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KOREAN POEMS

20 korean poems by Mr. ENARO(3:장님의 눈은...외)

ENARO 2008. 5. 21. 18:02

장님의 눈(目)은 눈(雪)을 보지 못한다


밤에 첫 눈이 내리는 데

장님이 저만치서 길을 가고 있다


지팡이는 그의 몸의 2분의 1

그나마도 제 구실을 하지 못한다


늘어선 전봇대, 크나큰 돌덩이

눈 얇게 덮인 웅덩이가 잔뜩 그를 노리는 데


이십여년 장님이었으련만 서툴다

부딪히고 넘어져

물팍에 흥건히 피가 배였다


밤눈을 맞으며

소리없이 그의 뒤를 밟아 가는 이가 있다


어두운 골목에

그와 그의 뒤를 사뿐 밟는 이

둘만이 밤길을 간다


둘의 발자국 소리는 하나

몸은 둘, 아니 여럿


뒤를 따라도

부축하는 이 하나도 없다


결국 장님은 하나, 혼자서 길을 간다.

첫 눈에 세상이 개벽을 하는데

장님의 눈(目)은 눈(雪)을 보지 못한다.


-젊은 놈들은 아직 세상을 바로 보지 못해-


연거푸 몇 년을 내린다 해도

눈(雪)을 보진 못하겠지,

장님의 눈(目)은


                                      1985, 1 , 14 .

 

   

     제(祭)


가녀린 불꽃이 떨다   

병풍으로 가리운 서러운 님의 祭

                                     

창 너머 빗소리는 그윽한데


어디로 가나

외로운 향불 연기

핏발 서린 눈시울에 머문다


그의 주검을 헛되이 마소서

그의 영혼을 가슴에 안으소서


                            1984. 6. 6.


무릇 한 편의 詩는

詩人의 영혼이므로

그 어느 누구도

그 詩人의 가슴에 상처를 내서는 안 된다.



 

           狂者의 화살



버드나무 메마른 잎새가 시간의 그림자를 밀치는 初秋의 한 밤

창 틈새로 달을 바라 기도하는 죄수의 참회 소리,

서글픈 귀뚜라미의 가냘픈 음률로 젖어드는 밤

저만치 머언 공중 어귀선, 미친 놈이 쏴 버린 화살에

어둠도 숨을 놓았다, 지독한 공포

                                                      

밤에만 밤에만 고요를 즐기던 새들의 무리

날마다 날마다  서녘 하늘 고운 님을 그리다가

이제야 나는데, 깊은 밤에야 나는데

미친 화살이 그냥 목을 꿰뚫어 버렸다.


한 번의 날개짓도 하지 못한 채

추락해 가는 너의 깃

한 오라기 비명도 없이, 너의 주검은

오사카 차디찬 콘크리트 바닥에서 부서진다


기모노의 발길에 짓눌러, 형상도 없이

인류의 더러운 역사를 비웃고

東歐의 살인마를 향해 절규할 뿐


긴 긴 불면의 밤에

울어도 울어도 텅 빈 메아리만

비굴한 동포의 가슴에 녹아 든다



                                KAL 707 떨어지던 날

                                    1984, 9, 20.





 어 머 니


누런 흙빛 시름에도

생명을 단 세월의 추는

네 번의 새벽 이미지를 남기고,

오랜 반복에 닳은 소리


물소리, 살에는 소리, 바람 소리, 또 물소리

어머닌 오늘도 찬 물로 몸을 두르는 가 보다


북녘, 시베리아의 이른 아침

어머니 옷을 벗고 섰다

누구를 위한 기원인가

누구를 위한 아리움인가


여인, 한국의 여인

옷자락이 날리우고

성황당 돌 무더기

백의의 어머닌 호올로 돌 하나를 받쳐 든다

천지신명이시여

-아들의 이름에 내 영혼을 가루되게 하옵소서-


오랜 반복에도 살아 오는 소리

뼈를 삭히는 소리

오늘도 어머닌 시베리아의 차운

겨울날 아침에 나신으로 사랑을 빚는다


                                      1984, 11, 24.




 夜景(야경)속에서



나는 안경을 벗고 강둑에 앉아 있다

세느강변 기인 담배 연기를 보며

나는 남강변 댓잎의 노래를 듣고 있다

 

내 곁엔 아무도 없다

자동차 소리, 시끄러운 가시내들 소리

“밤 늦게 뭐 하러 나왔노. 가시내들이” 하는 소리

하지만, 그건 소리가 아니다.

내 곁엔 아무도 없다.


기억 속

“시몬, 그대는 들리는가? 낙엽 밟는 소리를”

구르몽, 하지만 그건 착각이라네

밤인데 어찌 들을 수 있겠나


나폴레옹이 원정의 길을 떠나네

러시아 군사들은 그의 말발굽에 쓰러져 죽네

님이여, 날 구해 주오.

님은 날 구하겠지만, 내겐 님이 없네

아참, 내겐 님이 있었지, 아냐 없었어


밤하늘에 돌 던져 별 되라지만

떨어져 버린 그 곳은 물 속

추운 강변에 누가 나의 목을 감는다

나는 물 속으로 한없이 가라 앉는다


                                         1984, 12, 14.


              기 도


                                            -이십 사 시간만 가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당신은 왜 코스모스 핀 길을 지나셨습니까?

당신이 지나신 길 위엔 코스모스도, 풀 대인 언덕도

시꺼먼 재만 남기고, 호올로

지쳐 서 버린 나그네는 그림자도 없습니다


벤치에 쌓인 우수를 먼지처럼 날리고

새마저 숨죽인 빈 하늘아래

당신을 위한 건, 바람 그리고 낙엽


누런 산에 애수 띤 아낙

애수 띤 아낙의 얼굴은 하얀 비둘기의 눈망울

 

왜 당신은 시련 가득 이 밤을 저에게 주시는 겁니까?

당신은 왜 밤이 가고 아침이 오는 것을 막지 아니합니까?

당신은 왜 아낙의 애수를 보지 아니합니까?


아직 어머닌 돌아오시지 않았습니다

문둥이 재를 넘을 때 문둥이가 어머니를....

아니, 어머닌 고단한 들녘에서 잠시 잠에 취했을 겁니다

거룩한 님이시여, 가을을 조금만 더 잡아 주세요

어머니 오시는 가을 길섶에 제발 겨울을 두지 마세요 


                                      1984, 11, 27.





  바다새와 뭍새



아픔에 고개 숙인 새는 온 밤내 울음 운다네


정에 버림받아

날갯죽지 하얗게 되어버린 바다새


슬픔 밴 운명의 길가

뭍새의 그림자와 방랑의 노래 깔리고


이제 날 새려 하는데

슬픈 하늘 가 뭍새의 눈물로 스미네


하늘과 땅이 맞닿은 곳

뭍과 바다가 연이은 곳

둘만의 사랑과 아픔이 머무는 곳


운명에 항거할 수 없음에

뭍샌 그만 울음으로 스러져야 할 뿐


                                   1984, 11, 2.

 



    다 드리지요


내 아버지는 나를 사랑합니다

내 어머니도 나를 사랑합니다

 

머리칼은 셀 수 없이 많지만 아버지께는 하나요

발가락도 손가락도 각각 열 개씩이지만 내 어머니께는 하나요

이 외 나의 것이 여러 개지만

아버지나 어머니께선 나를 하나로 보십니다

 

하지만 이제 하나를 여럿으로 나누어 드리지요


맹인에겐 아버지의 눈물이 괸 나의 눈을

내 할머니처럼 심장이 식어버린 분에겐

어머니의 정성어린 밤 기도에 따스해진 나의 심장을

.............................................................죄다 드릴께요


자 이제 둘이 남았습니다


아저씬 내 나라의 은인

폭염의 고지에서, 적은 인민군 38사단

싸우다 싸우다 지쳐 두 다리를 잃고

아저씨 제 다리를 가지세요

아직 다 자라지 못하였으나

아버지의 인고로 뼈를 만들고

어머니의 흘리신 피로 살을 만드신 것이랍니다


자 이제 하나가 남았습니다


나의 마음은 어느 분에게 드릴까요

아, 저기 쓰러져 우는 분이 계시군요

아! 어머니!

어머니께선 저를 위해 울고 있다고 합니다

어머니께 제 마지막 남은 마음을 드립니다


아 이제 끝났군요


아버지는 나를 사랑합니다

어머니도 나를 사랑합니다

내 이름이 다하기 전에..... 아버지! 어머니!                    1984, 12, 12.


         



   고   별

 


기인 언덕에 외론 구름이 간다.

가느다란 음률이 내를 스친다.

보고파 한 마디에 눈물 한 방울

뒤돌아 설움은 쌓여 가는데

詩人은 고별을 사랑해야 한다나


가지에 새가 울고

아직 구름은 산을 넘지 못하여도

들길은 멀어

떠난 女人은 뒤를 보지 않는다.


고별을 울며 사랑한다는 詩人

일부러 만든 것처럼

일부러 가진 것처럼

다신 보지 않을 것처럼

위선만 펴고 있는가


부르지 못할 노래

맘껏 부르다, 부르다 그칠 수 없는

얘기, 사랑, 그리고 이름이 될 때


사랑하기에 보낸다는 詩人

행복하란다

두 손 모아

호랑 나비 춤추는 하늘에다가

빌어 빌어 행복하란다


                                       1984, 7 , 17 .



       하나이고자


불빛 흐르는 다리에 서서

피멍 든 가슴을 보일 순 없어도

강물은 오늘도 흐른다


거꾸로 매달려 하늘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

말없이 눈물을 즐겨 마셔

걸었으되 이루지 못한 삼십 여년


하늘 아래

내와 산과 들을 잠재운 달은

보며 들으며

그네들을 대하고 비쳐 왔던가


베를린 장벽

허물며 이끼를 녹여 가는데

이다지도 바람은 불고 눈은 내리는가

녹슨 철책, 휴전선 일백 육십 오 마일


설운 용왕담도

고운 백록담도

오늘은 겨울인 고로

살얼음 질 터

하늘은 너와 날 보고 있잖은가


밤하늘에도 새는 날고

젊음을 앗는 대도 피는 끊는다

그런데 난 왜 너를 부를 수 없는가

왜 우리가 되지 못하는가 말이다


애초의 우리는 하나였을진대


                                       1985 , 2 , 5 .



님 가신 언덕에 어둠만 내리고




우러나오는 모든 것을 가질려도

잡히는 거라곤 하나도 없나니

가을은 마냥 차다


길을 가며 가며

낙엽 사린 언덕을 보아

찬 하늘 아래

별 지는 곳


당신으로 인해 내가 있나니

난 거기에 꽃을 심으리


아, 나 아무 것도 가질 수 없어도

결코 슬퍼하진 않으리라

비록 님 가신 언덕에 어둠만 온대도


            1985, 2 , 25 .                                          

 

 


  선 물



믿음이고자

소망이고자

사랑이고자

보내는 선물

내게로 주오


그들을 일궈

고루 드리리

믿음이 가득

소망이 가득

사랑이 가득


            1985 , 1 , 4 .


 

부  모

 

나서 지고 감을

 

가늠하는 길목에


우울한 곡이 흐르고

 

바람 사이


밤을 지새던 어린 애기는


늦게사 돌아온


부모품에 다소곳이 안겼다


                               1985, 3, 7.



시간이 흐르는 까닭

 

시간이 흐르는 까닭은


군밤 타는 냄새가

 

돌아가신 할머니의 품에서


풍겨 오기 때문이다


                            1985, 4, 3.


  삶


하나의 이름으로

어둠에 적힌 숱한 사연들을 지울 수 없기에

난 아무도 몰래

내만 부르는 독특한 이름을 지었소


하나의 소리로

당신을 부를 수 없기에

스쳐 간 얼굴들에 심지를 돋우고

흔한 종

작은 나의 종으로

하나의 종

큰 당신의 종에 맞대어 소리를 내었소

유난히 크고 밝은 소리를 잠시나마 내었소


머언 미래를 보며 살고

시월의 국화송인 왜 그리 조심스러운지

그렇게 살다 가더라도

난 두 개의 심장을 가지진 않을 거요


모두가

둘로 만나고

둘이 되어 헤어진다 할지라도

나는 하나의 가슴으로 족하며

살다가 살다가

거꾸러질 거요


                        1985, 4, 25.



첫 사 랑



어두운 밤

별이 창가에 내리고

아름다운 꿈결에

고귀한 영상

황홀한 지고


복사꽃 피는 볼

눈은 눈으로 통하고

마음도 동하여 버리는

목타는 심상


한 주일 이레를 꼬박

꿈에도 그리는 마음

나를 그만 죽이소서



                                1985, 5, 7.



  안  경


도수 높은 안경을 벗고

가만 세상을 본다

제로도 안 되는 시력으로밖에

볼 수 없음을 후회하면서

아예 눈마저 감겨 버리길 빌면서


시야에 흐릿하게 비치는 감각

어둠이 희망으로 바꿈질하는 순간

영원히 보고파 눈을 감고

아예 생각마저 지워져 버리기를

간절히 빌며

불면의 밤을 지샌다



                          1985, 6, 8.



       


산을 바라다 볼 때마다

나는 마음을 달리한다


구름에 가려 비단을 두르는 계절에

山이여 내게로 오라


내 너의 품에 안겨 꿈을 꾸느니

너를 불러 시월만 내게 있게 하리


산을 바라다 볼 때마다

나는 마음을 달리한다


뻐꾸기 우는 밤

별이 아무리 고운 밤도


너의 그 고운 초록빛 저고리와

앵두빛 치마로 날 유혹하더라도

이 해만큼은

홀로 고독 떨구며 나를 이기련다


                                     1985, 10, 15.




길을 걸으며


길을 걸으며

마주 보고자 하면

너의 볼은 눈물에 젖어 있다


고독이 풀리는 건가

가로수 잎이 하나 또 하나 떨어진다

하나에 나중을 위해 표식을 해 두자

사랑한다고


오리를 걸었나

출발이 보이지 않는 지금, 길은 굽어 있다

녹빛 등불이 어둠에 반짝인다

여기 또 새겨 두자

사랑한다고


길을 걸으며

계속 걸으며

이 끝이 오래이기를 빌며 걸으며 걸으며

그러나, 아 길이 부족함인가

아직 너의 눈물이 마르지 않음인가

너는 나의 뒤에 쳐져 있다

나는 벌써 수 보를 갔는데

너는 거기 머물러 오지 않고 있다


안녕

사랑했었다

                               1985, 11, 13.                  


 

    소 나 기


뉘 우리의 웃음을 털어 먹고 체했나 보다

토실하던 하늘이 야위어 가는 건, 갑작스레

 

뉘 우리의 아픈 모가지를 '싹뚝' 베었나 보다

진실은 하얗다 못해 무색투명한 피로 떨어지고

 

뉘 우리의 가난한 꿈마저 지웠나 보다

뇌성 마디 마디 신음이 분질러 지는 건


하여도, 우리 사랑은 가두지 못했나 보지

저기 햇살 품고 내 님 오고 있으니


                                               기사년 칠월 스무날

              

 -모든 게 눌러 터지는 세상입니다.하지만 단 한 가지 사랑만은 절대 꺼지지 않는 등불이요 영원히 잊혀질 수 없고 영원히 서로에게 거역되지 않는 신화입니다.-


 -소나기는 가진 자들의 횡포로 말미암아 한꺼번에  쓰러져 가는 자들의 얼굴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우리를 아끼는 사랑만은 버리지 맙시다. 어떠한 억압속에서도 우리를 지켜줄 신념이니까요.-