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KOREAN POEMS

ENARO's POEMS 10(가을 생각/포석정/비가 내린다/자화상/이태백 시 한 수)

ENARO 2008. 5. 21. 18:33
秋  想

 

어느 날 부턴가 나는

파도치는 세월에 쫓겨

서른 넷 가을 날 여기까지 왔습니다


다가오던 이를 눈짓으로 흘리며

가려던 사람을 가슴 속 불을 지펴

막아서던 애꿎은 놀음이 하늘에 걸립니다


아무 것도 모른 채

정녕 가시같은 사상도 없이

‘나는 나’ 라는 빈 껍질만 두르고 살았습니다


출근길 아들놈 하얀 잇몸속에서

내겐 미소가 어울린다는 걸,

알면서도 애써 인상 지으며 살았다는 걸...


문득

푸르게 늙어가는 가을 날 아침 나절

작은 내가 웃으며 다시 길을 나섭니다


               2001 , 8 , 24 .(金)


 

     포 석 정


여기는 신라의 옛 터가 아니다

흙벽이되 검은 폐허가 아니고

즐기되 광란의 연기 자욱은 더욱 아니다


사내는 그릇을 정으로 닦고

아낙은 술병을 미소로 치운다

내게는 눈길 하나 건네지 않아도 좋다


가득, 토해지는 노래 자락 군데 군데

세상이 어우러져 딩가당 춤사우l,

군대 갔다 죽은 친구놈이 걸어 나온다


‘꽃반지 끼고’

그 놈은 결국 꽃반지를 끼지 못했다

빌어먹을 노래 탓이려니

‘그 여자는 꽃반지 숨겨 울며 시집을 갔다’


술사발에 묻혀

하늘이 땅 아래 엎드리는 참회의 시각

나는 포석정 구석 자리 앉아

과거만 숭숭 구멍 뚫고 있다


아, 기똥찬 의식 상실의 밤이여


                       2001 , 9 , 3 .



  비가 내린다


비가 내리면 으레

담배 한 개피 불지르고 싶다

 

베란다 한 켠에서

차단용 유리문을 닫아 건다

-이제는 결코 생각하지 않으리라-

 

노란 영혼, 노란 가슴을 하여

벌레 한 마리 매달려 있다

그녀는 나를 보고

나는 그녀를 본다


그녀가 갇혀 있는 건가

내가 갇혀 있는 건가

-담배 연기를 훅- 뿜어 본다


내가 갇혀 있다는 걸 알겠다

내가 내 안에 빨간 죄를 짓고

들어 앉아 있다는 걸 새삼 알겠다


비오는 날이면

파란 담배 연기 타고 한번 날고 싶다

저 벌레, 저 비처럼


                2001 , 9 , 9 .


 

    자 화 상

    

                  존경하는 진주 청년 문학회 회원님들께


내 남은 삶만큼 할 일도 많았으면 좋겠다

기껏 공기나 바늘로 콕콕 찔러

피터짐 맛보며 나의 목숨인양

사랑 구걸하는 아마츄어 시인보담

내 식어가는 응어리를 꼭, 터뜨리고 싶다


할 말이 많은 만큼 나를 줘패고 싶다

숨기 위해 결혼을 하고, 전셋집도 장만을 했지

“더 달아나는 게 필요할 걸”

항상 자본주의는 내게 얘기를 해

아이 하나 낳고 한 걸음,

곧 한 걸음을 더 달아나겠지

이제 그 곳이 어디란 걸 알아, 나의 종착지

흔적을 지우지 말아야 해

정작 내가 아파한 이유를 두들겨야지


현학의 파편 모서리마다

내가 긁혀 있었어

산소와 수소를 썩혀 물을

만들어 마시니 취하더라구

미친 듯 내가 그 자리에 있더라니까

당신들 뒤에...


             2001, 9, 26.





  - 이 태백의 詩 한 수 -



꽃 아래 한 독 술을 놓고


홀로 앉아서 마시노라.


잔 들자 이윽고 달이 떠올라


그림자 따라 세 사람일세.



달은 술을 마실 줄 모르고


그림자만 날 따라 다니오.



달과 그림자 데리고서


함께 즐기는 이 기쁨이여.



         - 나의 결혼 선물로 김기정씨가 준 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