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KOREAN POEMS

ENARO's POEMS 9(/외출/안개/기차안에서/가을엔/LOVERS)

ENARO 2008. 5. 21. 18:30

  외  출

 

그냥 픽 스러진 낙엽에도

바람은 운다


하늘과 땅이 다른 세상

하늘로 가자고


파리떼, 소주, 담배, 골방

죽음의 문패


뒹군다

가슴, 우유병, 시계, 눈물, 의식


일어선다

옷을 입는다


방문을 밀치고

나선다, 땅으로


-후후, 담배나 사야지-



         1987, 7, 20.



 

      안    개


지금 나는 조치원행 열차를 타고 가고 있어

지나쳤지만

내리진 못했던 곳

아무도 나를 찾지 않던 비 내리는 마을


오늘은 그 곳에 나를 내릴 거야


떠나는 건 슬프고

가다리는 건 아프지

그것도 행복이 될 거라고 나는 다시 가고 있어


저 켠 너머 산에 안개가 서려

헤치면

산이, 또 산이 이어지고

그 중간에 네가 있는 걸 알아


안개는 제 스스로 나타나

스스로 몸을 숨기지

마치 사랑처럼


그 안개 속으로 내가 가고 있어

그 가운데 네가 있기에



                           기차안에서

                       2001 , 7 , 21(土)



   기차안에서


오늘은 모든 게 멋있어

 

창밖을 스쳐 흐르는 빗방울들


아이들의 소란


뒷 좌석 노인과 학생과의 대화


사각진 콘크리트 아파트들


철탑, 그 뒤 희뿌연 안개


터널의 어둠마저도


잠시 후 이 열차는 대전,


대전역에 도착하겠습니다, 라는 안내 방송

 

그 말에 가슴이 뛰고 있어


가다림도 고통도 없이 달려가고 있어


오늘은 정말 모든 게 멋있어


미소 건너 또다른 길


나를 다시 데려갈 그 길


헤어짐도 멋졌으면 좋겠어    2001 , 7 , 21 .(대전역을 지나며)


 

가 을 엔.....


가을엔

가버린 사람의 파란 행복을 위해

소박한 설레임으로 기도하는 詩를 사랑하자


때론

폐허로 향하는 길목에서 고독한

빗줄기마냥 공허한 미소를 지으며


둘이 살던

도시의 퇴락된 빈 공간을 찾아가 들치면

심장 가득 신음하는 너의 술, 나의 담배


죄다 묻어 두고 가야 하는 남의 하늘 아래

너무나 많은 걸 사랑한 죄로 하여

삶이 찌들어가도


가을엔

추억의 신자로 엎드릴 수 있다는 그 이유만으로도

우리네 잠궈 논 사랑을 풀자



                                1991, 11, 17.



      LOVERS

 

운동장엔 철벅 철벅 비가 내립니다

우리는 오늘도 하나의 게임을 준비합니다

애당초 조건은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빗소리가 심장 가득 몰려 와도

빠알간 우리의 피를 밀쳐낼 순 없습니다

소리는 인간의 함성 소리, 가장 투명하고

먹구름도 우리의 하늘을 다 메우진 못합니다


가을 노래 마냥, 수업은 끝이 나고

운동장만한 넓은 세계는 찾을 수 없기에

하나, 둘... 반갑게 모여듭니다


우리는 하나의 게임을 치르고 있습니다


그건 정직하고 자랑스런 공차기입니다

돌려 차면 돌아가고

곧게 차면 곧게 날아갑니다


하지만 이 둥근 세상은

서로의 바램따라 움직여주진 않습니다

공의 존재 이유라 할까요


게임은 발놀림으로 진행되지만

우리의 가슴엔 온 세상이 터억 안깁니다


공만한 인생 저울을 대할 수 없어

우리는 오늘도 무던히 하나의 게임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1990, 9, 13.

  대학시절 LOVERS라는 축구클럽에서 비오는 날 공차던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