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ARO's POEMS 7(낮잠/푸념/철로 교차로../사모)
낮 잠
아무도 태어나지 않는다
둘이면 둘
다섯이면 다섯
하늘에서 부어내리고
세상 디자인 속에서
영혼에 물기 적시고
바람등에 업혀 참한 세월로 가선
그리운 이를 만나다가
비누 방울 원 둘레를 생긋 돌다가
어디든지 내려 앉는다
아무도 죽어가지 않는다
다섯이면 다섯
아무도 죽어가지 않게
안에서 안으로만 맞대이며
몸적셔 티끌 털고
드러나지 않게 고야운 향으로
부벼대며
음영으로 결박지어진
삶 그림자
공간은 울타리가 낮을수록 좋다
눈 비비면
둘이 셋이고
다섯이 넷이고 하여도
태초 그대로의
쬐금도 갉아낼 수 없는 영역
아, 정말 깨이고 싶지 않아
1989, 5, 4.
푸 념
내 디딘 발바닥을 사랑하시오
묻고 있다
물기 없는 땅
내 불어터진 눈알을 쥐어 보시오
다섯 손가락 마디 마디
꽉 끼어라도 보시오
내 머리는 갈대마냥 어리석고
내 언어는 누구 말처럼
말라빠진 후레 빛깔이요
아버지는 노동을 오늘도 나가시고
어머이도 사랑은 밖이라 하오
그래도 사랑안에서
하늘 저멀리 당신은 아오
내 여린 친구 놈
소주 막 잔에 닭똥집 안주 만큼이나
정겨운 女人도 간다 합디다
세월 탓에
골목이 휘청거리도록
노래를 부르며 나는 서 있소
내 디딘 발바닥을 사랑하시오
묻고 있소
내 살아가는 의미를
1988, 11, 6.
철 로 교 차 로 에 서
X자 길목
기차는 과거를 잃고 헤메다 서다
詩人은 전설만 향한 채
한 줄도 꺼적여대지 못하고
기막힌 아우성
바다로 가고, 산으로 가고
제각기 누울 터를 짖으며 떠나고
X자 길목
운명처럼 모였다 갈라졌다
더 이상 아무 것도 잡히지 않고
서성이는 오후, 과거는
역전에서 마른 햇볕 쬐이며, 애타게
2박 3일을 기다리고 있다
부서진 상실의 쓰레기만 주위를 배회하고
X자 길목
흔들리며 아우성치며
제각기 떠났던 사람들
또 각자 텅빈 배낭을 챙겨 귀향 열차로
떠난다, 과거는 매섭게 버려진 채
그네들 머리로 담겨지지 않고
구겨진 여름
詩人의 가슴만 시리고
1987, 8, 3.
사 모
저물어 가는 인생이어도 좋다
내 말라가는 몸짓이어도
네 사는 길이라면
아예 눈을 감아도 좋다
1989, 12,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