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DIARY

정호승님의 가슴을 에는 시들

ENARO 2009. 6. 8. 09:32

부치지 않은 편지

                           정호승

그대 죽어 별이 되지 않아도 좋다
푸른강이 없어도 물은 흐르고
밤하늘이 없어도 별은 뜨나니
그대 죽어 별빛으로 빛나지 않아도 좋다
언 땅에 그대 묻고 돌아오던날
산도 강도 뒤따라와 피울음 울었으나
그대 별의 넋이 되지 않아도 좋다.
잎새에 이는 바람이 길을 멈추고
새벽 이슬에 새벽 하늘이 다 젖었다
우리들 인생도 찬비에 젖고
떠오르던 붉은 해도 다시 지나니
밤마다 인생을 미워하고 잠이 들었던
그대 굳이 인생을 사랑하지 않아도 좋다


백창우씨가 작곡해서 김광석씨가 부른 노래

-부치지 않은 편지-

풀잎은 쓰러져도 하늘을 보고
꽃 피기는 쉬워도 아름답긴 어려워라
시대의 새벽길 홀로 걷다가
사랑과 죽음의 자유를 만나
언 강바람 속으로 무덤도 없이
세찬 눈보라 속으로 노래도 없이
꽃잎처럼 흘러흘러 그대 잘 가라
그대 눈물 이제 곧 강물 되리니
그대 사랑 이제 곧 노래 되리니
산을 입에 물고 나는
눈물의 작은 새여
뒤돌아보지 말고 그대 잘 가라

 

모두 드리리 (정호승)

 

그대의 밥그릇에  내 마음의 첫눈을 담아 드리리

 

그대의 국그릇에 내 마음의 해골을 담아드리리

 

나를 찔러 죽이고 강가에 버렸던 피묻은 칼 한 자루

 

강물에 씻어 다시 그대의 손아귀에 쥐어 드리리

 

아직도 죽여버리고 싶을 정도로 나를 사랑하는지

 

아직도 사랑하는 일보다 사랑하지 않는 일이 더 어려운지

 

미나리 다듬듯 내마음의 뼈다귀들을 다듬어

 

그대의 차디찬 술잔 곁에 놓아 드리리

 

마지막 남은 한 방울 눈물까지도

 

말라버린 나의 검은 혓바닥까지도

 

대의 식탁위에 토막토막 잘라 드리리

 

 

 

사랑하는 님! 안녕히 가세요!

 

신용묵 시인의    '용산의 그대에게'

아버지, 이제 장마가 오면 뜨겁던 몸도 그늘을 치듯 조금은 식을 수 있을는지요 우리는 여기 향을 피우고 당신이 뿜었을 마지막 숨이 연기처럼 흩날리는 것을 국화꽃 그늘 앞에 상을 차리고 바라봅니다 당신 등골을 타흐르던 땀처럼, 한나절 비가 천막을 치고 갑니다 그리하면 점점이 흩어진 살들도 송글송글 소금기 같은 여름꽃 몇 송이 키울 수 있을는지요 비가 옵니다 아버지 비가 오면 반 평 주방 새는 천장 아래 바께스를 받쳐야지요 물받이 처마의 갈라진 양철도 손질하고 밤새 눅은 소반을 닦아 한 사발 막걸리를 내야지요 삼우목공 목수 이씨가 들었습니다 출출한 하루가 책상반 얼룩에 백열등 촉으로 비끼는 저녁, 정밀금속 쇠잡이 김씨의 목이 칼칼합니다 아버지 서둘러 공사장 외벽을 걷고 탈탈 허물어진 일과를 깨워야지요 비가 오는데, 도시의 불빛들이 당신을 태웠던 마지막 불씨처럼 살아납니다

 

아버지, 이제 장마가 오면 반 년 내 불타던 망루의 허공도 물의 창살에 갇히겠지요 그러나 괜찮습니다 당신이 비워둔 노역 그 높이를 치는 창살 바깥은 모두 화염인 것을 번잡한 소요에 가려 천둥도 때를 놓친 철새처럼 한자리를 맴돕니다 그러나 괜찮습니다 우리는 흔들리는 향으로 기둥을 세우고 국화꽃 잎잎의 넓이로 기와를 이었으니 양은냄비와 한 짝 쇠젓가락 부서진 밥솥은 오장 속에 쟁여두고 웃으며 박았던 사진들도 한 장 한 장 늑골 사이에 꽂았으니, 괜찮습니다 이제 우리는 저 구름 뒤 숨은 별을 벼리어 연장 삼을 것이고 물웅덩마다 고인 하늘을 약속 삼을 것입니다 다만 먹장의 구름이 모두 당신의 살점으로 어둡고 내리는 비가 또한 당신의 눈물로 막연한 것을 그러나 다, 괜찮습니다 이제 우리는 어떤 화염도 두렵지 않으니

 

그리하여 아버지 비가 그치면, 당신과 불길을 나눠가진 제복의 가여운 동무를 데리고 삐걱이는 미닫이를 젖히겠습니다 갈라지는 햇살 아래 당신은 당신대로 또 동무는 동무대로 미나리 가는 목을 숙이겠지요 아무 말씀 않으셔도 좋습니다 그저 묵은 김치 막걸리 한 통으로 장마가 씻어간 먼지의 내력에 대하여 변방으로만 떠다닌 눅눅한 이력에 대하여 무람없이 취해가기를 그리하여 아버지 비가 그치면, 저 물소리 잔모리에 한 소절 뽕짝은 어떨는지요 가여운 동무도 곡조에 젖어 어디로든 흘러갈 것입니다 서로 반대편 어깨를 적신 후에야 우리는 알게 되겠지요 저 물이 낮은 곳으로만 흐르는 까닭을 정수리에 떨어지는 낙숫물처럼 아프게 알 것 같습니다 가장 낮은 곳이 가장 목마르기 때문임을

 

<시작노트> 화가 나서 울었습니다

몇 달 간격으로 나에게 세 번의 죽음이 찾아왔습니다. 지난여름 아버지가 돌아가신 게 시작이고, 겨울 용산의 참사가 다음이고, 그리고 늦은 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가 마지막입니다.

 

나의 아버지 당신은 한 번도 남에게 큰소리 쳐본 적이 없었습니다. 어쩌다 좋은 음식점에라도 가면 혹은 비싼 공연장에라도 가면 스스로 값 매긴 미천한 신분이 들통 날까 자신의 차림과 행동을 검열하느라 내심 조바심을 쳤습니다. 참으로 시골 촌로답게 가난한 가족에게는 엄하셨으나 힘 있고 돈 있고 빽 있는 자들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셨던 아버지. 나는 그런 아버지에게 화가 났습니다. 더불어 아버지에게 힘이 돈이 빽이 되어주지 못한 스스로를 원망하기도 하였습니다. 아버지는 마땅히 평생을 그렇게 살아야 하는, 힘없는 자들의 삶을 그대로 받아 안고 살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용산의 당신들도 평생을 나의 아버지처럼 산 사람들이었습니다. 설움에 쫓겨 가망 없는 희망을 붙들고 살아야 했던 하루하루들. 어쩌면 그 모든 비애를 자신의 탓으로 돌리며 많은 세월을 술과 주정으로 보냈을지도 모릅니다. 당신들은 그렇게 태어났으므로, 운명의 교시 아래 스스로를 하대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단 한 번, 더는 견딜 모욕과 능멸이 남아 있지 않았기에, 당신들은 싸웠습니다. 무엇보다도 더는 물러날 곳이 없었기 때문에 벼랑 끝에 망루를 짓고 버텨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싸움이 마지막 업이 되었습니다.

 

노무현 당신도 나의 아버지처럼 살아야 할 사람이었습니다. 언젠가 브라운관에 잡힌 당신의 친지처럼 힘없고 돈 없고 빽 없는 추레한 가족과 함께, 묵묵히 나의 아버지처럼 혹은 저 용산의 당신들처럼. 당신도 정해진 대로 가진 자들 앞에 굽신거리며 당하고만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보란 듯이 통치자의 위치에 올랐습니다. 많은 과오에도 불구하고, 분명 당신은 약한 자들의 편이었고 여전히 약한 자의 신분이었습니다. 그런 당신이 통치자의 자리에 올랐었기에, 당신은 끝내 절벽 아래로 떠밀렸습니다.

 

아버지 당신은 일생 약자임을 수긍하며 '약자로' 살았고, 용산의 당신들은 일생 약자를 견딜 수 없어 '약자로서' 살았고, 노무현 당신은 일생 약자에서 벗어나 '약자를'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죽었을 때, 나는 모두 같은 이유로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니, 세 번 모두 나는 아버지만 생각하며 울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들은 모두 당신 아버지처럼 살아야 한다. 용산처럼 저항을 해서도 안 되고, 노무현처럼 통치를 해서도 안 된다. 감히 넘볼 수 없는 것을 넘보았으므로, 당신들의 죽음은 당신들이 자초한 것이다.

 

힘 없고 돈 없고 빽 없는 우리들은 운명처럼 처지를 받아안고 평생 지고만 살아야 한다고 공언하는 그들에게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버지를 아버지처럼 살다 갈 수밖에 없게 만든 세상에, 화가 나서 울었습니다.

 

* 작가 소개 : 1974년생. 2000년 작가세계신인상으로 등단. 시집으로 <그 바람을 다 걸어야 한다> <바람의 백만번째 어금니>가 있으며, 시작문학상, 육사시문학상 젊은시인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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