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ARO's POEMS 6(삶/나의 여행길에서/운명2/기다림/여름은)
삶
떠나 보낸 사람이 헤아려지지 않습니다
내가 세상이어야 하는 세월에 축 늘어져
지켜야 할 사람을 무섭게 떠나 보내고
나는 여기, 술 한잔에 내일이 무서운 차림새로
길도 떠날 수 없는 나의 구석에 쳐박혀 지냅니다
나의 멱살을 붙들던 이들이 사라져 가고
눈밑이 희뿌옇게 슬픈 전설 꼬투리를 붙들고 울고 싶습니다
이 나라가 갖추어진 날이라나요
산다는 건,
노래 가락에 묻혀 버리는 건
허허! 쉬운 일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모든 불상들은 아침 그대로의 거리로
허허! 웃고만 있어도 될는지..
가녀린 모가지로 매일 목운동을 해가며
계속 같은 길에 매달려
떨어질 날을 기다리는 것도 나의 길입니까
내 당신들을 목숨 바쳐 지키지 못한 연유인가요
눈물이 후레빛깔의 길섶에서 부서지며
웃어야 하는 게 세상인지요
어떤 웃음을 숨어서 지을까요
사랑을 얘기하던 세월에 너무 오래 머물렀던 까닭에
당신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당신을 지키는 게 두려워 당신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이마가, 귓불이, 뒷 모습이 내 초라한 영혼을 수갑채워
당신을 지켜 정녕 나의 살 길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당신의 영혼을 팔아 나의 성을 지었습니다
주인은 삭아 저멀리 나의 영혼을 시험합니다
당신이 남기신 혼이 당신을 전해 주지만
저는 당신의 종이, 아직도 종이 되지 못합니다
당신은 늘 저를 바른 길에 놓아 두시지만
저는 당신을 따르지 못합니다
죽여버리고 싶은 세월이 있었습니다
당신은 이미 그 때 나의 저 켠에 서서
저를 멀리 떠나 보내고 계셨습니다, 그 때 가장
당신의 종이고 싶었음을 이제사 고백합니다
지켜가야 할 세상을 기억하고 싶습니다
맑은 가슴들
탁 하고 무릎을 치며 가리키는
별은 이제는 없습니다
당신의 종이기 위해 지켜야 하는
그들의 별이기 위해 살아갈 수 있는 구실이 파르르 떱니다
그들의 이마위에 한기를 헤아리며
헤아리지 못한 내 별들을 기다리겠습니다
사랑합니다, 당신의 종이 될 수 있는 별로
지켜야 할 별들을 기다리며 아직 서 있겠습니다
1996 , 10 , 3.
나의 여행길에서..
나의 여행길에서
아름다운 사람의 눈빛을 보며
아름다운 생각을 하며 살고 싶습니다
남을 위해 한 걸음 더 나아간다는 게
가슴은 크게
다리는 절뚝이며
살아가야 함을 알지만
가슴을 치뜨는 인내를 남의 꿈으로 돌리지 않고
다리를 저는 고통을
타인의 몫으로 치부해 버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나의 여행의 막다른 길목
아름다운 생각에 부드러운 눈빛곁에서
아름다운 이의 이름을 부르며
아름다운 죽음을 맞이하고 싶습니다
1994, 4, 6.
운 명 Ⅱ
소나기를 애타게 가다리던
우리는
차마 마주할 수 없던
해를
보았습니다
하루는
해님을 기다리다 지쳐
온 몸이 푸르도록 병든 옷깃에
소나기
소나기가 내렸습니다
달이 아쉽게 걸린 하늘을 지나치며
저만치서
짖어대던 개의 목소리는
붓어 터지고
더러운 토양에도 꽃은
피어, 지고, 피어나듯
이제 결코 피할 수 없는
해가
소나기가
내리 비쳐 내렸습니다
후일 그는 없었습니다
기울어진 이 땅 어디에도
88년 5월
친구(오세일)의 죽음 소식을 듣고
기 다 림
내 제일 싫어하는 말
yangmi님이 퇴실하였습니다
내 제일 좋아하는 말
yangmi님이 입장하였습니다
누구를 탓할 수 없네
내 삶인 걸
내 사랑하는 인생인 걸
느낄 수 있고
님을 향하진 못해도
내 마음 님 속에 머물고 싶은 걸
누가 뭐라나
내 웃음의 의미를
누가 뭐라나
내 울음의 의미를
내가 책임지고 가야 함을 아네
이제 돌아오지 않을 걸
이제 돌아오지 않을 걸
하지만 난 기다리네
그게 내 삶인 걸
이 기계에 붙들린 내 삶인 걸
아니,
내 마지막 불꽃인 걸
2001, 7, 4.
여 름 은..
여름은 생각하는 것마저 뜨겁다.
하늘 그늘을 찾아 들어가
책을 펼치고 쓰고 뭉개고
순간, 바람에 실려 다가오는
어느 날 어디서 분신 자살한 얼굴 그림자
간간이 나뭇잎이 열사 함성을 배워
터질 때 눈이 부셔 아예 보지도 못한
그래 여름은
이다지도 뜨겁게 다가오는 가 보다
한데 아직도 죽은 하늘에 벌건
당신 던진 통한의 불꽃인가
아님 뉘 걸어 논 의식의 등인가
뜨겁게 뜨겁게 외쳐대는
시방 온 몸이 간지러웁다.
1989, 7,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