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ARO's Poems 18(사랑/다솔사/미완성작 회상/어린 왕자/대한민국과 씨름.)
사 랑
바다를 보면
네 생각이 난다
깊게 누워 있는 듯
머얼리 일어선 듯
네가 보인다
안기고 싶고
달려가고 싶은
네가 보인다
바다를 보면
산냄새가 나
네 생각을 한다
바다였던 산
네가 그립다
2004, 1, 3,
다솔사에서
- 약수터옆에서 -
시를 읽으면서 밑줄을 긋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
인생이 바로 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에
밑줄을 긋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맑은 물 한잔이 고마운 여정에
밑줄을 긋는 일은 말아야겠다
하물며 남의 인생에 밑줄을 긋는 일은 않아야겠다
설령 그 사람이 나의 아들일지라도
회 상 Ⅱ
개골개골
개구리 못나 울던
그때도 오늘처럼 비가 내리던 날
불어터진 눈자위만 남겨두고
술취한 골목에서
“美야”
애인이름 막자 길게 부르며
여덟 팔자 꼬락서니로
가파른 호흡, 담배마저 꼬나 물고
연기를 소리나는 하늘에다 불어 재꼈다.
꺼이꺼이
가슴을 치며 울던
그때도 오늘처럼 비가 내리던 날
막내는 당신 등에서 넘고
당신은 여윈, 손으로 넘던
황톳빛 고개 마루
“鉉아”
큰놈이름 막자 외쳐 부르는
그 날
어린 왕자
물고기도 생선도 ‘이에’라고 한다
소고기도 돼지고기도 닭고기도
‘이에’라고 한다.
어디서 그 말이 나왔는지 두무지 모를 일이다
다만 그가 ‘이에’라고 하면 나는 ‘이에’를 가져다 주면 될 뿐이다
내 아들놈 희석이는
껌을 ‘매’
우유를 ‘맘마’
그는 나의 세상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나의 이해를 바라지도 않는다
그는 그의 세상속에서 그의 언어속에서
마냥 즐겁고 행복할 뿐이다
나는 그의 세계에 파묻히면 좋겠다
나는 대한민국과 씨름 한 판 하고 싶다
부모님의 뜻으로 여기 나서
나의 뜻으로 여기서 자라
자식들의 뜻으로 나를 묻고 가야 하는
이 곳,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쓰고자 한다.
나의 못난 영혼까지 덮어 가며
얼룩이 생길 때마다 나를 더욱 포근히 감싸주는 아내에게
지금부터 내가 이 대한민국과 사랑하는 일을 지긋이 바라보며
지금부터 내가 이 대한민국과 씨름할 때마다 어깨도 주물러주고
등뒤의 검은 모래도 하얀 수건으로 털어내 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이 글 역시 나의 아들들에게 줄 선물이 될 것이다
언제까지 이 글이 이어질 지 모르나
이 글이 끝나는 그 순간까지 나는 나의 삶을 바치고 싶다
나의 두 아들들과 사랑하는 부모님과 모든 가족들에게 나의 사랑을 바친다, 그리고 그들의 이해를 바란다.
나는 대한민국과 씨름 한 판 하고 싶다. 1
이승만과 프란체스카에 대하여
어떤 것을 잊어버린다는 것은
꿈결에 놀라 깨는 아이의 울음같은 것
어떤 것을 잊고자 할 때 가장 좋은 방법은
다른 어떤 것으로 대체하는 것
다른 대상을 더 사랑하는 것이다
이 얼마나 가슴 저미는 행위인가
이 얼마나 끔직한 인생의 섭리인가
더군다나 한 사람을 잊어야 한다는 건
아장아장 아이의 배웅을 받으며
출근길로 나서던 나는
또 한 사람을 가슴에 묻어야 한다는 사실을
그리하여 빠르게 후일 또 가슴을 저밀 한 사람을
가두어야 한다는 생각에 놀란다
내가 갇히기 전에
내가 잊혀지기 전에 먼저 잊고자 하는 게
빈 구멍을 덜 만든다는 사실을
지난 경험을 통해 알고 있다,
무제
선생방 뒷 구석에
극장용 바람기계
삐걱대며 돌고,
내 인생마냥
헤푼 바람만 들어
터억~턱 더운 입김 내뱉고 있다
안으로 삼키며 고뇌하던 모습은
이미 살해당하고
텅 빈 바람만 허공에 부대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