표들의 지히 아래 의도적으로 진행된 것처럼 보이게 하려는 정권의 의도를 반영하는 현상으로서, 기실 판결문의 내용중 대부분이 침소봉대·견강부회·날조왜곡된 지난해 10월 4일 경찰발표문을 원전(原典)으로 삼아 구속영장·공소장을 거쳐 토씨하나 바꾸어지지 않은 그대로 옮겨진 것에 대한 증거입니다.
1심판결은 이러한 이유로 인하여, 사건과 관련된 각 개인 및 집단의 윤리적 법적 책임을 명확히 함으로써 우리 사회 전체의 도덕적 향상에 기여해야 할 사법부의 사회적 의무를 송두리째 방기한 것이라 판단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거듭 밝히거니와 본 피고인이 이처럼 1심판결의 부당성을 구태여 지적한 것은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타당한 이유에 의한 유죄선고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끝으로, 현재 마치 '폭력 과격 학생'의 본보기처럼 되어 버린 본 피고인은 이 항소이유서의 맺음말을 대신하여 자신을 위한 몇 마디의 변명을 해볼까 합니다. 본 피고인은 다른 사람보다 더 격정적이거나 또는 잘난 체하기 좋아하는 인간이 결코 아니며, 하물며 빨간 물이 들어 있거나 폭력을 숭배하는 젊은이는 더욱 아니기 때문입니다. 본 피고인은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장 평범한 청년에 지나지 않으며 늘 "불의를 보고 지나치지 말라", "이웃의 아픔을 나의 아픔처럼 생각하라", "거짓말하지 말라"고 가르쳐 주신, 지금은 그분들의 성함조차 기억할 수 없는 국민학교 시절 선생님들의 말씀을 불변의 진리로 생각하는, 오히려 조금은 우직한 편에 속하는 젊은이입니다. 본 피고인은 이 변명을 통하여 가장 순수한 사랑을 실천해 나가는, 조국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실천하는 행위, 곧 민주주의의 재생을 요구하는 학생들의 투쟁 전체를 옹호하고자 합니다.
지 금으로부터 7년 전인 1978년 2월 하순, 고향집 골목 어귀에 서서 자랑스럽게 바라보시던 어머니의 눈길을 등뒤로 느끼면서 큼직한 짐보따리를 들고 서울 유학길을 떠나왔을 때, 본 피고인은 법관을 지망하는 (그 길이 여섯이나 되는 자식들을 키우시느라 좋은 옷, 맛난 음식을 평생토록 외면해 오신 부모님께 보답하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또 그 일이 나쁜 일이 아님을 확신했으므로) 아직 어린 티를 벗지 못한 열아홉 살의 촌뜨기 소년이었을 뿐입니다. 모든 이들로부터 따뜻한 축복의 말만을 들을 수 있었던 그때에, 서울대학교 사회계열 신입생이던 본 피고인은 '유신 체제'라는 말에 피와 감옥의 냄새가 섞여 있는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유신만이 살길이다"고 하신 사회 선생님의 말씀이 거짓말일 수도 없었으니까요, 오늘은 언제나 달콤하기만 했으며, 생각하기만 해도 가슴 설레던 미래는 오로지 장밋빛 희망 속에 감싸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진달래는 벌써 시들었지만 아직 아키시아 꽃은 피기 전인 5월 어느 날, 눈부시게 밝은 햇살 아래 푸르러만 가던 교정에서, 처음 맛보는 매운 최루 가스와 걷잡을 수 없이 솟아나오던 눈물 너머로 머리채를 붙잡힌 채 끌려가던 여리디 여린 여학생의 모습을, 학생 회관의 후미진 구석에 숨어서 겁에 질린 가슴을 움켜쥔 채 보았던 것입니다. 그날 이후 모든 사물이 조금씩 다른 의미로 다가들기 시작했습니다. 기숙사 입구 전망대 아래에 교내 상주하던 전투 경찰들이 날마다 야구를 하는 바람에 그 자리만 하얗게 벗겨져 있던 잔디밭의 흉한 모습은 생각날 적마다 저릿해지는 가슴속 묵은 상처로 자리잡았습니다. 열여섯 꽃 같은 처녀가 매주일 60시간 이상을 일해서 버는 한달치 월급보다 더 많은 우리들의 하숙비가 부끄러워졌습니다. 맥주를 마시다가도, 예쁜 여학생과 고고 미팅을 하다가도 문득문득 나쁜 짓을 하다가 들킨 아이처럼 얼굴이 화끈거리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이런 현상들이 다 ‘문제 학생’이 될 조짐이었나 봅니다. 그리고 그 겨울, 사랑하는 선배들이 ‘신성한 법정'에서 죄수가 되어 나오는 것을 보고 나서는 자신이 법복 입고 높다란 자리에 않아 있는 모습을 꽤나 심각한 고민 끝에 머리 속에서 지워버리고 말았습니다.
다 음해 여름 본 피고인은 경제학과 대표로 선출됨으로써 드디어 문제 학생임을 학교 당국 및 수사 기관으로부터 공인받았고 시위가 있을 때면 앞장서서 돌멩이를 던지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점증하는 민중의 반독재 투쟁에 겁먹은 유신정권이 내분으로 붕괴해 버린 10·26정변 이후에는, 악몽 같았던 2년간의 유신 치하 대학 생활을 청산하고자 총학생회 부활 운동에 참여하여 1980년 3월 '총학생회 대의원회 의장'이라는 중요한 직책을 맡게 되었습니다. 잊을 수 없는 그 봄의 투쟁이 좌절된 5월 17일, 본 피고인은 갑작스러이 구속 학생이 되었고, ‘교수와 신부를 때려준 일’을 자랑삼는 대통령 경호실 소속 헌병들과, 후일 부산에서 ‘김근조 씨 고문 살해'사건을 일으킨 장본인들인 치안 본부 특수 수사관들로부터 두 달 동안의 모진 시달림을 받은 다음, 김대중 씨가 각 대학 학생회장에게 자금을 나누어 받았다는 허위 진술을 해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구속 석 달 만에 영문도 모른 채 군법 회의 공소 기각 결정으로 석방되었지만, 며칠 후에 신체 검사를 받자마자 불과 40시간 만에 변칙 입대당함으로써 이번에는 ‘강집 학생'이 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입영 전야에 낯선 고장의 이발소에서 머리를 깎이면서 본 피고인은 살아 있다는 것이 더 이상 축복이 아니요 치욕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날 이후 제대하던 날까지 32개월 하루동안 본 피고인은 ‘특변자(특수 학적 변동자)'라는 새로운 이름을 가지게 되었으며 늘 감시의 대상으로서 최전방 말단 소총 중대의 소총수를 제외한 일체의 보직으로부터 차단당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그리고 영하 20도의 혹한과 비정하게 산허리를 갈라지른 철책과 밤하늘의 별만을 벗삼는 생활이 채 익숙해지기도 전인 그해 저물녘, 당시 이등병이던 본 피고인은 대학시절 벗들이 관계한 유인물 사건에 연루되어 1개월 동안 서울 보안사 분실과 지역 보안 부대를 전전하고 대학 생활 전반에 대한 상세한 재조사를 받은 끝에 자신의 사상이 좌경되었다는, 마음에도 없는 반성문을 쓴 다음에야 부대로 복귀할 수 있었으며 동시에 다른 연대로 전출되었습니다. 하지만 본 피고인은 민족 분단의 비극의 현장인 중동부 전선의 최전방에서, 그것도 최말단 소총 중대라는 우리 군대의 기간 부대에서 3년을 보낼 수 있었음을 크나큰 행운으로 여기며 남에게 뒤지지 않는 훌륭한 병사였음을 자부합니다.
그런데 제대 불과 두 달 앞둔 1983년 3월 또 하나의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지난해 세상을 놀라게 한 ‘녹화 사업' 또는 ‘관제 프락치 공작'이 바로 그것입니다. 인간으로 하여금 일신의 안전을 위해서는 벗을 팔지 않을 수 없도록 강요하는 가장 비인간적인 형태의 억압이 수백 특변자들에게 가해진 것입니다. 당시 현역 군인이던 본 피고인은 보안 부대의 공포감을 이겨 내지 못하여 형식적으로나마 그들의 요구에 응하는 타협책으로써 일신의 안전을 도모할 수는 있었지만 그로 인한 양심의 고통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처럼 군사 독재정권의 폭력 탄압에 대한 공포감에 짓눌려 지내던 본 피고인에게 삶과 투쟁을 향한 새로운 의지를 되살려준 것은 본 피고인과 마찬가지로 강제 징집당한 학우들 중 6명이 녹화 사업과 관련하여 잇달아 의문의 죽음을 당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동지를 팔기보다는 차라리 죽음을 택한 순결한 양심의 선포 앞에서 본 피고인도 언제까지나 자신의 비겁을 부끄러워하고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순결한 넋에 대한 모욕인 탓입니다. 그래서 1983년 12월의 제적 학생 복교 조치를 계기로 본 피고인은 벗들과 함께 ‘제적 학생 복교추진 위원회'를 결성하여 이 야수적인 강제 징집 및 녹화 사업의 폐지를 위해 그리고 진정한 학원 민주화를 요구하며 복교하지 않은 채 투쟁하였습니다. 이때에도 정권은 녹화 사업의 존재, 아니, 강제 징집의 존재마저 부인하면서 우리에게 ’복교를 도외시한 채 정부의 은전을 정치적 선동의 재료로 이용하는 극소수 좌경 과격 제적 학생들'이라는 참으로 희귀한 용어를 사용해 가면서, 어용 언론을 동원한 대규모 선전 공세를 펼친 바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9월 여러가지 사정으로 복학하게 되었을 때 본 피고인은 ‘민주화를 위한 투쟁은 언제 어디서나 어떤 형태로든 계속되어야 한다'는 소신에 따라 ‘복학생 협의회'를 조직하였습니다. 그러나 불과 복학한 지 보름 만에 이 사건으로 다시금 제적 학생 겸 구속 학생이 되었슬 뿐만 아니라 본 피고인의 이름은 ‘폭력 학생'의 대명사가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본 피고인은 이렇게 하여 5.17폭거 이후 두 번씩이나 제적당한 최초의 그리고 이른바 자율화 조치 이후 최초로 구속 기소되어, 그것도 ‘폭행법'의 위반으로 유죄 선고를 받은 ‘폭력 과격 학생'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본 피고인은 지금도 자신의 손이 결코 폭력에 사용된 적이 없으며 자신이 변함없이 온화한 성격의 소유자임을 의심치 않습니다. 그러므로 늙으신 어머니께서 아들의 고난을 슬퍼하며 을씨년스러운 법정 한 귀퉁이에서, 기다란 구치소의 담장 아래서 눈물짓고 계신다는 단 하나 가슴 아픈 일을 제외하면 몸은 0.7평의 독방에 갇혀 있지만 본 피고인의 마음은 늘 평화롭고 행복합니다.
빛나는 미래를 생각할 때마다 가슴 설레던 열아홉 살의 소년이
7년이 지난 지금 용서받을 수 없는 폭력배처럼 비난받게 된 것은
결코 온순한 소년이 포악한 청년으로 성장했기 때문이 아니라,
이 시대가 ‘가장 온순한 인간들 중에서 가장 열렬한 투사를 만들어 내는'
부정한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본 피고인이 지난 7년간 거쳐온 삶의 여정은 결코 특수한 예외가 아니라 이 시대의 모든 학생들이 공유하는 보편적 경험입니다. 본 피고인은 이 시대의 모든 양심과 함께 하는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에 비추어, 정통성도 효율성도 갖지 못한 군사 독재 정권에 저항하여 민주 제도의 회복을 요구하는 학생 운동이야말로 가위눌린 민중의 혼을 흔들어 깨우는 새벽 종소리임을 확신하는 바입니다.
오 늘은 군사 독재에 맞서 용감하게 투쟁한 위대한 광주 민중 항재의 횃불이 마지막으로 타올랐던 날이며, 벗이요 동지인 고 김태훈 열사가 아크로폴리스의 잿빛 계단을 순결한 피로 적신 채 꽃잎처럼 떨어져 간 바로 그날이며, 번뇌에 허덕이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부처님께서 세상에 오신 날입니다. 이 성스러운 날에 인간 해방을 위한 투쟁에 몸바치고 가신 숱한 넋들을 기리면서 작으나마 정성들여 적은 이 글이 감추어진 진실을 드러내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것을 기원해 봅니다.
모순투성이이기 때문에 더욱더 내 나라를 사랑하는 본 피고인은 불의가 횡행하는 시대라면 언제 어디서나 타당한 격언인 네크라소프의 시구로 이 보잘것 없는 독백을 마치고자 합니다.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
1985년 5월 27일
성명 류 시 민
서울 형사 지방 법원 항소 제5부 재판장님 귀하
광우병은 반드시 막아야 합니다
소의 심막(bovine pericardium)으로 가공하여 만든 인조뇌막과 관련한 논문을 쓰면서
알게 된 사실(2002년도 기준)은 광우병의 원인물질인 프리온을 제거하는 방법으로 현재 유일하게
(그러나 그 것이 100 % 프리온 제거하는 방법은 아니라는 전제하에..) 인정받는 방법은
양잿물에 (당시 논문에서 제시한 시간: 약 48시간) 담가놓는 것입니다.
식용에는 적용할 수 없는 방법이지요. 농림부 통상사무관은 광우병이 뭔지도 모르면서 협상에 임한 것입니다.
이 것이 대한민국입니다. 보건복지부의 광우병 예방 지침을 읽어보면 기가 막힐 것입니다.
한 정부에서 하나의 사실에 대해 전혀 다른 말을 하고 있으니말입니다.
이미 정부에서는 (복지부) 알고 있습니다. 광우병이 심각한 질환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정체도 잘 모르고 치료법도 없습니다. 저는 미국 소 도축장에는 가보지 못했습니다.
이건 제 상상입니다만, 도축시에 사용하는 전기톱이 항상 소 등뼈를 피해간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일부 자료 화면 보면 전기톱으로 등뼈를 가르는 것 같습니다. )
설사 아니라고 해도 어쩌다 이 전기톱이 등뼈 부위를 약간 건드리고 척수와 주변에
뇌척수액이 줄줄흐르는 상황을 만들면 어떻게 될까요?
그 소와 도축에 사용된 전기톱은 프리온으로 범벅이 될 것입니다. 이걸 어떻게 할 까요?
양잿물에 48시간 담궈놓을까요? 작업하다 말고? 글쎄요..
미국은 이미 영국에서 200 여명이 넘는 사람이 광우병으로 죽은 것을 알면서도
목축업자들의 이익을 대변해서... 소의 부산물로 소에게 사료를 먹일수 없게 하니까 이제는 소 도축 후에 남은 온갖
내장 뇌 뼈를 갈아서 닭 오리에게, 다시 닭오리가 죽으면 그걸 도축해서 다시 소에게 먹이는 ....
참 내 .. 이걸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그야말로 인면수심입니다..
최소한의 인간성을 잃어버린 나라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이런 나라에서 이런 방식으로 키우고 도축한 소고기를 수입하는 거
자체가 위험한데...
미국 지들은 물론 남들 다 안먹는 30 개월 이상 소를 부위에 상관없이.. 수입해다가
곰탕, 수육, 편육을 만들어 먹으면... 우리나라는 거대한 광우병 임상 실험장이 될 겁니다. 단연코... 가장 먼저 들어갈 곳은 학교와 군부대....
이 나라에서 가장 어리고 꽃같은 청춘들을 대상으로
인류 역사상 전무 후무한 실험이 광범위하게 진행될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단순히 안좋은 소고기를 수입한 것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희망이 없습니다.
단연코... 군대에서 소고기국을 어떻게 끓이는지 생각해 보면 금방 답이 나옵니다.
지금처럼 미국산 소고기가 안전하다고 국민을 기만하는 정부하에서는
당연히 학교 군부대는 미국산 소고기가 도배를 할 것입니다.
대한민국도 돈 앞에서는 장사 없습니다.
학교 교장선생님들도 급식 관련 비리로 문제가 되지 않습니까?
믿을 사람 없습니다. 정부도 저모양인데... 아마도 우리나라는 10 여년 후에는 광우병 역학에 관한한 가장 많은 증례와
가장 많은 데이터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인류 공영에 이바지 할 수 있겠네요...
초등학생부터 감염된 경우 .. 청년기에 감염된 경우 어떻게 될지... 비교도 해보고 ... 한민족이 희생해서 지금 아는 것 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은 광우병에 대해서
전인류가 정말 많은 것을 알게 되니..... 그러나 아마도 한민족은 전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환영 받지 못할 것입니다.
걸어다니는 광우병 위험물질로 간주될테니...
국적을 바꾸는게 현명할 것입니다. 대규모 광우병 발병 전에 말이지요...
정말 말로 다할 수 없이 두렵습니다. 이 것이 정녕 과장이라면 좋겠습니다.
미국산 소고기 자체를 싫어하는 것이 아닙니다.
미국산 소고기는 자국에서 생산하는 소고기에 대해서 철저한 검역을 하지 않습니다.
걷지도 못하는 광우병의심소를 도축해서 저소득층 학교 급식에 공급했다가 방송나가자 리콜했습니다. 자본주의 를 넘어선 돈에 미친나라 미국.. 이 곳에서 만들어지는 생명을 위협하는 불량식품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안먹으면 되지 않느냐..
맑은 물에 잉크 한방울 떨어지면 다시 맑게 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 물 다 버려야 합니다.
육수를 만들어서 먹는 우리 민족 식습관을 생각해보세요..
미국산 소고기를 다루는 식당에서 사용하는 도마와 칼을 생각해 보세요...
제가 얘기 하나 해드릴께요.. 해태 타이거스 모 투수가 간질로 선수생활을 마감했습니다.
원인은 뇌낭미충증.. 돼지고기를 날로 먹어서 기생충이 뇌로 들어가 석회화되면서 간질이 발생한 것이지요..
의대교수님들은 소고기 돼지고기 함께 다루는 식당에서 소고기 육회 절대 안먹습니다. 왜? 도마 칼을 같이 쓸테니.... 실제로 도마 칼 자국 사이 사이에 기생충 충란 들어갑니다. 돼지고기 썰때에.. 프리온은? 아마 촉촉히 젖어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위험한 소고기를 우리 땅에 들이는 것 자체가 어떤의미인지 아시겠지요?
쇠고기는 라면스프에도 들어가고 화장품에도 첨가됩니다.
단순히 소고기 안먹겠다고 해서 끝나는 게 절대 절대 아니란 말입니다.
참 불쌍한게 라면을 주식으로 드시는 저소득층 노인들 TV에서 본적이 있는데... 참 눈물 납니다.
우리는 지금 (잘사는) 미국*들도 안먹는 쓰레기 고기를 수입하려하고 있습니다. 지금 전세계를 떨게한 서브프라임 부실문제 도 미국놈들 잔머리쓰다가 이제는 도대체
손실이 얼마인지도 모르는 상황이 되어버렸습니다.
이제 미국이 또하나의 선물을 우리에게 주려 합니다.
광우병... 이미 알려진 위험물질을 이렇게 다루는 것은 미필적 고의 살인입니다.
(유럽은 이런 면에서 동물성 사료를 금하는 것에 엄격합니다. 이미 확인하고 봤으니까..
미국은? 알지만 그냥 무시합니다. 목축업자들의 이익을 위해서...
이쯤 되면 미국은 본질적으로 경찰국가가 아니라 깡패국가라는 생각이 드는 군요..)
이런식으로 불량소고기 공급하면 내가 지금 함께 살고 있는 아내 자식들이 프리온에
감염되었는지 불안해 하며 살날이 오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일본은 미국산 소고기 광우병 위험과 관련하여 학자들의 의견을 구하였는데,
돌연 학자들이 사퇴하였습니다. 정부가 정해진 답을 요구했기 때문이지요..
이 것은 당시 일본에서 대단한 충격이었습니다. 5명의 학자가 자문을 포기하고 사퇴해버린 것입니다. 또하나... 지금 헌혈 수혈 장기 기증 ..가장 큰 문제가 무엇입니까? 바로 감염입니다.
스크리닝에 의해서 100 % 걸러낼 수 없는 바이러스 질환 특히 에이즈, c형 간염 등이 문제가 되지요..
열심히 한다고 해도 수혈사고로 문제가 생기고 있습니다.
광우병이 발생하고 실제로 문제가 된다고 인식되는
15년 쯤 후에는 가공할 공포가 엄습할 것인데
그중 에서 가장 주목할 곳은 바로 병원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광우병 센터가 어디있는지 아십니까? 평촌 성심병원입니다.
이 곳에서 관련 부검을 다한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광우병 환자를 부검하면 수술 당시 사용한
수술 기구들은 버려야합니다. 병원마다 다 그럴 필요가 없고 그만큼 위험하니까
사실 어느 병원도 선뜻하려하지 않을것입니다. 그런면에서 성심병원에 고마워해야할 거 같군요..
어쨋든 ..
어느 병원 어느 의사도 광우병 부검을 원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광우병이 실제 발병보다 훨썬 적은 숫자만 드러난다는 말이 여기서 나옵니다.
아시겠지요.. 의심 가도 유가족도 부검을 원치 않고
(그 가족들은 광우병에서 자유로울까요? 가능성이 더 높지요..)
의사들도 적극적으로 권하지 않습니다.
부검에 들어간 사람들도 에이즈 만큼 두려운게 광우병이란 말이지요. 지금 이렇게 허술하게 일을 벌여서 대규모 광우병 발병이 실제 상황이 되면
종합병원 메이저 수술은 아수라장이 될것입니다.
바이러스와 비교도 할 수 없이 작은
프리온을 걸러내는 게 쉬울까요?
바이러스 양이 아주 적으면 검사기록지에 not detectable 이라고 뜹니다.
검사기계가 찾아내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없는게 아니라 못 찾아낸다고요...
수술 앞둔 환자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수혈 받으며 수술을 할 건지
아니면 죽든지 결정해야할 것입니다....
결국 지금 죽든지 나중에 광우병으로 죽든지.. 과장이라고 생각될지 모르겠지만...
아마 의사들도 수술장에서 철수 할지 모릅니다.
헌혈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 수술한
수술 기구가 오염되었는지에 의심가는 상황이 오면
답이 안나옵니다. 대란이 올 수 있습니다. 일본 녹십자회사는 에이즈 환자의 혈청이 들어있는 혈액을 포함한 다수의 혈액을 pooling하여
여기서 추출한 혈액응고인자를 만들어 팔았더랬습니다.
미국의 혈우병 소년들이 이거 사다가 맞았다가 에이즈로 사망하고
이 회사는 손배소 걸려서 파산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딱히 이 경우처럼 인과 관계가 명확하지 않은 식품의 경우는 손배소도 못해요.. 미국은 광우병 환자가 우리나라에서 발병하면, 그 것이 미국 소고기와 관계가 있다는 걸
증명하라고 할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정확히 말하면 우리나라 정부는 그 걸 증명할 의지도
능력도 없을 것입니다. 왜? 소고기 이력 시스템도 없고 유통되는 소고기를 제대로 파악 못하고
있으니까. 자료도 없을테고 역학조사나 인과관계도 증명 못할 것입니다. 미국은 자동 면피입니다. 우리가 광우병에 걸리든 말든 그건 지들과는 관계 없는 일이란 말입니다. 우리가 정신차리고 지켜도 모자랄 판에 온통 미국*들이 주무르는 국제 수역 사무국이 먹으라면
먹겠다는 것은 미쳤다고밖에는 달리 설명할 수 없습니다. 네 정확히 미쳤습니다. 종합해보면 아직까지는 위험이지 실제 상황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위험은 우리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위험입니다.
일본은 이미 6년전에 겪은 일을, 그보다 더 최악의 선택을 하고 있는 이 정부를 보면서
이 명박대통령의 가벼움, 일구 이언, 남대문 화재가 예사로이 넘길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불길한 생각이 듭니다.
차라리 노무현 전대통령의 말은... 듣기는 거북해도 타당한 말이었건만, 이 건 .... 기만입니다.
전문가들은 알고 있습니다.
인의협 오늘 성명발표했습니다. 정치색이 있지만 문제 없는 걸 죽는 병이라고 할 사람들은 결코 아닙니다. 의사 협회 건의했습니다. 금명간 성명서 정도는 나올 거 같습니다. 저는 아들 학교에 가서 학교 선생님들 대상으로 강의 할 겁니다. 내 자식이 지금
위험합니다. 안된다면 급식때문에 유학 보낸다 말 .. 나올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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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들도 광우병으로 사망했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11년간 채식했는데…인간광우병으로 생명 잃어
▲ 11년간 채식했지만 결국 인간광우병으로 사망한 크레어 톰킨스. ⓒBBC
1997년 8월, 이미 수십 명의 목숨을 앗아간 인간광우병으로 24세의 여성, 크레어 톰킨스가 생명을 잃었다. 그의 죽음은 당혹스러웠다. 그는 11년 동안 육류를 섭취한 적이 없는 채식주의자였다. 1986년 이전에 그가 먹은 쇠고기가 문제였을까? 그 때는 아주 극소수의 소만이 광우병 증상을 보이던 시점이었다.
인간광우병처럼 동물의 뇌에 스펀지처럼 구멍이 뚫려 죽는 전염성 해면상 뇌증 연구로 노벨상을 받은
칼턴 가이듀섹은 이렇게 설명한다. "(소뿐만 아니라) 닭도 (광우병 소의 뼈를 갈아 만든) 사료를 먹고
감염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닭에게 그런 것을 먹이면 배설물로 빠져나오지.
그리고 닭똥은 채소의 비료를 만드는 데 사용된다네." 채식주의자도 결코 안전하지 않다는 것이다.
보충하기 위해서 소의 뼈를 갈아 만든 사료를 먹인다. 이렇게 비육한 돼지, 닭을 도축한 후, 다시 그 뼈를 갈아
만든 사료를 소에게 먹이게 되면 결과적으로 광우병이 계속 확산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우유, 버터 역시 안전하지 않다. 1995년 인간광우병으로 사망한 18세의 남학생은 8년 동안 매년
고모의 농장을 방문해 살균 처리하지 않은 생우유를 마셨던 것으로 확인됐다. 비록 그 농장의 소 떼에서는 1995년 당시까지는 광우병이 보고되지 않았지만 말이다. 광우병 잠복기의 소에서 나온 우유가 그 남학생의 목숨을 앗아갔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지난 2월 9일 영국에서는 수혈로 인한 3번째 인간광우병 전염 사례가 확인됐다. 적혈구, 혈장, 혈소판 등이 모두 인간광우병의 매개가 된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가디언>은 3월 27일 "인간광우병이 수혈이나 외과 수술 장비를 통해 과거에 알려진 것보다 더 쉽게 전염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경고했다. 한국도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니다. 2000년대 이후 국내에서는 인간광우병으로 의심되는 환자가 여러 명 있었다. 2001년 3월 서울대병원은 한 36세 환자를 인간광우병 환자로 판명했다. 그러나 유족의 반대로 부검을 못해서 최종 판단은 유보되었다. 즉 '비공식'적으로는 이미 한국도 인간광우병 발생국일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정부는 좀 더 철저한 대책을 세우기보다는 광우병 위험이 큰 미국산 쇠고기를 전격 수입하는 결정을 내렸다. 미국은 위험한 쇠고기를 국력을 앞세워 국외로 수출한다는 눈총을 받자 최근에는 소에 대한 광우병 진단 수준을 10분의 1로 낮추는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상당수 전문가들이 미국의 광우병 실태가 은폐됐다고 여기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 정부, 10년 전 영국 정부 '판박이'
▲ <죽음의 향연>(리처드 로즈 지음, 안정희 옮김, 사이언스북스, 2006) ⓒ프레시안
이 책은 1990년대 중반, 인간광우병으로 공황 상태에 빠진 영국에서 정부가 얼마나 사태를 악화시키는 역할을 했는지 냉소적으로 묘사한다. 영국 정부는 광우병 소로부터 전염된 것이 분명한 15세 여학생 빅토리아 리머의 가족을 찾아가 이렇게 경고한다. "경제를 생각하셔야지요. 유럽 공동시장을 생각해 보세요." 당시까지 영국 정부는 광우병 소가 인간에게 인간광우병을 유발할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뿐만이 아니다. 수많은 과학자의 자문을 받은 한 영국 정부의 보고서는 이렇게 쓰고 있다. "최선의 방법은 향후 20년 이상 동안 영국에서 발생하는 모든 인간광우병 사례를 모니터하는 것입니다." 한 양심적인 과학자는 이렇게 비판했다. "그들은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아내기 위해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죽는지 지켜보자'고 말하고 있다."
결국 영국 정부는 광우병이 본격적으로 나타난 지 10년이 지난, 1996년 공식적으로 광우병이 인간광우병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음을 인정했다. 그나마 발표도 비정상적으로 이뤄졌다. 보수당 내각 관료들이 모두 '쉬쉬'하며 발표를 주저하자, 보건부 장관 스티븐 도럴이 하원에서 연설을 하던 중 관련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이런 영국의 경험을 보자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지금 한국 정부의 모습과 똑같기 때문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를 위해서 수년간의 '통상 현안'이었던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쉽게 허락한 한국의 농림부는 '유럽 공동시장' 운운한 영국 정부와 다르지 않다. 무조건 "미국산 쇠고기는 안전하다"고 강변하는 모양도 어쩌면 그리 똑같은가?
불행히도 현재까지는 인간광우병에 걸리면 죽을 수밖에 없다.
인간광우병을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진 변형 프리온은 고온, 고압으로도 제거되지 않는다.
음식물 속에 숨어 있는 이 질병은 감염 후에 몇 달 혹은 몇 년이 지나서 뇌 손상이 진행되기 전에는
근본적으로 확인도 불가능하다. 오죽하면 가이듀섹은 장미와 같은 꽃을 키울 때 흔히 사용하는 동물성 비료의 사용도 자제할 것을 경고했겠는가. 실제로 광우병이 영국에서 한창 확산될 때 영국왕립원예협회는 정원사들에게 이렇게 공지했다. "장미, 관목에 혈액과 뼈를 원료로 하는 비료를 줄 때에는 장갑, 방진 마스크를 꼭 착용하시오." 영국의 한 과학자는 1990년대 후반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수백 명 정도에서 그칠 수도 있지만 유럽 전체에 번져서 성서에 나오는 수준의 재앙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수만 명의 환자가 발생하는 대재앙의 가능성을 마주보아야 한다. (…) 지금 당장 행동에 나서야 한다. 우리는 해답을 찾아야 한다."
미국 국민들도 미국산 쇠고기 먹기 불안해한다.
미국의 시민단체와 언론들도 미국산 쇠고기의 위험성을 심각하게 경고하고 있습니다.<뉴욕타임즈> "살코기는 안전하다"는 주장만을 되풀이하는 정부를 믿을 수 없다며 "티본 스테이크나 갈비처럼 뼈가 붙은 부위의 살코기를 먹는 것은 위험하며, 뇌나 척수 등의 신경조직이 포함되기 쉬운 분쇄육과, 뼈 부근의 조각고기로 만드는 소시지, 피자토핑, 미트볼, 햄버거 패티등도 피해야 한다"는 지침서를 만들었습니다.
미국 치매환자 13%는 인간광우병 환자. 인간 광우병과 비슷한 증세를 보이는 치매환자가 1979년 653명이었던 것에 반해 2002년에는 58,785명으로
무려 9,000%에 육박하는 증가율을 보이고 있습니다.
피츠버그 의대의 보고서는 이 중 13%가 인간광우병으로 추정된다고 보고했습니다.
광우병 위험성 은폐하는 미국정부 미국의 쇠고기 수출업체인 크릭스톤핑스가 자비로 자사의 소를 모두 광우병 검사하겠다고 하자
미국 정부가 금지시켰습니다. 미국인들은 안전하다고 미국산 쇠고기를 먹는 것이 아니라,
정부의 은폐속에서 광우병의 위험성을 미쳐 모르고 먹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 연간 3700만 마리 도살, 단 0.1%만 광우병 검사 99.9%의 미국산 쇠고기는 광우병 감염여부를 확인조차 할 수 없습니다. 연간 평균 500만 마리를 도살하고
이를 모두 검사하는 일본은 현재까지 광우병 발생이 30마리가 넘는데 3700만 마리를 도살하는 미국은
단 3마리만이 광우병 발생이 보고되었습니다.
2004년의 미 농무부 감사관 보고서에 "소도축장의 광우병 특정위험물질 제거관리가 부적절하며,
광우병 검사방법이 육안으로만 이루어졌고, 그 육안검사도 5~10만 이루어졌으며,
또한 감시대상 도축장 1/6에서 광우병으로 의심되는 소가 식육으로 처리되고 있다."고 보고되고 있습니다.
살코기만 먹으면 되지? 변형 프리온 단백질은 주로 뇌,척수, 척추, 내장 등 주로 신경조직에 많이 분포되어 있다고 알려졌지만,
최근 연구를 통하여 근육이나, 살코기로도 전염되고, 오줌, 혈액, 젤라틴, 우유등에도
광우병 유발물질이 들어있음이 밝혀지고 있습니다.
미국은 갈비를 포함한 뼈를 포함 전면개방 요구하고 있고, 지금까지의 정부의 태도를 보면 추석 차례상에서
미국 소갈비를 보게 되리라는 것을 예상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끓여먹으면 �찮을까? 광우병의 원인체인 변형 프리온은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아니기 때문에 600도가 넘는 온도에서도,
포르말린에도 죽지 않으며, 땅에 묻어도, 심지어 방사선이나 자외선에도 살아남아
현재까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소독법으로는 파괴할 수 없습니다.
치료하면 되지? 치사율 100% 인간광우병 광우병은 뇌의 신경세포가 죽으면서 스펀지처럼 구멍이 숭숭 뚫려 이상을 불러우는 병으로,
인간 광우병은 광우병에 걸린 소를 먹은 인간에게 발병합니다. 인간광우병은 발병하면 치료방법이 없는,
걸리면 무조건 죽을 수 밖에 없는 무서운 질병입니다.
특히 광우병은 잠복기가 짧게는 수년에서 길게는 수십년에 이르기 때문에 한 세대 뒤에 광우병 공포가 전면화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미국산 쇠고기 안 먹으면 되지??
음식점 ' 원산지 표시제도'가 제대로 시행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미국산 쇠고기를 한우(및 호주산 쇠고기)로 속여서 파는지 알수 없습니다.
더 큰 문제는 저가이므로 학교(교내식당,급식소), 병원, 군부대, 식당 등 대량 급식소에 공급될 가능성이 높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미국산 쇠고기를 먹게 됩니다.
아울러 냉면육수, 라면스프, 화장품 등 소를 이용해 만드는 용품이 600가지가 넘는데
언제 어디에 미국산 쇠고기가 쓰였는지 알 수 없습니다.
한국인에게 특히 위험한 광우병 한국인은 예로부터 광우병 위험 부위인 소머리 사골, 갈비, 내장 부위 등을 즐겨 먹는데다,
전 세계에서 인간광우병에 걸릴 확률이 가장 높은 유전자형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은 MM 형, MV형, VV형 세 가지 단백질유전자형이 있는데,
지금까지 확인된 인간광우병 환자는 모두 MM유전자형이었습니다.
유럽이나 미국인의 경우에는 MM형이 35%에 지나지 않으나, 한국인은 무려 95%나 되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신뢰할 수 없는 쇠고기 검역체계 한국 뼛조각 발견 못하고 통과 한국은 국립수의과학검역원에서 X선 이물질검출기를 통한 투시검사, 육안검사 등 수입쇠고기에 대한 검역을 하고 있고, 길이 규정에 따라 3mm 이상의 뼛조각이 발견되면 수입금지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지난 7월 29일, 대형마트인 H매장에서 판매한 미국산 쇠고기에서 7mm와 1cm의 뼛조각이 발견되었었고, 이제는 30개월 미만의 미국산 LA갈비가 졸속협상을 통해 빠르면 5월 중순에 수입이 재개됩니다.
美 쇠고기 생산현장…"나는 `지옥`을 보고 왔다"
한국방송(KBS)의
▲ 분뇨 위에서 뒹굴고 있는 미국의 소떼. ⓒKBS
- 동물성 사료를 생산하는 공장도 직접 취재했다는데, 실태는 어떤가?
과연 미국 정부와 한국 정부가 공언한 대로 광우병으로부터 안전한가? "안전? 현장을 보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현재 미국 정부는 소의 뼈, 뇌를 갈아서 만든 '육골분 사료'를 금지했을 뿐 동물성 사료는 여전히 허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랜더링 공장은 낮에는 가동하지 않는다. 왜 그런지 의아했는데, 정문에서 지켜보고 서 있으니까 저녁 무렵에 트럭이 줄지어 공장으로 들어가더라. 그 트럭에는 그날 인근에서 소비된 온갖 음식물 쓰레기, 각종 도축장에서 온 부산물이 가득하다. 그것이 그대로 분쇄돼 동물성 사료로 가공된다. 그 음식물 쓰레기 안에는 온갖 것, 예를 들어 광우병 감염 위험이 높은 부위도 들어 있을 것이다. 육안으로도 소의 뼈, 내장 등이 트럭에서 쏟아져 내리는 것이 보였다." - 미국 정부는 쇠고기 수출 작업장에서 광우병 감염 위험이 높은 부위를 철저히 제거하고 있음을 강조해 왔다. "웃기는 소리다. 현장에 가봐야 하는데…. 일단 바닥에 피가 흥건히 고여 있는 지저분한 곳에서
아주 빠른 속도로 작업이 이뤄진다. 그런 속도로 작업이 진행되는데
광우병 감염 위험이 높은 부위가 섞이지 않는다면 그게 이상한 일이다.
더구나 기계톱이 사용되기 때문에 쇠고기의 뼛조각이 살코기에 섞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종양 등을 포함한 오염된 살코기가 그대로 소비자에게 공급될 가능성도 높다. 현지 시민단체가 실상을 고발하기 위해서 잠입해서 찍은 영상을 보면 그런 실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타이슨푸드, 카길 등이 돈을 벌기 위해서 소비자의 건강은 헌신짝처럼 저버리고 있는 실상을 사람들이 더 많이 알아야 한다."
▲ 동물성 사료를 만들기 위해 뼈, 부산물 등을 옮기고 있다. ⓒKBS
- 미국 사람은 쇠고기를 잘 먹는데, 그런 실상이 미국 안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고 있나? "거대 축산자본이 온갖 수단을 통해 실상이 알려지지 못하도록 훼방을 놓고 있다. 일단 언론의 취재가 거의 불가능하다. 아담스 농장, 랜더링 공장을 취재하면서 여러 차례 취재를 제한받았다. 물리적 폭력의 위협에 처하기도 했다. 이 축산자본은 온갖 로비, 징벌적 손해배상 소송 제기 등으로 양심적인 정치인이나 언론인의 입을 막는다. 미국에서는 오염된 쇠고기에 대한 리콜이 실시될 때도 그것을 판매한 기업의 이름은 공개되지 않는다. 오프라 윈프리가 1996년 '죽은 소를 갈아서 살아 있는 소에게 먹인다'는 내용의 책 <미친 카우보이(Mad Cowboy)>의 저자 하워드 라이먼의 얘기를 듣고 "다시는 햄버거를 먹지 않겠다"고 발언했다가 텍사스 목장주협회로부터 1200만 달러의 손해배상 소송을 당한 것도 한 예일 것이다. 그래도 점차 미국 사람도 쇠고기의 위험을 알아 가고 있다.
1990년대부터 미국 안에서 쇠고기 소비량이 급감하고 있다.
미국의 축산자본이 국외 시장에 눈독을 들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한미 FTA를 위해서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을 허용하고 말았으니 그들로서는 얼마나 환영할 만한 일이겠는가?"
▲ 기계톱을 사용하기 때문에 살코기에 뼛조각이 섞일 수밖에 없다. ⓒKBS
- 이미 미국산 쇠고기 수입은 결정이 됐다. 어떤 대응 방법이 있을까? "일본과 비교해보면 한국 정부의 대응은 아쉽기만 하다. 일본 정부는 국내 450만 마리에 해당하는
모든 소에 대해서 광우병 검사를 실시하고, 고기를 구입하는 소비자가 해당 고기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춘 후 미국과의 협상 과정에서 자국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다. 일본 국민은 이마저도 못 믿겠다며 수입재개가 허용된 지 두 달이 지난 지금도 60% 이상이
미국산 쇠고기를 기피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은 어떤가? 그 흔한 공청회 한번 열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미국산 쇠고기가 들어오면 학교급식,병원급식 등에는
광우병 위험이 있는 값싼 미국산 쇠고기가 무방비 상태로 공급될 게 뻔하다.
한국 정부는 뒷일을 어떻게 감당하려고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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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우병 쇠고기에 대하여 미국은 자국내에선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전량 리콜을 하고,
국민 전체가 비상한 관심을 보이는 반면,
우리는 안 먹으면 그만이지라는 의식이 아직도 팽배한 것 같습니다.
또한 값싸게 한 번 실컷 먹어보자라는 의견도 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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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우병을 발병시키는 변형 프리온 단백질은 단 0.001g만 있어도 광우병을 유발하지만
600도 이상의 고온에서도 파괴되지 않습니다. 먹는 것 뿐만 아니라
소를 원료로 하는 젤라틴(아이들이 먹는 젤리), 인공관절, 의약품, 화장품, 라면 스프 등에도
들어가기 때문에 결코 안전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출처] '채식'하면 안전할까…광우병의 모든 것 알려주마 -광우병 관련기사입니다(한울벗채식나라 ° °。) |작성자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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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도 5년후면 광우병이 발병해 사지를 비틀며 죽어갈지도 모릅니다.
광우병은 치사율 100%입니다.치료법도 없기때문에 격리되서 죽어가는 길 뿐입니다.
당신은 설마 안걸릴꺼 라구요?
소가 얼마나 다양한곳에 들어가는지 아시나요? 이제 부터 열거해 보겠습니다.
라면스프- 쇠고기분말
젤리- 젤라틴
마시멜로(초코파이 및 기타 여러식품)- 젤라틴
각종 조미료- 쇠고기 분말
햄버거- 각종 부위를 갈아넣음
스포츠 드링크
과자- 쇠고기분말과 칼슘 분말
설렁탕
갈비탕
사골국(곰국)
곱창
만두-갈은 소고기
우유-프리온 단백질 존재하는걸로 확인 됨
알약캡슐-젤라틴
탈지분유(아기분유,케�,쿠키,과자등에 들어감)
오뎅
피자
스테이크
갈비
김밥
비빔밥
육개장
냉면
장조림
떡볶이
육포
샤브샤브
불고기
볶음밥
카레
미역국
돈가스소스
외 기타 쇠고기가 들어가는 모든 음식
그리고 화장품까지
광유병균이 가장 많이 있는곳이 머리고기 부분인데 한국인은 이 머리부분을 즐겨먹죠.
당신은 하루종일 위에 열거한것중에 적어도 하나는 섭취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식당에 가서 고기가 안들어간 메뉴를 시켜 먹어도 음식에
광우병걸린 소고기가 들어간 조미료를 썼다면요? 광유병균은 살균해도 방사선에도 죽지 않습니다.
만약 식당에 갔는데 광우병걸린 소고기를 썰었던 칼로 당신이 먹을 채소를 썬다면요?
100%걸립니다. 5년이든 30년이든 발병해 죽어가는 일만 남은거죠.
[출처] 광우병과 미국 소고기 수입에 관하여... ( 첫번째 )|작성자 태 자
광우병의 증상
인간광우병은 증상이 바로 나타나지않고 잠복기간이 짧으면 3년~5년에서 길면 10년으로
잠복기간에도 아픈데 하나없이 평상시 같습니다.
그렇기때문에 자신이 광우병에 걸렸는지 안걸렸는지,
혹은 증상이 언제부터 나타날지 모르기때문에 더 무서운거죠
인간 광우병증상
난데없이 웃고 울고 잠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소리를 지름
증상이 심해지며 심지어 혼자서 계속 넘어지기까지 한다.
나중에는 몸을 움직이지도 못하고 음식물도 삼키지 못해
생명을 연장하려면 배에 호스를 꼽아 영양분을 보급해야하며
후에는 고통스러워서 소리없이 울다가 죽는다.
시체를 해부해보면
뇌에 구멍이 뻥뻥뚫려있음..
그러나 광우병 진행중에 자기자신은 치매상태..
초기에는 자기 무시, 무감동, 안절부절 양상의 치매증세를 나타내며 쉽게 피로하거나,
과다수면이나 불면의 수면 장애와 방향감각 상실이나 다른 고도 대뇌기능 이상이 나타난다.
간대성 경련이 대개 질병 시작 6개월 이내에 나타나며 그 외 소뇌 기능장애나 대뇌 신경마비가 오게 된다.
대개의 환자는 증상이 나타난 후 3~6개월 내에 사망하게 되며, 5~10%의 환자는 2년 이상 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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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긴 글 읽느라 수고하셨습니다.
관심깊게 읽어 내려오신 분들은 현 사태의 심각성을 아시겠죠
윗 글에 나열된 것들을 제외하고도 광우병 감염자의 타액이나
심지어 수돗물 또는 공기를 통해서도 감염될 수 있다고 하니
5월, 미국산 소고기가 우리나라로 들어오는 순간,
광우병 감염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볼 수 있겠군요.
아니, 어쩌면 피할 방법도 있을지 모르겠네요
어떤 음식도, 물도 먹지않고 숨도 쉬지 않는다면 말이죠...
이런 정보들을 가능한한 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심각성을 깨달을 수 있도록 퍼트려야 합니다
그리고 어떻게든 막아야 합니다
가만히 눈뜨고 앉아서 당할수만은 없는 일이지 않습니까
지금 막지 못한다면,
5년뒤 혹은 10년뒤의 상황은 말안해도 잘 아시리라 봅니다.
감사합니다.
(필독) 재미교포의 새로운 글공감 : 5 ( 5 - 0 )뉴욕한인회장의 "미국 사람들도 다 먹는 거니까 괜찮다"라는 입장 표명에 반발하여 미국 교포가 모 의원 게시판에 적을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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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의원님.
저는 뉴욕에서 공부하고 있는 유학생입니다. (6년 전에 왔습니다.)
이번 한미-FTA 굴욕협상을 보면서,
솔직히 정치에 관심없었던 많은 유학생과 교포들조차도 멀리서 고국과 동포들걱정에
일상생활에 지장받을 정도의 스트레스와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음식 앞에 이념없다고, 이 것은 반미도, 반이명박도, 반한나라당도 아닌
국민의 가장 기본적인 생존권에 관련된 문제이기에
정치라면 신물나고, 생각한 적도 없었던 사람들조차도
이 먼곳까지 와서 공부하면서, 힘든 이민 생활하면서도 걱정이 태산이란 말씀입니다.
며칠전 뉴욕한인회장 이세목부터 시작해서 조금전 청문회에서 워싱턴 전한인협회회
장? 이란 사람이 나와서 하는 말까지 보고서, 정말이지 더이상은 참을 수 없어서 의원
님의 이름을 검색후 뉴욕시간으로 지금 새벽 4시가 넘었음에도 가입하고, 글을 남깁
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1. 미국에 살고있는 미국인과 한국교포 및 유학생들은
한국으로 수입되는 30개월 이상의 소를 절대 먹지 않습니다.
이 곳 마트에서 유통되는 미국소는 등급별로 나뉘어져 있는데,
프리미어, 초이스, 셀렉트, 스탠다드 가 이것입니다.
프리미어가 가장 최상급, 스탠다드가 하위급인데,
통상 미국가정집에서 사용되고 있는 소고기는 초이스급 이상이며,
가장 낮은 스탠다드 급도 30개월 미만의 소. 입니다.
물론 그보다 낮은 등급의 소고기도 있는데, 이것이 바로 육골분사료와 애완용동물의 사료에 들어가는 등급으로 일반마트나 식당엔 유통이 금지된 것입니다.
법적으로 30개월 이상의 소를 미국소비자들은 마트에서
절대 구할수가 없단 말입니다.
2. 뉴욕과 엘에이 그리고 워싱턴 등 한인회장은 제멋대로 성명서를 발표하고
그것이 마치 전교포의 뜻인양 행세하고 있는데, 절 대 아 닙 니 다 !
그들은 여기서 한인회장의 감투.는 쓰고 있을지몰라도 대다수의 교포 및 유학생은
그들을 인정하지 않을 뿐더러, 알고 있지도 않습니다.
한인회장 투표율이 몇 프로 인지 아시나요? 5프로 입니다 5프로 ㅎㅎ
정말 똑똑하고 능력있는 교포분들은 그 쓰레기집단근처엔 가지도 않습니다.
한인회장이니 뭐니 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여기서 유통업,부동산업,요식업을 하던
사람들이 자기네들끼리만 회장이네 뭐네 하는거란 말입니다.
참고로 뉴욕한인회장 이세목은 미소고기유통업자 랍니다.
더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시간이 너무 늦은 관계로 오늘은 이만 줄이겠습니다.
제가 지금 너무 피곤해서 말이 두서없었음을 사과드리구요,
오늘 청문회에서 의원님께서 준비해오신 많은 자료와 발언을 보고서, 그래도 국회에
이 먼땅에서조차 지금 모두가 우리나라는 망했다라고 한탄하는 가운데
자격없는 한인회장이란 사람들이 제멋대로 전 미주교민들의 생각을 정반대로
자신들만의 이익으로 거짓말하는 것에 분노한 교민들이 청원을 낸 것입니다.
지금 이 곳 미주한인들이 이용하는 사이트에서도 알바들이 이상한 댓글을 달고,
관리자가 임의로 통보없이 관련글들을 삭제하고 있어 아직 서명수가 작지만,
이것을 시초로 제발 의원님께서 진실된 미주교포들의 억울함을 풀어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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