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
한에듀 뒷 베란다에 나가면 그 더운 여름날들에 늘 곁눈길로 서로를 바라보던 분들이 있었다.
노부부 한 쌍, 낮에는 더위를 피해 앉아 서로간에 이제 무슨 말이 필요하겠냐는듯 늘 그 만큼의 거리로 서로를 응시하는 모습도 없이 마냥 앞을 쳐다보고 계셨던 두 분. 아마 눈이 앞 쪽에 달려 있기에 내가 그렇게 느낀 것이리라. 옷차림과 얼굴에서 묻어 나오는 처절하지만 열심히 살고자 하셨던 두 분의 인생 그림자. 나의 부모님처럼 기인 여운의 자락을 드리운 세상사를 이루 짐작할 수 있었다.
이제 그 두 분은 보이지 않고 초췌한 가을 햇살만 좁은 마당에 그득하다. 늦가을인가보다. 춥다.
가을의 문턱을 지나 찬바람이 아침, 저녁 나절을 후빌때 쯤 문득 나의 눈에 들어 온 그 분들 마당에 열려 있었던 커다란 왕감 세 개. 멀리서 보기에도 유난히 크고 감색다운 감색이었다. 자그마한 나무건만 어떻게 저토록 위용을 뽐내고 있을까? 마치 '따 갈 용기가 있으면 한번 힘써 보시지.' 으스대고 있는 것 같았다. 어느 날 두 분께 그 감이 드시고 싶으셨나. 조금 거동이 불편해 보이는 할아버지 대신 할머니께서 작대기로 그 중에서 제일 큰 감을 가을 오후의 주전버리용으로 장만하려 하셨다. 아쉽지만 자본주의의 아름다움을 익히 알고 있는 터. 배가 부르지 않으면 아름다움은 울려 퍼지지 않는 메아리에 불과하다. 그냥 그 곳을 떠나 버렸다. 잠시 후 나가 보니 제일 크고 탐스러운 그 감은 그대로 달려 있는데, 다소 쉽게 잡을 수 있었던 형제놈이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두 분의 입가에 미소는 보지 못했다. 며칠 후에는 유독 햇빛을 잘 받아 그 자체로도 나의 눈길을 도둑질하던 그 발갛던 대왕감마저 보이지 않았다. 지난 밤 다소 거센 바람 탓에 떨어져 버렸나? 두 분의 안 방에서 풍성했던 가을 내음을 풍기며 고른 숨소리를 엿듣고 있을까? 아니면 두 분이 입 안의 달콤함을 위하여 달콤한 추억 하나를 쓰러뜨렸을까? 해지는 이른 저녁 나절, 정말 무더웠던 지난 여름 나의 마음 한 켠을 쓰다듬어주던 그 감이 이제 떨어져 버렸다. 겨울이 오나 보다. 춥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