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2일! 경주 가족 여행!
십 여년 전 성연이와 신혼 여행이랍시고 왔던 경주를 어머님 모시고 애들 세 명(한 명은 몸속에) 데리고 다시 찾으려 하는 경주 되돌이 여행이 어찌 감회가 새롭지 않을소냐?^^ 깨끗하고 아담스러우며 고풍스런 기억의 터, 서라벌, 하지만 애련함이 배여 있는 도시, 이름하여 '경주', 그 곳을 향해 간다.
불혹의 세월을 한참 지나도 아직 여행이라는 말은 나를 설레이게 하나 보다. 다만 표시나지 않도록 마음을 다독이는 술수만 늘었을 뿐...^^
토요일 새벽까지 들뜬 마음으로 후배에게 빌린 내비게이션 점검하고 여행갈 짐 대충 실어 놓고 2시30분경에 잠자리에 들었다. 6시 30분에 기상 최종적으로 짐 확인하고 나처럼 들뜬 애들과 함께 어머님 모시러 가서 드디어 8시경에 경주를 향해 출발, 도란 도란 얘기 나누며 김해, 양산을 거쳐 10시 40분경 경주에 도착하였다. 피서 여행겸 문화 탐방이라 그런지 시간에 쫒기듯이 우선 눈에 뜨이는 분황사 푯말을 보고 내달았다. 원효 대사의 얼이 깃들어 있다는 분황사, 오른쪽으로는 커다란 종이 반기고 불과 10미터 정도의 거리에 장엄한 분황사탑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탑의 분위기를 설명하고 느끼기에는 내 자신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며 느낌만 표현하기에는 너무 송구스럽고 현학적 태도로 흐를 것 같아 그냥 눈에 보이는 사실만 기록하는 식으로 소감을 남긴다. 다음엔 신라 시대의 왕족과 귀족들의 풍류와 미에 대한 감성을 엿볼 수 있는 인공 연못인 안압지를 두루두루 걸어 다녔다. 눈은 시원했지만 진짜 덥다. 그들만의 유희를 위해 머리 조아리며 손발이 부르텄을 백성들의 고난이 연못물 방울 방울, 나무 한 그루, 풀잎 한 포기마다 피와 땀으로 얼룩져 이 혹서를 쏟아내고 있는 건 아닌지... 아침도 거르고 차를 타고 오면서 대충 감자와 옥수수로 요기만 한 탓에 에너지 충전이 필요했다. 무난하게 보이는 쌈밥 정식집. 완전 속았다. 배가 고팠는 지 지훈이만 '맛있다'를 연발했지만 정말 내가 여태껏 먹어본 음식점중에 최악이었다. 배는 많이 고팠지만 한 그릇에 만원이란 가격에도 어머님, 성연, 나는 거의 밥만 된장에 비벼 먹고 나오는 수준이었다. 어머님께 너무 미안했다.
어쩔 수 없이 허기만 달래고 다시 문화 탐방 코스로 접어 들었다. 하지만 어른들만 문화 탐방 흉내지 희석과 지훈이는 계속 바다 타령만 늘어 놓는다. 그 때마다 잔소리를 늘어 놓지만 그래도 귀엽다^^ 내리 쬐는 햇살을 뚫고 첨성대로 가는 길, 외국인들이 정말 눈에 많이 띄였다. 이쯤되면 세계 도시라 이름직하지 않은가? 일본인, 중국인, 파란 눈에 앳된 백인 남녀들. 자전거 타기를 즐기는 폼새가 너무 자유 분방하다. 내가 로마에 있다면 그들처럼 자유로이 자전거 타기를 즐길 수 있을까? 희석, 지훈, 보미(봄이-세째 태명)는 세계촌의 시민이 되도록 도와 주어야 겠다. 첨성대에 관한 문화 유적 해설사의 말을 엿듣고 있자니 정말 신비롭고 놀랄만한 과학 조형물이라 이르기에 충분하다. 다음엔 김알지의 신화가 서려 있는 계림(닭 울음소리가 들린 숲)에서 잠시 땀을 훔치고 조선시대때 만들었다는 옛 냉장 시설인 석빙고를 향해 출발, 잠시 내부를 엿보니 관람료를 안 받는 이유를 대충 알 것 같다. 이 곳이 바로 신라의 궁궐터이자 생활터였던 반월성이란다. 저 멀리 얼마 전의 인기 드라마, '선덕 여왕'에 나왔던 야심차고 표독스런 불운의 여걸인 '미실'로 분한 고현정이란 여배우의 그림 형상이 버드나무 아래 서 있다. 장난스레 마치 바보처럼 달려가서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포즈를 취하며 성연에게 사진 찍어줄 것을 요청하니 객적은 소리 한 마디 날리며 '픽'하고 셔터 눌리는 소리를 듣는다. 희석이, 지훈이만 이상하지만 재미있다는 듯 나를 보며 놀려 댄다. 나의 의식 수준은 딱 그네들 또래인가^^ 다음 목적지인 천마총을 향해 가는 길이 애달프다. 발이 불편하시면서도 전혀 내색 않으시며 내 마음 편하게 해 주시려 교육을 위해 잘 한다며 칭찬 던져 주시는 어머님께 더욱 고맙고 한편으로는 너무 죄송스럽다. 벌써 수 킬로미터는 걸은 것 같다. 땡볕속을... 어머님께서는 천마총은 많이 본 무덤이라며 그늘에서 쉬신다며 굳이 걸음을 마다 하신다. 하기야 어머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겠다. 가는 길에 어머님이 사서 건네 주신 경주 특산품빵을 하나 씹으며 어느 왕의 무덤인 지는 모르지만 자작나무 껍질에 하늘을 나는 말이 있어 '천마총'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십 여년 전 겨울, 신혼 여행 왔을 때 앞에서 수줍은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나는 그 곳을 세 명의 분신과 그들을 이끄는 우리 두 사람이 함께 들었다. 목벽뒤에 아직 유해가 있단다. 많은 사람들이 있는 탓에 집중은 어려웠지만 그를 느끼기 위한 의식적 행사를 찰나의 인연으로 가졌다. 다시 대릉원을 지나 따가운 햇살, 유서깊은 소나무 그늘을 지나 어머님 기다리는 곳으로 왔다. 이제 우리 애마인 '한에듀 아카데미'호로 시간의 바다를 거슬러 오늘의 하이라이트인 불국사와 석굴암을 향하여 출발! 세계 문화 유산인 불국사에 도착하니 어느듯 시계는 2시 30분을 가리키고 있다. 이제서야 두 왕자는 수첩 하나에 연필 하나를 끼고 역사 탐방 흉내를 낸다. 하지만 아주 잠시후에 다시 그들로 되돌아갔다. "바다는 언제 가요?" 문화와 역사를 만끽하는 아주 많은 사람들 틈에 섞여 제법 비디오 카메라를 돌려 가며 멋있는 아버지인 척, 뭔가 느끼고 있는 척 제법 부산을 떨면서 문화 유적 해설사들의 설명들을 귀동냥으로 들으며 주린 배를 채워 놓았다. 웅장하고 영험한 대웅전을 가운데 두고 좌, 우로 서 있는 두 pagodas. 여성스레 치장이 고운 다보탑과 아사달과 아사녀의 슬픈 얘기가 서려 있는 일명 '무영탑'이라는 별칭을 가진 남성적인 석가탑. 하긴 요즘은 석가탑이 여성이고 다보탑이 남자인 지도 모를 일이다^^ 보고 또 봐도 특이하고 예술적인 건축 구조를 지닌 불국사를 다음엔 여유를 가지고 다시 탐방하리라. 시계는 벌써 5시를 넘어 섰다. '석굴암을 보고 갈까? 아니면 내일 여행 일정에 포함시킬까?' 망설이다 내친 김에 오늘 보고 가기로 작정했다. 토함산을 오래전에는 불국사 뒷길로 걸어서 올랐었는데 이번에는 구불구불한 길을 차로 서둘러 올랐다. 관람 시간이 6시까지로 되어 있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산림이 울창하게 우거진 산길을 600미터를 걸어 가니 세계 문화 유산, 석굴암이 저 멀리 동해를 굽어 보며 온화한 미소로 앉아 계시다. 신라의 재상이었던 김대성이라는 분이 불국사를 창건하고 돌아가신 부모님의 극락 왕생을 위해 창건했다는 석굴사가 이제는 석굴암으로 너와 나의 마음 속에 와 있다. 김대성, 그 분과 작금의 나는 반대인가? 아니면 그 분의 마음 깊이를 헤아리는 자세인가? 어머님께서는 허기도 지시고 몸도 피곤하실 터인데... 서둘러야 겠다. 저녁 식사와 잠잘 곳을 정하려 출발했지만 거리가 만만치 않다. 감포 재래 시장에 차를 세우고 저녁 거리를 잔뜩 샀다. 그런데 왠걸, 날은 벌써 어두워졌고 소나기가 퍼붓는다. 이제 거처를 정해야 한다. 마음 같아서는 숙박 업소에 들어 편안한 밤을 보내고 싶었지만 텐트로 하룻밤의 추억을 두 놈들에게 선사하기로 애당초 마음 작정했던 일이라 이리 저리 한 삼십여분을 헤매고 다녔다. 그때 어둠속에서 우연히 눈에 뛴 '야영장'이란 팻말, 차로 쭉 들어서니 넓은 백사장에 텐트 시설같은 것이 보인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밖을 나가 보니 간간히 뿌리는 비 속에서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감포 해수욕장이다. 에구, 참 짐도 많기도 하다. 어머님껜 불효 투성이다. 그래도 비를 피할 수 있는 튼튼한 천막 시설이 있어 그 아래 허겁 지겁 텐트를 치고 어둠 속에서 고기를 구우며 식사 준비를 했다. 드디어 어머님께서 역정을 내신다. 하긴 점심도 대충 드셨고 저녁 식사를 적지만 워낙 빨리 하시는 분이라 너무 죄송스러웠다. 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희석, 지훈이는 해수욕장 전체가 자기 집인 양 너무 즐겁다. 어머님과 저 두 놈은 정반대의 기분이리라. 처음 계획은 해가 있을 때 자리를 잡고 고기 구워 먹으면서 어머님과 아름다운 얘기 나누면서 바닷가에서의 추억 거리를 만들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어머님은 간단히 식사를 하시고 물도 제대로 찾을 수 없는 탓에 식수로 양치질하시고 수건으로 물 적셔 땀 닦으시고 먼저 잠을 청하신다. 불효 막심이다. 너무 죄송스럽다. 그래도 두 놈은 어두운 탓에 약간 타고 딱딱하게 구워진 삼겹살을 맛있게 구워 먹는다. 어머님께서는 마음을 다 잡으셨는지 다시 일어나셔서 그 놈들의 입에 그리고 나의 입에 정을 담은 보쌈으로 채워 주신다. 먹구름이 가득하다. 소나기가 왔다 갔다 한다. 그 덕에 너무 시원하게 바람이 불었다. 폭죽도 곳곳에서 터진다. 그 소리 탓에 일요일 새벽 1시경이 되어서야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어머님께 미안한 일이지만, 지훈이 볼 일 보이러 함께 갔다가 뜻하지 않게 가족끼리 샤워 시설을 유료로 이용했다). 소나기가 천막 위를 후두둑거리고, 잘못 맞춰 논 성연이 휴대폰 알람 소리, 게다가 우리 옆 쪽에서 야영을 하던 가족이 짐을 챙겨 철수하는 소음 탓에 우리 어른들 셋은 잠을 깼다. 두 놈은 집보다 더 상쾌하게 잠을 잔다.^^ 4시 30분이 조금 지난 시간인데도 어둠은 꼬리를 감추고 있었다. 어제 바람이 많이 불어 모기가 없는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 간지럽더니만 난쟁이 모기 몇 마리가 토실 토실한 배를 쓰다 듬으며 이제는 죽어도 여한이 없는 것처럼 비틀 비틀거린다. 내 배와 비슷하다.^^ 손바닥에 벌건 핏자국이 맺힌다. 통쾌하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이 놈들을 다 죽여 버렸다. 속이 다 시원하다. 어머님은 벌써 밖을 나가 바닷가를 다녀 오신다. 나도 잠을 포기하고 하룻밤의 선을 나서는 순간, 눈에 들어오는, '그래! 정말 보고 싶었던 동해 바다!' 이생진 시인의 말처럼 눈이 베일 것 같은 수평선, 끝간 데 없는 새벽 바다는 오늘의 우리에게 큰 희망으로 넘실 넘실 다가 오고 있었다. 성연이도 잠시 후 일어 났다. 서둘러 아침 식사를 차리니 두 왕자님이 부시시 일어나 바닷가를 한 바퀴 산책을 한다. 참 여유있다. 6시 30분경에 함께 모여 카레라이스, 미역국, 김치... 하지만 꿀 맛이었다. 어머님께서 맛있게 드시니 정말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성찬이었다. 식사후 덥기 전에 짐을 미리 정리하여 차에 옮겨 싣고 어젯밤의 약속처럼 희석과 지훈의 신나는 바다 놀음을 지켜 보았다. 하지만 해가 모습을 드러 내자 계곡 선호형인 어머님와 우리 내외로선 도저히 견딜 수가 없다. 철수하기로 하였으나 희석과 지훈을 민물에 씻기는 것이 문제였다. 또 이리 저리 헤매다 어머님께서 순 우리 농산물 일일 장터에 내리셔서 잠시 눈요기를 하시는 사이 우리는 어느 한적한 집의 마음씨 좋은 아저씨께 양해를 구한 후에 거리에 설치되어 있던 지하수물로 그들을 검은 왕자님으로 변신시켰다. 참, 대단한 추억 만들기였다.^^ 날은 너무 푹푹 쪄 대고 시간은 어느 듯 정오를 지나고 있었다. 어머님께 근사한 점심을 대접할 요량으로 '대게 도매점'이라는 곳에 이르러 가격을 물으니 국산 대게도 아닌데 가격이 심상찮다. 죄송스럽지만 양해를 구하고 회나 먹자고 다시 이 곳 저 곳을 곁눈질하다 허름하게 보이는데 사람들이 계속 드나드는 '할매횟집'이란 곳을 들어 가기로 마음 먹었다. 주차장도 없어 길 건너편 초등학교 안에 주차를 하고 들어 가니 한 20분을 기다리란다. 우선 회 한 접시를 먼저 주문하려니 주인 할매가 하시는 말씀이 괜히 낭비 하지 마란다. 회덮밥에 회국수로 두 그릇씩 시키면 따로 나오는 회와 함께 먹으면 배가 부를거란다. 기다리려고 마루에 걸터 앉았다. 그런데 잠시 후 느닷없이 카메라가 내 눈 앞에 와 있다. 그리고는 카메라맨이 질문을 던진다. "여기 어떻게 오셨어요?" "휴가차예" "이 집에는 어떻게 들어 오셨어요?" "지나가는 길에 보니 사람들이 많길래 맛있는 게 있나 싶어 들어 왔지예." 그런데 내가 생각해도 내 모습이 뭔가 불안하고 어색한 얼굴이다. 언뜻 뱃속의 보미에게도 기념이 될 것 같은 생각에 성연이에게 인터뷰할 것을 카메라맨에게 전하니 나보다 더 수줍어하며 어머님께 넘긴다. 어머님께서 촬영에 임하신다. 조금 불안하다. 그렇게 TV와 우리의 첫 만남은 끝이 났다. 주문한 음식이 나오고 옆에서는 다른 사람들을 상대로 계속 촬영이 이어진다. 횟밥과 국수, 그리고 회가 너무 맛있다. 정말 자연산인 가 보다. 더군다나 주인 할머니께서 우리도 한 번씩 찾아 가 맛보는 '사천 냉면' 드시러 진주 칠암동에 자주 오신단다. 작은 인연이다. 그리고 인터뷰 해 주어서 고맙다며 회를 더 가져다 주시며 KBS에서 7월 29일 저녁 7시 10분에 방송되는 '생생 정보통'이라는 프로그램에 나올 거란다.^^^ 경주에서의 식당 식사 두 번, 건물은 으리으리하지만 음식맛은 최악이었던 쌈밥집과 도로가옆 허름한 곳이지만 음식맛과 인심은 황제식이었던 할매 횟집-결국 한 마디로 거지 입맛으로 시작하여 축하 촬영까지 곁들여진 황제의 유쾌한 풍미를 즐긴 셈이었다. 이후 우리는 감은사탑으로 향했다. 문무 대왕의 아들인 신문왕이 죽어 용이 된 아버지가 오셔서 쉬시고 가라고 부처님 모시는 금당 옆에 용이 드나들 수 있도록 용혈까지 뚫고 금당 아래에는 용의 꿈틀임따라 아래의 돌들을 배치해 놓아 아버님을 기렸다는 '진국사'(삼국 통일을 이루고 난 후라 이제 신라가 나갈 길은 나라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일밖에 없다고 생각하여 지어진 이름-감은사(은혜에 감사한다는 의미)의 옛 이름)를 찼았다. 십 여년 전 겨울에 성연과 함께 탑돌이를 하며 멋진 아들 두 놈 선사해 달라며 소원 빌며 탑돌이를 했었는데, 이제는 다시 보미를 배 안에 두고서 탑돌이를 시작했다. 어머님 만수 무강, 형제들과 짝들, 그리고 자손들이 현명하고 우애있게 잘 살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빌었다. 희석, 지훈이 건강하게 지혜롭게 자라게 해 달라고 빌고 마지막으로 성연이가 건강한 몸으로 보미를 순산하여 문무 대왕처럼 훌륭하게 이 나라를 이끌고 갈 재목으로 태어나게 해 달라고 빌며 통일 신라를 상징하는 높이가 13여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쌍탑 돌이를 마쳤다. 이제는 경주 여행의 마지막 코스이자 차로 감은사지에서 5분여 거리에 있는 문무 대왕릉을 보러 출발하였으나 신혼여행때처럼 가까이는 가지 못하고 너무나 시원한 바람이 인상적인 이견대(문무 대왕릉을 보고 빌면 이로운 일을 많이 볼 수 있다는 데서 붙여진 이름-문무 대왕릉을 한 눈에 바라볼 수 있어 후에 조선 시대까지도 많은 왕들이 문문대왕릉에 와서 넋을 기리고 추모하였다 함))에서 문무대왕릉을 보고 드디어 귀가길을 택했다.귀가길은 시간이 좀 더 걸리더라도 시원한 지리산 계곡이 그리워 냄새라도 맡을 심산으로 함양을 내비게이션에 찍어 출발하였으나 예상외로 시간이 많이 걸리고 너무 피곤하여 운전 중 눈이 너무 감겨 중간에 한 10분 남짓 단잠을 청하고 나서 합천으로 중간 경유지를 정해 출발하였으니 그 또한 대구쪽으로 들어서니 시간이 너무 낳이 소요되어 다시 내비게이션에 진주를 찍어 돌아오는 길에 다시 졸음이 쏟아지는 탓에 휴게소에서 한 번 더 단잠 청하고 나서야 5시 30분경에 진주에 겨우 도착할 수 있었다. 어머님은 계모임 참석 위해 진주 시청앞에 내려 드리고 집에 도착 쓰러져서 1시간 가량 자고 저녁 수업 위해 출발하여 2시간여의 수업 마치고 오는 길에 E마트에 들러 약속한 대로 희석과 지훈을 위한 물놀이 보트 구입, 눈에 확 들어온 성연이 모자와 원피스 구입하여 집에 도착(옷과 모자가 내가 보기엔 보미 엄머에게 너무 어울림) 대충 짐 내려 놓고 어머님댁에 어머님 짐 가져다 드린 후 집에 돌아와 최종적으로 짐 내리고 후일 상세한 기행문 작성하기로 하고 대충 블로그에 글 올리고 나서 이제 정리와 한 주를 위한 단잠을 청할 시간-기다리고 기다리던 그 시간, 여행을 함께 한 어머님, 보미 엄마, 희석, 지훈, 보미, 그리고 나 자신에게 이렇게 고하며 나는 스러졌다. "정말 좋은 추억 만들기였습니다! 그리고 너무 수고했습니다^^"
이후, 7월 29일날 7시 10분, KBS '생생 정보통'이라는 프로그램에, 어머님께서 인터뷰하신 장면 두 차례, 우리 식구가 음식을 즐기는 모습, 기다리며 앉아 있는 6명의 모습이 전국으로 방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